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三章 혈기파동(血氣波動) (4)
혈기는 별것이 아니다.
혈기가 무엇인지 몰랐을 때는 한없이 신비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헛헛한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다. ‘겨우 이거야?’하고 말할 수도 있다.
혈기는 진기의 확장 개념이다. 혈기와 진기가 전혀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인간은 이미 진기를 사용할 수 있다.
널리 보편화하여서 많은 사람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줄 안다.
단전 속에 있는 힘을 끌어내어 사용한다.
진기를 운용한다는 것은 이미 몸속에 있는 경맥을 볼 줄 안다는 것이다.
세부적인 요소까지, 피의 흐름까지 샅샅이 훑어볼 수 있다는 뜻이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 혈기다.
단전에 축적된 기운만 운용하는 것이 진기라면, 혈기는 자신의 몸 밖에 있는 우주의 기운까지 끌어다가 진기처럼 운영한다.
무한한 힘을 진기처럼 사용한다.
그런데 여기서 부작용이 생긴다.
진기는 자신의 몸 안에 있는 힘을 끌어내어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리가 없다.
원래 자신이 지니고 있던 힘을 쓰는데, 무슨 무리가 있을 수 있나. 전혀 무리가 없다.
더 강한 힘을 내기 위해서는 힘을 더 많이 비축하면 된다.
근육을 단련하고, 진기를 수련한다.
부단히 신체와 단전을 연마한다.
이러면 체력과 진기가 강해지고 더 강한 힘으로 병기를 쳐낼 수 있다.
이것을 못 하겠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혈기는 수련이라는 개념이 없다.
단전 진기와 드넓고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힘, 우주의 기운이 하나로 연결된다.
연결? 그렇다. 연결이다.
이것과 저것이 연결되는 데는 수련이 필요 없다. 서로 연결될 수 있도록 길만 트면 된다. 그러면 우주의 무한한 힘을 진기처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이 길은 막혀 있지 않다.
모든 사람에게 환히 열려있고 누구라도, 지금 당장이라도 상상할 수 없는 힘을 쓸 수 있다.
다만 연결 통로가 매우 협소해서 찾기가 힘들다.
우연히 이 길을 찾은 사람들이 있다.
세간에서는 보통 ‘기적’이라는 말로 특별히 취급하는데, 어쩌다가 우연히 무한한 힘과 교류하는 길을 찾은 것이다.
아무 수련도 하지 않은 범인이 진기를 사용한 것보다 더 강한 힘을 폭출하는 경우, 달려오는 마차를 한 손으로 멈춰 세울 때.
떨어지는 바위보다 더 빠른 속도로 뛰어가서 위험에 빠진 아이를 낚아챌 때……
이 외에도 온갖 기괴하고 신비로운 일들이 인간 세상에서 기적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진다.
단전 진기와 우주의 기운이 만나는 순간이다.
진기를 운영하는 무인들은 범인들에게 말하곤 한다.
당신도 단전이 있다. 당신도 수련만 하면 진기를 운용할 수 있다.
당신도 경맥을 볼 수 있다. 하지 않아서 모를 뿐이다. 일단 해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혈기에게도 같은 말을 할 수가 있다.
당신도 우주의 기운과 접할 수 있다. 드넓게 펼쳐진 이 무한한 힘을 사용할 수가 있다.
접촉하는 길을 모를 뿐이다. 이 우주의 기운과 접하면 무한한 힘이 밀려 들어온다.
여기에서 부작용, 환각이 일어난다.
인간의 몸이 우주의 기운을 감당하지 못한다. 너무 거센 기운이 밀려 들어와서 한순간 혼란에 빠진다.
호발귀에게는 푸른빛이 일렁거리는 것으로 보인다.
등여산은 감정이 변화한다. 기쁘고 즐거운 기분이 강하게 분류된다.
홀리는 두 발이 땅에 붙는 듯한 느낌이 든다.
이런 모든 이상 반응은 거대한 힘이 밀려오면서 일어나는 환각 작용들이다.
나쁘지는 않다. 이러한 작용들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
혈기라는 것, 별 것 아니지 않나.
이렇게 인간의 생기와 우주의 기운을 서로 교류시키면서 쓰기만 하면 되는데…… 꼭 탈이 생긴다.
이런 순수한 교류에 좋지 않은 작용을 가미시킨다.
분노, 화(火)다.
보통 사람들에게도 화는 좋지가 않다. 하물며 우주의 기운과 교류하면서 화를 내면 어쩌겠나.
그 결과가 혈마로 나타난 것이다.
생기는 물과 같다. 고요하고 잔잔하다.
물을 불길을 만나면 끓는다. 아궁이에 불을 넣으면 당연히 물이 끓는다.
물이 생기, 아궁이의 불길이 화다.
보통 물이라면 끓으면서 수증기를 피워내지만, 생기는 끓으면서 거품을 일으킨다.
뿌연 거품이 수면을 뒤엎는다. 혈기다.
생기에서 혈기로 변하는 과정이다.
