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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70화 (470/500)

第九十四章 외도가족(外逃家族) (5)

- 밖으로 도망간 가족

“그럼 이따가 뵙겠습니다.”

귀검이 두 손 모아 포권했다.

귀검이 호발귀에게 내주는 충성은 상상 이상이다.

가식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저하다.

오랜 세월 동안 함께 지내면 친구처럼 다정해지는 법인데 귀검은 전혀 그렇지 않다.

늘 예의를 갖추고 호발귀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귀검.”

호발귀가 귀검을 불렀다.

“네.”

귀검은 몸을 돌려서 하산하려다가 즉시 되돌아섰다.

귀검은 단독으로 마을 하나를 맡았다.

귀검이 마을 하나 소멸시키는 것은 어린아이 손목 비트는 것보다도 쉽다.

마을 사람들이 촌민이라면 검을 쓰지 않겠지만, 혈천방 무인인 이상 가차 없이 벤다.

사실, 귀검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자체가 모욕이다.

귀검은 천하 최강자 중 한 명이다. 혈천방주나 천살단주와 싸워도 전혀 밀리지 않는다.

그런 사람에게 상대도 안 되는 자들을 죽이라고 말한 것이니.

하지만 이령에서는 귀검도 강자에 속하지 않는다.

이령 혈마 모두가 귀검과 비등하거나 뛰어나다.

비록 혈기를 사용해서 싸우는 것이지만, 검을 들고 마주쳐서 이길 수 있으면 무공인 것이다.

귀검은 참 묘한 위치에 있다.

무공으로 말하면 이령에서는 가장 약하다고 볼 수 있다.

귀무살보다도 약하다. 하지만 그가 살검을 들면 그에게 죽지 않을 혈마도 몇 명 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혈마가 귀검에게 죽는다.

그만큼 지옥유부공은 혈마의 상극이다.

“치우촌(稚羽村)으로 갈 거지?”

“그렇습니다.”

“거긴 나하고 등매가 맡을게. 귀검은 다른 일을 해줘.”

귀검의 눈빛이 번뜩였다.

하나를 말하면 열을 알아듣는 사람이다.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는 치우촌을 맡으라고 본인 입으로 말해놓고, 정작 떠나려고 하니 다른 일을 맡긴다.

더욱이 옆에 있는 등여산은 잔잔한 웃음만 짓고 있다.

‘뭐지?’

어떤 일을 맡기려는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무슨 일을 하면 되겠습니까?”

귀검이 차분히 물었다.

“판수 뒤를 밟아줘.”

“판수 말입니까? 판수가 왜?”

“판수가 사람에게 혈기를 사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야.”

“그 애들은 다 마찬가지죠. 뭐가 염려스러우신 것인지?”

귀검이 되물었다.

이령에 와서 혈마가 된 사람이 네 명이다. 판수, 여괴, 길성, 착심……

그들은 이번 살행이 혈기를 사용하는 첫 살인이 된다.

하지만 살인을 해보지 않을 것도 아니고…… 그쪽 방면이라면 이골이 난 자들이니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내가 보고 싶은 게 있는데, 솔직히 검은 나보다 귀검이 훨씬 낫잖아. 나야 반칙을 써서 그렇지, 순수한 무공으로만 치면 귀검 상대가 안 되지.”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귀검은 침착했다.

“귀무살 네 명. 아직 생기로 살상을 해보지 않아서인지는 몰라도 살상에 대한 거부감이 굉장히 강해.”

“그 애들이요?”

귀검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귀무살은 기본적으로 동료 아흔아홉 명을 죽이고 시작한다. 백 명을 죽여야 귀무살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그런 자들이 살상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고?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 하지 말라고 핀잔을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말하는 사람이 호발귀다. 그들에게 정말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고 봐야 한다.

“궁충도 생기를 얻자마자 살상에 이용했어. 하지만 귀무살 네 명을 그렇지 않거든. 내가 일부러 혈기를 자극하지 않았다면 아직도 혈기를 느끼지 못하고 있을 거야. 생기만 느끼면서 좋아했을 텐데, 그 시간을 너무 빨리 뺏었나?”

호발귀가 쓴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생기에 대한 이해도 깊어지니 반대로 살상에 대한 거부감은 강해질 수밖에. 그중에서도 가장 심하게 거부감을 드러내는 사람이 판수야.”

“그렇습니까? 몰랐습니다.”

귀검이 침중하게 말했다.

호발귀는 그들 네 명의 혈기도 건드렸다. 사령천공 같은 공부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혈마로 만들어야만 했다.

혈마가 되려면 적어도 반년 이상 걸릴 사람들인데, 혈기 투사로 단시일 내에 혈기를 촉발한 것이다.

지금은 저들도 다른 사람과 똑같은 혈마가 되었다.

