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二章 휴식주처(休息住處) (4)
“귀무령님께는 죄송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것, 모두 다 혈기를 아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궁충이 말했다.
그는 귀무살 중 최초로 혈마가 되었다. 아직 혈마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생기를 쓰고 있다.
그러니 궁충의 의견은 반쪽 의견이다. 가장 좋은 상태만 봤다.
“부대주님, 현재 몸 상태는 어떻습니까?”
여괴가 물었다.
“아직은 별다른 이상 없어. 하지만 곧 혈마가 되겠지. 그래도 난 괜찮다고 생각해. 어차피 너희들 무공으로는 누굴 만나든 죽어. 사마 한 명 감당하지 못하잖아.”
귀검은 궁충이 하는 말을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귀검은 호발귀의 말을 쫓아서 귀무살 전원에게 의견을 물었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줄 생각이다.
절대로 강권하거나 특정한 방향으로 유도하지 않고.
“난 곧 혈마가 되겠지만, 지금 나는…… 무공이 열 배 이상 급증한 것 같아. 이런 기분은…… 사마를 상대하는 건 둘째치고 무인이라면 이런 기분쯤은 느껴도 좋다고 봐.”
궁충이 귀무살을 보며 말했다.
귀검이 차분히 말했다.
“궁충은 강하다. 하지만 혈마가 되면 내 일 초를 받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궁충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은 많다. 실혼인 사마까지도 혈마를 죽일 수 있어. 이 점도 생각하고.”
귀검은 귀무살을 쳐다봤다.
귀무살의 눈가에 갈등이 일렁거렸다.
절정을 느끼는 순간은 짧다. 일 년이고 이 년이고 버틸 수는 있겠지만 혈마가 되는 건 피할 수 없다.
그 짧은 기간 동안 절정고수로 살고자 혈마가 된다? 미친 짓이다.
하루라도 절정고수로 살면 검을 잡은 보람이 있다. 당연히 해야 한다.
선택의 문제다.
“너희 스스로 선택해라.”
귀검이 말했다.
호발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등여산을 쳐다봤다.
이렇게 하는 게 정말 온당한 것인가? 이런 식으로 혈마를 불려도 좋을까?
“어차피 전부 다 같은 운명 공동체가 됐잖아. 귀검님께서는 지옥유부검을 지키시겠다고 하시니까 그건 그런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것이고, 현재 귀무살 무공만으로는 버티지 못하니까…… 우리와 함께할 생각이라면…… 난 괜찮을 것 같아.”
등여산이 말했다.
그러자 호발귀가 귀무살 네 명을 쳐다보며 말했다.
“달콤한 꿀에 취하지 마. 단숨에 무공이 급증한다는 유혹에 흔들릴 수 있는데, 혈기가 폭주하면 알다시피 혈마가 돼. 두 번 다시 평범한 사람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결국은 혈마로 죽게 돼. 최고로 잘 되어봤자 현재 내 상태야.”
“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
길성이 말했다.
“현재까지는?”
“주군께서는 계속 혈기를 연구하실 거 아닙니까. 현재 주군 상태만 해도 괜찮습니다. 주군이 겪고 계신 고통이 어떤 것인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저희가 보기에는 괜찮아 보입니다.”
“내 상태가 괜찮은 거군. 후후!”
호발귀는 쓰게 웃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그의 상태가 정상으로 보일 수도 있다.
같은 혈마 입장에서는 호발귀 정도만 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호발귀 자신은 늘 불안하다.
언제든 심등이 꺼질 수 있다. 혈기를 지켜보는 불꽃이 사그라지면 당장 혈마로 변한다.
이런 불안감을 저들은 모른다.
혈기에 휘둘리지 않고, 혈마 무공을 정상적으로 쓰는 것처럼 보이니까 적극적으로 혈마가 되겠다고 달려드는 것일 수도 있다.
이들의 이런 결단은 자신이 유도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호발귀가 혼잣말하듯 말했다.
“내 몸은 혈마가 휘어잡고 있어. 나는 그 속에서 정신 한 가닥만 유지하고 있는 셈이야. 내 몸이 내 것 같지가 않아. 남의 몸속에 들어앉은 느낌? 이런 상태가 결코 좋은 게 아닌데, 옆에서 보기에는 좋아 보였나 보네.”
“생기를 알게 해주십시오.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여괴가 말했다.
“하루 정도는 더 생각하고……”
“충분히 생각했습니다.”
네 사람의 눈빛은 열망으로 이글거렸다.
그들은 궁충의 모습을 봤다. 다른 사람들의 무공도 봤다. 특히 해자수를 봤다.
생기를 쓰게 되면 얼마나 강해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예전의 해자수라면 귀무살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귀무살과 싸운다고? 어림도 없다. 오히려 귀무살을 만날까 봐 전전긍긍했었는데 이제는 정반대다.
