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五章 풍구습격(瘋狗襲擊) (1)
판수는 자신의 검이 아름다움을 연출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지 않다는 사실을 안다.
그래서 검을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오히려 귀무살일 때는 거침없이 썼는데.
한 집에서 나와 다른 집으로 들어가기 전에 만반의 준비를 한다.
숨을 고르고 생기를 점검한다. 살심이 어느 정도로 치솟는지 마음을 살핀다.
혈마에게는 전자보다도 후자가 중요하다.
혈마는 진기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다. 생기에 반응할 뿐이다. 그러니 진기는 아예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가 무엇보다도 우선한다.
혈마는 자신이 어떤 초식을 전개하는지도 모른다. 생기에 반응하다 보면 적이 죽어있다.
어떻게 죽이는지도 모른 채 적을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하지만 다른 혈마도 무공을 사용한다.
다른 혈마가 펼치는 무공을 보면 혈마가 전개하는 검초 또한 평소에 수련했던 무공에 기반하는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몸에 익숙한 무공을 펼쳐내는 것이다.
일반 무인이었을 때 쌓은 무공이 혈마가 된 이후에도 계속 사용된다.
생기에 반응해서 일으키는 공격이 무공으로 재현되어서 펼쳐져 나간다.
몸이 기억하는 동작을 펼친다.
물론 혈마가 되면 무공의 차이는 소멸한다.
인간이 항거할 수 없는 천력(天力)은 인간이 창안해 낸 모든 무공을 무력화시킨다.
팔팔 끓는 용암 속에 두 사람이 던져졌다고 치자. 한 사람은 상승 고수도, 한 사람은 갓 태어난 어린아이다.
이 경우, 두 사람이 죽는데 차이가 있을까? 없다.
용암이라는 거대한 힘은 인간이 쌓은 모든 경륜과 무공을 일시에 소멸시킨다.
혈마는 이런 힘을 얻는다.
그러니 판수의 노력은 아주 쓸모없는 것이다. 어떤 혈마도 판수처럼 ‘잘 죽여야지’하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죽이려는 마음조차도 없는 상태에서 죽인다.
판수는 여전히 ‘편안한 죽음’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다.
“후우!”
판수가 크게 숨을 골랐다.
드디어 마지막 집, 한 곳만 남았다.
지금까지는 잘해왔다. 일격에 단두를 하지 못해서 두 번째 검을 펼치는 일은 없었다.
툭!
여괴가 판수의 어깨를 쳤다. 들어가 보라고.
판수가 여괴를 쳐다보며 씩! 웃었다.
두 사람은 지금 웃을 여유가 전혀 없다. 집안에서 생기를 느낀다.
그 생기가 판수에게는 가시를 만들고, 여괴에게는 극심한 두통을 일으켰다.
몸이 너무 아프다. 빨리 이 고통을 덜어내고 싶다.
두 사람은 그런 마음을 이겨내면서 웃었다.
쉿!
판수가 신형을 날려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판수는 죽은 목석을 베었다. 누워서 잠을 청하는 사람은 죽은 목석이나 다름없다.
전혀 저항하지 못한다. 검이 날아오는 것조차 모른 채 죽는다.
그러니 단두가 쉬웠다.
이번 상대는 불을 밝히고 있다.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았다.
당연하다. 혈천방이 왜 마을을 점거했나? 목적이 있지 않나. 당연히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어느 마을이나 다 마찬가지다
이령 주위에 있는 마을을 둘러보면 꼭 어느 한 집은 불을 밝히고 있을 것이다.
경계를 서는 집이다.
그들의 경계는 대부분 소리에 의존한다. 이상한 소리가 흘러나오면 집 밖으로 나와서 사태를 살핀다.
그리고 이상이 생기면 징이나 북을 울려서 경고를 발한다.
지금까지 집 안에 있는 자는 문밖으로 나와보지 않았다.
판수가 마을을 소멸시키는 동안, 어떤 이상징후도 발견하지 못했다. 완벽한 암살이다.
판수도 이번에는 산자를 벤다. 저항할 수 있는 자.
죽이는 것은 염려하지 않는다. 편하게 죽일 수 있는지 그게 의문일 뿐이다.
산자도 지금까지처럼 깨끗하게 단두 할 수 있을까?
스읏!
판수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사내는 탁자에 앉아서 야식을 먹고 있었다.
두 사람의 눈길이 엉겁결에 허공에서 얽혔다.
예전의 판수라면 벌써 사내 곁에 도착했다. 지금쯤 검이 목을 베고 있을 것이다.
귀무살도 그 정도의 빠름은 있다. 아니, 귀무살일 때가 암살은 더 쉬웠다.
지금 판수는 온몸에서 가시가 돋는 고통을 참으면서 생기를 억누르고 있다.
이번에는 판수도 실험을 한다.
