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五章 풍구습격(瘋狗襲擊) (5)
‘이대로는 끝이 없어.’
홀리는 혈기가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암기를 쳐내기 시작한 지 반 시진이 넘었다.
예상한 대로라면 지금쯤 공격이 느슨해졌어야 한다.
소지한 암기가 바닥을 보이기 시작하면 마음이 급해진다. 자연히 손발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암기를 던지는 모습에서 불안감이 읽혀야 한다.
암기는 거침없이 날아든다.
쒜에에엑! 쒜엑! 타당! 탕탕탕!
홀리는 쉴 새 없이 검을 쳐냈다.
홀리 주변에는 떨어진 암기들이 수북이 쌓였다.
멀리 튕겨낸 것까지 합치면 고물상 하나가 들어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많다. 병기를 쌓아놓은 산이라고 할까?
“으음!”
홀리는 침음했다.
도대체 이들은 얼마나 많은 암기를 가져온 것인가?
음문촌장과 이자는 움직이지 않는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이 싸움을 지켜보고 있다.
‘아버지……’
역시 이번 공격에는 아버지가 가담해 있다.
딸을 불러놓고 혈천방에 의뢰해서 공격한다?
참 아버지다운 발상이다. 이 넓은 세상 천하에서 오직 음문촌장만이 이런 일을 태연히 벌일 수 있다.
그렇다. 이번 귀무살 공격은 예정된 것이다.
생각은 했지만…… 아버지는 역시 자신을 잡기 위해서 함정을 펼쳐 놓았다.
공격해서 무엇을 얻고자 하나? 죽음인가? 아니다. 혈군이 지배하는 혈마다.
아버지는 자신을 딸로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딸이라는 생각은 갖고 있다. 다만 혈마로 보는 눈이 더 깊다.
혈연보다도 야욕을 위한 도구다.
어쩌면 아버지는 자신이 괘씸할지도 모른다.
말을 잘 듣는 다른 자식들과는 달리 유독 말을 듣지 않고 있지 않나. 혈마가 되라면 되어야지 왜 반항하나.
기껏 키워놨더니 이런 식으로 등을 돌려?
저 살겠다고 아버지의 꿈을 짓밟아? 음문촌이 지난 이백 년 동안 어떻게 지내왔는지 잘 알면서?
아버지의 생각을 바꿀 수는 없다.
서로 세상을 너무 다르게 보고 있어서 같은 길을 걷지 못할 뿐이다.
그러니 아버지도 섭섭해하면 안 된다. 아버지라고 해서 딸의 가슴에 검을 꽂을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손해 보지 않고 날 잡겠다는 거네.’
홀리는 드디어 귀무살의 계획을 눈치챘다.
자세히 보니 사조 연환이 아니다. 사조 연환이 두 개다. 귀무살 예순두 명이 합심해서 공격하고 있다.
사방이 온통 생기 덩어리다. 생기가 개미굴처럼 바글바글해서 얼마나 되는지 헤아릴 수도 없다.
“살수는 쓰지 않으려고 했는데, 이건 너희가 자초하는 거야.”
홀리는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피를 보면 혈기가 충천한다. 홀리처럼 생기에 능숙해지면 습자지가 먹물을 빨아들이듯이 쭈욱 빨아들인다.
단숨에 혈기가 충천해서 혈마가 된다.
이런 사실은 이령이 있으면서 확실히 알았다.
엄밀히 말하면 피를 보는 것 때문에 혈기가 충천하지는 않는다.
피를 본다는 것은 생기를 소멸시킨다는 뜻이지 않나. 생기를 소멸시킬 때 혈기가 충천한다.
닭을 죽이는 것, 닭의 생기를 소멸시키는 것만으로도 혈기가 치솟았다. 꿩을 잡고, 멧돼지를 잡고……
이런 모든 생기를 끊는 행동들이 혈기를 움직였다.
생기를 아는 사람은 생기를 소멸시키면 안 된다.
한데 이령 혈마는 무인이다.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게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그들의 싸움은 생사 결전이다. 서로 상대를 죽이겠다고 달려든다. 조금 터무니없이 말한다면 상대를 죽이는 게 직업인 셈이다.
무인이 생기를 억누르기는 매우 어렵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다. 홀리는 애써서 살수를 막고 있는데, 상대는 계속 핍박해온다.
암기가 떨어지면 물러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버티면서 귀무살이 물러나 주기를 바랐다.
반 시진이라는 여유를 주었다. 그런데도 물러나지 않고 계속 공격한다.
끝을 보자면서 달려든다.
“지금부터 벌어지는 일은 너희가 자초한 거야.”
홀리는 땅이 밀어내는 힘에 누르지 않았다.
아무 저항도 하지 않고 온몸을 맡겼다.
타아앙!
땅이 그녀를 허공으로 퉁겨냈다. 용수철에 퉁겨진 쇳덩이처럼 거칠게 튀어 나갔다.
쒜에에엑!
홀리는 귀무살을 향해 달려들었다.
타타타탕! 타타탕!
그녀를 향해 날아오던 암기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까만 신형이 번뜩였다.
