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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80화 (480/500)

第九十六章 단장지애(斷腸之哀) (5)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마차가 거칠게 질주했다.

‘이거야 원. 이 정도면 된 것 같은데…… 왜 죽을힘을 다해서 쫓으라고 하지?’

해자수는 필요 없는 일인 줄 알면서도 마차를 쫓아갔다.

마차는 미끼다. 음문촌장이나 홀리가 타고 있지 않다.

그걸 알면서도 쫓는 것이니…… 소정의 목적만 달성하면 더는 쫓을 필요가 없지 않나.

그런데도 등여산은 계속 쫓으라고 한다.

해자수는 자신의 뒤로 혈마들이 쫓아오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몇 명이나 쫓아오는지는 알지 못한다. 등여산이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알려주지 않았다.

‘아씨에게도 사마가 급습했을 거야. 책사는 그런 점까지 고려했겠지? 그러면 아씨에게도 몇 명이 따라붙었을 텐데…… 몇이나 갔을까? 그 정도는 알려줘도 되는데. 쩝!’

혈천방은 홀리를 급습한다. 틀림없다. 그러니 그쪽으로도 혈마 중 몇 명을 쫓게 했을 것이다.

홀리에게는 누가 갔나? 몇 명이나 갔나? 이쪽은 미끼에 불과하니 몇 명 따라붙지 않았을 테고, 태반이 아씨 쪽으로 달라붙었겠지.

정작 큰 싸움은 저쪽에서 벌어지고 있어.

모든 것을 등여산에게 맡겨놓는다. 머리가 워낙 좋으니까 알아서 하겠지.

‘아씨도 이번에는 숙원을 풀어야 하는데. 하아!’

해자수가 혀를 끌끌 찼다.

홀리는 자신의 얘기를 자주 하는 편이 아니다. 마음속에 있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거침없고 투박한 것 같지만 내심에는 여린 구석이 많다.

특히 음문촌이라는 곳은 가족끼리도 으르렁거리기 일쑤다.

그래서 홀리는 틈만 나면 사냥하러 다녔다. 음문촌에 거의 머물지 않았다.

그런 홀리가 딱 한 번 속내를 얘기한 적이 있다.

- 엄마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어떻게 생겼는지. 다른 사람들은 아이를 낳은 후에도 멀쩡히 살아있는데, 왜 우리 가족만 모두 죽는 거지? 이게 무슨 저주야.

홀리는 어미의 죽음이 음문촌의 저주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해자수는 홀리에게 진실을 말할 수가 없었다.

그 저주는 음문촌의 저주가 아니다. 음문촌장의 저주다. 마인의 저주다.

- 해자수, 혹시 엄마 무덤이 어딘 줄 알아?

- 저야 모르죠. 그런 건 아버님께 물어보시는 게……

- 알려주지 않아. 혈맥참을 십 성 수련해내면 가르쳐 준다는데, 내가 완성할 수 있을까?

- 완성하실 수 있을 겁니다.

물론 음문촌장은 홀리가 혈맥참을 십 성 완수한 후에도 무덤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

홀리는 어머니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조차 모른다.

바로 그거다. 음문촌장은 홀리를 꿰뚫어 보고 있으니…… 지금 홀리를 유혹해낼 일은 그것밖에 없다.

홀리가 남편인 호발귀에게조차 의논하지 않고 뛰쳐나갈 정도라면 딱 그거다.

한데 이번에는 좀 사정이 다르다. 홀리의 생기 무공은 음문촌장을 압도한다.

촌장이 단지 홀리를 꾀어내기 위해서 그 일을 이용한 것이라면 촌장은 아주 큰 곤욕을 치를 것이다.

촌장은 불러낸 대가를 충실히 치러야 한다.

홀리를 꾀어낸 만큼 모든 것을 알려줘야 한다.

‘이번에는 어머니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겠네. 어휴! 알아도 벌써 알았어야 할 일을.’

슉! 슉! 슉!

해자수는 마차를 쫓아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숨어서 쫓을 필요 없어요. 정반대로 최대한 저들에게 모습을 보여주세요.”

“그래도 되나?”

도천패가 되물었다.

“우리가 쫓는 걸 알면 해자수님은 선택의 여지가 없어요. 그러니 해자수님에게는 발각되지 않게 조금 멀리 떨어지되, 혈천방에는 최대한 노출되세요.”

“해자수님이 무슨 선택을 해?”

당홍이 물었다.

“나중에 알게 될 거예요.”

등여산이 알 듯 모를 듯 묘한 미소를 지었다.

“알았어. 그러지 뭐. 그런데 우리가 모습을 노출하면 곧바로 혈천방 타격 목표가 되잖아. 틀림없이 싸움을 걸어올 텐데, 그러면 어떻게 할까?”

“싸움을 걸어오면 싸워야죠?”

“응? 싸워?”

“네. 그렇게 되면 거침없이 싸우세요. 우리 뒤에는 호발귀가 있는데 뭘 걱정해요. 호호호!”

