第九十七章 개시반공(開始反攻) (1)
쒜에에엑!
허공을 찢는 파공음이 귀 따갑게 들렸다.
해자수는 일부러 자신을 노출했다. 그러니 신형을 숨길 이유도 없다.
쉬잇!
해자수가 단숨에 날아와 두 사람 앞에 섰다.
“헛수고했구나. 아버님은 여기 없다.”
일자가 차게 말했다.
“알아. 알아. 큿큿! 내가 속은 것 같지? 촌장이 빠져나간 건 진작 알고 있었거든. 요건 몰랐지?”
“후후! 그런가.”
일자가 실소를 흘렸다.
조금 전까지 일자는 상당히 만족했었다.
혈마가 된 해자수는 이제 음문촌 사람들이 상대할 수 없는 거인이다.
그러니 그에게 따라잡힌 게 창피하지 않다.
그것보다는 마차를 따라붙은 혈마를 주시했다.
혈마 중 상당수가 마차를 뒤쫓아오고 있다.
그렇다면 홀리 쪽으로 달라붙은 혈마는 없다.
있어도 한두 명이다. 그렇다면 혈천방 공격이 성공한다.
자신들은 죽지만, 홀리를 잡는 역할은 충실히 했다.
아버님은…… 음문촌장은 원하던 것을 이룬다. 그러면 된 거지. 자식 노릇은 충실히 한 거지.
그런데 해자수의 말을 들어보니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속았네. 후후!”
일자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미끼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쫓아왔다는 것은 홀리 쪽에 대해서도 이미 방책을 세워놨다는 뜻이다.
혈천방이 공격할 것을 예측했고, 대비책도 세웠다.
이제 음문촌장은 큰일 났다. 자칫하면 홀리에게 죽는다.
“너란 놈은…… 우리 음문촌을 잘 알면서.”
일자가 검에 분노를 실었다.
아비가 딸을 잡겠다고 나선 것도 잘못된 일이지만, 딸이 아비를 죽이는 일도 잘못된 것이다.
양쪽 모두 최악의 패륜이다.
음문촌장은 딸을 혈마로 만들어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다.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홀리는 다르다. 아버지를 죽이면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 것이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아버지 뜻을 따르는 것이……
결국, 아버지 뜻에 따라서 홀리를 유인해 냈지만, 그 대가로 자신은 혈마에게 죽는다.
이것도 괜찮은 결말이다. 홀리를 혈마로 만든 죄를 이런 식으로 씻는 것도 괜찮다.
한데…… 해자수가 자신이 가장 꺼리는 일을 저질렀다.
홀리에게 음문촌장을 던졌다. 반드시 죽일 수밖에 없는 환경으로 밀어 넣었다.
음문촌장은 혈마를 당하지 못한다. 죽을 것이다. 그리고 홀리는 평생 편한 마음으로 살아가지 못한다.
그래도 평생을 보아온 오라비인데 홀리를 모를까.
해자수가 일자의 속내를 눈치챘다.
“아! 그거! 걱정하지 마. 홀리 아씨가 정이 많다는 건 알잖아? 겉모습은 얼음인데, 속은 화산이야.”
“걱정하지 마세요. 홀리는 아버지에게 검을 들지 않아요. 잘 알잖아요.”
육자가 해자수의 말을 받았다.
“홀리가 검을 쓰지 않을 거라는 건 알지. 문제는 홀리를 따라간 혈마야. 홀리는 망설여도 그자는 망설이지 않을 테니까. 어차피 아버님은 죽어. 누구 손에 죽던. 그리고 아버님의 죽음은 홀리가 죽인 게 돼. 친부 살인은 이래서 지랄이야.”
“아! 호발귀! 지금 호발귀 말하는 거지? 에이, 호발귀가 그럴 리 없지.”
해자수가 어림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호발귀? 호발귀가 따라갔어?”
일자가 반색했다.
홀리를 쫓아간 자가 호발귀라면 우려를 떨쳐내도 된다. 호발귀라면 친족 살인을 절대로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홀리가 검을 든다고 해도 말릴 사람이다.
해자수가 다소 편해진 일자의 표정을 보면서 말했다.
“나도 조금 전에 알았는데, 아씨에게는 호발귀 혼자만 갔다네? 다른 사람은 다 이쪽으로 붙었고. 염려하지 마. 호발귀가 아씨 말이라면 깜빡 죽잖아. 절대로 촌장님을 죽이지 않는다에 내 목을 걸까? 그런 일 없어.”
“후후! 됐어. 이거면…… 후후!”
일자가 웃었다.
호발귀가 따라붙었다면 홀리가 잡히는 일은 없다. 또 홀리가 촌장을 죽이는 일도 없다.
음문촌장의 사악한 의도는 드러나겠지만, 양쪽 모두 무사할 것이다.
