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五章 풍구습격(瘋狗襲擊) (4)
홀리는 주변에서 일어나는 움직임을 생생하게 읽었다.
그녀는 호발귀가 말한 혈권과 사권을 명확하게 구분했다.
반드시 죽이는 거리와 생기만 감지하는 거리가 마치 선으로 그어놓은 듯 명확하게 느껴졌다.
호발귀는 예전에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그 안으로는 들어서지 말라고 한 적이 있다.
생기를 느낄 수 있는 거리, 사권이다.
생기를 느끼지 않아야만 혈기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아예 생기를 감지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다.
홀리는 호발귀가 말한 혈권과 사권의 구분이 모호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겠는데, 거리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생기를 느끼면 곧 두 발이 땅에서 떨어졌다.
혈권과 사권에 구분이 없다.
호발귀가 말한 대로라면 홀리가 느낀 것은 혈권이다.
이 혈권 밖에 일정 부분이 사권이다.
생기를 느껴도 자신의 혈기로는 어쩌지 못하는 거리가 존재한다.
물론 두 발이 철기둥 같은 곳에 묶여 있을 때 한한다.
몸이 자유로운 상태라면 생기를 느끼는 즉시 소멸시키고자 달려갈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홀리도 혈권과 사권을 확실하게 구분한다.
일단 혈마가 되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하는 영역이었던 것인가?
자신의 존재를 완전히 잃어버리는 혈마가 되었고,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다.
그런 후에야 혈권과 사권의 구분이 생겼다. 그전에는 혈권이 곧 사권이었다.
모든 혈마가 이런지는 모르겠지만 홀리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혈마가 되었다가 다시 돌아온 사람들은 혈권과 사권을 구분한다.
하지만 이제 막 혈마가 된 사람들은 혈권은 이해해도 사권은 이해하지 못한다.
이러한 거리 감각이 생겼다는 것은 추격이 매우 쉽다는 뜻이다.
추격술을 전혀 알지 못해도 무방하다. 그래도 어떤 추격자보다도 더 정확하게 추격한다.
파파파! 파팟!
생기가 감지된다.
마차가 달리고 생기 두 덩어리가 분리된다.
한 덩어리는 마차를 타고 계속 달린다. 또 한 덩어리는 마차에서 떨어져 나와 다른 곳으로 질주한다.
굳이 마차를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예전 호발귀처럼 동굴 속 철기둥에 묶여 있어도 바깥 동정을 확인할 수 있다.
두 눈을 감고 앉아 있어도 생기 덩어리가 어느 쪽으로 움직이는지 감지된다.
음문촌장과 이자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
홀리는 또 다른 혈기도 찾아냈다.
“해자수…… 쫓아오지 말라니까. 쫓아오지 않았으면 했는데.”
해자수는 항상 자신을 지켜본다.
감시하는 게 아니다. 염려하고 보호한다.
눈치채지 않게, 불편하지 않게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가 필요한 일이 있으면 즉시 달려와서 처리한다.
같은 혈마가 된 지금도 그러한 일상생활에는 변함이 없다.
해자수가 쫓아올 줄 알았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해자수가 난데없이 마차를 쫓아가고 있지 않나?
해자수가 자신이 감지한 것을 봤을 것이다.
마차에서 생기 두 개가 떨어져나왔다. 그 두 개의 생기가 설마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한 건가? 음문촌장은 여전히 마차에 타고 있다고 여긴 건가?
“초귀화. 풋!”
홀리가 피식 웃었다.
해자수는 초귀화의 향에 매혹된 것 같다.
초귀화의 향내를 맡은 순간 해자수의 이성에 이상이 생겼다.
홀리가 마차에 타고 있다. 그러니 마차에서 떨어져나온 생기 두 개는 음문촌장이 아니다.
그들이 유인하는 자들이고, 마차가 진짜다. 홀리가 타고 있지 않나.
충분히 마차를 따라갈 만하다.
“오히려 잘 됐어.”
쉬이잇!
홀리는 아버지…… 촌장을 쫓아서 신형을 쏘아냈다.
그녀는 자신의 뒤에 호발귀가 따라붙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해자수의 뒤에 이령 혈마들이 모두 따라붙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호발귀의 사권과 혈권은 홀리보다 훨씬 넓다. 홀리가 감지하는 범위 밖에서 움직일 수 있다.
홀리도 그런 사실을 안다. 하지만 호발귀가 자신의 뒤를 쫓아왔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니 충분히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해자수가 호발귀와 상의한 후에 움직였다는 생각은 할 수 없으니까.
스으으읏!
그녀는 서둘지 않고 천천히 움직였다.
그래도 아버지와 이자는 충분히 따라잡는다.
귀무살은 신중하다. 홀리가 혼자라는 사실을 알았어도 또 다른 자가 있을지 몰라서 자세히 살핀다.
꾸국! 꾸국!
새 소리가 울렸다.
꾸국! 꾸국!
화답이라도 하는 듯 여기저기서 새소리가 울렸다.