피나 주검을 보면 혈기가 저절로 드러난다.

혈기가 일어난 상태에서 생기를 느끼면 동료고 뭐고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강력한 혈기를 일으키면서.

기본적으로 혈마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 수가 없다.

사람들과 어울려 살면 곧바로 생기를 감지한다. 생기를 죽이고 싶어한다.

혈마가 되면 동료도 몰라본다.

호발귀가 등여산이나 홀리, 해자수를 죽이겠다고 괴소를 내지르며 쫓아다녔으니 말해서 무엇하나.

호발귀가 혈기를 완전히 제거해서 순수하고 청정한 생기로 돌려놨기에 같이 어울려 산다.

그러지 않았다면 이령에서도 벌써 서로를 죽이는 비극이 일어났을 것이다.

“판수를 쫓아가서 제가 무엇을 하면 되겠습니까?”

귀검이 물었다.

“판수의 검. 판수의 검이 얼마나 깨끗한지 봐줘”

“판수의 검이요? 그놈의 검은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 깨끗한 편이 아닙니다.”

귀검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세상에는 참 말들이 이상해. 같은 말인데도 의미가 전혀 다른 말들이 있어.”

“네?”

“방금 그 깨끗하다는 말도 그래. 귀검의 깨끗함과 판수의 깨끗함은 의미가 달라.”

“그렇습니까?”

귀검은 검술 최강자다. 검리(劍理)라면 환히 꿰뚫고 있다. 그런데도 호발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했다.

‘검이 깨끗하다’라는 말은 가장 깔끔하게 죽이는 것을 뜻한다.

큰 상처를 내지 않고 죽인다. 죽은 사람을 보고 인상을 찡그리지 않도록 최소한의 상처만 입힌다.

그러기 위해서는 즉시 절명할 수 있는 요처를 베어야 한다.

바늘로 콕 찔러서 죽일 수 있다면 그것처럼 깨끗한 검도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상대를 죽이는데 번잡함이 없어야 한다.

피땀을 흘리면서 한 시진이고 두 시진이고 격전을 벌이는 것은 깨끗한 것이 아니다.

가급적이면 검을 섞는 일도 없이 발검과 동시에 베어내면 좋다.

이것이 귀검이 생각하는 깨끗함이다.

그러면 판수의 깨끗함은 무엇인가? 판수는 깨끗함을 논할 정도로 검공이 높지 않다.

혈기를 사용해서 아주 강한 살법을 구사하지만, 그것이 검공의 깊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귀검의 의문을 이해한 듯, 호발귀가 말했다.

“판수가 생각하는 깨끗함은 가장 고통 없이 죽이는 거야. 귀검의 깨끗함과는 조금 다르지?”

“그겁니까?”

귀검이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고 검을 쓰는 것도 깨끗한 검에 속한다. 귀검이 생각하는 깨끗함과는 거리가 멀지만, 무공 차이가 압도적으로 벌어졌을 때는 가능하다.

지금 같은 경우에는 쓸 수 있다.

호발귀가 말했다.

“판수가 어떤 식으로 검을 쓰는지, 사람을 어떻게 죽이는지 좀 봐줘. 만약 판수의 검이 거칠면 볼 것이 없고, 예술이다 싶을 정도로 아름다우면 깊게 지켜봐.”

“예술? 아름다운 검법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판수는 아주 잔인한 살법을 펼칠 거야. 그런데 이 잔인한 검에도 양면성이 있다는 거지. 결과만 보면 잔인하지만, 정작 살법을 쓰는 순간에는 아름다울 수도 있어. 정말 아름답다. 멋지다. 그런 검법을 쓰는지 봐주고.”

“네.”

호발귀가 말한 대로 잔인한 검과 아름다운 검은 한 끗 차이다.

정확하게 심장을 찌르면 대체로 아름다운 검이 된다.

찌르는 속도와 각도가 정확할 수밖에 없다. 반항할 틈을 주지 않으니 빠름에서도 몇 수 앞선다.

저항하지 못하니 상처도 크지 않다. 검이 좁고 깊게 들어간다.

찰나에 아름다운 검초가 펼쳐진다.

잔인한 검은 무엇인가가 어긋날 때 일어난다.

검이 느리면 상대도 피할 것이다. 심장을 가격했어도 정확하게 찌르지 못한다.

저항하면서 맞은 검이라 당연히 상처 부위는 넓고 크다. 피도 철철 흐른다.

간발의 차이로 아름다운 검과 잔인한 검이 갈린다.

판수는 대체로 잔인한 검을 쓴다. 하지만 혈천방 무인들의 무공이 워낙 약하니 아름다운 검을 쓸지도 모르겠다.

“판수가 그런 검법을 쓰면, 혈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봐줘.”