“형님, 어쩌면 둘째 형님은……”
“우린 우리에게 닥친 일만 걱정하자. 내 코가 석 자인데 누굴 걱정해.”
일자가 해자수를 쏘아보며 말했다.
“그런데 왜 내렸어? 더 도망가지? 내리지만 않았어도 이렇게 달려오지 않았을 텐데.”
해자수가 놀리듯이 말했다.
“도망가길 바라면 쫓아오지를 말았어야지. 그렇게 쫓아오는데 어떻게 도망가나.”
“아! 그런가? 그거 보기 안 좋은데 검은 집어넣고 이야기하지? 당신들 죽일 생각 없어.”
해자수가 손을 휘휘 휘둘렀다.
일자는 음문촌 사람 중에서는 진중한 편이다.
아니, 가장 평범한 사람 측에 속한다.
무공은 절대로 평범하지 않지만, 보통 사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일자도 뜻에 맞지 않는 명령을 쫓느라 고달팠을 것이다.
육자는 홀리와 가장 친했다. 이목구비가 가장 번듯하고, 사고도 밝다. 성격이 밝아서 항상 웃고, 남에게 베풀고 도와주는 것을 좋아한다.
음문촌만 아니라면 혈천방보다는 천살단 쪽에 가까운 청년으로 성장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 두 사람만은 배고 싶지 않았다.
일자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혈마가 되더니 못된 버릇이 들었군. 사냥하더라도 사냥감을 놀리면 안 돼. 어디…… 혈마의 생기 무공, 직접 부딪쳐볼까? 우리는 상대가 안 되니까 같이 싸우도록 하지.”
“지금 싸우자는 거야? 싸우기 싫다니까.”
해자수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믿는다. 싸우기 싫다는 말. 하지만…… 보아하니 오늘 음문촌 사람들 모두 일진이 사나울 것 같은데, 우리만 살아 돌아가는 것은 도리는 아니라서.”
“하아! 싸울 일 없어. 싸우려고 온 게 아니고……”
“해자수. 손 좀 빌리자. 내 목숨 취해줘. 가급적 빨리 죽여주면 바랄 게 없고.”:
일자가 검을 눈높이로 들어 올렸다.
파방! 팡!
일자의 검에서 잔잔한 폭음이 울렸다.
검이 진동하면서 공기를 후려쳤다.
강한 살기가 뭉실뭉실 피어나 자욱이 번져갔다.
일자는 전력을 다하고 있다.
“합공, 이해해. 이런다고 생기 무공을 누를 것 같지는 않지만.”
스읏!
육자도 검을 들어 올렸다.
“곤란하네.”
해자수가 미간을 찡그렸다.
싸움이 시작되면 본의든 아니든 두 사람은 죽는다.
생기 무공을 조절 가능한 무공이 아니다.
자신이 누구에게 어떤 식으로 검을 쓰는지도 모른다.
한 차례 드잡이질이 이루어지고……
정신을 차려보면 사람들이 죽어 있다.
해자수는 진심으로 두 사람을 죽이기 싫었다.
“내가 잘못 왔나? 난 빨리 이 상황에서 빠져나가라고 말해주려고 달려왔는데, 싸우려고 온 게 됐네? 다른 사람들이 오면 정말 못 보네. 그러니까 미끼 노릇 그만하고 빠져나가.”
해자수는 뒤로 물러섰다.
철컥! 철컥! 철컥!
사방에 철벽이 세워진다.
금방이라도 이 철벽을 깨뜨리고 싶다. 혈기가 일어난다.
혈기는 살기하고 다르다. 살기는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일으키지만, 혈기는 생기를 꺼뜨리고 싶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촛불 꺼뜨리듯이.
해자수의 마음에서는 어떠한 투쟁심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철벽이 세워지고, 철벽을 잘라내면 그만이라는 생각만 든다.
그러니 사람을 해쳐도 죄책감이 일어나지 않는다.
“정말 싸우기 싫다니까. 하! 이거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듣지?”
“음!”
일자가 침음했다.
싸우기 싫다는 해자수 말을 믿는다.
그래도 싸움을 끌어내는 것은 인제 그만 목숨을 버리기 위해서다.
모두 죽을 텐데, 자신들만 살아서 돌아갈 수는 없어서.
해자수가 말했다.
“이왕 이런 말이 나왔으니 한 가지 부탁 좀 해도 되나?”
“뭐냐?”
“제발 이제는 아씨 좀 내버려 둬. 아씨, 아니 우리 혈마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전혀 알지 못하거든. 혈마가 되고도 혈마에 대해서 알아낸 것이 거의 없어. 때가 되면 혈기가 일어나고 미친놈이 된다는 건 아는데 이걸 어떻게 조절해야 할지 전혀 몰라. 그러니까 정신 차리고 있을 때만이라도. 그때만이라도 제대로 좀 살게 내버려 줘. 하! 말하다 보니까 속상하네.”