신호는 모두 여덟 개다. 뒤따르는 자가 있는지 팔방(八方)을 살폈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새 소리가 울린다.
‘쫓아오는 자는 없고…… 후후!’
찬도의 눈에서 살광이 뿜어졌다.
홀리도 새 소리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걸음을 멈췄다.
- 쫓아오는 자가 없으면 공격한다. 방해꾼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보류한다. 공격하더라도 절대로 사정거리에 들어가지 마라. 원거리 공격을 위주로 한다. 치고 바로 빠져나와. 살법은 물론이고 신법으로도 상대가 안 된다. 가까이 붙으면 죽었다고 생각해라.
귀무살에게 당부한 말이다.
찬도는 이런 일에 대비해서 귀무살에게 특별할 수련을 시켰다.
혈천방주가 혈마에게 집착하고 있는데 앞으로 치러야 할 싸움을 예측하지 못하겠나.
방주는 귀무살을 쓰다가 버리는 소모품 정도로 생각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혈마에 비하면 귀무살은 어린애나 마찬가지다.
어떤 수련을 거쳤고, 어떤 삶을 살아와도 혈마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귀무살은 혈마는커녕 사마조차도 넘지 못한다.
방주의 눈에는 적당한 곳에나 쓰는 졸개 정도로만 보일 것이다.
하지만 찬도는 귀무살을 그런 식으로 죽게 만들 수 없었다.
어떻게든 혈마를 상대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리고 가장 타당하다 싶은 방법을 찾았다.
사련팔타법(四連八打法)!
원래는 천살단주를 상대하기 위해서 창안되었는데, 실효성이 낮다는 이유로 폐기된 공격법이다.
천살단주를 넘지 못하는 공격법으로 혈마를 상대할 수 있을까? 아마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혈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혈기를 충천케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가능할 수도 있다. 아니, 이것이 최선이다.
‘최선을 다한다!’
“꾸욱! 꾸구구국!”
찬도가 새 소리를 흘렸다.
쒜에에엑! 쒜에엑!
암기 소리가 매섭게 울렸다.
귀무살이 빠르게 다가와서 암습을 한다. 표창, 단검, 수리검, 소궁을 쏜다. 그리고는 즉시 뒤로 빠진다.
일조가 지나가면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이조가 덮친다.
이조가 지나가면 삼조가, 삼조가 지나간 후에는 사조가…… 그리고 다시 일조로 돌아온다.
한 조에 여덟 명씩, 팔방에서 암기가 회오리친다.
사조의 연환 공격은 매우 빠르다. 홀리를 쉬지 못하게 만든다. 계속 움직여야만 한다.
타타탕! 타타타탕!
홀리가 암기를 쳐냈다. 하지만 이미 이조가 날린 암기가 코앞으로 들이치고 있었다.
타타타탕!
홀리는 즉시 이조의 암기도 쳐냈다.
그래도 또 움직여야 한다. 이미 삼조가 날린 암기가 살을 후벼 파기 직전이다.
타타타탕! 타타탕!
홀리는 숨돌릴 틈도 없이 암기를 쳐냈다.
한 호흡만 늦추면 암기에 적중당할 것이다. 더욱이 암기에는 독이 묻었는지 까만 광택이 번뜩인다.
‘빨라!’
홀리는 숨 쉴 틈도 없이 빠르게 이어지는 순환 공격에 혀를 내둘렀다.
귀무살이 어떤 자들인지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솔직히 안중에 두고 있지 않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혈마가 된 후에는 더욱 상대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 공격은 다르다. 이들은 작심하고 달려드는 중이다. 한 호흡만 놓치면……
지척으로 날아드는 암기 중에서 하나만 놓쳐도 큰 손해를 본다.
파파파파팟!
수많은 암기 사이로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느다란 세침(細針)이 날아들었다.
홀리는 즉시 검을 휘둘러서 세침도 쳐냈다.
빠른 공격 속에 세밀한 암기까지 섞어 놓았다.
혈마가 되기 전이라면 상당히 곤란했을 것이다. 혈맥참만으로는 상대하기 버겁다.
하지만 지금은 어렵지 않다. 솔직히 암기를 쳐내는 정도는 쉬운 쪽에 속한다.
파앗!
두 발이 땅에서 떨어져 허공으로 솟구쳤다.
실제, 두 발은 여전히 땅을 굳건히 밟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몸이 허공에 붕 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땅이 밀어내는 쪽으로 신형을 날린다.
그곳에 암기가 있다.
그녀는 검만 휘두르면 된다. 그것도 손이 저절로 움직인다. 굳이 애써서 움직일 필요가 없다.
생기가 암기를 찾아내서 쳐내는 과정이 되풀이된다.
물론 홀리에게도 위험은 존재한다.
귀무살을 치지 못하고 계속 이렇게 생기만 사용하면 곧 혈기가 충천할 것이다.
약간 안심이 된다면…… 이령을 떠나기 전에 호발귀에게 혈기를 말끔히 제거 받았다.
