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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62화 (462/500)

第九十三章 혈기파동(血氣波動) (2)

혈기가 농익는다는 것, 인위적으로 혈마를 만들지 않고 기다리며 혈마가 되도록 차분히 유도한 것……

그런 기다림의 진가가 지금 이곳에서 확인되었다.

혈기에 영성 같은 것은 없다. 혈기는 생각하지 않는 존재다. 있는 그대로를 드러내 주기만 한다.

혈기에서 일어나는 모든 감정은 인위적이다.

해자수에 비하면 등여산이나 홀리의 혈기에는 인위적인 힘이 매우 많이 가미되어 있다.

본인의 의지, 무인의 의지가 혈기 속에 녹아있다.

판단이 옳았다.

숙성된 혈기와 숙성되지 않고 인위적으로 끌어낸 혈기는 차이가 크게 난다.

농익은 혈기는 생기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본인의 의지를 밀어내고 본능을 끌어내며 그 본능이 호발귀에게 위기를 느끼고 방어에만 치중하게 만든다.

’위험을 느낀다? 그러면 위험을 느끼지 못하게……‘

츄웃!

호발귀는 강맹한 역천금령공을 거뒀다.

해자수가 역천금령공에 겁을 먹었다면 보다 음유하고 부드러운 공부를 끌어낸다.

해자수가 공격할 수 있게끔.

파앗!

이령귀화가 피어났다. 순간,

“킥킥킥! 킥킥!”

해자수의 괴소가 매우 날카롭게 변했다.

해자수는 이령귀화를 만만하게 본다.

위험 대신에 공격 본능을 일으켰다.

‘이건 괜찮다는 건가?’

역천금령공은 겉으로 드러나는 힘이 크다. 이령귀화는 안에 숨겨진 힘이 크다. 두 가지 모두 한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온 공부다. 우열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도 해자수는 이령귀화에 자신감이 붙은 듯하다.

‘깨부수고 싶다면 깨부숴!’

역천금령공이 남자라면 이령귀화는 여자다.

해자수가 판단한 호발귀의 모습은 가녀린 여인의 모습일 수도 있다.

쒜에에엑! 파파파팟!

권각이 공격 일변도로 변했다.

조금 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수비는 일절 생각하지 않고 오직 공격만 한다.

“이미 혈기에 휘말렸어.”

그토록 마지막 순간까지 이성을 놓지 말라고 부탁했는데도 불구하고 해자수는 이성을 놓아버렸다.

사실, 무리한 부탁이었다.

인간의 의지로 이성을 붙잡을 수 있다면 혈마라는 말은 탄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의지로 정신을 차리고 싶다고 해서 차려질 수 있는 게 아니다.

혈기는 물질이다. 약물이다.

미약에 취하면 정신을 잃는 것처럼, 칼에 맞으면 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기운이 실제로 몸에 작용한다. 정신적인 작용이 아니다.

피에 반응하고, 뇌에 작용한다.

쉬리리리릭!

호발귀는 수도로 마영심도 십칠 식을 펼쳤다.

혈마의 자극을 강하게 끌어내려면 격렬한 공격이 필요하다. 그래서 역천금령공을 끌어냈던 것인데……

해자수가 이령귀화에만 반응한다면 진기가 아니라 초식으로 주의를 끌어내야 한다.

파파파팟! 파파파팟!

십칠 식 도법이 현란하게 펼쳐졌다. 손날이 칼로 변해서 예리하게 해자수를 베어갔다.

“킥킥킥킥!”

해자수가 자신 있게 마주쳐왔다.

해자수 입장에서는 눈앞에 불쑥 솟구친 철벽만 제거하면 된다.

제거 방법은 혈기가 일러준다. 머리를 장악하고, 몸을 마음대로 끌어낸다.

해자수는 아무것도 모른 체, 인식하지 못한 채 손발만 허우적거리면 된다. 그러면 어느새 철벽이 말끔하게 치워져 있다. 주변이 초토화되어 있다.

‘절정!’

호발귀는 해자수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이런 방법은 세 여인을 수련시킬 때와는 완전히 다르다. 세 여인에게는 무식하게 반복 수련을 시켰다.

몸이 인식하고, 그다음에 뇌가 인식한다.

해자수에게는 몸과 뇌를 동시에 수련시킨다. 몸도 반응하면서 뇌도 같이 움직인다.

호발귀가 무엇을 하는지,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알게 만든다. 해자수가 역천금령공과 이령귀화를 구분할 수 있으니 상당한 기대를 걸어도 좋을 듯한데.

파파파팡! 파앗!