“음!”
일자가 살기를 거두고 검을 축 늘어트렸다.
“에이. 아버님을 몰라서 그런 말을 해? 그런 약속을 어떻게 해? 틈만 나면 홀리를 칠 텐데.”
육자가 힘없이 중얼거렸다.
“알지. 촌장님이 어떤 분이라는 걸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니고…… 알아도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그 양반 혼자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아씨 좀 도와줘. 저 사람들은 내가 돌려보낼게.”
해자수가 뒤쫓아 온 혈마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언제 또 보게 될까? 킥킥! 솔직히 서로 안 보는 게 낫지? 잘들 살고.”
쉬이잇!
해자수가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제길! 모양 우습게 됐네.”
일자가 툴툴 웃었다.
* * *
등여산은 특별히 귀검을 따로 불러서 부탁한 게 있다.
- 사마를 쫓아주세요. 근거지가 어딘지, 뿌리를 밝혀주세요. 호발귀가 오면 저희도 바로 따라갈게요.
모두 해자수의 뒤를 쫓을 때, 귀무살은 한 발 더 떨어져서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이동했지만, 그들은 전혀 다른 것을 찾았다.
마차를 쫓지 않는다. 음문촌 사람들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는다.
이곳에 왔을 혈천방 무인들을 찾는다.
혈천방주를, 사마를 찾아서 눈길을 번뜩인다.
- 싸움이 벌어지면……
- 싸움은 벌어지지 않아요. 혈천방주는 분명히 공격을 포기하고 물러설 거예요. 혈마가 이렇게 많이 몰려 있다면 공격해 봤자 승산이 없다는 사실을 알 테니까요.
- 혈천방주가 승산 없는 싸움을 무리하게 일으킬 사람은 아니죠.
- 방주가 물러서면 바로 뒤를 쫓으세요. 암암리. 공격해 온 자들을 쫓아서 근거지를 칠 거예요.
등여산은 이쪽에서 먼저 역공을 취할 생각이다.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라면 한쪽만 일방적으로 공격하게 만들 수는 없다.
천살단과 혈천방 중 한쪽이라도 완전히 쓰러트린다.
적어도 사마는 모두 제거할 생각이다. 사마를 만들어내는 근거지까지 따라붙은 후에 공격한다.
그래서 두 번 다시 사마를 만들지 못하게 만든다.
츠츳!
앞서가던 궁충이 멈춰 섰다.
“찾았습니다.”
궁충은 숨어 있는 생기들을 찾아냈다.
사마는 생기를 숨기고 있어서 찾기 어렵다.
육안으로 찾아낸다면 모를까, 느낌이나 생기로 찾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물론 진기도 읽히지 않는다.
혈천방도, 그들을 찾아냈다.
“먼 길을 쫓아야 하는데, 견딜 수 있겠어?”
귀검이 다섯 명의 귀무살을 보며 물었다.
귀무살은 추격자 입장이다. 무공이 현저하게 뒤처지는 자들을 추격하는 일이니 상당히 여유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도 귀무살은 전혀 여유를 갖지 못했다.
혈마의 추격은 단순하지 않다.
보통 무인들이 보통 사람들을 쫓는 것처럼 주의만 기울이는 것이 아니다.
혈마는 생기를 꺼트리고 싶다는 살심과 싸우면서 추격해야 한다. 거칠게 일어나는 살심을 꾹꾹 억눌러야 한다.
살심이 끊기지 않으면 혈기도 거칠게 일어난다.
시간이 지나고 날이 흐를수록 더욱 진한 혈기가 된다.
싸움이 일어나지 않고, 죽이는 사람이 없고, 피를 보지 않는다고 해도 혈마가 될 가능성은 항상 존재한다.
혈천방도는 산속으로만 이동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들이 사는 민가로 내려간다. 술도 마시고, 음식도 먹고, 푹 쉬기도 하면서 이동할 것이다.
혈마들에게는 최악의 환경이다.
귀검이 염려하는 것은 이런 부분이다.
“저희도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변할지 전혀 알지 못해서…… 하지만 최대한 생기를 쓰지 않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어떻게든 주군이 오실 때까지 시간을 벌어봐야죠.”
궁충이 말했다.
등여산이 한 명이면 될 추격에 다섯 명을 보낸 것은 생기 사용을 한 시진씩으로 분산하기 위해서다.
각기 한 시진씩만 생기를 운용한다.
생기를 쓰지 않고도 추격할 수 있다면 물론 그렇게 해야 한다.
하지만 쫓는 자들 속에 혈천방주가 있으니 생기를 사용하지 않고는 추격할 수 없을 것이다.
생기를 사용하되, 최대한 억제한다.
“좋다. 쫓자!”
“네!”
쒜에에에엑!
명을 받은 귀무살 다섯 명은 즉시 신형을 쏘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