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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55화 (455/500)

第九十一章 소실무종(消失無蹤) [구름같이 사라지다] (5)

호발귀와 귀검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걸었다.

두 사람은 생기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생기의 형체, 움직임, 성질 등에 대해서 두서없이 말했다.

주로 귀검이 질문했고, 호발귀가 대답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었다.

산을 내려오는 내내 깊은 침묵이 이어졌다.

모두 호발귀와 귀검의 이야기에 집중하며 한 마디도 허투루 듣지 않으려고 두 귀를 쫑긋 곤두세웠다.

물론 호발귀가 하는 말은 그들 모두 아는 이야기다.

본인들이 직접 경험했던 것, 혹은 다른 사람이 경험했던 이야기들이다.

귀검이 가장 궁금해하는 점은 생기가 혈기로 오염되는 과정이다.

혈기가 우주의 기운이라면 혈기 같은 마물로 오염될 리 없지 않나.

지극히 크고 위대한 기운이 어떻게 사람을 해치는 사기(邪氣)로 변할 수 있나.

호발귀도 쉽게 말할 수 없는 부분이다.

다만 지금까지 파악한 것은 말해줄 수 있다. 그렇다고 이것이 진실은 아니다.

생기에 관한 한 호발귀도 처음 가보는 낯선 길이다. 옛 문헌에도 없고,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도 없다.

혈마록에 기재되어 있지도 않다.

“생기를 몸 안에서만 쓴다면 문제가 없는데, 몸 밖으로 쓰게 되니 문제지. 가볍게 한두 번 쓰는 것은 상관이 없는데, 우리는 늘 사용하잖아.”

무심히 생기를 쓰는 사람은 종종 있다. 모두가 생기를 쓰는 것은 아니고 일부 몇 사람만 생기를 쓴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고 말한다.

벼랑에서 떨어지는 아이를 멀쩡하게 받아낼 때가 있다.

상식적으로 이런 일은 불가능하다.

벼랑에서 떨어지는 순간, 아이는 이미 커다란 돌덩이가 되어버리고 떨어지는 속도까지 더해져서 받아낼 수 없는 물체가 되어 버린다.

그런데 가뿐히 받아낸다.

항상 있는 일은 아니다. 대부분은 받아낼 엄두도 내지 못하는데, 지극히 일부 사람만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고 달려들어서 받아낸다.

인간은 그런 식으로 생기를 써왔다.

그렇다고 그들이 혈기에 물드는 것은 아니다.

이후에도 지극히 정상적으로 살아간다. 어쩌다가 툭툭 튀어나오는 혈기는 사람에게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진기도 생기다.

몸 안에 들어온 생기를 함부로 버리지 않고 차곡차곡 챙긴다. 운공으로 몸 안 구석구석으로 휘돌린다.

굳이 운공을 하지 않아도 생기는 전신을 휘돌며 피와 살과 뼈를 움직인다.

하지만 운공을 하면 더 효율적으로, 더 정밀하게, 더 강하게 쓸 수 있다.

진기는 몸 안에 깃든 생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간혹, 외부의 기운을 받아들여서 쓰는 무공이 있다.

타인의 진기를 빨아들여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무공, 보검 같은 영물의 기운에 자신을 맡기는 무공 등이 그런 종류다.

하지만 이것 역시 외부의 기운을 내부로 가둔 후에 사용한다는 점에서 진기 운공과 다르지 않다.

혈기를 생기를 있는 그대로 사용할 때 일어난다.

이것이 호발귀가 말해줄 수 있는 전부다.

더는 말해줄 수 없는 이유는 호발귀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호발귀는 생기, 혈기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해주었다.

그는 혈마록에 근거해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서 혈마가 되었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소상하게 말해줄 수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미쳐가는 과정이다.

“거의 다 왔습니다.”

궁충이 말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산밑까지 내려왔다. 혈천방 무인들이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는 곳이다.

