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二章 휴식주처(休息住處) (1)
복우산은 면적이 이십팔만구천 평, 거의 삼십만 평에 달하며, 계태령(系秦嶺) 산맥에 속하여, 장강(長江)과 황하(黃河)의 분수령을 이룬다.
주봉(主峯)은 서쪽에서부터 노군산(老君山), 노계령(老界嶺), 계각첨(雞角尖), 백운산(白雲山), 요산(堯山)으로 이어진다.
모두 칠백 장[2,000m]이 넘는 산들이다.
복우산은 명산(名山)이요, 대산(大山)이다.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산으로, 등산객만 하루에 천여 명이 넘는다.
복우산은 침식 지형이라서 다양한 동굴이 형성되어 있다.
폭포와 계곡도 많다. 지하 하천이 발달해 있고, 삼림이 무성하며 야생 동물이 많이 서식한다.
하지만 정작 복우산이 널리 알려진 이유는 노군산에 있다.
노군산은 도교의 창시자인 노자(老子)가 수도하던 산이다.
노군산의 본래 이름은 경실산(景室山)이다.
노자(老子)가 은거하고 수련하였다고 하여, 노자(老子)의 존칭인 노군(老君)이란 명칭을 써서 노군산이 되었다.
그러니 당연히 세상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질 수밖에 없다.
마치 산과 계곡이 조각조각 해체되어서 펼쳐놓은 것처럼 눈감고도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말해줄 사람이 많다.
등산객의 짐을 날라주는 짐꾼과 허약한 향화객을 노새에 태우고 이동하는 마부가 매일 산에 오른다.
약초를 채집하는 약초꾼과 맹수를 잡으려는 엽사가 절곡을 누빈다.
낮이나 밤이나 복우산은 사람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간혹 사람들 눈을 피해서 산으로 숨어든 사람들이 있다. 은둔자들이다.
복우산을 은거지로 삼은 사람도 있다.
그들은 복우산 깊은 곳에 움막을 짓고 거주한다. 하지만 그들의 위치는 모두 파악되고 있다.
산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은둔자들이 어디에 있는지 환히 꿰뚫고 있다.
복우산에서 숨을 곳은 없다.
“오기는 왔는데…… 여기 숨을 만한 곳이 있습니까?”
궁충이 매처럼 눈빛을 번뜩이며 말했다.
궁충은 활에 시위를 건 채 뒤따라 왔다.
화살이 전통에 들어 있어도 누구보다 빨리 화살을 날릴 수 있는데, 아예 화살 한 대를 활에 걸어놓은 채 걸었다.
호발귀는 생기를 감지하면 즉시 퉁겨냈다.
그러면 짐승이든 사람이든 저쪽에서 먼저 위기를 짐작하고 숨거나 피했기에 서로 마주칠 일은 없었다.
그런데도 궁충은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킥킥! 완전히 숨기는 힘들지.”
해자수가 말했다.
“그럼 왜 여기로……?”
궁충의 의문은 모두가 염려하던 바이다.
입을 열어서 말을 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너무 알려진 산은 좋지 않은데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다.
복우산 주봉 노군산은 무당산(武當山)가 더불어서 남북이정(南北二頂)이라 불리는 도교 전진파(全眞派)의 성지이지 않나.
실제로 복우산을 오르는 사람은 명산을 구경하러 등산하는 사람보다 정상에 세워진 태청관(太淸觀)에 들어서 노자의 숨결을 느끼려는 향화객이 훨씬 많다.
복우산에서 숨기는 어려워 보인다.
“등하불명(燈下不明)이라고 하잖아요.”
등여산이 해자수의 말을 이었다.
“등…… 하불명?”
“등잔 밑이 어둡다고, 우리가 복우산에 숨어들 거로 생각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겨우 그런 이유때문에?”
궁충이 어이없어했다.
등하불명이라는 말에도 정도가 있다. 혈천방이나 천살단의 눈을 속이기는 어렵다.
복우산은 너무 환히 드러나 있다. 낯선 자가 머문다면 당장 발각된다.
복우산에 숨자는 말에 얌전히 따라온 것은 혹여 복우산에 해자수만 아는 비밀 계곡이나 동굴이 있을까 해서였다.
그저 위험을 운에 맡길 생각은 없었다.
해자수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겨우가 아니고 매우 중요한 건데?”
“이게 중요하다고요?”
궁충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다른 사람을 쳐다봤다.
귀검도 미간을 찡그리고 있다.
해자수와 등여산의 말에 동의를 못 한다는 표정이다.
기왕 숨을 바에는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곳에 숨는 것이 좋지 않나.
완벽하게 사라질 수 있는데, 왜 위험을 감수하려고 하나.