귀무살 열 명이 달려들어도 해자수를 감당하지 못한다.
이런 모습을 봤는데 어떻게 물러설 수 있나.
“부탁드립니다.”
그들이 고개를 숙였다.
“정 그렇다면……”
스읏!
호발귀가 손을 들었다.
타닥! 타닥! 타타닥! 타닥!
생기격타가 이루어졌다.
원래 예전에 사용하던 생기격타는 부드럽게 단전을 쓰다듬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그런 후에 조금씩 강하게 퉁겨준다. 스스로 반발력이 일어나게 만든다.
이번에 세 사람에게 사용한 생기격타는 전혀 달랐다.
우선 생기를 쓰지 않았다. 쓸 수가 없다. 호발귀에게는 멀쩡한 생기가 없다. 그가 가진 것은 혈기다. 그에게 생기가 없다면 말이 안 된다.
그러면 살지 못한다. 하지만 보지 못한다. 오직 혈기만 보고 만질 수 있다.
그러니 튕겨 나가는 것도 혈기다.
자신의 혈기를 투사해서 네 사람의 생기를 격타한다.
이 사람들도 어차피 혈마가 될 것이다. 그러니 불안감은 처음부터 밀어내 버리고 혈기를 쓴다.
퍽퍽퍽! 퍽퍽퍽퍽!
소리 없는 격타가 이루어졌다.
네 사람이 뿜어내던 푸른 빛이 일시에 붉은빛으로 변했다.
“크윽!”
“컥!”
귀무살은 두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했다.
아마도 심장이 쪼그라드는 느낌이 들 것이다. 급격하게 악기가 침습하니 기분도 나빠진다.
몸이 매우 빠르게 썩어들어간다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살이 흐물거리고, 뼈가 흔들린다.
하지만 이런 생기격타, 혈기투사는 혈기를 급격하게 물들인다.
대체로 멀쩡하던 사람이 혈마가 되기까지는 세 단계를 거친다.
첫 번째는 자각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생기라는 존재를 스스로 느껴야 한다.
푸른 빛을 보는 것, 두 발이 땅에 붙는 것, 철벽이 세워지는 것, 기분이 우울해지거나 좋아지는 것……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스스로 찾아내야 한다.
첫 번째 단계만 넘으면 두 번째 단계부터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두 번째 단계는 생기를 사용하는 것이고, 세 번째 단계에서는 생기가 혈기로 물든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단계는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단계도 있다. 혈마가 되는 것.
이것 역시 의식하거나 미리 되려고 노력할 필요가 없다. 때가 되면 혈마가 먼저 찾아온다.
거부할 수도 없고, 죽일 수도 없이 혈마 손에 장악된다.
그러니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한가지인 셈이다.
생기가 어떤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간단한가? 간단하다. 하지만 인간 역사상 자각이라는 산을 넘은 사람이 딱 한 명뿐이었다.
혈마.
현시대에 와서 여러 명이 자각하고 있다.
호발귀가 스스로 자각했고, 다른 사람들은 자각할 수밖에 없는 상태까지 생기가 키워졌다.
귀무살 네 명은 처음부터 혈기로 키운다.
생기를 키워서 자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혈기로 몸을 뒤집어버린다.
호발귀가 다른 혈마에게 하는 작업이 커다란 보석을 붉게 물들이는 일이다. 보석이 클수록 붉게 물들이는 작업에는 시간이 걸린다.
손톱만 한 보석이라면 벌써 물들었을 텐데, 집채만 하니 무척 오래 걸리고 여간해서는 물들지 않는다.
귀무살은 처음부터 붉은 보석으로 만들어 버린다.
작은 보석을 단숨에 붉게 물들인다. 그리고 붉어진 보석을 크게 키운다.
적절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와 같은 작업이다.
생기를 북돋는 작업이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혈기를 투사해서 혈마로 만든다.
호발귀가 쳐낸 혈기투사는 생기라는 존재를 명확하게 느끼게 해준다. 너무 이질적인 존재가 단전 진기를 물들이기 때문에 즉시 깨닫는다.
혈마가 된다면 궁충보다 이들이 먼저 혈마가 된다.
이것 역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지만, 이들이 먼저 혈마가 된다는 점은 확신한다.
“오늘 네 번 격타할 거야. 반 시진마다 한 번씩. 점심 때쯤에는 본인들 스스로 생기를 느끼게 될 텐데, 그 느낌은 각기 다 달라. 본인들 스스로 찾아야지. 그러니 혈기격타를 당하는 동안 부지런히 무공수련을 해. 운공을 해도 좋고. 무공을 수련하다 보면 이상한 느낌이 일어날 텐데, 그 느낌을 쫓아.”
“알겠습니다.”