“약한 곳을 고르자니까.”

해자수가 지나가는 말처럼 투덜거렸다.

혈천방 무인들이 있다지만 경계는 하지 않는다.

어차피 충돌해야 한다면 전력을 다해서 싸우면 된다. 포위망을 뚫지 못할 염려는 아예 하지 않는다.

그럴 리는 절대 없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호발귀가 함께 하는 한, 혈마 일단은 무적이다.

천살단주나 혈천방주가 나타난다고 해도 상관없다.

또 호발귀가 있는 한, 그들은 나타나지도 않는다.

사마가 다소 걱정되기는 한다.

사마가 투입되면 싸우는 시간이 길어지는데, 그러면 혈마로 변신할 공산이 크다.

혈마는 분명히 약점이 있다.

비록 혈마가 되었을 때 살아남는 법을 훈련받았지만, 그것 자체가 실전에서 어느 정도나 효과를 발휘할지는 알지 못한다. 증명되지 않은 훈련이다.

귀검이 시험했을 때는 분명히 통했다. 그렇다고 천살단주의 암약혼기나 천살단주의 사령청공까지 통할 것이라는 보장은 하지 못한다.

무공은 개별적인 특성을 많이 타니까.

가급적 빨리 탈출하는 것, 이것만 염두에 둔다.

“포위망을 뚫으면 냅다 달려야지? 그런데 어디로 가지? 미리 가는 곳을 정해 놓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해자수가 말했다.

포위망을 뚫으면 따라붙지 못할 속도로 도주한다.

일정 거리를 치달린 후에는 호발귀에게 운명을 맡긴다.

혈기를 일으키면 반드시 혈마로 변한다. 그것을 호발귀가 다스려줘야 한다. 혈마로 변하기 전에.

그때까지 일행 모두가 안전한 장소에 도착해 있어야 한다.

혈마는 상상 이상으로 막강한 힘을 지녔다. 그런데도 혈천방도를 뚫지 않고 정상에만 머물렀다.

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언제 혈마로 변할지 알 수 없고, 혈마가 된 후에 벌어질 일을 감당할 수 없으니 움직일 수 없었던 것이다.

호발귀를 믿는다? 물론 믿는다. 하지만 서너 사람이 동시에 혈마로 진입하면 호발귀도 손을 쓰지 못할 수가 있다.

혈마가 차례차례로 되라는 법은 없으니까. 동시다발적으로 여기저기서 혈마로 변해 날뛰면 호발귀도 어쩌지 못한다.

“어디로 갈지는 조금 있다가 정하죠. 좀 쉬면서. 마침 배도 고프고. 배 안 고파요?”

호발귀가 해자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참 무슨 배짱인지……”

해자수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두 사람, 등여산과 귀검은 매우 편한 표정이었다. 심지어 두 사람은 발걸음 소리조차 숨기지 않았다.

저벅! 저벅! 툭!

무심히 디디는 발걸음에 돌멩이가 채여서 굴러떨어졌다.

혈천방 무인들이 듣기에 충분한 소리다. 느긋하게 누워 있다가도 벌떡 일어설 정도로 소리가 크다.

혈천방도는 어깨를 맞댈 정도로 서로 간의 간격을 좁혀 놓고 있다. 포위망이 뚫리는 것은 막지 못하지만, 뚫리는 즉시 변고를 알아야겠다는 의도다.

저들에게 발각되지 않고 포위망을 벗어날 수는 없다.

“이놈들 이쯤에 있을 것 같은데.”

해자수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말했다.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지?”

“네. 아직은.”

도천패가 대답했다.

혈마는 모두 해자수만큼이나 생기에 민감하다. 그들 모두 주변의 생기를 읽고 있다.

하지만 어느 사람에게도 생기가 감지되지 않는다. 아예 사람이 없는 듯하다.