상대를 죽이는 것은 염려하지 않는다. 상대는 벌써 죽은 몸이나 다름없다.
상대가 어떤 무공을 펼치든 간에 생기가 만들어낸 가시철망은 피하지 못한다.
온몸에 돋은 소름이 가시로 변하고, 그 가시는 판수에 살과 뼈를 묻은 채 튕겨 나간다.
온몸을 찢어낸다.
“크크크크! 크크큿!”
판수가 괴소를 토해냈다.
혈기가 충천해서 흘리는 괴수가 아니다. 고문을 당하는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흘리는 신음이다.
지금 판수는 두 발로 굳건히 서 있지만 심하게 고문당하는 사람이나 다름없다.
살아있는 사람한테도 이상적인 검을 떨쳐낼 수가 있을까?
판수는 자신이 어떤 검을 쓰는지 알지 못한다. 일단 생기에 휘둘리면 그 이후는 거의 인식하지 못한다.
싸움이 끝난 후에야 사람을 죽였다는 사실은 안다.
자신의 검은 뒤에서 지켜보는 여괴가 봐준다.
생기 이전에 높은 수련을 쌓았다면 생기 이후에도 검이 날카로울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사실이 도출된다.
사람을 죽일 목적이라면 아무 생각도 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편안한 죽음’을 생각한다면 완전히 생기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는 전제조건이 나온다.
가시가 터져 나가는 순간 정확히 목을 노리고 있어야 한다.
정확히 목을 노린다는 점, 바로 이 의식은 생기에 완전히 휘말리지 않았을 때만 나온다.
사실은 이 의식을 붙잡는다는 게 무척 힘들다. 생기가 일어나면 몸도 마음도 완전히 소멸된다.
생기 속에 몸이 갇힌다. 그 속에서도 한 줄기 끈을 놓지 말아야 하니 얼마나 힘드나.
판수가 이런 실험을 하는 이유는 마지막 순간에 붙드는 한 가닥 이성이 호발귀가 말하는 조견, 심등, 명안……
이런 게 아닐까 싶어서이다.
아직 호발귀에게는 이런 상태를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한 줄기 이성을 붙들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조견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런 실험을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마을을 공격하기 전까지만 해도 몰랐다. ‘편안한 죽음’을 이어가면서 퍼뜩 깨달아졌다.
판수는 이 사실을 여괴와 의논했다.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불을 켜놓고 있는 자에게 이 실험을 하기로 했다.
판수만의 결정이 아니라 여괴의 의견까지 포함된 결정이다.
쓱!
판수가 검을 들어 올렸다. 여전히 이성을 붙들고 있다.
생기가 파파파팟! 튀어 나가지만 아직은 생기를 쓸 때가 아니라고 하면서 굳건히 붙잡아 놓는다.
쒜엑! 창!
야식을 먹던 자가 재빨리 검을 뽑으면서 뒤로 물러섰다.
“웬 놈이냐!”
경악은 뒤늦게 튀어나왔다.
웬 놈이냐니. 누군지 몰라서 묻는 말인가? 이령 사람이라는 걸 알고 있지 않나.
“크크크! 크크크크!”
판수가 괴소를 내질렀다.
이제 더는 참을 수가 없다. 몸이 너무 아프다.
빨갛게 달군 인두로 전신을 지지는 것 같다. 뜨거운 용암을 뒤집어쓴 듯 충격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놈의 가시들!’
가시들이 온몸을 찢어 밝히면서 뛰쳐나가려고 한다.
평소 사람은 자신의 몸에 뼈가 있다는 것을 의식하지 못한다. 가끔 뼈라는 존재를 의식할 수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뼈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은 채 지낸다.
그 뼈가 알알이 돋아난다. 뼈가 조각조각으로 분해되어서 몸 밖으로 뛰쳐나가려고 한다.
누군가가 몸 안에 있는 뼈를 보이지 않는 집 개로 잡아서 밖으로 뜯어내려고 한다.
극심한 고통이 전신 전반에 걸쳐서 일어난다.
괴소를 흘리지 않을 수 없다.
판수가 흘리는 괴소는 고통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징그럽다. 처절하다.
검을 든 사내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인제 그만!’
쉐엑!
판수는 상대의 눈을 보면서 생기를 터트렸다. 쏟아져 나가라는 가시들을 무방비 상태로 놓아주었다.
그 순간 검이 흘렀다. 팍! 목을 쳤다.
상대는 검이 날아오는 것을 보지 못했다. 여전히 판수의 괴소에 놀란 듯 파랗게 질린 얼굴로 서 있다.
검은 이미 그를 베고 지나갔지만, 그는 판수가 만들어 낸 잔상에 휘둘려서, 아직도 판수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것처럼 여기고 있다.
정확한 단두가 이루어졌다.
칼이 목을 베며 지나갔지만, 사내의 머리는 굴러떨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몸에 붙어있다.