귀무살이 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들은 악마의 입속으로 던져졌다. 하지만 무공이 강해진다는 달콤한 꿀에 취해서 자신들이 어떤 일을 겪어야 하는지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
호발귀가 나가라고 손짓했다.
퍽! 퍼퍽! 퍽!
정확히 반 시진마다 한 번씩 생기격타가 이루어졌다. 그때마다 귀무살은 심장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했다.
호발귀는 가볍게 손만 흔든다. 한데 귀무살은 전신에서 식은땀을 줄줄 흘리면서 힘들어했다.
극심한 충격을 받은 사람처럼 몸을 바르르 떨기도 했다.
확실히 궁충에게 사용했던 생기격타와는 전혀 다르다.
궁충은 아주 편안하게 생기를 알았다. 저절로 힘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사실, 궁충은 아주 시기적절할 때 생기를 자각했다.
궁충에게는 강하게 생기를 격타할 필요가 없었다.
당시 그는 천살단과 혈천방 무인들을 막기에 급급했다. 부족한 무공으로 거친 승냥이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막강한 적이 눈앞에 있다. 하늘의 힘이라도 빌려서 저들을 밀어내야 한다.
말도 안 되게 강한 자들, 귀무령 귀검을 능가하는 적들이 있지 않나. 어떻게 저들을 밀어내나.
그만큼 다급한 입장이었기 때문에 약간만 생기를 쳐줘도 단박에 변화를 감지했다.
다른 귀무살들은 급하지 않다. 싸움이 일어나고 있지 않다.
그런 만큼 이들의 기반을 철저하게 건드려줘야 한다.
퍽퍽! 퍽! 퍽퍽!
혈기가 귀무살을 두들겼다.
귀무살 네 명은 생기를 알기 전에 지옥 불부터 경험하고 있다.
“됐어. 운공해.”
귀무살에게 자유가 주어졌다.
휘리리링! 퍼어엉!
귀무살이 머무는 흙집에서 격렬한 바람 소리가 일어났다.
그들은 다른 사람이 볼까 봐 밖에서 연공하지 못했다. 초식을 수련하고 싶지만 앉아서 할 수 있는 연공을 택했다. 연공은 집안에서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바람이 분다. 거친 바람이 일어난다. 흙집 밖에서도 바람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꽈앙!
흙벽이 터져 나갔다.
나무로 얽어놓은 지붕도 단숨에 뚫려버렸다. 굵은 나무로 박아놓은 기둥이 유리 조각처럼 깨져서 흩뿌려졌다.
귀무살이 머물던 흙집은 산산이 조각났다.
“아이고! 저놈들……”
해자수가 혀를 끌끌 찼다.
드디어 귀무살 네 명이 생기를 감지하고 무공으로 쓰기 시작했다.
생기를 사용하면 진기를 사용할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든다.
진기라는 것이 사라져 버린다. 단전도 사라진다. 전신 경맥도 사라진다. 단지 이상한 느낌만 일어난다.
해자수는 철벽이 벌떡벌떡 일어나는 느낌을 받았다.
위험 앞에서 철벽이 일어선다.
그 철벽만 깨부수면 된다. 어떻게 부실지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주먹으로 힘껏 내리치기만 한다.
자신이 생각하는 파벽은 주먹으로 치는 것이지만, 실제로 몸은 무지막지한 속도로 적을 친다. 허점을 파고든다.
해자수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을 느낄 필요가 없다.
철벽이 일어나는 곳에는 위험이 있고, 철벽이 없는 곳에는 위험이 없다.
간단하다. 그것에 집중하면 어느새 적이 쓰러져 있다.
저들은 어떤 느낌을 받을까? 틀림없이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것이다.
꽈앙!
나무 기둥이 박살 나면서 흩어졌다.
저들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흙집을 부순다고? 전혀 알지 못한다. 환상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느낌에 집중하고 있을 것이다.
저들은 지금 혈기를 최대한으로 억누르고 있다.
안으로 감추고, 감추고, 감춘다. 단 일 푼…… 일 푼의 힘만으로도 저런 위력을 보이고 있다.
“헤! 이거 지나가는 사람이 없기에 망정이지. 난리 날 뻔했네.”
해자수가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이제 구제해야 할 사람이 네 명이나 더 늘었네?”
홀리도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호발귀는 고개만 끄덕였다.
어차피 다 같은 운명 공동체다. 전부 다……
혈기를 조절하지 못하면……
이곳에 모인 사람 중 어느 한 사람이라도 혈기를 조절하지 못하면……
복우산을 내려가지 못한다.
혈기를 조절하지 못한 상태에서 내려가는 것은 용납하지 못한다.
억지로 내려가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절대로 혼자서는 내려보내지 않는다.
혈마가 되어서 날뛰는 모습은 두 번 다시 보지 않는다.
그러니 이곳에서…… 끝장을 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