“거참 사람들 답답하네. 책사가 웃고 있잖아. 귀검이 검에 손도 얹지 않았고. 그러면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거잖아. 내 생각에는 혈천방도와 싸울 일은 없을 것 같은데?”

당홍이 말했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고?”

해자수가 되물었다.

“아까 호발귀가 말했잖아요. 자기는 다른 혈마와 다르다고. 귀검에게 말할 때는 그냥 자기 자랑을 하는가 보다 했는데, 책사가 되묻잖아요. 그래서 아! 뭔가 있구나 했죠.”

“그 뭔가가 뭐냐고?”

“호호호호! 그건 귀검도 말했고, 책사도 말했잖아요. 내 입으로 말하면 심심하다고. 호호호!”

당홍도 무엇인가를 눈치챈 듯했다.

저벅! 저벅! 저벅!

그들은 산 밑자락까지 내려왔다. 그런데도 혈천방도는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네. 내려오기 전에 다시 살펴봤는데, 분명히 여기쯤 포위망이 있었는데. 그새 물러갔나? 그건 아닌 거 같고…… 저놈이 뭔 요술이라도 부렸나?”

해자수가 호발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해자수는 음성조차 낮추지 않았다. 어차피 발각될 일이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염려는 하지 않는다.

그들은 싸움 초반에는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무적 전사다. 후반이 문제이지 초반은 그들 세상이나 마찬가지다.

“자! 여기서 좀 쉴까?”

호발귀가 콸콸 흐르는 계곡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산 위에서 시작된 계곡이 산밑에 이르자 커다란 연못을 형성한 채 흘렀다.

“오늘은 햇볕이 뜨거울 것 같지? 여기 그늘진 곳에서 밥이나 먹고 가자고.”

호발귀가 털썩 앉으며 말했다.

산자락 개울까지 한 시진 만에 내려왔다. 그것도 그들이기에 가능하다.

산을 잘 타는 사람도 두 시진은 걸리는 거리였다.

앞뒤 살피지 않고 길을 따라서 쭉 내려왔다.

이제 곧 산을 벗어난다. 그런데도 혈천방도는 보이지 않는다.

“이왕 걸은 김에 산을 벗어난 다음에 쉬지?”

해자수는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해자수.”

보다 못해서 홀리가 해자수를 불렀다.

“예, 아씨.”

“정말 눈치 없네. 눈치라면 절에 가서도 새우젓을 얻어먹을 사람이 오늘은 왜 이래?”

“예?”

해자수가 정말 알지 못하는 듯 눈을 멀뚱거렸다.

“안심하고 그냥 푹 쉬어. 혈천방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사람이 왜 그래? 뭔가를 할 수 있으면 할 수 있다고 말을 해줘야지. 쓸데없이 괜히 긴장했잖아.”

홀리가 눈꼬리를 상큼 치켜뜨며 호발귀에게 쏘아붙였다.

“말했잖아. 나 혈마라고.”

“그 말이 그 말이야?”

“그 말인데……”

호발귀가 손을 들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홀리가 일부러 호발귀를 피해서 등여산 옆에 앉으며 말했다.

“손 뒀다 뭐해? 네 서방 좀 꼬집어. 얄미워서 죽겠어. 괜히 걱정했잖아.”

홀리가 등여산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거…… 뭘 했다고…… 뭘 했어?”

해자수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홀리 서방, 좀 특별한 혈마잖아요.”

등여산이 홀리를 놀리듯이 말했다.

“계집아, 너 분명히 네 입으로 내 서방이라고 했다. 네 서방은 아니지? 여보세요. 누구신데 제 서방 옆에 앉아 계세요? 좀 비켜주실래요? 불쾌해요.”

그러자 홀리가 오히려 등여산을 놀렸다.

“호호호! 미안. 내가 괜히 꼬투리를 잡혔네. 이따가 꼬집어 줄게. 호호! 이 사람, 우리 중 유일하게 혈기로 생기를 누를 수 있는 혈마예요. 그래서 특별한 혈마라고 한 거고.”

