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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77화 (477/500)

第九十六章 단장지애(斷腸之哀) (2)

크크크크!

사방에서 괴소가 들려왔다. 모습은 보이지 않은 채 징그러운 웃음으로 존재를 알린다.

곧 공격할 것이라고 신호를 보내면서 모습은 드러내지 않는다.

“음!”

홀리는 난감했다.

사마는 생기를 감춘 괴물이다. 어떤 식으로 생기를 감추는지 알 수는 없지만, 전혀 찾아낼 수가 없다.

진기도 쓰지 않고, 생기도 노출하지 않는다.

사마는 귀신인가? 아마도 특수 약물로 제련을 하지 않았나 싶다.

독으로 심장 박동을 느리게 하고, 장기를 비틀어서 인간과 전혀 다른 특징을 보이게 만든다.

이들은 살아 있어도 살아 있는 것이 아니다. 이미 머릿속은 걸쭉한 죽처럼 엉망진창 뒤엉켜 있을 것이다.

생각이라는 것을 떠올릴 수는 없으면서 혈마를 죽여야 한다는 의지만은 강하게 가지고 있다.

의지가 아니라 세뇌라고 해야 하나?

당연히 이들은 오래 살지 못한다. 인체 기능을 잃어버려서 길어야 일 년에서 이 년밖에 살지 못한다.

매미처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문제는 언제 어느 때 혈마가 나타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혈마가 나타난 후에야 제련을 시작할 수도 없다.

결국, 혈마를 상대하기 위해서는 생명이 짧은 사마를 끊임없이 제련해야 한다.

지금의 사마 한 명을 쓰기 위해서 지난 이백 년 동안 사마 수천 명이 죽어갔다.

그런데…… 혈천방이 사마처럼 강력한 무기를 전혀 쓰지 않고 보관만 했을까?

사마는 온전히 혈마를 죽이기 위한 도구라고 생각해서 얌전히 모셔놓았을까?

그럴 리 없다. 사마는 절정 고수를 암습하기 딱 좋다.

생기와 진기를 숨길 뿐만 아니라 강력한 무공도 구사한다. 도검에 맞아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태연히 반격한다.

무림 역사를 세밀하게 훑어보면 사마가 출연했을 법한 사건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크크크! 크큿!

사마의 괴소가 머리카락을 쭈뼛 곤두서게 만든다.

순간, 홀리는 혈기가 충천하는 소리를 들었다.

꽝!

단지 괴소만 들었을 뿐인데, 가슴 한복판에서 제어하지 못할 폭발적인 살기가 느껴진다.

온 신경이 괴소에 집준된다.

땅은 계속해서 그녀를 튕겨 올린다. 어서 날아가라고, 어서 쫓아가라고 재촉한다.

한데 정작 튕기는 힘을 쫓아가려고 하면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그녀를 움직이지 못하게 만드는 것도 같은 혈기다.

땅은 왼 다리를 차올린다. 가라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오른쪽 다리를 붙잡는다. 오른 다리를 튕겨 올릴 때는 왼 다리를 붙잡는다.

두 다리는 번갈아 가면서 튕겨 올리고 붙잡는다.

혈기가 위험을 느끼고 있다.

혈기는 계속해서 끌어 오른다. 하지만 공격에 나서기에는 아직 부족하다. 혈기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

괴소가 흘리는 위험을 완전히 짓누를 수 있을 만큼 혈기가 충천했을 때, 그때 땅은 두 다리를 튕겨낼 것이다.

물론 홀리는 돌아올 수 없는 혈마가 된다.

“아!”

홀리는 탄식했다.

사마를 너무 얕봤다. 사마가 혈기까지 충천시킬 줄은 전혀 몰랐다.

이건 정신이 멀쩡한 인간처럼 싸울 때와 참아야 할 때를 구분하고 있지 않은가.

홀리는 사마와 직접 싸워본 적이 없다.

혈천방주와 싸워서 혈마가 된 적은 있지만, 그때도 사마는 보지 못했다.

도천패, 당홍, 해자수 등등 사마를 겪은 사람에게 전해 들은 게 고작이다.

더욱이 그들에게 들은 사마와 지금 겪고 있는 사마는 완전히 다르다.

예전의 사마는 공격을 조절할 능력이 없었다. 생기를 죽인 채 나타나서 다짜고짜 배후를 친다.

한 명은 시선을 끌고 한 명은 뒤를 치는 것 같지만, 사마 둘 사이의 공격 시간에 차이를 두었을 뿐이다.

사마는 생각할 줄 모른다.

지금 사마는 공격해오지 않는다.

그렇다고 누가 지시를 하고 있지도 않다. 사마는 혈군이나 혈마후 같은 존재가 없다.

일단 명령을 내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쿵쿵쿵! 쿵쿵!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 온몸에 뜨거운 열기가 흐른다. 땅은 여전히 튕겨내고 끌어당기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러는 가운데 그녀는 더 깊은 상태로 달려간다.