물은 불길을 빼면 끓는 작용을 멈춘다. 열기가 사라지면 다시 차가운 상태로 돌아온다.
생기는 일단 끓기 시작하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되지 않는다.
밑에서 불길을 빼내도, 끓게 하는 힘이 사라져도 계속해서 부글부글 끓는다.
혈기가 충천해서 혈마가 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한다.
그러면 혈마가 되지 않는 방법은 뭘까? 간단하다. 이 부글부글 끓는 작용을 소멸시키면 된다.
엄밀히 말하면 생기가 끓어도 좋은데, 거품이 일어나면 안 된다.
맑은 수면이 거품으로 뒤덮이는 순간부터 혈마로 변한다.
아궁이에 불길이 들어왔을 때 물이 끓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나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방법은 거품이 생기기 전에 회피하는 것이다.
불이 들어오고 생기가 끓어도 거품이 생기지 않으면 괜찮다.
거품만 생기지 않으면 끓던 생기도 다시 원상태로 복원된다. 불길만 빠지면 차가운 생기로 돌아온다.
그러면 생기가 펄펄 끓더라도 거품만 일어나지 않게 하면 된다는 거잖나. 맞다.
그렇게만 하면 된다. 거품이 생기기 전에 불길만 빼내면 된다.
이것은 지금까지 혈마들이 자연스럽게 해왔던 방법이다.
모든 혈마는 혈마가 되기 전에 혈기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 순간, 바로 전장에서 몸을 빼내면 된다.
아궁이에서 불길을 빼내는 것이다.
거품이 생기기 전에 본인이 스스로 자각하고 전장에서 탈출하면 혈마가 되지 않는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모두 본능적으로 이 방법을 써왔다. 불길을 빼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지.
두 번째 방법은 수면 위로 가득 덮인 거품을 제거하면 된다.
이것이 호발귀가 혈마를 맑은 정신으로 되돌린 방법이다.
호발귀는 수면 위로 끓어오른 거품을 혈기로 쳐냈다. 또는 자신이 흡수했다.
그러면 맑은 수면이 나타나고, 혈마는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거품이 생길 때마다 계속 걷어낸다. 불길은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
반드시 싸움이 일어났을 때만 혈기가 충천하는 게 아니다.
생기를 간직한 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혈기로 변하는 것도 아니다.
생기가 혈기로 변할 때는 ‘불’이라는 촉매가 필요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인데도 혈마로 변한다.
대부분 이런 과정을 거치고 있다. 해자수, 도천패 등등 생기를 아는 모두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혈마로 변했다. 싸움이 일어나지 않았는데도.
불이 없는 데도 거품이 일어날 수 있나? 생기가 끓을 수 있나? 없다. 자신은 불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도 모르는 불길이 댕겨진 상태였다.
무공을 수련하면서 살심을 떠올리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상대를 이기겠다는 투쟁심, 목표를 부수고 말겠다는 파괴심도 불길을 댕기는 역할을 한다.
반드시 적이 나타나야만 분노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무공을 수련하는 중에 무공에 대해서 혹은 자기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일으키는 분노도 포함된다.
그런 점들이 생기를 혈기로 변화시킨다.
다시 말하면 생기를 알았더라도 스님처럼 면벽한 채 무념무상의 상태로 지내면 혈마가 되지 않는다.
거품이 끓어오르면 즉시 걷어낸다.
두 번째 방법이다.
마지막 방법이 있다.
물이 끓기 전에 어떤 상태였는지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다.
끓기 전의 차가운 온도, 그 온도를 기억한다.
아궁이에 불이 들어오고 물이 끓을 때도 차가운 온도를 기억하고 머릿속에서 떠나보내지 않는다.
물이 끓고 거품이 생긴다. 하지만 머릿속은 여전히 차가운 온도를 기억한다.
아궁이에서 불이 빠진다. 하지만 이미 끓어오른 생기는 여전히 뜨겁다. 계속 거품을 만들어낸다.
수면에 거품이 있어서 끓는 작용을 멈추지 않는다. 여전히 혈마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도 차가운 온도를 기억하고 유지한다.
이것이 조견이요, 심등이다.
차가운 온도를 기억하고 있는 한, 거품이 생겨도 혈마로 변하지 않는다. 외면에서 보면 영락없이 혈마이지만, 내면은 맑은 정신을 유지하게 된다.
혈기를 알게 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호발귀가 아는 단계까지 오면 혈기도 무섭지 않게 된다. 더는 두렵지 않다.
호발귀는 혈기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았다.
조견이 사라질까 봐, 심등이 꺼질까 봐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조심은 해야 한다.
조견은 지켜보는 것이다. 지켜본다는 작용이 있어야 한다. 심등은 불을 밝히는 것이다.
불빛을 비추고 있어야 한다. 지켜보는 눈길은 잃어버릴 수 있고, 환한 불빛은 꺼트릴 수가 있다.