“혈마가 됩니까?”

“혈마는 안 되겠지. 여괴가 구혼음소를 읊을 테니. 판수의 검이 난폭하면 틀림없이 혈기가 치솟을 거야. 그건 무시하고. 살초가 아름다웠을 때, 그때 어떻게 변하는지 봐달라고. 혈기에 변화가 없는지, 난폭한 검을 쓸 때와 마찬가지인지.”

“알겠습니다. 그것만 살펴보면 됩니까?”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말했던 그거?”

등여산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응.”

“이번에 판수님이 그 검을 쓸 거 같아?”

“그럴 거 같아서.”

“그럼 둘 중에 하나겠네? 혈기가 빨리 치솟거나 아니면 혈기가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가서 보지 그랬어.”

“아까 말했잖아. 검초는 나보다도 귀검이 훨씬 잘 봐.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 살필 거야.”

“그럼 그쪽은 잊고, 우리도 가. 귀검이 맡았던 곳까지 처리하려면 빨리 움직여야 해.”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방은 조용하다. 벌써 살겁이 일어나고 있는 마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비명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이 밤, 많은 사람이 죽는다.

* * *

“크으윽!”

판수가 신음을 흘렸다.

생기를 느끼면 당장 소름이 돋기 시작한다.

마음속에 살심까지 있으면 소름이 곧장 가시로 변한다. 그리고 몸에서 빠져나가려고 발버둥 친다.

전신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느낌이다.

이 고통을 빨리 끝내기 위해서는 몸에서 일어난 가시를 털어내야 한다. 가시들이 가고자 할 때 놓아주면 된다.

그러면 생기가 소멸할 것이다.

판수가 생각하는 죽음을 끌어내려면 어쩔 수 없이 이런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괜찮겠어?”

여괴가 물어왔다.

“아직은…… 괜찮아.”

판수가 이마에서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등여산처럼 감정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면 얼마나 좋을까. 해자수처럼 철벽이 세워지면……

적어도 몸이 찢어지는 고통은 느끼지 않지 않나.

쒜에에엑!

판수가 신형을 쏘아냈다. 득달같이 침상으로 달려들었고, 잠자는 사내의 머리를 단숨에 잘라냈다.

단두(斷頭)!

잔인한 살법이다.

쒜에에엑!

이어지는 검이 옆에서 잠자던 아낙까지 베었다. 역시 단두다.

몸에서 잘린 머리는 여전히 베개를 베고 있다.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는지, 눈도 감겨 있다.

콸콸콸! 콸콸!

잘린 목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매우 잔인한 죽음이다.

어떤 심성을 가진 자이기에 힘없는 농부를 이처럼 잔인하게 죽일까?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참 많은데, 꼭 이런 식으로 죽여야 하나.

시신을 본 사람이라면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정확한 단두는 고통을 최소화한다.

사람 머리가 얼마나 진길 질긴 줄 아나? 검을 제대로 쓰지 못하면 일 검에 단두가 되지 않는다.

검이 힘줄에 걸리기도 하고, 뼈에 부딪히기도 한다.

일격에 단두 했다는 것은 그만큼 칼을 깨끗하게 썼다는 것이다.

목을 베는 순간은 찰나다. 찰나 간에 일어난 고통도 아무 생각 없이 당한다.

몸은 벼락 맞은 듯 부르르 떨지만, 정작 죽는 사람은 그런 고통도 알지 못한다.

고통은 의식이 느끼는 것이다. 몸에서 일어난 고통을 의식이 감지할 때, 통증이 고통으로 변한다.

의식이 감지하기도 전에 단두를 하면 정작 본인에게는 가장 편안한 죽음이 된다.

단두는 가장 편안하게 죽이는 방법이다.

물론 단두가 가장 지독한 살인 방법이 될 수도 있다.

검이 조금이라도 비틀어지면 당장 처절한 비명이 쏟아질 것이다.

검을 어설피 맞았으니 몸을 이리저리 사정없이 비틀 것이다.

목에서 쏟아진 피가 방안을 적시고도 남는다.

세상에서 가장 처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

판수는 이런 식으로 마을에 있는 모든 혈천방 무인들에게 전력을 다하겠는 것이다.

혈마는 그럴 필요가 없는데, 그러려고 한다.

“큭큭큭!”

판수가 실소를 흘렸다.

자신은 가장 깨끗한 죽음을 선물했다고 했지만, 잘린 부위에서 피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뿜어진다.

그것도 시신이 둘이다. 금방 침상 전체를 피로 물들였다.

판수가 피에 반응했다.

“판수, 너무 일러. 참아. 뒤는 염려하지 마. 내가 반드시 너를 막아줄 테니까. 안심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해.”

여괴가 판수의 어깨를 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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