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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69화 (469/500)

第九十四章 외도가족(外逃家族) (4)

- 밖으로 도망간 가족

“혈천방입니다.”

궁충이 말했다.

이령이 포위되었다.

홀리와 해자수가 이령을 벗어나지 않았다면 주변 마을을 수색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두 사람이 살며시 빠져나가자 일이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수색해 보았는데…… 어느 틈엔가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어느 정도냐?”

귀검이 차분하게 물었다.

귀무살은 혈천방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

혈천방의 조직 구조라든가 규모 또 혈천방도의 무공까지 낱낱이 알고 있다.

귀무살은 혈천방 최고 무인이다.

자신들이 누군가를 추격하고자 할 때 어떤 식으로 추격할 것이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서로 유기적인 연락은 어떤 식으로 취하는지 세부사항까지 안다.

“가접(嫁接)입니다.”

궁충이 답했다.

가접이라는 말은 혈천방 무인들의 은어다.

말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시집가서 사귄다‘가 된다. 접붙이기라는 말이다. 접목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마을 형태는 그대로 두고 안에 있는 사람만 바꿔치기할 때, 혈천방은 가접이라는 말을 쓴다.

주로 적을 은밀히 포위할 때 주로 쓰는 방법이다.

“주변 마을 전부 말입니까?”

길성이 물었다.

가접을 할 때는 원래 주민은 은밀히 죽여서 매장한다.

주변 마을을 가접했다는 것은 그들을 모두 죽였다는 말이다. 인근 마을이 모조리 도륙당했다.

“뭘 새삼스럽게 물어. 예상했던 일이잖아.”

판수가 말했다.

“풋! 우습네. 우리가 가접을 보고 인상을 찌푸릴 날이 오다니.”

여괴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귀무살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사람 목숨을 태연히 죽였다.

임무와 전혀 상관이 없는 자들이라도 눈앞에 있으면 부러진 가지를 치우듯이 잘라냈다.

혈천방에 있을 때, 가접은 너무 당연했다.

하지만 지금은 애꿎은 사람이 살해당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생기를 쓴다는 것은 살아있는 목숨을 생각하면서 산다는 말과도 같다.

살아있다는 것, 숨 쉰다는 것, 심장이 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안다.

그래서 살해당하는 사람들의 고통을 안다.

귀무살은 예전의 잔학무도한 귀무살이 아니었다.

혈마가 되면 더욱 잔인해야 하는데, 오히려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이 생겼다.

“이놈들은 어떻게 발전을 모르네. 우리가 등 돌렸으면 옛날 방식은 좀 바꿔야지. 아직도 그대로 쓰면 어떡해.”

길성이 화제를 돌렸다.

“그러게 말이야. 우릴 너무 얕보는 거 아니야?”

판수가 길성의 말을 받았다.

“제 생각을 말씀드립니다. 주변 마을이 바꿔치기 됐다는 것은 이미 모든 길목이 차단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된 이상, 일거에 쓸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합니다.”

귀검이 호발귀를 쳐다보며 정중하게 말했다.

“쓸어버릴 필요까지 있을까? 저들 피해서 빠져나갈 수 있잖아? 굳이 충돌할 필요까지는.”

호발귀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언제까지 쫓고 쫓기는 일을 반복하지 않을 바에야 정면 승부가 낫겠다는 말씀입니다.”

“정면 승부……”

“네. 혈마는 일당백입니다. 하지 못할 게 없습니다. 굳이 피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입니다.”

“음!”

호발귀는 낮게 침음을 흘렸다.

귀검이 혈천방과의 전면전을 조언했다.

타당한 말이다. 혈천방이 거대 방파이지만 혈마 아홉 명이면 능히 싸울 수 있다.

예전, 호발귀는 단신으로 혈천방을 초토화시켰다. 혈천방 본방으로 들어가서 팔당 무인 팔백여 명과 싸웠고, 그들을 거의 전멸하다시피 도륙했다.

그런 혈마가 아홉 명이나 있다.

이 세력을 누가 감당하나. 아홉 명이 일거에 들이치면 만 명을 쓸어버릴 수가 있다.

혈마는 이미 무인을 초월했다.

혈마 한 명, 한 명이 하나의 방파에 버금간다.

혈마 아홉 명이면 아홉 개의 방파가 힘을 합친 무림 연합이 된다.

이 정도면 능히 혈천방과 겨룰 만하다.

귀검의 말이 맞는다. 굳이 피할 필요가 없다. 저쪽에서 승부를 걸어온다면 마주 쳐가면 된다.

오히려 저들이 혈마를 피해야지, 왜 혈마가 피하나.

모두 귀검의 생각에 동의했다.

지금은 공격할 때다. 혈천방에 혈마의 무서움을 각인시켜 줄 때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른다더니.

그때, 등여산이 조용조용히 말했다.

“지금 호발귀가 염려하는 것은 피예요.”

“피?”