“그건 알지.”

“혈기로 생기를 누를 수 있으면 생기를 밀어낼 수도 있죠. 혈기에 휘둘리는 우리는 못 하지만, 가가는 심등으로 지켜볼 수 있으니까 가능한 거고요.”

“뭐야, 그럼!”

해자수가 비로소 모든 사실을 눈치챘다.

실은 매우 간단한 일이었는데…… 생각하기가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혈기는 죽음을 불러온다. 오직 죽음만 연상시킨다.

혈마는 혈기에 접촉된 모든 생명체를 멸살한다. 그 외에 다른 모습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랬다.

호발귀는 혈마 세상에 또 다른 길을 제시했다.

혈기에 접하고도 죽이지 않을 수 있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했던 것처럼 밀어낼 수 있다.

혈기에 접촉한 자들은 공포심에 질려서 벌벌 떤다.

무심히 산을 거닐다가 호랑이를 만난 격이다. 오금이 저려서 꼼짝하지 못한다.

바위나 나무 뒤에 숨어서 오돌오돌 떨기만 한다. 도주할 생각도, 소리지를 생각도 하지 못한다.

혈천방도가 지금 그런 상태다.

저들은 호발귀가 지나가는 것을 봤다. 하지만 일부러 눈을 감아 버렸다. 자신들 스스로 포위망을 풀고 숨어버렸다.

살겠다는 의지가 강렬한 죽음의 기운과 만나면 이렇게 된다.

“이런 제길! 뭔가를 하면 한다고 말이나 하던가.”

그제야 해자수가 경계심을 풀고 털썩 주저앉았다.

하지만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해자수는 혈마이니 저간의 사정을 말 한마디로 알아챌 수 있었다.

혈마가 되지 못한 귀무살은 여전히 무슨 일인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넌 어떻게 안 거야?”

해자수가 귀검을 쳐다보며 말했다.

사실, 호발귀가 벌이는 일을 가장 빨리 눈치챈 사람은 귀검이다.

래서 ‘영명한 주군’ 어쩌고저쩌고했던 것이다. 그다음에 눈치챈 사람이 등여산이고.

“주군께서 특별한 혈마라고 친절히 설명했는데, 알아듣지 못한 거지. 설명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어.”

“하! 맞는 말이기는 한데, 대단히 기분이 나쁘네. 귀검은 사람 비위를 은근히 건드려.”

해자수가 투덜거렸다.

해자수는 혈마고 귀검은 혈마가 아니다. 생기를 쓰지 못한다. 그런데도 해자수가 함부로 하지 못한다.

그만큼 검을 깊이 파고들었다. 집중력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뛰어나다. 말 한마디, 토씨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다.

귀검이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당분간 사람들 눈을 피할 수 있겠네. 힘들이지 않아서 좋고…… 그럼 어디로 갈까?”

해자수가 편하게 말했다.

“혈기가 충분히 농익을 때까지 기다릴 수 있는 곳. 그리고 모두 혈기를 지켜볼 수 있을 정도까지 수련할 수 있는 곳. 어쩌면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를 곳. 그럴 만한 곳이 있을까?”

호발귀가 말했다.

- 평생 살아야 할지도 모를 곳

마지막 말이 묵직하게 심장에 얹혔다.

“그런 건 진작 나한테 말해야지. 내가 이 중원은 손바닥 안에 놓고 있잖아. 하남(河南)에 가면 복우산(伏牛山)이라고 있어. 소가 넙죽 엎드려 있다고 해서 복우산이라고 하는데…… 이 산이 또 굉장히 깊어. 안으로 들어가면 캄캄한 험지야. 평생 살 곳인지는 몰라도 앞에 두 개는 해결될 것 같은데.”

해자수가 말했다.

“복우산. 좋네요. 거기로 가요.”

등여산도 맞장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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