등여산이 웃었다.

“무슨 생각인지 자세히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귀검이 정중하게 말했다.

귀검은 농담을 하지 않는다. 등여산과 홀리를 상전 모시듯이 떠받는다.

귀무살 귀무령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충심을 다한다.

혈천방주가 이런 모습을 봤다면 믿을 수 없어서 눈을 부릅떴을 것이다.

등여산이 말했다.

“우리는 해자수님까지 모두 아홉 명이에요. 혈마 아홉 명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사마 서른 명 이상이 필요해요. 혈천방에 사마가 그렇게 많다는 것도 믿기 어렵지만, 설혹 그렇다고 해도 싸울 수 있어요. 우린 예전에 혈마도 아니에요. 지금 혈기가 싹 걷혔으니 최대한 가열하게 싸워도 하루 이상은 버틸 수 있어요.”

“그럴 겁니다.”

궁충이 수긍했다.

“그러면 정말로 우리와 싸우려면 배 이상의 전력이 필요해요. 육십 명 이상. 혈천방에 그만한 사마가 있다면 싸움을 걸어올 것이고, 아니면 싸움은 일어나지 않아요. 우리 전력을 완전히 보여줌으로써 오판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죠.”

“사마가 육십 명 이상 되면?”

“싸워야겠죠. 혈마가 되는 것은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싸우세요. 저는 호발귀를 믿어요. 우리가 혈마가 되어서 날뛰어도 호발귀는 반드시 우릴 찾아서 제대로 돌려놓을 거예요.”

“하하! 주군을 믿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판수가 활짝 웃었다.

설혹 싸움 도중에 혈마가 된다고 해도 일 초 급공은 전개할 수 있다.

뒤에서 들이치는 사마를 되 잡아낼 수 있다.

의식을 잃기 전까지 세 명에서 네 명 정도는 처리한다.

궁충에 이어서 길성, 판수, 여괴, 착심까지…… 귀무살 다섯 명이 혈마가 되었다.

혈마가 갑자기 배 이상 많아졌다. 한데 그게 나쁜 것만은 아니다. 혈마가 많아지니 당당해질 수가 있다.

“당매, 업혀.”

도천패가 등을 내밀었다.

당홍은 망설이지 않고 훌쩍 뛰어올라 도천패의 등에 올라탔다.

두 사람은 처음부터 생기를 끌어냈다.

두 사람이 하나가 되어서 전개하는 무공, 일학을 펼칠 태세다.

궁충은 활시위를 재웠다. 두 눈을 가늘게 들고 이백 장 밖을 노려본다.

이것이 궁충의 혈기다.

화살을 어디로 당길까 주시만 하면 생기가 일어난다. 궁충의 생기는 전혀 고통스럽지 않다.

오히려 궁술에 집중할 수 있어서 더 큰 도움을 준다.

“귀검님, 잠깐.”

등여산이 귀검을 따로 불러서 나직이 무슨 말인가를 나눴다.

귀검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가요!”

츠츠! 츠츠츠!

모두 생기를 받아들였다. 진기 대신 생기를 쓴다.

그리고 해자수를 쫓아서 빠르게 질주했다.

혈천방주는 머리가 아픈 듯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아홉 명. 귀검을 제외한 전원이 혈마. 후후! 세상이 혈마로 가득 찬 느낌이네.”

사마는 충분하다 싶었다. 하지만 혈마가 너무 많다. 아니, 혈마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가 알지 못했던 것은 저들이 생기를 마음껏 사용한다는 점이다.

저들은 혈마가 되는 게 두렵지 않은가?

너나 할 것 없이 혈마 전원이 생기를 있는 대로 끌어내면서 질주한다.

즉, 사마는 정신이 멀쩡한 최강 혈마와 맞서게 된다. 그러면 생기를 죽인 효과가 완전히 사라진다.

저들이 생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은 치달리는 신법만 봐도 알 수 있다.

해자수는 쏜살같이 치달리는 마차를 두 발로 쫓아가고 있다.

물론 해자수가 쫓아가는 길과 마차가 달리는 길은 다르다.

마차는 넓은 관도로만 질주해야 하고, 해자수는 지름길로 쫓아간다. 거리를 절반가량 좁힐 수 있다.

그래도 그렇지…… 해자수의 신법은 마차를 좇아갈 정도로 빠르지 않다. 아니, 상당이 약한 편이다.

귀무살은커녕 웬만한 무인조차 상대하지 못한다.

그러니 해자수가 마차를 쫓아가고 있다는 것은 생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다.

해자수가 달리는 속도와 다른 혈마들이 달리는 속도가 같다.

다른 혈마 역시 생기를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다.

상당히 조심스럽게 사용하던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기습이나 야습을 짐작하지 못하나? 천살단 책사 등여산이? 아니다.

틀림없이 혈천방이 공격해 올 것이라는 점을 알면서도 생기를 사용하고 있다.

사마가 들이치면 생기로 맞받아칠 것이다.