복우산에도 숨을 곳이 있다. 잘 알려진 산이라고는 하지만 협곡이 꽤 깊기에 잘 찾아보면 사람 발길이 닿지 않은 곳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차라리 조금 더 가서 대별산(大別山)으로 가죠. 거기 가면 저희 은신처가 있어요.”
팔이 긴 원숭이, 길성이 말했다.
“거참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귀무살 은신처로 간다고 쳐. 거기서 얼마나 버틸 건데? 뭘 먹고 살고? 아! 귀무살 은신처니까 한동안 먹고살 것은 준비해 놨을 거야. 그치?”
해자수가 말했다.
“반년은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길성이 자신 있게 말했다.
“반년이라, 좋지. 혈천방이 귀무살 은거지를 모른다는 조건이 붙겠지만, 좋아. 반년을 숨어 있자고. 그다음에는 어디로 갈까? 우리가 반년만 숨어 있으면 될 것 같아? 그거면 돼?”
“……”
길성이 대답하지 못했다. 궁충도 입을 열지 못했다.
혈마가 훈련하는 기간…… 반년이 걸릴지 일 년이 될지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평생 사람 사는 곳에는 가지 못하고 숨어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휴우!”
등여산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는 사람과 섞여서 살 거예요. 일정한 거리를 두고.”
“사람을 피하는 게 아니고?”
당홍도 이해할 수 없어서 되물었다.
“피하죠. 피하면서 섞여 사는 거예요.”
“그럴 수가 있나?”
“그러려고요. 그런 면에서 여기가 딱 좋다고 여겼어요. 해자수님도 그런 생각이셨고.”
등여산이 방긋 웃었다.
화르르륵! 화르르륵!
산에 불이 났다. 야트막한 능선 하나가 시뻘건 화염에 휘감겼다. 하지만 산불은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고 정해진 일정 범위에서만 타올랐다.
산불을 일으키기 전에 미리 벌목을 해두었다.
산불이 복우산을 태우면 큰일이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니 조그만 범위만 태워야 한다.
그리고 쉽게 꺼져야 한다. 반 시진에서 한 시진 정도만 태웠다가 꺼트린다.
그러기 위해서 큰 나무도 잘라두었다.
작은 나무들, 그리고 거칠게 자란 풀들만 불길에 휘감겼다.
화르르르르륵!
불길은 거칠게 산을 휘감았다. 생나무를 태울 때 일어나는 검은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이 정도 불길이면 복우산 인근 마을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방향에서 복우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모두 알게 된다.
“이거 우리가 여기 있다 하고 아예 그냥 까발리고 있네.”
도천패가 말했다.
“그러니까.”
당홍도 고개를 내둘렀다.
기껏 숨어서 지내자고 복우산까지 왔는데, 이렇게 동네방네 소문을 내고 있으니.
“킥킥! 이봐, 이 산불 말이야. 사람들이 이 산불을 보면 뭐라고 할 것 같아?”
해자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걸 질문이라고 하쇼? 분명히 산불이 번질까 봐 전전긍긍하겠지. 산사람에게 산불보다 무서운 게 어디 있소?”
도천패가 타박하듯 말했다.
“내기할래? 사람들이 이 산불을 주시하나, 무시하나.”
“무…… 시?”
“내기하자고.”
“사람들이 이 산불을 무시한다고요? 왜? 어째서요?”
당홍이 물었다.
“킥킥! 우리가 괜히 이 산불을 낸 게 아니거든. 이건 화전민들이 불을 내는 방법이야. 이 불길을 봐. 하늘로 몽실몽실 피어오르고 있지? 바람이 전혀 불지 않는다는 말씀. 이런 날 굴뚝에서 연기 나듯이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면 그냥 산불이 아니라 화전민들이 터를 일구고 있다는 뜻이지.”
“아! 그런가요?”
“킥킥! 이제 좀 안심이 돼?”
“그럼 우린 화전민이 되는 거네요?”
“정답.”
“정말 화전민이 되는 거예요?”
“그렇다니까. 여기다가 씨도 뿌리고, 밭도 일구고, 집도 짓고…… 사는 데까지 살 거야.”
“그러면 사람들이 오갈 텐데……”
“그러니까 숨기 쉬운 거지. 등하불명! 우리는 화전민이니까 모두 그런가 보다 할 거야.”
“너무 뜸 들이지 말고 준비한 것, 나눠주세요.”
등여산이 말했다.
“에이! 좀 더 놀려도 되는데.”
해자수가 아쉬워하며 행낭을 풀었다.
행낭 속에는 언제 준비했는지 허름한 옷들이 십여 벌이나 들어 있었다.
옷은 매우 남루했다. 누가 입었던 흔적도 엿보인다. 하지만 깨끗하게 빨아서 더럽지는 않다.
농민들이 평상시에 입는 평복으로, 오래된 옷일 뿐이다.
