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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72화 (472/500)

第九十五章 풍구습격(瘋狗襲擊) (2)

“아버님 전갈입니다.”

이자는 혈천방주에게 음문촌장의 서신을 내밀었다.

홀리를 유인하는 데 성공했고, 그녀를 데리고 섬서(陝西) 황암산(黃巖山)으로 간다는 내용이다.

“하하! 음문촌장이 재주 하나는 기가 막혀. 홀리를 데려올 수 있다고 해서 긴가민가했는데 정말 데리고 나왔네? 혈마가 득실거리는데 어떻게 홀리만 딱 떼내서 나왔지?”

혈천방주가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그게 아버님이 잘하시는 일이십니다.”

이자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그런데 섬서에는 왜 가는 거야? 그것 때문에 홀리가 따라나선 것 같은데.”

“거기까지는 저도……”

“말해주지 않은 건가? 아니면 정말 모르는 건가?”

“정말 모릅니다.”

“음문촌장은 참 비밀이 많아.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떻게 자식에게까지 숨기나? 음문촌장의 자식으로 살면서 그런 점이 섭섭하진 않았나?”

“섭섭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자가 태연히 대답했다.

“좌우지간 희한해. 희한한 사람들이야.”

혈천방주가 고개를 내두르며 서신을 읽었다.

서신 내용은 짐작한 대로다.

다른 내용은 간략하게 기재된 반면, 홀리를 공격해 달라는 부분은 매우 상세하게 기재되었다.

음문촌장의 바람이 확실히 읽힌다.

“홀리를 공격해 달라고?”

“네.”

“홀리가 폭주하면 혈마가 될 텐데, 혈군은 누군가?”

“접니다. 제가 직접 하겠습니다.”

“이것도 이해할 수 없다니까. 홀리는 동생이잖아? 동생과 살을 섞어도 괜찮다는 건가?

“이복입니다.”

“그게 왜?”

“나은 배가 다르면 남남인 거죠.”

이자가 차게 말했다.

“재밌어. 이건 뭐 콩가루 집안도 아니고. 음문촌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는 줄 아나? 무법지대 같아. 법도 없고, 윤리도 없고, 도덕도 없고, 오직 아귀다툼만 있는.”

“……”

이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무색해서 얼굴색이 바뀔 만도 한데, 이자는 전혀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마도를 이끄는 혈천방 방주로서 이런 말을 하면 제 얼굴에 침 뱉기지만, 음문촌은 혈천방보다 훨씬 지독해. 그래도 혈천방은 동생과 살을 섞을 생각은 안 하거든.”

“사마를 만드셨지 않습니까? 동생의 혈군이 되나, 누군가의 남편이요 자식을 데려다가 영혼 없는 사마를 만드는 것이나 뭐가 그렇게 다르겠습니까?”

“하하하! 하하하하!”

혈천방주가 크게 웃었다.

“내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아. 예전에는 음문촌장이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손톱 발톱 다 빠졌으니 어림도 없고. 충고 하나 하지. 이번에는 무지한 셈 치고 용서해 줄게. 하하하! 용케 목숨을 건진 거야. 다음에 또 내 앞에서 혈천방이 한 일을 비웃으면 목이 떨어질 거야. 내가 사람이 좋아 보여도 나쁠 때는 무지 나쁘거든.”

“명심하겠습니다.”

이자가 말했다.

그때, 문밖에서 차가운 음성이 들려왔다.

“찬도입니다.”

“들어와.”

혈천방주가 말했다.

덜컹! 문이 열리면서 귀무살 귀무령 찬도가 들어섰다.

귀검이 귀무령을 맡고 있을 당시, 귀검은 혈천방주에게 문밖 보고를 하지 않았다.

귀검은 혈천방주의 명령을 거부할 정도로 강하게 군림했다.

찬도는 일반 혈천방도와 다름없이 행동했다.

혈천방주에게 철저히 복종한다. 귀무살이 혈마의 수족이 아니라 혈천방주의 수족임을 분명히 했다.

“복우산에 잠입했던 방도가 전멸했습니다.”

찬도의 음성은 매우 차가웠다.

찬도는 단정검(斷情劍)을 수련했다. 인간의 오욕칠정을 끊고 얼음처럼 차가운 검을 펼친다.

행동도 차갑고, 말투도 차다.

단정검을 수련한 자는 자신의 목숨도 가볍게 여긴다. 이렇게 살다가 언제든 죽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혈천방주가 두려워서 굴종하는 것은 아니다. 귀무살이 혈천방주의 휘하라는 소신이 있는 것이다.

“전부? 언제?”

“시반(屍斑)으로 추측해보면 어제저녁 자정에서 축시(丑時) 사이에 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 사람이 죽인 거야?”

“아닙니다. 모든 마을에서 동시에 살상이 일어났습니다. 시간도 거의 비슷합니다.”

“하하하! 그럼 뭐 이령 혈마들 짓이네.”