이령을 떠날 생각으로 제거 받은 것은 아니다.
호발귀는 하루에 한 번씩 혈마들의 혈기를 제거해 주었다.
혈기가 매일 충천하는 것도 아니고 약간 물들이는 정도에 불과해도 깔끔히 씻어 주었다.
혈기를 제거하면 생기를 처음 사용하던 상태가 된다.
여기서 가감(加減)이 일어난다.
생기는 사용하면 할수록 능숙해진다. 당연한 말이다. 한데 생기에 능숙해지면 혈기가 충천하는 속도도 빨라진다.
혈마가 되어가는 속도가 예전보다 적어도 세 배는 빠르다.
반대로 생기를 조절하는 솜씨도 늘어간다.
옛날처럼 무작정 생기를 사용하면 빠르게 혈마로 진행되지만, 생기를 조절해서 사용하면 다소나마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생기에 능숙해진 만큼 빠르게 진척되고, 생기를 잘 조절하면 야간은 늦출 수 있다.
이렇게 더하기 빼기를 하면 대략 예전보다 두 배 정도를 빠른 것 같다.
생기를 아무리 잘 조절해도 혈마가 되는 속도는 빨라진다.
그래도 조절해서 사용해야 한다. 생기 조절을 하지 않고 일어나는 대로 마구 쓰면 단 하루만에 혈마가 될 수 있다.
타타타탕! 타타탕!
홀리는 계속해서 암기를 쳐냈다.
‘암기는 무한한 게 아니지. 너희가 소지한 암기에는 한계가 있어. 무한정으로 쏟아낼 수 있는 화수분이 아니야. 암기가 먼저 떨어지나, 내가 먼저 혈마가 되냐 하는 문제인 것 같은데…… 너희가 실수했어. 이런 식이라면 이틀도 버틸 수 있거든.’
홀리는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혔다.
“교대해라.”
찬도가 말했다.
그러자 대기하고 있던 서른두 명의 귀무살이 안으로 치고 들어갔다. 지금까지 공격하던 서른두 명은 재빨리 뒤로 빠졌다.
물론 그사이에도 공격은 계속 이어졌다.
공격을 마친 한 조가 빠져나오면 한 조가 들어간다.
공격에 틈을 주지 않는다.
‘승산 있어!’
찬도는 자신감을 얻었다.
홀리는 착각하고 있다. 암기는 무한정으로 공급된다.
공격에 나선 귀무살이 서른두 명만 있는 게 아니다. 뒤에 한 대가 더 받치고 있다.
이번 공격에 동원된 귀무살은 예순두 명이다.
귀무살들은 일신에 여섯 번 공격할 수 있는 암기만 챙긴다.
일조에서 사조까지 여섯 번만 순환하면 된다. 그러면 곧바로 전대와 후대가 교체된다.
전대가 공격하는 동안 후대는 쉬면서 암기를 보충한다. 그리고 후대가 투입되면 전대는 빠져나와서 암기를 챙긴다. 욕심부릴 필요는 없다.
자신이 챙길 암기는 이미 정해져 있다. 뼈를 깎는 수련을 거치지 않았나.
암기는 충분하다. 예슨 두 명이 등짐 하나씩을 메고 왔다. 모두 합치면 마차 열 대 분량은 된다.
그 많은 암기를 쏟아낼 동안 버틸 수 있을까?
쉴 새 없이 쏟아내도 두 시진 동안을 쓸 수 있다.
두고 보자. 홀리가 두 시진 동안 쉬지 않고 생기를 쏟아낸 후에도 혈마로 변하지 않는지.
두 시즌이 지나도 상관없다. 그러면 다시 두 시진이 늘어난다.
만일에 대비해서 다른 자들이 암기를 날아오고 있다. 두 시진 후에는 마차 열 대 분량의 암기가 보충된다.
알겠는가? 이 싸움은 암기 싸움이 아니다. 체력 싸움이다.
귀무살은 뒤로 빠져나와 쉴 수가 있다. 암기를 챙기는 시간이 쉬는 시간이다.
반면에 홀리는 쉬지 못한다. 숨도 크게 쉴 수 없을 만큼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잡을 수 있겠어. 암기에 갇혔다!’
찬도의 감정 없는 얼굴에 미소가 어렸다.
사련팔타법이 폐기된 이유는 천살단주가 암기의 포위망을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되어서였다.
약간의 부상을 무릅쓰고 달려들면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홀리는 암기망 안에 갇혀서 꼼짝하지 못하고 있다. 이리로도 저리로도 움직이지 못한다.
팔방 중 어느 방위도 뚫을 생각을 못 한다.
사련팔타법을 실제로 써보니 생각 이상으로 뛰어나지 않은가.
‘이런 식이면 사마를 투입할 필요도 없겠는데.’
찬도는 자신감을 얻었다. 하지만 냉정함을 잃지는 않았다.
차분하게 지켜본다. 싸움이 어떻게 변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