‘실수했어. 이렇게 혈마가 되고 마는 건가?’

홀리는 쓴웃음을 흘렸다.

혈천방이 공격해 올 줄 알았지만 이렇게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바로 혈마가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녀의 몸은 호발귀가 혈기투사로 남아있던 혈기를 싹 씻어낸 상태다. 처음 생기를 알았을 때와 같다.

그래서 사흘이고 나흘이고 계속해서 싸워도 될 줄 알았다.

한데 하루는 고사하고 반나절도 버티지 못하다니. 귀무살…… 그들에게 생기를 너무 과하게 썼다.

홀리는 혈기를 쫓아갔다. 생기가 느껴지는 곳으로 따라갔다. 아버지와 둘째 오라비가 있는 곳이다.

자신이 혈마가 되기를 눈 빠지게 기다리는 사람들……

혈마가 되면 아버지를 쫓아온 이유가 없어진다. 당장 사마에게 잡힐 것이고 이자에게 능욕당할 것이다.

‘혈마가 된 후에도 한 명은 격살시킬 수 있어. 하지만 연속적인 공격은 감당하지 못해. 그런 수련은 쌓지 않았어. 결국은 잡히고 말 거야.’

호발귀에게 배운 것은 즉시 공격이다. 시간을 끌면서 이어지는 공격은 감당하지 못한다.

‘너무 경솔했어. 너무 자만한 건가? 하지만 인제 와서 돌이킬 수도 없고……’

혈마가 되는 일은 막지 못한다. 하지만 저들에게 잡힐 생각은 없다.

호발귀는 분명히 자신을 쫓아올 것이다. 하지만 그때쯤이면 자신은 이미 이자에게 몸을 더럽힌 후다.

호발귀의 분노가 이자에게 터지겠지만 자신은…… 호발귀에게 돌아가지 못한다. 호발귀가 아무렇지 않다고 해도 자신이 돌아가지 못한다.

‘방법이 없어. 혈마가 되기 전에 공격하자.’

홀리를 괴소를 쫓아서 숲으로 들어섰다.

문제는 혈기가 사마의 생기를 읽지 못한다는 점이다. 사마는 어떠한 생기도 흘리지 않는다.

당연히 혈기는 사마가 공격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한다. 분명히 공격 대상인데 공격 대상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위험은 느낀다.

사마를 공격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하나, 눈으로 보고 치는 것이다.

저벅! 저벅!

홀리는 숲속 깊이 걸어 들어갔다. 그때,

사라라라락!

홀리는 미묘한 바람을 느꼈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인지 모르겠는데 매우 부드럽게 흘러들어와서 몸을 휘감는다.

‘이건!’

부드러운 바람은 그녀의 몸에 닿자마자 폭풍으로 돌변해서 거세게 부딪쳤다.

꽈꽉! 꽈아아악!

항거할 수 없는 거친 힘이 그녀의 몸에 구멍을 뻥 뚫었다.

느낌이 그렇다. 몸이 뚫리고, 심장이 터져 나간다. 폐가 찌그러들고, 간이 뭉개진다.

창자가 가닥가닥 끊겨서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전신이 모래알처럼 흩어진다.

혈기투사!

호발귀에게 혈기투사를 당하면 이런 느낌이 든다.

이어서 터져 나갔던 몸뚱이들이 톱니 맞추듯 차박차박 모인다. 다시 간을 만들고, 폐를 이룬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온다.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한다.

전신 경맥이 완전히 흩어졌다가 다시 운집한다.

실제로는 몸에서 혈기를 빼내는 것뿐인데, 당하는 사람은 몸이 가루가 되었다가 다시 모이는 느낌을 받는다.

“오지 말라니까 왔네.”

홀리가 중얼거렸다.

호발귀는 혈기투사만 할 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이번 일은 앞에 나서지 않을 테니, 홀리 혼자서 마무리 지으라는 뜻일 것이다.

해결할 일이 귀무살이나 사마뿐이라면 당장 나섰겠지만, 원래 이령에서 나온 목적이 있지 않나.

아버지에게 볼일이 남아있다.

그 일을 홀리 혼자서 마무리 지으라는 배려다.

홀리는 심신이 상쾌해졌다. 매우 청량해졌다.

크크크!

사마가 괴소를 터뜨리고 있지만, 티끌만큼도 동요되지 않는다. 충천하던 혈기가 말끔히 가셨다.

“고마워.”

머릿속에 수많은 말이 떠올랐지만, 정작 고맙다는 말 한마디밖에 나오지 않는다.

부부 사이에는 마음으로 고마워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홀리는 여유 있게 숲을 훑어보았다.

크크크크! 크크큿!

괴소를 흘리고 있는 사마가 보였다.

혈기가 충천할 때는 생기에 휘말려서 사마 모습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확연히 보인다.

사마는 홀리가 다가서자 재빨리 물러섰다.

역시 홀리에게 반응한다. 아직은 홀리를 공격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것이다.