“그렇게 봅니다.”

그러자 혈천방주가 이자를 보며 말했다.

“이봐, 이봐. 음문촌장이 한수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잖아? 홀리만 슬쩍 빼낸다더니 호발귀와 혈마들까지 모두 끌어냈잖아? 홀리를 공격해 달라고? 혈마 전체와 우릴 싸움시킬 생각인가? 너 우리 몰살시키려고 했지?”

물론 농담이다. 하지만 혈천방주가 하는 농담은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서 이자의 가슴에 박혔다.

혈천방이 움직이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려서다.

“호발귀까지 내려온 줄은 몰랐습니다.”

이자가 온 마음을 다해서 말했다.

“그럼 상황이 변했네? 이걸 어떻게 한다?”

혈천방주가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고민했다.

사실…… 혈천방주는 호발귀를 어떻게 할지 며칠째 머리를 쥐어 짜내며 고민하는 중이었다.

호발귀가 이령에 버티고 있으면 공격하지 못한다.

혈마가 한두 명도 아니고 십여 명이나 있다.

그들을 공격하려면 중원 전역에 있는 혈천방도를 모조리 끌어모아야 한다. 그래도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혈마와 사마의 싸움은 기대할 수 없다.

진공으로 싸우면 사마들이 펑펑 나가떨어진다. 혈마 한 명에 최소한 사마를 넷은 붙여야 하는데, 그러자면 사십 명이 필요하다.

아니, 예비로 십여 명은 더 필요할 것이다.

사마 오십 명.

그만한 사마는 있다. 하지만 더는 없다. 그게 마지막이다.

계속해서 사마를 양성하고 있지만, 완벽한 사마로 만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다.

이번 공격이 만에 하나라도 실패한다면 혈천방은 무림에서 자취를 감춰야 한다.

호발귀 이놈은 어쩌자고 혈마를 이토록 많이 만들어 냈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혈마로 만들었으니. 호발귀 주위에 있으면 저절로 혈마가 되나?

혈천방주는 혈마들이 이령에 운집해 있을 때는 공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침 이럴 때, 음문촌장이 홀리를 빼내겠다고 말해온 것이다.

그러잖아도 울고 싶은데 뺨을 때려준 격이다.

홀리를 끌어내면 상황이 변한다. 혈마들이 한 곳에 운집해 있을 수가 없다.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예전 경험상 혈마 한 명 당 사마 넷만 붙이면 모두 잡을 수 있다.

‘호발귀가 이령을 나왔다…… 후후!’

혈천방주는 심장이 크게 뛰었다.

혈천방의 전력을 기울여서 공격할 수 있는 최후의 기회가 찾아왔다고 여겼다.

일생에서 최후 최대의 승부처다.

호발귀가 혈마를 이끌고 나왔다고 해서 상황이 변한 것은 아니다. 지금도 공격할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황이 변하면 틈이 생긴다. 틈이 생기면 공격할 수 있다.

‘분산! 저들을 분산시켜야 해! 뿔뿔이 흩어놓은 후에 공격하면…… 모두 잡는다. 아니, 모두 잡을 필요는 없어. 계집 하나, 사내 하나. 둘만 잡으면 돼.’

혈천방주는 아직도 음문촌의 귀색혼령대법을 무시하지 않는다.

오녀 토초가 혈마를 부린 장면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혈마가 완전하지는 않았지만, 제법 인간에 가까운 혈마를 수족처럼 부렸다. 호발귀를 만나기 전까지는 무적이었다.

혈천방주도 그 정도는 할 수 있다. 사마를 수족처럼 부릴 수 있다.

토초의 혈마와 사마의 다른 점은 인간성이다. 사마는 완전히 죽은 인간이다. 더는 연구할 것도 찾아볼 것도 없다.

하지만 혈마후가 이끄는 혈마는 생기 사용법을 노출한다. 본격적으로 생기 사용을 연구할 수 있다.

이 부분 때문에 혈마를 잡고자 하는 것인데…… 인제 와서 놓칠 수는 없다.

‘지금은 혈마가 너무 많아. 이렇게 많을 필요는 없지. 웬만한 놈들은 모두 죽이고……’

혈천방주는 결심을 굳혔다.

“일단 저놈들을 분산시켜야겠어. 방법이 없을까?”

혈천방주가 이자에게 물었다.

혈천방주는 이미 분산시킬 방책을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자에게 묻는 것은 너희 일이니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뜻이다.

“홀리 뒤를 그림자처럼 쫓는 놈이 있습니다. 해자수라고. 아버님은 홀리를 계획대로 빼냈습니다. 홀리가 누구와 상의한 후에 행동한 것은 아닙니다.”

“해자수가 홀리 뒤를 밟았다고?”

“그럴 겁니다. 해자수가 나오고 호발귀를 비롯한 다른 혈마들이 뒤를 잇고. 그러면 해자수만 유인하면 호발귀와 다른 혈마들도 다른 쪽으로 유인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래? 그래 줄 수 있나? 해자수를 다른 길로 유인해 준다면…… 홀리를 공격하기가 쉽지.”

