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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61화 (461/500)

第九十三章 혈기파동(血氣波動) (1)

등여산은 귀검을 찾았다.

“경계를 부탁드려요.”

경계는 항상 주의해서 서고 있다.

귀무살 네 명이 동서남북으로 갈라져서 흙집을 지어 거주할 정도로 철저히 경계한다.

그런데도 등여산이 일부러 귀검을 찾아와서 특별히 부탁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어떤 상황인지 압니다.”

귀검이 말했다.

“만약 다섯 분에게 문제가 생기면……”

“그 점도 유의하고 있습니다.”

귀검이 차분하게 말했다.

경계는 궁충까지 귀무살 다섯 명이 전담하고 있다. 신분이라거나 자격 등으로 서열이 밀려서가 아니다.

귀무살은 귀검에게나 수하지 다른 사람들에게는 수하가 아니다.

경계를 그들에게 맡긴 이유는 오직 하나, 혈마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누가 침입하든 그들은 마음껏 싸울 수 있다.

해자수가 싸웠듯이, 등여산과 홀리가 무적으로 군림했듯이……

당분간은 무적 고수로 군림한다.

“그놈들은 아직 혈마가 될 정도는 아니니까, 충분히 싸울 수 있습니다. 싸움이 벌어지면 뒷일은 걱정하지 말고 마음껏 싸우라고 지시해 놨습니다.”

“일부러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등여산이 말끝을 흐렸다.

만약…… 만일 그들이 혈마가 된다면……

귀검에게 죽는다. 귀검이 직접 검을 쓸 생각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등여산은 귀검의 마음을 읽는다.

혹여 누군가가 혈마촌을 급습한다면, 그들은 능히 혈마와 싸울 수 있는 자들일 것이다.

그러니 마음 편하게 싸우지 않으면 오히려 밀릴 가능성이 크다.

마음껏 싸우되, 혈마만 되지 마라.

이것이 귀검의 속마음이다.

“주모, 걱정하지 마십시오. 철저하게 지키겠습니다.”

귀검이 허리 숙여 대답했다.

호발귀는 해자수와 함께 궁충이 찾아낸 계곡으로 걸어갔다.

그들이 머무는 이령에서 대략 반 시진 정도 걸어야 산 밑으로 내려갈 수 있다.

거기서 다시 반 시진은 더 걸어야 비로소 궁충이 찾아낸 계곡이 나온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다. 무려 한 시진이나 떨어져 있다.

“여기가 내가 괴물이 될 곳인가?”

해자수가 절곡을 돌아보았다.

“전에 둘러봤을 때는 그저 호로병 형태로만 봤는데…… 내가 괴물이 될 곳이라고 생각하니 느낌이 완전히 다르네. 내가 죽을 수도 있는 곳이잖아?”

해자수가 중얼거렸다.

“엄살 그만 부려요. 혈마 정도 되는 것 가지고 누가 죽습니까? 혈마가 한두 번 되어 본 것도 아닌데.”

호발귀가 툭! 핀잔을 주었다.

절곡은 사방이 완전히 막혀 있다. 나가는 입구가 좁지는 않고 넉넉한 편이다.

하지만 이미 등여산이 절진을 펼쳐 놨으니 절벽 위로 기어 올라가지도 못한다.

절벽 위에도 진형이 펼쳐져 있다.

호발귀와 해자수는 등여산이 밖에서 꺼내주지 않는 한, 절곡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까 요점은 하나지?”

“네.”

“혈기가 일어날 건데, 어떤 상태로 변하더라도 정신만 잃지 않으면 된다.”

“네.”

“말이야 간단하지. 그게 어디 쉽나.”

해자수가 어림도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한 사람이 할 수 있으면 열 사람도 할 수 있고, 열 사람이 할 수 있으면 백 사람도 할 수 있는 겁니다. 내가 해냈는데 누군들 못하겠어요.”

“그 말을 다르게 말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어떻게 됩니까?”

“나 잘 났소.”

“네?”

“킥킥! 그게 너니까 해낸 거지. 아무나 해낼 수 있나. 너니까, 너니까 해낸 거야.”

“제가 뭐 특별합니까?”

“특별하지. 혈마록을 해독해 냈잖아.”

“……”

호발귀는 대답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닫았다.

“거봐, 대답 못 하겠지? 혈마록을 해독한 사람이 어디 세상에 많은 줄 알아? 책사만 해도 그래. 책사, 오죽 똑똑해? 그런데도 혈마록을 해독하지 못하잖아.”

“운이 좋아서.”

“시답잖은 소리는 그만하고. 근데 거참 희한하지? 너같이 무식한 사람이 어떻게 혈마록을 해독했지?”