생기의 차가운 온도를 기억한다는 말도 같은 말이다. 기억을 잃어버리면 끝난다.
보지 못하거나, 밝히지 못하거나, 기억하지 못하는 순간이 오면 혈마에게 잠식당한다. 그리고 두 번 다시는 원래 상태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이제 생기와 혈기의 차이를 알았으니 물 위로 생긴 거품을 스스로 없애는 방법도 있지 않을까? 있다.
그 방법은 무엇인가? 아주 간단하다. 어렵지 않다.
부글부글 끓어오른 거품을 덜어내면 된다.
거품이 생기면 즉시 알아채고 걷어내어서 던져버리면 된다.
거품은 물이 변해서 생긴 것이다. 끓는다는 작용이 사라지면 거품도 다시 물이 된다.
거품이 다시 생기로 변한다. 이 세상에 마음껏 버려도 전혀 나쁜 작용을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거품을 악기라고 생각했는데 악기가 아니다. 생기가 변한 것뿐이다.
현재, 호발귀는 거품을 거둬낼 수가 있다.
예전에는 거둬내지 못했다. 단지 묽게 희석하는 작용만 했다.
심등을 밝히기 전에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의 충돌을 이용해서 거품을 희석한 것이 좋은 사례다.
등여산, 홀리, 당홍을 수련시킬 때는 거품을 빨아들였다.
자신의 혈기와 그녀들의 혈기를 접촉시키면 그녀들의 혈기가 빨려 들어왔다.
강한 거품이 약한 거품을 끌어당긴다.
그녀들의 거품이 자신의 거품으로 옮겨온다. 그리고 그녀들은 맑은 정신으로 돌아온다.
호발귀는 차가운 온도를 기억하고 있어서 괜찮다. 그녀들의 거품을 흡수한 만큼 거품의 양이 많아졌지만 끓는 온도는 일정하게 유지되고 있다.
호발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단지 거품만 더 많아졌을 뿐이다.
그렇게 아홉 명의 거품을 흡수하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거품이 스스로 떨어져 나갔다.
몸에 흡수된 거품은 일정한 한계가 있다.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양을 초과한 거품은 스스로 떨어져 나간다.
호발귀는 그제야 거품을 덜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후부터는 거품을 흡수하지 않았다. 도천패부터 그렇게 했던 것 같은데……
거품이 일어나면 즉시 혈기격타를 사용하여 허공에 날려버렸다.
그러면 도천패는 손쉽게 맑은 정신으로 돌아왔다.
혈마로 만드는 방법도 알아냈다.
혈기투사를 해서 생기를 인위적으로 끓게 만든다.
그러면 거품이 생긴다. 지금까지 경험으로 보면 혈기투사를 네 배 정도 강하게 던지면 혈마로 변했다.
혈기격타로 거품을 덜어내는 것은 순식간이다.
호발귀는 자신이 알아낸 사실들을 모두에게 모두와 공유했다.
모두의 얼굴에 환한 빛이 떠올랐다. 희망이다.
혈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호발귀도 혈기에 휘감겨 있지 않다. 자신의 혈기도 거둬내서 맑은 정신을 유지한다. 옛날처럼 혈마 상태로 지낼 필요가 없다.
이령 혈마는 모두 정상이다.
다만 다른 사람들은 아직 차가운 온도를 기억하지 못할 뿐이다.
조견, 심등을 밝히지 못했다.
요즘도 호발귀는 매일 저녁 혈기 투사를 한다.
저녁을 먹은 후, 모두 한자리에 모인다.
호발귀는 모두를 살핀다. 혈기투사로 일어난 거품이 있으면 걷어낸다.
모두 생기가 왜 끓어오르는지 알고 있으니 스스로 조심한다.
전에는 혈마가 될까 봐 무공을 사용하는 것조차 꺼렸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혈마가 되어가는 이유를 알았지 않은가. 화를 섞지 않아야 한다.
차분하게, 정심하게.
무공 수련은 거침없이, 그러나 스스로 분노가 섞이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물론 호발귀가 옆에 있을 때는 이런 조심도 할 필요가 없다.
무공을 마음껏 사용해도 가뿐히 걷어낼 수가 있다.
일차로 본인 스스로 조심하고, 두 번째로 호발귀가 완전히 걷어내 준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다.
다만 호발귀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본인들 스스로 거품이라는 것을 찾아내야 한다.
우선 거품을 봐야만 덜어내든 희석하든 할 텐데, 보는 것조차 어렵다.
거품을 볼 수만 있다면 어디서 어떤 싸움을 하더라도 안심할 수가 있을 텐데.
조견, 심등, 차가운 물의 온도…… 어떤 표현도 정확하지 않다.
호발귀가 말하는 것은 특정한 상태를 찾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은…… 아직은 호발귀 외에 누구도 거품을 보지 못했다. 스스로 거품을 덜어내지 못한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혈기가 무엇인지, 왜 혈마로 변하는지, 어떻게 정상으로 돌아오는지 명확하게 개념이 정리되고 있다.
희망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