“찜찜해. 이렇게 되면 공격할 수가 없잖아.”

혈천방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할까? 공격할까, 말까.

“저놈들은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공격할 테면 해보라는 건데…… 이쪽은 틀렸나? 그러면 홀리 쪽을…… 가만! 호발귀! 호발귀가 없다!”

해자수를 쫓는 자 중에 호발귀가 없다.

호발귀가 홀리 쪽으로 달라붙었다. 그렇다면…… 저쪽도 상당히 위험하다.

사마 여덟 명을 보냈지만, 호발귀는 다른 혈마에 비해서 두 배 이상 강하다.

등여산은 저쪽은 홀리와 호발귀로 충분하다고 봤다.

그래서 이쪽에 혈마 전원을 투입했다.

저들은 음문촌장의 유인책을 처음부터 꿰뚫어 봤다.

“우리가 나타나면 멱살 잡겠다는 거지. 이거 함정으로 끌어들이려다가 오히려 되잡히는 거 아니야?”

혈천방주는 고민을 거듭했다.

“하아! 아깝네. 이번 기회도 상당히 좋았는데.”

결국, 혈천방주는 포기하는 쪽으로 결심을 굳혔다.

고민도 해보고 방법도 쥐어짜 봤지만 그럴수록 저들을 잡을 수 없다는 쪽으로 생각이 굳어졌다.

“이번에는 포기. 아쉽지만.”

사마를 철수시킨다. 저들이 뭉쳐 있는 한 공격은 어렵다. 그리고 저들을 흩어놓을 계책은 마련하면 된다.

지금보다 더 좋은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삐익!

혈천방주는 우각을 불었다.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끼럇!”

일자가 부지런히 마차를 몰았다.

“이거 왜 싸움이 안 일어나지?”

사자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벌써 급습이 시작되었어야 한다. 해자수가 쫓아오지 못하고 가로막혔어야 한다.

그런데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싸움이 일어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쫓아오는 놈이 누구야? 해자수 맞지?”

사자가 눈길을 좁혀 뒤를 쳐다보며 말했다.

“맞아요. 해자수. 하! 무공이 상당히 강해졌네. 저 정도면 우리보다 위죠?”

육자가 해자수를 보며 말했다.

마차 뒤로 누군가 따라붙었다는 것은 진작 알았다.

하지만 그가 해자수라는 사실은 얼마 전에야 알았다. 해자수가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후에.

이십 리를 넘어설 때까지만 해도 쫓아오는지 아닌지 알지 못했는데, 딱 이십 리를 넘어서는 순간 갑자기 튀어나왔다.

그리고 마차를 향해서 질주해 온다.

싸움을 벌일 생각인 것 같다.

“준비해라.”

일자가 차게 말했다.

“준비는 무슨! 우리가 저놈을 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오?”

사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면 그냥 죽던가.”

“뭐요”

사자가 눈꼬리를 확 치켜올렸다.

“워! 워!”

일자는 마차를 멈춰 세웠다.

“아니, 왜 마차를! 빨리 달려도 모자랄 판에!”

“너는 상황 판단도 안 되냐? 여기서 우리가 도주할 수 있을 것 같아? 한심한.”

일자가 혀를 찼다.

맞는 말이다. 더는 도주할 수 없다.

해자수가 매우 빠르게 쫓아오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해자수 뒤로 많은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나 마나 혈마들이다.

저들이 아예 내놓고 모습을 드러냈다.

마차를 아무리 빨리 몰아도 이삼 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따라잡힌다.

“아! 참! 지금 뭐 하는 거야! 같이 죽자는 거야 뭐야! 우리가 저놈들을 어떻게 당해! 한 놈도 못 당하는데 지금 몇 놈이나 있는지 안 보여?”

사자가 소리쳤다.

“너는 도주해라. 너는?”

일자가 사자에는 도주를, 육자에게는 의사를 물었다.

“형님과 같이 내리겠습니다.”

육자가 마차에서 훌쩍 뛰어내렸다.

“아! 몰라! 몰라! 나는 살 거야. 살 수 있는데 왜 죽자고 덤비는 거야? 그러니까 첫째가 되어서 둘째 형에게 자리를 빼앗긴 거지. 알아서들 해!”

사자가 재빨리 어자석에 앉았다.

“끼럇!”

거친 소리와 함께 마차가 앞을 향해 질주해 갔다.

“같이 가지?”

“어차피 도주는 틀렸지 않습니까?”

육자가 히죽 웃었다.

혈마의 능력은 상상 이상이다.

이미 사자가 모는 마차는 산굽이를 휘돌고 있다. 하지만 산 정상에 혈마가 있다.

마차가 달리는 방향을 꿰뚫어 보고 있다. 그렇다면 산굽이 너머에도 혈마가 지켜서 있을 것이다.

계속 질주를 한다고 해도 잡히게 되어 있다.

“우린 여기서 마무리 짓자.”

스릉!

일자가 검을 뽑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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