“무, 무식이요? 제가요?”

“그럼 책사보다 똑똑해?”

“아니, 제가 특별히 못 하지도 않은데……”

“너 책 많이 읽었어?”

“어떻게 똑똑하다는 기준이 책을 많이 읽은 게 됩니까?”

“내 기준은 그래.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한 거고, 책을 안 읽었으면 무식한 거야.”

“그러면 해자수님은 엄청 무식하시겠네?”

“킥킥! 나 무시하지 말라고. 이래 봬도 책 많이 읽은 사람이야. 킥킥! 무식하다는 티 안 내려고 얼마나 많이 읽었는지 알아? 수천 권은 될걸?”

“아! 그래요? 몰랐습니다.”

“네가 모르는 게 어디 한둘이야? 자, 말해봐. 혈기가 일어날 때 내가 어떻게 하면 정신을 차릴 수 있는지. 무조건 정신 차리라는 말, 말고…… 무슨 방법 같은 게 있을 거 아냐?”

“그게 일정한 게 아니라서……”

“네게 통한 방법이 내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거지? 혈기를 감지하는 방법이 다르니까.”

“그럴 겁니다.”

“제길 하나 마나 한 소리네. 결국은 어떻게 될지 끝까지 가봐야 안다는 거잖아. 경험을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방법은 네 스스로 찾아라. 나도 모른다.”

“그렇죠.”

“알았어. 그럼 해보자고.”

해자수가 땅바닥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해자수가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부터는 호발귀가 움직여야 한다.

해자수를 혈마로 만드는 일도, 그를 다시 인간 세상으로 불러내는 일도 호발귀만 할 수 있다.

스읏! 퉁퉁퉁! 퉁퉁!

혈기 격타가 이루어졌다.

혈기 투사도 함께 펼치고 있지만, 해자수가 느끼는 것은 격타 뿐이다. 호발귀가 투사까지 펼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알지 못한다.

격타를 당하기 전에는 알았지만, 몸이 격타되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텅 비워졌다.

“킥킥! 킥! 킥킥킥!”

해자수가 연신 괴소를 터트렸다.

해자수는 자신이 어떻게 웃는지 안다. 그래서 괴물처럼 웃지 않으려고 애썼다.

하지만 몸속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제어하지는 못했다.

“아! 이놈의 웃음소리…… 이거 어떻게 좀 안 되나?”

해자수가 자신의 웃음소리를 듣고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웃더라도 정감있게 웃고 싶어 한다. 하지만 입에서 흘러나오는 웃음은 여지없이 괴소다.

누가 들어도 섬뜩한 귀신의 웃음소리가 쏟아진다.

터엉! 텅텅! 터엉!

“킥킥! 킥킥킥! 킥킥!”

호발귀는 계속해서 혈기를 쳐냈다.

이제 더는 망설일 필요가 없다. 혈기 투사를 일으킬 필요도 없다.

해자수의 혈기에 자신의 혈기가 들끓는다. 심등을 밝히지 않았다면 자신도 휘말렸을 것이다.

해자수의 혈기에서 섬뜩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사실, 호발귀도 해자수 혈기가 농익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 것을 아는 방법은 없다.

다만 호발귀가 판단하기에 이 정도면 충분히 숙성되었다고 생각된 것뿐이다.

파아아앗!

해자수의 몸에서 푸른 빛이 일렁거린다.

- 꺼트려!

호발귀의 혈기도 일어난다. 해자수가 드러내는 푸른 빛을 꺼트리라고 유혹한다.

해자수의 혈기는 아주 짙어졌다.

이제 그는 본인 스스로 혈기를 일으키지 않더라도 저절로 혈마가 될 순간이 왔다.

‘시작해 볼까?’

츠으으읏!

호발귀는 역천금령공을 일으켰다. 화염처럼 일어나는 진기를 두 손에 모았다.

꾸르르릉!

손에서 진기가 일어났다. 아니, 혈기가 손에 실렸다. 금방이라도 해자수를 때려죽일 듯이 으르렁거린다.

- 네가 모습을 드러내는구나. 하지만 내가 지켜보고 있어. 넌 내 허락 없이는 움직이지 못해.

호발귀는 자신의 혈기를 지켜봤다. 그리고 명령했다.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혈기가 잔뜩 성질나도록 두 손에 역천금령공을 실은 채로.

슈우웃!

어느 한순간, 해자수를 단숨에 때려죽일 듯이 달려들었다.

“켁켁켁! 켁켁켁켁!”

해자수가 깜짝 놀라서 괴소를 내질렀다.