마영심도 십칠 식을 격렬하게 쏟아낸 후, 귀신처럼 몸을 숨겼다. 혈기를 완전히 감췄다.

호발귀가 사라졌다!

“킥!”

해자수가 급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해자수의 눈길은 호발귀의 몸도 쓸어갔다.

사방을 살펴보는데 호발귀가 보이지 않을 리 없다. 호발귀는 정확하게 해자수의 등 뒤에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해자수는 호발귀를 보지 못했다. 눈먼 장님처럼 호발귀를 봤지만, 무심히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 순간,

‘강하게!’

꾸르르르릉!

해자수의 등 뒤에서 하늘이 터질 때처럼 굉렬한 천둥소리가 울렸다.

퍼엉!

구뢰마권이 정확히 명문혈(命門穴)을 타격했다.

인식해야 한다. 혈기가 사라지기 전에 마영심도가 펼쳐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혈기가 사라진 후에는 구뢰마권이 터졌다는 것을. 이 두 가지 사실만 인식해도 죽지는 않는다.

“케엑!”

해자수가 구뢰마권을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하지만 곧바로 퉁기듯이 일어났다.

파파파팟!

해자수가 혈기를 뿜어낸다. 호발귀를 감지하려고 한다.

혈기를 감추고 두 번째 타격을 가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해자수를 이기려는 싸움이 아니다.

눈앞에서 사람이 사라지면 곧바로 공격이 터진다는 점을 인식시키는 수련이다.

츠으읏!

호발귀는 삼 장쯤 떨어진 곳에서 혈기를 드러냈다.

“킥! 켁켁! 킥킥킥!”

해자수가 호발귀는 감지하고 즉시 돌아섰다. 호발귀를 향해 득달같이 달려들어다.

방금 해자수는 이상한 공격을 처음 접했다.

등여산과 홀리가 접했던 것처럼 이제 이런 공격이 수십 번, 수백 번 터질 것이다.

해자수가 불의의 습격에 즉각 반응할 때까지 계속 시전한다.

파파팡! 파파파팟!

생기도가 터졌다.

아문혈에서 염천혈로 이어지는 선에 생기의 칼날이 틀어박혔다.

순간, 해자수가 무릎을 꿇고 맥없이 쓰러졌다.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혈기는 여전히 살아서 꿈틀거린다.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목 아랫부분이 완전히 마비되었다.

“후우!”

호발귀는 숨을 돌렸다.

세 여인을 수련시키면서 깨달은 것이 있다.

이 수련은 한두 번의 타격으로는 얻어낼 수 없다. 몸이 타격을 알아채야 해서 수십 번에 걸쳐서 때리고 또 때려야 한다.

욕심을 갖고 달려들면 안 되는 수련이다.

호발귀는 딱 열 번을 타격한 후, 생기도를 끌어냈다.

해자수를 쉬게 한다. 또 자신도 쉰다.

해자수의 혈기를 염려하는 만큼, 자신의 혈기도 염려해야 한다.

심등이 언제까지 심지를 밝히고 있을지 알지 못한다. 등잔불은 기름이 다하면 꺼진다. 심등도 언제 기름이 다해서 꺼질지 알 수 없다.

물론 그 후는 혈마 천하다.

“천천히 갑시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니까.”

호발귀가 쓰러져 있는 해자수를 보며 말했다.

한참 젊은 사람이 남아도는 게 시간이라. 한심한 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맞다.

시간을 아주 넉넉히 써야 한다. 혈기를 운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모두 이 수련을 거쳐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이령에서 한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다. 늙어서 죽게 될지라도.

탁!

생기도를 풀었다.

“킥킥킥킥! 킥킥!”

해자수가 용수철처럼 퉁겨 일어났다. 그리고 마치 쓰러져 있을 때부터 노리고 있었다는 듯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또 시작해 볼까?”

호발귀는 이령귀화를 끌어냈다.

해자수는 제정신이 아니다. 해자수였을 때의 기억이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몸은 해자수이지만, 정신은 광인이다. ‘살인에 미친 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호발귀가 원하는 조견은 불가능하다.

조견은 혈기가 정신을 침식하기 이전에서만 찾을 수 있다.

혈마가 된 후에 조견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광인이 하루아침에 성인이 되기보다도 더 어렵다.

해자수에게 조견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멀쩡한 정신으로 다시 돌려놔야 한다. 자신의 혈기로 해자수의 혈기를 밀어내거나, 눌러 앉혀야 한다.

그러면 혈기 투사부터 다시 시작한다.

아주 긴 여정이다. 우선은 혈마를 잡을 수 있는 무공에서 벗어나게 만들고…… 조견까지 이루려면……

후우!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어느 세월에.