저항하지 않는다. 땅이 밀어내는 힘을 고스란히 받아들인다.
홀리는 빗살처럼 날아갔다.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암기보다도 빨라 보였다.
암기를 쳐낼 때도 빨랐지만, 지금은 최소한 두 배는 더 빠르게 움직인다.
철컥!
순간, 마치 자물쇠를 채우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삼조가 암기를 던지고 빠져나갔다. 사조가 막 그 자리에 들어서며 암기를 던지려던 참이다.
홀리의 검이 사조 동북방에 있는 귀무살을 쳤다.
귀무살이 꺼낸 암기…… 수리검을 갈라버린 후, 단숨에 몸까지 그어버렸다.
“컥!”
귀무살이 비명을 흘리며 쓰러졌다.
첫 번째 죽음이다.
‘날아오른다!’
두 발이 땅에 닿자마자 땅이 그녀를 밀어냈다.
홀리는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밀어내는 힘을 빌려서 훨훨 날아올랐다.
손에 든 검은 어딘지도 모를 곳을 향해서 그어졌다.
그녀의 절초 혈맥참이 터졌다.
철컥!
이번에도 자물쇠를 채우는 듯한 소리가 울렸다.
눈앞에서 화악! 핏방울이 번져 올랐다. 붉은 운무가 피어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정확히 귀무살의 심장을 갈라냈다. 살과 뼈를 가르고 들어가서 심장을 터트렸다.
붉은 피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온다.
휘익!
홀리는 땅에 내려섰다.
홀리의 반격을 눈치챈 귀무살이 일제히 뒤로 빠졌다.
사련팔타법의 최대 약점은 암기를 통하지 않을 때 드러난다.
던져진 암기를 무력화시킨 후, 당사자를 베려고 덤벼들면 대처할 방도가 없다.
이런 문제점 때문에 사련팔타법을 폐기했다.
이번에도 홀리가 암기 공세를 깨지 말라는 법이 없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안 되는 일이지만, 상대는 혈마다.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다.
그래서 사련팔타가 깨지는 순간, 즉시 물러나는 수련을 했다.
깨진 진법을 계속 유지하는 것은 희생을 늘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스슷! 척척척!
귀무살이 상당한 거리를 벌린 후, 전열을 재정비했다.
귀무살은 혈천방 최고 무인들이다. 그들의 감각과 무공이 이번 일전에 고스란히 담겼다.
혈마의 공격에 대처하는 반응이 무척 빠르다. 물러서는 신법도 나무랄 데가 없다. 홀리도 빨랐지만, 귀무살의 신법도 바람을 무색케 한다.
‘귀무살은 아무것도 아냐. 곧 사마가 공격해 올 거야.’
홀리는 사마의 공격까지 예상했다.
아버지를 따라서 나설 때부터 이런 공격을 예상했기 때문에 놀랍지는 않다. 흥분하지도 않는다.
당연히 치러야 할 대가를 치를 뿐이다. 아버지를 따라나선 대가.
다만 서글프다.
홀리가 생기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지금? 아니면 조금 더?’
찬도는 망설였다.
사마를 투입할 시기가 된 것 같다. 하지만 아직은 이르다는 느낌도 든다. 홀리는 이제 막 생기를 쓰기 시작했다.
검을 쓰는 모습에 흐트러짐이 없다.
정확하게 혈맥참을 구사한다. 진기를 쓰지 않으면서도 어느 순간보다도 강하다.
검초 하나에 한 생명을 빼앗아 간다.
확실히 지금 사마를 투입하기는 이르다.
너무 빨리 투입해서 손실이 크게 일어나면 해결할 방법이 없다. 홀리를 잡지 못하고 놓아주는 꼴이 된다.
그렇다고 이 싸움을 귀무살에게만 맡기면 희생이 클 것은 자명하다.
홀리가 본격적으로 생기를 사용하기 시작한 지금부터는 시간이 흐를 때마다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확실히 사마를 투입하기는 이른데. 그렇다고 귀무살을 쓸 수도 없고. 할 수 없군.’
“사련팔타 후법(後法)을 쓴다!”
찬도가 명령했다.
귀무살은 이론을 일절 제기하지 않는다. 귀무령의 명령이 곧 법이다.
서른두 명의 귀무살이 홀리를 포위했다.
하지만 처음에 홀리를 공격할 때처럼 제일조 여덟 명만 앞에 나섰다.
나머지 스물네 명은 뒤쪽에 빠져 있다.
누가 이조인지 삼조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는다.
싸움과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수수방관하고 있는데……
하지만 일조가 암기를 던지는 순간 바로 전장에 투입될 것이다.
사련팔타법은 조금 전에 파해 되었다.
귀무살 두 명이 속수무책으로 쓰러졌다. 그런데 사련팔타법을 다시 전개한다. 바보인가? 아니다.
사련팔타법의 약점을 보완한 후법을 전개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암기 공세를 뚫고 시전자를 공격해 올 때를 대비한 방책이다.
상대가 공세를 뚫어내면, 이쪽은 즉시 물러난다.
더불어서 다른 방위에 있던 귀무살이 즉각 거리를 좁혀온다.