영혼이 잃은 자들이 생각하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확실히 사마는 발전했다.

‘하지만…… 느려!’

이상한 점도 확인되었다. 사마의 움직임이 상당히 느리다. 삼류고수가 어설프게 움직이는 듯하다.

사마의 움직임은 혈마와 버금갈 정도로 빠르다고 했는데……

빠른 사마가 느리게 움직이는 것은 결코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니다. 누군가가 행동을 제어하고 있다.

호발귀! 호발귀가 잡아놨다.

사마는 엄밀히 말하면 인간이다. 기형적으로 개조된 인간이다. 인간인 이상 생기가 있다.

홀리에게는 생기가 감지되지 않지만, 호발귀라면 독액 속에 잠들어 있는 생기를 낚아챌 수 있다.

바로 그 생기를 짓누른다.

사마는 빠르게 움직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쒜에에엑!

홀리가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사마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칼을 들어 올렸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상태에서 일 대 일로 부딪친다면 결코 혈맥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파아아앗!

홀리의 검이 화려한 꽃송이를 그려냈다.

그 순간 사마의 가슴에서 붉은 핏물이 확 솟구쳤다.

사마의 피도 빨갛다. 사마라고 해서 피가 회색이거나 검은 것은 아니다.

사마도 인간이다.

홀리는 사마 한 명을 처리하자마자 바로 신형을 튕겨냈다.

호발귀가 원력으로 사마를 제어해주고 있으니 마음껏 움직인다. 생기를 실컷 사용한다.

호발귀가 옆에 있으면 이래도 된다.

생기가 됐든 혈기가 됐든 뭐든 끌어내서 사용한다.

조심할 필요도 없다. 호발귀가 뒤를 단단히 받쳐주고 있는데 뭐를 걱정할까? 전혀 걱정하지 않는다.

쒜에에엑! 파파파팟!

사마의 머리가 검에 베어져 싹둑 잘려나갔다.

홀리는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그녀 자신은 움직이는 것을 의식하지 않는다.

눈으로 사마를 확인하면, 생기가 바로 움직인다. 그러면 생기가 쳐주는 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된다.

온몸을 생기에게 맡긴다.

땅도 이제는 그녀의 두 발을 잡지 않는다. 혈기가 빠져나간 몸은 사마를 적수로 인정하지 않는다.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두 발을 힘껏 퉁겨준다.

홀리는 땅이 튕겨내는 쪽으로 날아간다. 저항하지 않고 나비처럼 날아가서 이슬을 걷어내듯이 가볍게 검을 쓴다.

그러면 검 끝에 사마의 육신이 걸린다.

퍼어어억!

사마가 쓰러졌다.

‘그런데 뭐가 이렇게 많지? 나 하나를 상대하려고 사마를 이렇게 많이 보낸 거야?’

홀리는 잠시 의아했다.

당홍에게 들은 바로는 사마 셋이면 혈마를 잡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네 명째를 죽이고 다섯 명째를 향해 달려간다. 그래도 아직 사마가 남아있다.

쉐에에엑! 퍽퍽퍽! 퍽퍽!

사마가 또 쓰러졌다.

호발귀가 이들의 생기를 억누르는 한, 이들은 느린 굼벵이에 지나지 않는다.

칼을 들어서 공격에 반응하지만, 생기로 터트리는 혈맥참을 감당하지 못한다.

‘여섯. 날 잡자고 이 많은 사마를…… 정말 너무하네. 그러고 보면 이번에는 진심으로 잡을 생각이었네. 전혀 딸로 생각하지 않고. 그래도 피가 섞였는데.’

홀리는 자신에게서 가족이라는 말이 떨어져 나가는 것을 느꼈다.

정이 떨어졌다거나 마음이 멀어졌다는 식의 문제가 아니다. 완전히 남남이 되는 순간이다.

이제는 그 어떤 일이 벌어져도 음문촌 사람들을 가족으로 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사마 여덟 명을 벴다.

땅은 더는 그녀를 튕겨내지 않았다.

그녀는 정신을 수습했다.

생기를 사용하는 동안에는 마치 마약에 중독된 듯 몽롱한 상태가 된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다. 등여산은 혈기가 치밀면 기분이 불쾌해진다고 하는데 거기에 비하면 그녀의 혈기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가슴이 맑고 청량해진다.

그런 상태에서 머물다가 현실로 돌아오는 것이다.

“고마워.”

홀리는 또 한 번 혼잣말로 말했다.

물론 호발귀에게 하는 말이다.

호발귀는 주변에 있지만, 아직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혈기를 제거하는 것과 사마를 제압하는 것 외에는 나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자신이 이령을 떠난 것이 개인사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하는 행동이다.

어쩌면 해자수가 이번 일에는 끼어들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는지도 모른다.

“난 좋은 남자를 만난 거 같아. 정말 고마워.”

홀리는 이번 일을 완전히 자신에게 맡기고 있는 호발귀가 더없이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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