쒜에엑! 파팟! 파파팟!

혈천도법과 해자수의 권각이 부딪쳤다. 서로 격렬하게 손발을 주고받았다.

쉣!

한순간, 호발귀가 사라졌다. 혈기를 감췄다.

해자수가 호발귀를 찾기 위해서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자신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못 하는 모습이다.

슈웃! 퍼억!

등 뒤로 돌아간 호발귀가 손을 뻗어냈다.

구뢰마권은 강렬하다. 우렛소리도 크고, 몸에 전하는 충격도 정신을 잃게 만들 정도다.

손에 담은 진기는 미약하지만, 타격은 힘 있게 들어간다.

이 점은 양보하지 못한다. 가벼운 타격은 반응 속도만 느리게 할 뿐이다.

타격이 강할수록 혈기도 즉각 반응한다. 타격이 약하면 경계심도 늦춰진다.

‘최대한, 최대한 반응해봐.’

호발귀는 타격의 사정을 담지 않았다.

“왜 이렇게 길어지지?”

“글쎄? 오늘이 벌써 삼 일째지?”

몇 마디 말로 답답한 마음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지난 사흘 동안 어떠한 혈기도 사용하지 않았다.

호발귀가 없을 때, 혈기가 도지면 곤란해진다. 한 사람이라도 혈기를 쓰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즉각 혈기가 들끓는다. 그래서 모든 무공수련을 중지했다.

아침 운공조차도 걸렀다. 검을 휘두르는 가벼운 동작조차도 삼갔다. 서로 혈기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 빠르게 움직이는 것도 자제했다.

조심, 조심……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절곡만 주시했다.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돌아왔다.

절곡에 해자수가 내지르는 괴소가 울린다.

“웃음소리가 많이 약해졌네.”

맞는 말이다. 처음에는 소름이 쫙쫙 돋을 정도로 음침한 웃음소리였는데, 지금은 미약한 신음처럼 들린다.

“기력이 많이 쇠약해진 거지. 아무래도 나오면 닭이라도 한 마리 삶아줘야겠어.”

당홍이 말했다.

“그렇지? 너무 약해진 거 같아.”

도천패가 말했다.

“닭 잡으려고? 꿈도 꾸지 마. 살생은 혈기에 영향을 미쳐.”

“그건 내가 잡아주지.”

귀검이 말했다.

“아닙니다. 그런 건 저희가.”

판수가 즉시 일어섰다.

“너희는 혈마 아니냐!”

귀검의 말에 판수가 움찔거렸다.

“혈마가 되려면 멀었다지만, 습격에도 대비해야지. 행동 하나까지 조심해라.”

“네. 알겠습니다.”

귀무살이 일제히 대답했다.

호발귀가 없을 때 혈마가 되면 귀검 손에 죽는다.

귀검에게는 혈마를 다시 되돌릴 방도가 없다. 그렇다고 혈마를 세상에 내보낼 수도 없다.

지옥유부검을 쓸 수밖에 없다.

“크크크! 케케케케!”

절곡 안에서 맥 빠진 괴소가 번져 나왔다. 아니, 미약하던 괴소도 뚝 끊겼다.

괴소가 끊겼다는 것은 해자수가 생기도를 맞았다는 뜻이다.

이번 십 합에서도 등 뒤에서 밀어닥친 소리 없는 공격을 알아채지 못했다.

호발귀는 등 뒤에서만 공격하지 않는다.

전면에서 좌우에서 사방에서 공격한다. 어느 방향에서든 공격이 터질 수가 있다.

해자수는 어느 단계까지 수련했을까?

“시간 좀 걸리겠군.”

귀검이 일어서서 마을 밖으로 걸어갔다.

“우리도 떨어져 있는 게 좋겠어.”

판수가 귀검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우리가 귀검님께 죽임을 당할 수는 없잖아?”

“그렇지. 가까이 붙어 있는 것도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멀리 떨어져 있는 것도 한 방편이지.”

“주군께서 절곡에서 나올 동안 무공도 쓰지 말고 혈기도 일으키지 말고.”

귀무살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그들은 원래 마을 외곽에 흙집을 짓고 살아서 만날 일도 없다. 또 굳이 떨어져 있을 필요도 없다.

실제로 도천패와 당홍은 그들보다 훨씬 깊이 진행되었는데도 같이 붙어 있다.

그런데도 떨어져 있자고 말했다. 그만큼 조심한다는 뜻이다.

말뿐만이 아니라 서로 만나지 않을 생각이다. 주군, 호발귀가 나올 때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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