“아버님과 상의해 보겠습니다.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해서는 곤란해. 반드시 해야만 해. 저놈들이 붙어 있으면 우린 움직이지 않을 거야. 저놈들이 홀리 곁에서 떨어졌다고 확인되면 그때 움직일 테니까 알아서 하고. 혈마들 말이야. 무공으로는 당신들 머리 꼭대기에 올라섰어. 쉽게 생각하면 큰코다칠 거야. 이건 충고. 아니, 조언이라고 할까?”

“알겠습니다.”

이자는 순순히 응했다.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해자수를 유인할 방법이 아주 쉽게 생각났다. 물론 형제 중 몇몇이 해자수를 유인해야 한다.

그러면 호발귀를 비롯한 모든 혈마가 그쪽으로 움직인다.

유인에 가담한 다른 형제들은 아마도 거의 죽을 것이다.

그러면 어떤가? 혈천방주에게 말했듯이 이복은 남이다. 형제간의 정 같은 것은 없다.

그놈들이 호발귀를 유인하다가 죽더라도 하등 아쉽지 않다.

사실 모든 혈마가 한자리에 뭉쳐 있으면 혈천방도 공격하기 난감할 것이다.

혈천방주를 이해한다.

‘그래. 이런 일은 우리가 해야겠지.’

이 자가 눈빛을 빛내며 말했다.

“이 일은 저희가 할 일이니까 저희가 반드시 분리해내겠습니다. 그 후 바로 공격 부탁드립니다.”

“그건 염려하지 말고.”

혈천방주가 웃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너희 셋이 해자수를 유인해.”

음문촌장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런 일은 잘 타협해서 혈천방이 움직이도록 만들어야 했는데…… 이자가 덜컥 물어왔다.

그러니 인제 와서 못한다고 할 수가 없다. 기필코 해내야만 한다.

“알겠습니다.”

일자가 차분히 대답했다.

“그래.”

음문촌장이 일자의 어깨를 툭툭 쳤다.

혈천방주의 말이 맞는다. 음문촌은 해자수를 맞상대로 여기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음문촌 모든 무인의 머리 꼭대기에 있다.

음문촌 무인들이 일제히 달려들어도 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물며 해자수 뒤에는 호발귀를 비롯한 다른 혈마들이 득실거린다. 귀검도 있다.

그들을 유인해서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유인책으로 움직인 세 명은 살아 돌아오기 힘들 것이다.

다른 측면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유인은 유인일 뿐이다. 혈마를 유인하는 것이지 그들과 싸우자는 게 아니다. 단순히 유인만 하는 것이니 긴장만 늦추지 않으면 얼마든지 살아남을 수 있다.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어차피 싸움은 혈천방이 한다. 음문촌은 혈마와 싸우지 않는다. 싸울 생각이 전혀 없다.

그러니 혈마에게 따라잡히기 전에 재빨리 물러서야 한다.

“우리가 먼저 잡히느냐 혈천방이 먼저 움직이게 하느냐가 관건이겠네. 쳇! 우리 목숨을 혈천방주에게 맡긴 건가?”

사자가 투덜거렸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일자가 무게 있게 말했다.

두두두! 두두두두!

마차가 달린다.

일자는 어자석에 앉아서 말을 몬다. 사자는 마차 뒤쪽에서 후면을 경계하고, 육자는 마차 지붕에 앉아서 사방을 경계한다.

음문촌장과 이자는 마차 안에 앉았다.

“조심해라.”

음문촌장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밑으로 뚝 떨어졌다.

바닥에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서 은밀히 마차에서 빠져나왔다.

마차는 계속 질주한다.

곧이어 이자가 마차 바닥을 통해서 살며시 흘러나왔다.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일자는 마차 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지 못하는 듯, 앞만 보며 마차를 몰았다.

이런 수에 해자수가 속아 넘어갈까? 속아 넘어갈 것이다.

마차에서는 음문촌에서만 맡을 수 있는 초귀화(草晷花)의 향기가 풍겨난다.

홀리가 무척 좋아해서 분말로 만들어서 향낭에 넣어 다녔다.

해자수는 초귀화 냄새만 풍기면 홀리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음문촌에 오면 제일 먼저 초귀화 냄새부터 맡았다.

가장 진하게 냄새가 풍기는 곳이 홀리가 있는 곳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초귀화를 가득 품은 향낭이라면 해자수를 유인할 수 있다.

두두두! 두두두두두!

마차가 질주한다.

“해자수가 속았을까요?”

“우리는 혈마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없으니 알 수 없지. 혈천방이 홀리를 공격하면 성공한 거고, 아니면 실패한 거야. 성공 여부는 그때에나 알 수 있어. 가자.”

음문촌장이 신형을 쏘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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