검이 살을 베었는데 살결이 일그러지지 않은 것이다.
사내는 이미 절명했다.
“후우!”
판수가 한숨을 토해냈다.
생기에 반응해서 검을 썼지만, 혈기가 충천하지 않는다.
잔인한 모습을 보지 않으니 혈기도 일어나지 않는다. 단지 생기를 쓰는 것만으로는 혈기가 반응하지 않는다.
“이게 조견인 것 같지?”
“맞는 것 같은데.”
여괴가 맞장구쳤다.
“이게 조견이면…… 그럼 나는 어떻게 검을 써야 하나?”
여괴가 중얼거렸다.
여괴는 생기를 감지하면 두통이 일어난다.
마을에 들어온 후부터 두통 때문에 견디지 못할 지경이다. 판수가 생기를 소멸시킨 후에도 두통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일정한 시간이 지나야만 두통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또 지금은 바로 앞에 생기가 있지 않나. 판수도 생기다. 판수를 치고 싶다.
판수라고 안 그럴까. 판수도 여괴를 공격하고 싶다. 여괴를 동료가 아니라 생기 덩어리로 본다.
하지만 아직은 의식이 소멸할 정도로 깊이 휘말리지는 않았다.
언젠가 혈기가 충천해서 완전한 혈마가 되면 두 사람은 서로를 공격할 것이다. 그러니 이인 일조로 함께 다니는 것이 반드시 좋지만은 않다.
두통을 견뎌내고 생기를 터트릴 수 있다면 이게 조견이다.
“빨리 주군을 만나러 가자. 두통이 심해서 미치겠어.”
여괴가 말했다.
“하하하! 참아봐. 참아보니까 참을 만한데 뭘. 하하하!”
판수가 크게 웃었다.
판수는 이미 한 번 성공했다. 그러니 여유가 생긴다.
호발귀처럼 조견을 얻었다는 만족감에 다시 소름이 돋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여괴처럼 고통스럽지 않다.
“제길! 매도 먼저 맞아봤다 이건가? 잘난 체하기는.”
두 사람은 농을 주고받으면서 마을을 벗어났다.
“저것이 조견인가.”
귀검은 판수가 쓰는 검을 봤다.
판수와 여괴는 귀검을 찾아내지 못했다. 호발귀가 귀검에게 이번 일을 부탁한 이유가 있다.
귀검은 지옥유부검을 지녔다. 자신의 생기를 감추고 혈마를 지켜볼 수가 있다.
혈마는 귀검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현재 판수와 여괴는 완전히 혈마가 된 것이 아니지만, 그런데도 귀검이 소멸시킨 생기를 찾아내지 못했다.
반면에 귀검은 두 사람을 똑똑이 봤다.
그중에서 가장 마지막 장면, 판수가 전개한 검은 벅찬 희열까지 끌어냈다.
나무랄 데 없는 완벽한 단두다.
귀검이 펼쳤다고 해도 더는 아름다울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다.
어떤 검초든 진력을 투입하는 데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그 한계를 채우면 그 이후부터는 의미가 없다.
다섯의 힘을 사용해서 궁극을 이루는 검초라면 여섯이나 일곱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 의미가 없다.
일곱의 힘으로 검초를 펼쳐도 다섯의 힘으로 펼친 것과 똑같은 결과가 나온다.
판수와 귀검의 검공에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판수는 귀검을 쫓아오지 못한다. 하지만 판수의 검공도 단두를 이뤄내는 데는 충분하다.
그리고 판수는 살검에 대해서 반응하지 않았다.
잠자는 자들을 벨 때는 거칠게 반응했는데 오히려 멀쩡하게 깨어있는 자를 벨 때는 멀쩡했다.
혈마는 피에 반응한다. 죽음에 반응한다.
죽이되 살아있을 때와 변함이 없다면 반응하지 않는다.
판수가 길 하나를 연 것이 틀림없다.
“그놈 참……”
귀검은 판수가 기특했다.
귀검도 판수의 혈기를 알고 있다. 생기가 일어나면 어떤 고통이 일어나는지 안다.
대부분의 혈기가 느낌과 연관이 있다. 하지만 판수와 여괴, 두 사람은 썩 좋지 않은 혈기를 얻었다.
뭐라고 할까? 저주의 혈기라고 할까? 혈기 중에서도 왜 그런 혈기를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최악의 혈기를 얻은 게 틀림없다.
그들은 극심한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므로 이런 방법을 생각해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판수는 호발귀도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길을 제시했다.
생기를 터뜨리면서도 오염시키지 않을 수가 있다.
“주군께서 좋아하시겠군. 후후!”
귀검은 만족했다. 오랜만에 가슴이 시원했다. 그래서 환하게 웃을 수 있다.
“후후후!”
귀검은 연신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