서로 간의 거리를 상대방의 속도에 맞춰서 팔방의 거리를 유지한다. 그리고 계속해서 사련팔타를 전개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방법은 무리 상으로만 가능할 뿐 실전에서 펼칠 수는 없을 것 같다.
먼저 귀무살은 홀리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홀리가 다가서는 속도만큼 빨리 물러서지 못한다. 너무 빠른 움직임에 진형이 순식간에 무너진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전개해내는 것이 사련팔타법이기에 오히려 가능하다.
홀리가 움직이는 속도에 맞춰서 진형을 움직일 수는 없다. 확실히 속도에서 뒤진다.
미처 진형을 물리기 전에 먼저 박살 난다. 그래서 진법을 완전히 변형시킨다.
홀리가 움직이면 그녀를 공격한 일조는 산산이 흩어진다. 사력을 다해서 옆으로 빠져나간다.
뒤이어 그녀를 공격할 이조는 일조가 있던 자리로 들어서는 게 아니다.
홀리가 다가설 곳을 예측하고, 그곳을 중심으로 팔방을 점한다.
홀리가 동쪽으로 움직이면, 동쪽에 있는 자는 뒤로 물러서고 서쪽에 있는 자는 다가선다.
홀리가 움직일 때 같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미리 움직임을 예측하고 진형을 펼쳐 놓은 채 기다린다.
이조에서 삼조로, 삼조에서 사조로……
사련팔타 전법과는 완전히 움직임이 다른 사련팔타법이다.
유동적으로 상대방의 움직임에 맞춰서 변형되는 사련팔타법이 바로 후법이다.
귀무살은 끊임없이 움직이면서도 팔방의 위치를 유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해 수련했다.
실제로 여기에 자신들의 목숨이 걸려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죽을힘을 다했다.
혈마를 상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나.
사련팔타법 후법에는 문제가 두 가지 있다.
제일 큰 문제는 후법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상대방이 쳐오는 속도와 방향을 예측해야 하는데, 조금만 방향이 틀어져도 진형이 일그러진다.
사련팔타가 오합지졸처럼 얽히는 일이 벌어진다.
두 번째 문제는 이런 방법조차도 혈마가 된 후에는 사용할 수가 없다는 거다.
인간인 상태에서 생기를 사용할 때와 혈마가 된 후에 공격할 때는 그 위력이 천양지차로 달라진다.
혈마가 된 후에는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는 괴물이 되어 버린다.
혈마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이런 형태만으로도 천살단주는 능히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찬도는 사마를 인계받았다.
귀무살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주면 된다.
혈마가 된 후에는 즉시 사마에게 넘긴다. 그러면 첫 번째 문제……
홀리가 쏘아오는 속도와 방향만 잘 예측하면…… 버틸 수 있다.
쉐에에엑!
귀무살이 팔방에서 암기를 던졌다.
탕탕탕! 탕탕! 타아아앙!
홀리가 암기를 쳐내면서 귀무살을 향해 달려들었다.
순간, 귀무살은 물방울 터져 나가듯 사방으로 쫙 흩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이조가 들어섰다. 그들이 즉시 암기를 떨쳐냈다.
홀리가 노린 자는 이미 옆으로 피하고 없다. 대신 그자보다 훨씬 뒤쪽에서 암기가 쏟아졌다.
귀무살은 어느새 서로 간의 거리를 벌렸다.
이조 역시 암기를 쳐내자마자 사방으로 비산했다. 그리고 다시 삼조가 들어선다. 역시 홀리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다.
홀리가 노린 자는 옆으로 빠져나가고, 다른 자가 거리를 벌린 채 암기를 날린다.
쒜에에엑! 타타탕!
홀리는 재빨리 몸을 휘둘리며 암기를 쳐냈다. 그리고 다시 공격에 나섰다.
삼조도 사방으로 흩어졌다. 사방으로 흩어진 귀무살은 즉시 뒤로 빠지면서 전열을 재정비했다.
나머지 사조가 공격을 끝내면 다시 일조가 투입된다.
확실히 전법을 시전할 때보다 움직임이 배로 많아졌다.
하지만 목숨은 구한다. 바쁘게 움직이는 대신 홀리의 공격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됐어! 이대로만 유지하면 돼! 이대, 투입!”
찬도가 명령했다.
원래는 일대 사조가 여섯 번의 공격을 하고 그 후에 이대 사조가 교대한다.
쉴 때는 확실히 쉬게 하려는 방침이다.
하지만 상황이 매우 급해졌으니 사련팔타법을 변형한다.
일대와 이대를 하나로 섞는다. 사련팔타법이 아니라 팔련팔타법이 된다.
암기를 던지고 도주할 때는 좌우를 살필 겨를이 없다.
사력을 다해서 튀어야 한다. 암기를 던질 때보다 더 빠르고 강한 힘으로 튕겨 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혈맥참에 당한다.
사련팔타법으로는 미처 숨이 돌아오지 않는다.
팔련팔타로 시간을 길게 끈다.
쒜에엑! 쒜엑!
살아남은 귀무살 예순두 명이 홀리를 가운데 두고 번갈아 가며 뛰어들었다가 다시 튕겨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