도천패가 얼핏 이해되지 않는다는 듯 되물었다.

“귀검님? 혈천방도가 얼마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귀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귀검은 이미 등여산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그래서 대답 대신 묵직한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궁충은 이해하지 못했다.

“전국에 펴져 있는 혈천방도를 모두 모으면 이십 만이 넘을 겁니다. 혈천방의 손이 닿지 않은 곳이 없으니까. 하지만 저희라면 충분히 싸울 수 있다고 봅니다.”

궁충이 자신 있게 말했다.

“궁충님.”

“네.”

“이십만 명의 피. 이십만 명이 피를 흘리면……”

등여산은 더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뒷말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다.

피가 강이 되어서 흐른다. 시신이 산처럼 쌓인다.

시산혈해(屍山血海), 단순히 과장된 말이 아니다. 이십만 명의 시신을 쌓아 올리면 능이 태산이 되고도 남는다. 그들이 흘린 피를 콸콸 내가 되어서 흐를 것이다.

그 피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무림을 피로 적신다. 이것이 바로 이백 년 전, 혈마가 했던 일이다. 그 일을 또다시 반복해야 하나.

“음.”

궁충이 비로소 호발귀의 우려를 이해했다.

혈천방과 전면전을 벌이기는 쉽다. 싸워서 일어날 결과가 두려운 것이다.

“그렇다고 싸우지 않을 수도 없잖아.”

당홍이 말했다.

호발귀 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일단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까, 여기서는 전격적으로 치고 나갑시다. 다른 방법이 없잖아. 이인 일조로. 한 명이 싸우면 한 명은 보조. 이건 반드시 지켜야 하고.”

“훗! 놈들한테는 과한 대접인데요.”

궁충이 웃으면서 말했다.

마을 하나라고 해봤자 고작 이십 명에서 삼십 명 정도 모여있을 것이다.

포위에 동원되는 무인들은 혈천방 내에서도 비교적 하수에 속한다.

귀무살만 움직여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하물며 혈마가 움직인다. 혈마 한 명이면 주변 마을 정도는 하룻밤 새에 싹 쓸어버릴 수 있다.

그런 혈마가 두 명이 한 조가 되어서 한 개 마을을 습격한다.

그야말로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을 쓰는 격이다.

하수 이십여 명을 죽이는데 귀무령 귀검이 직접 나서서 지옥유부검을 펼치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호발귀가 이런 조처를 취한 것은…… 혈마의 수련 정도가 기대에 못 미쳐서다.

혈마는 호발귀가 원하는 만큼 수련하지 못했다.

지금은 산을 떠날 때가 아니다. 이제 겨우 지옥유부검의 첫 일격을 피하는 정도다.

이 정도만 수련하는 데는 반년 이상이 소요되었다.

이런 수련은 궁극적인 수련이 될 수가 없다. 궁극적인 타개책이 될 수가 없다.

첫수는 피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다음에 이어지는 이수, 삼수는 피하지 못한다.

혈천방주나 천살단주는 최강자다.

그들은 혈마의 움직임을 보는 순간 즉각 이상한 점을 눈치챈다. 그 정도로 강한 자들이다.

혈마가 되는 것을 보고 암약혼기를 일으켰는데, 의외로 혈마가 반격해 온다? 암습이 통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할까? 당황할까? 아니다. 바로 대응책을 강구해낸다.

혈마는 생기가 사라진 후에 즉각 공격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안다.

하지만 이다경, 삼다경쯤 기다렸다가 공격한다면 어떨까? 당할 수밖에 없다.

아직 그 부분에 대한 수련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반년 넘게 수련하는데도 진척이 없다.

싸움이 벌인 후에는 혈기를 완전히 걷어내는 것만이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처음 상태로 복원시키는 것이다.

이 정도는 지금도 할 수 있다. 그러니 혈마도 마음껏 싸울 수 있다.

물론 생기를 사용하는 데 익숙해지면 혈기가 차오르는 속도도 빨라진다. 처음처럼 사흘이고 나흘이고 계속해서 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가장 마지막에는 생기를 쓰자마자 혈기가 충천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그 전에 혈마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찾아야지 되는데…… 아직 찾아내지 못했다.

호발귀만이 굳건히 조견, 심등, 명안을 붙들고 있다.

이것을 붙들어야만 정상적인 상태가 된다.

정상적인 상태가 되면 생기를 사용하는 것이 더는 저주가 아니다. 축복이다. 세상에서 가장 맑고 강력한 힘을 얻는다. 눈을 뜨면 온 세상이 환하다.

호발귀가 먼저 이런 상태에 들었기 때문에 이제 더는 혈마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지금 당장은 안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그 상태로 진입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때까지 이인 일조로 움직인다.

혈기가 충천해서 혈마가 될 것 같으면 즉시 진압의 구혼음소를 읊조린다.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구혼음소다.

판수와 여괴가 같이 움직인다. 길성과 착심이 한 조를 이룬다.