“자! 자기 몸에 맞는 거 한 벌씩 골라서 입어. 좋은 거 찾지 말고. 그런 건 없어. 몸에 안 맞으면 옷에 몸을 맞추는 건 기본이야. 품이 안 맞으면 뱃살을 줄이라고.”
해자수가 옷을 늘어놨다.
“이게 뭐야? 이걸 입으라고?”
홀리가 옷을 들춰보며 말했다.
“아씨, 이제부터 우린 화전민이라니까요. 무복은 벗고 이 옷으로 갈아입으세요. 아! 그리고 병기들도 풀어놔. 어디 깊숙한 데 감춰둬. 당분간을 쓸 일 없어. 칼 대신에 톱이나 호미 좀 들고. 아씨도 머리 좀 헝클어트려요. 무슨 화전민이 이렇게 고와. 안 되지. 얼굴에 검댕이 칠 좀 하고.”
해자수가 손에 흙을 묻혀서 홀리의 얼굴에 문질렀다.
“뭐 하는 거야!”
홀리가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빽 질렀다.
“아이구! 귀청 떨어지겠네. 아씨. 우리 이제 화전민이 되는 거라니까요. 하루에 죽 한 끼 먹기 힘든 화전민인데, 아씨처럼 고우면 어떻게 해?”
“내 피부는 충분히 거칠거든. 그런 말은 책사에게나 해. 너무 반지르르하잖아.”
홀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여괴하고 착심, 너희 둘도 빨리 변복한 후에 산 밑에 내려가서 쌀 좀 사와. 당장 오늘부터 먹고 살아야지.”
해자수가 품에서 동전을 꺼내며 말했다.
“쌀요? 쌀은 있는데?”
여자처럼 예뻐서 여장해야 오히려 맞을 것 같은 여괴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모르는 소리 하고 있네. 화전민들은 화전을 만드는 날이면 꼭 인근 마을에서 쌀을 사. 이건 관례야. 얼마나 있을지 모르지만 잘 봐달라는 의미지.”
“그걸 왜 우리가……?”
검을 쓰면 꼭 심장만 노린다는 착심이 말했다.
“그럼? 너희가 안 가면 내가 가리? 이 늙은이가 가서 무거운 쌀을 짊어지고 와야 속이 후련해?”
“그런 말이 아니라……”
착심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귀무살은 변장에 능숙하지 않다. 변장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들은 늘 정면으로 부딪쳤다.
매우 빠르게 급습한 후,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것이 특기다.
착심 같은 경우에는 오직 검만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심장을 찌를지만 고민한다.
그런 사람이 민가에 가서 웃는 낯으로 쌀을 산다는 것은…… 절정 검공을 얻기보다 더 어렵다.
누가 봐도 살인자의 모습이지 화전민은 아니다.
“거참 가서 신고식 좀 하라는데 왜들 이래! 착심! 넌 눈에 힘 좀 풀고. 그래서야 어디 무서워서 살겠어? 눈빛 좀 흐리멍덩하게 풀어놓으라고.”
귀무살은 결코 평범한 민초가 될 수 없다.
평생 긴장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하루 이틀 사이에 느슨해질 리 없다.
평범해지라거나 순둥이처럼 보이라는 말은 불가능한 요구다. 절대로 될 수 없다.
사실, 굳이 순진한 얼굴을 할 필요는 없다.
원래 화전민은 산사람답게 거칠다. 때로는 산적도 된다.
마을에 들린 자를 소리 없이 죽여서 매장해버리는 일도 상당히 일어난다.
오죽하면 화전민이 떠난 후에 앞마당을 파보면 시신이 서너 구씩은 나온다고 하지 않나.
“쌀을 사면 사람들이 어디서 왔냐고 물어볼 거야. 그러면 오인산(五寅山)에서 왔다고 해. 여기서 열흘 거리야. 이름은 들어봤어도 가본 사람은 없을 거야. 킥킥!”
해자수가 웃었다. 그때,
“해자수님.”
등여산이 해자수를 불렀다.
“모든 일은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하거든요. 시작이 절반이라.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는 수고스러우시더라도 해자수님이 직접 다녀오셨으면 해요.”
“엥?”
해자수가 등여산을 쳐다봤다.
“귀무살이 어떻게 하루아침에 화전민이 돼요. 말도 안 되죠. 해자수님은 워낙 능청스러우시니까. 부탁드려요.”
등여산이 방긋 웃었다.
“내, 내가 능청스럽다고? 나 안 능청스러운데? 나 혈마야, 혈마!”
해자수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등여산은 물론이고 여괴와 착심까지 모두 뒤돌아섰다.
오늘 할 일이 많다.
땅을 다지고, 미리 벌목해 놓은 나무로 기둥을 세워서 집을 지어야 한다.
“이런!”
해자수가 어처구니없어서 혀를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