호발귀가 선보인 역천금령공은 정말 사납다. 혈마가 되어버린 해자수조차도 깜짝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죽음의 손이 머리를 찍어오지 않는가!

호발귀가 해자수를 죽일 리 있나? 없다. 하지만 해자수는 위기를 느꼈다.

그만큼 호발귀가 내지른 주먹에는 소름이 오싹 돋을 만한 혈기가 담겨 있었다.

퍼펑! 펑!

순식간에 해자수 주위에 철벽이 세워졌다.

역천금령공에 즉시 반응했다. 입에서는 연신 살소가 터져 나왔고, 두 손에서는 강렬한 경풍이 일어났다.

해자수는 역천금령공 같은 절공을 수련하지 않았다.

강호를 떠돌면서 수련한 몇 가지 무공이 전부다. 하지만 지금은 삼류 무공조차도 일류 무공으로 탈바꿈시켜줄 혈기가 있다.

쒸이잇! 쒜에에엑!

수공(手功), 권법(拳法), 지법(指法)이 매서운 살수가 되어서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병기를 휴대하지 않았다. 절곡에 들어갈 때부터 병기는 놓고 갔다.

혹여 무심히 지니고 들어갔다가 정말로 사용할 수도 있어서다.

혈마가 어떤 일을 벌일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지금까지는 호발귀가 등여산과 홀리, 당홍을 수련시켰지만, 해자수까지 수련시킨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절곡에서 해자수를 죽일 수도 있다.

만일에 대비해서 아주 작은 위험까지도 배제했다.

해자수는 철벽을 무너트리기 위해서 검을 휘두를 수가 없다. 대신에 손과 발을 이용해서 공격해 왔다.

쒜에에엑! 꽈앙!

주먹이 바위를 후려쳤다. 발길질이 허공을 가르며 날았다.

호발귀는 훌쩍훌쩍 물러섰다. 하지만 살기는 여전히 강렬하게 쏘아냈다.

- 널 죽이겠다. 반드시 죽인다!

펑펑! 파아앙! 퍼엉!

역천금령공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갔다. 매우 강렬한 혈기가 해자수를 덮쳤다.

“키키! 키키키키키!”

해자수의 괴소도 극성을 향해서 치달렸다.

혈기는 사력을 다해서 몸뚱이를 보호한다.

아생연후살타(我生然後殺他)라는 말은 바둑에만 사용되는 말이 아니다. 모든 싸움에서 진리로 여겨진다.

혈마도 자신부터 보호한다. 자신이 안전해진 후에야 상대방을 공격한다.

지금까지 혈마는 적당한 상대를 만나지 못했다. 자신부터 보호해야 할 만큼 강한 적이 없었기에 무작정 공격부터 전개했다.

방어는 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방어부터 한다.

그렇다! 해자수는 공격하지 않았다. 어지럽게 흩날리는 손발은 모두 방어에 치중해 있다.

호발귀를 겪으면서 바로 위험을 느낀 것이다.

혈기와 혈기가 부딪치자, 당장 우열이 정해졌다.

혈기도 위기를 느낀다. 그래서 철벽을 더욱 강하게 둘러 세웠다. 공격하기 위한 철벽이 아니라 방어용 철벽이다.

철벽이 세워진 곳을 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진 곳이 있으면 바로 수리한다.

지금까지 싸워온 싸움이 아니다. 완전히 새롭게 맞이하는 특별한 싸움이다.

해자수는 호발귀가 공격해 올까 봐 전전긍긍한다. 싸움을 피한다. 혈마가 위축되었다.

호발귀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등여산이나 홀리, 당홍을 수련시킬 때도 이런 일은 없었다. 늘 같은 입장에서 싸웠다.

혈기가 주눅 든다는 사실을 이번에야 알았다. 어느 정도나 움츠러드는지도.

왜 해자수의 혈기만 위축을 느끼나? 왜 우열을 가리나?

혈기는 대자연의 기운이 변한 것인데, 대자연의 기운에도 우열이 나뉘나? 이쪽 하늘의 기운과 저쪽 하늘이 기운이 다른가?

짐작할 수 있는 것은 해자수의 혈기가 영성을 띠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면 해자수가 보인 행동이 설명되지 않는다.

혈기가 싸우지 않고 방어에 급급하다니. 고양이와 마주친 쥐처럼 오돌오돌 떨고 있지 않나.

파팟!

호발귀의 눈가에 이채가 번뜩였다.

해자수에게는 혈광이 번뜩이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호발귀의 이성이 반짝 빛나는 순간이었다.

‘혈기가 발전을?’

믿을 수 없는 일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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