도천패와 당홍이 같이 움직이고, 등여산과 홀리가 한 짝을 이룬다. 마지막으로 해자수와 궁충이 한 조다.

서로들 모두 짝을 맞춰놨다.

그런데 여기서 변수가 생겼다. 해자수와 홀리가 떨어져 나갔다.

해자수는 본인이 원해서 홀리의 구혼음소를 함께 익혔다. 홀리의 뒤를 받쳐줄 수 있다.

하지만 궁충과 등여산은 서로에 대한 구혼음소를 알지 못한다.

“저는 어떻게 할까요?”

궁충이 물었다.

“여기는 싸움이 빨리 끝날 테니까…… 혼자 움직여도 괜찮겠지. 싸움을 빨리 끝내고 빨리 모이는 쪽으로 가닥을 잡자고.”

“주군께서는 뒤에 오십시오.”

귀검이 말했다.

“왜? 내가 제일 강하지 않나?”

호발귀가 농담조로 말했다.

“주군이 직접 움직인 예는 없습니다. 수하들을 쓸 때는 쓰셔야 합니다. 마을을 정리하는 데는 반 시진이면 끝날 겁니다. 여기서 반 시진 정도 쉬시다가 하산해 주십시오.”

귀검이 강경하게 말했다.

“그럼 나랑 같이 가. 내가 싸우는 거 지켜봐 줘. 내 곁에 홀리가 없잖아. 옆에서 구혼음소로 나를 지켜줘.”

등여산이 활짝 웃으면서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를 쳐다보는 눈빛이 아주 맑다. 이때만큼은 책사가 아니다.

호발귀와 함께 하는 것이 마냥 좋은 여자다. 그것이 싸움이 될지라도 좋다.

“좋겠네”

당홍이 웃으면서 말했다.

“네. 좋아요.”

등여산도 당홍을 쳐다보며 활짝 웃었다.

“얘네들 어젯밤에 무슨 꿈을 꿨으려나. 다른 건 몰라도 죽는 꿈은 아니겠지?”

여괴가 말했다.

“너무 약해. 이거 너무 싱겁게 끝나는 거 아니야?”

“장난칠 생각하지 마. 가급적 빨리 끝내줘.”

여괴가 말했다.

이번 싸움에서는 판수가 움직이기로 했다. 여괴는 지켜본다.

생기를 쓰지 않고 지켜보다가 판수의 혈기가 충천하면 즉시 구혼음소를 읊조린다.

혈기가 충천하는 것은 어떻게 아나? 단박에 알아낸다.

혈마는 같은 혈마의 혈기에 동조한다. 싸움을 하는 혈마처럼 직접 혈기가 충천하는 것은 아니지만, 혈기가 강성해지는 느낌은 시시각각으로 알아챈다.

“아니, 나는 빨리 끝낼 생각이 없는데?”

“너!”

여괴가 화난 얼굴로 판수를 쳐다봤다.

“그렇게 인상 쓸 필요 없어. 빨리 끝낸다는 것이 고통 없이 보낸다는 말은 아니잖아? 고통 없이, 가장 편안하게. 이것이 내가 이번에 살수야.”

“후후! 그게 가능해?”

여괴가 웃으면서 물었다.

혈마가 되면 몸이 저절로 움직인다. 무조건 밖으로 터져나간다. 본인 자신도 제어할 수 없다는 느낌이 된다.

그래서 두렵다. 누구를 죽이게 될지 몰라서.

가장 빠르게 죽이는 것은 혈마의 본분이다. 고통 없이, 편안하게 죽인다는 것은 혈마의 살상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

판수가 말했다.

“가장 빨리 죽이는 건 누구나 할 수 있지, 하지만 죽는 줄도 모르게 죽는 것, 가장 편안하게 죽이는 것,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해보려고. 그걸. 하하! 내가 놀고 있는 줄 알았지 내 나름대로는 많이 연구했다고.”

“괜히 쓸데없는 일을 하려고 하네. 그냥 죽이고 끝내.”

여괴가 못마땅한 듯 말했다.

판수는 생기를 감지할 때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을 느낀다.

수련을 하면서 이런 느낌은 더욱 세분화되었다.

처음에는 전신에 소름이 돋는다. 생기를 느끼면 저절로 소름이 일어난다.

평상시에는 이 상태에서 생기를 짓누른다.

더는 소름이 돋지 못하게 만든다.

싸움에 임하면 소름이 기승을 부린다. 오돌토돌 일어난 소름이 가시처럼 곤두선다.

그리고 점점 자라서 바늘이 된다.

고슴도치처럼 변하면서 그 가시가 육신을 찢으면서 튀어 나간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판수가 감지한 생기는 고통을 수반한다.

여괴는 그런 점을 알기 때문에 빨리 끝내라고 말한 것이다.

“해보고. 연구한 게 있으니 해봐야지. 편하게 죽일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해야 하지 않겠어?”

판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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