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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54화 (454/500)

第九十一章 소실무종(消失無蹤) [구름같이 사라지다] (4)

- 일일전(一日前).

호발귀는 등여산과 홀리를 훈련 시켰다.

혈마 상태에 빠지면 여전히 이성을 잃고 미쳐서 날뛰게 된다. 사정없이 생명을 끊는 혈귀가 된다.

하지만 그런 상태에서도 지옥유부공이나 암약혼기 같은 공부에 당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그런 수법을 찾아내는 것은 아니다. 방금까지 존재했던 생기가 사라진 순간, 기습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눈치챈다. 그리고 도주한다.

이것이 훈련으로 얻어낸 결과다.

혈기를 완전히 통제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으나 지금으로서는 이 정도만 해도 최선이다.

호발귀는 당홍을 수련시켰다.

도천패와 해자수가 당홍을 위해서 기꺼이 순서를 양보했다.

“먼저 하나 뒤에 하나 며칠 차이인데 뭘.”

그 생각은 상당히 잘못되었다.

당홍의 수련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혈마에 너무 깊이 침몰하여서 쉽게 반응하지 못했다.

그녀는 가장 오랫동안 혈마 상태에 있었던 등여산보다도 더 깊이 들어갔다.

‘왜 이런?’

호발귀는 당황했다.

등여산과 홀리를 훈련한 후, 어려운 고비는 모두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까다로운 일은 뒤에 남아있었다.

왜 당홍이 이토록 깊은 혈마 상태에 침잠되는 것일까?

이유는 찾아냈다. 꼬박 이틀 동안 때리고, 살피고, 생기도를 썼다. 그때마다 고민을 거듭했다.

훈련이 끝날 때마다 다급해하는 도천패의 음성을 들어야만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만성과 급성의 차이다.

당홍은 등여산이나 홀리만큼 혈기에 젖어 있던 순간이 길지 않았다.

그녀는 도천패와 함께 일행 중 가장 늦게 혈기를 접했다. 궁충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가장 늦게 접했으면서도 가장 활기차게 사용했다.

다른 사람들은 혈기를 두려워하면서 조심스럽게 사용했는데, 두 사람은 적극적으로 썼다.

그러다 보니 혈기가 너무 급하게 일어났다.

술을 모르던 사람이 어쩌다가 술을 접하고는 하루아침에 술꾼으로 변하듯이, 혈기의 단맛에 너무 급하게 빨려 들어갔다.

적극적으로 쌍학을 수련하면서.

쉽게 깊이 들어가고, 빠져나오는 시간은 길고 더디다.

호발귀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 속에서 또 한 가지 사실을 알아냈다. 혈마를 훈련하기 위해서는 혈기가 농익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점이다.

억지로 당홍까지는 훈련을 마쳤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도천패와 해자수의 훈련은 잠시 뒤로 미뤘다.

두 사람을 위해서 뒤로 미룬 것도 있고 호발귀 자신을 위한 점도 있다.

호발귀는 연속해서 혈기를 사용했다.

본인 자신도 혈기를 통제하지 못하는 처지에서, 언제 조견이 무너질지, 언제 심등이 꺼질지 모른 상태에서 무리하게 혈기를 쳐내고 있다.

잠시 쉴 필요가 있다.

“우리 자리를 옮겨.”

등여산이 말했다.

“에이. 자리를 옮기자면 저들과 싸워야 하는데, 우린 지금 손만 쓰면 바로 혈마가 되어버리거든. 그러니 이렇게 귀무살에게 신세 지고 있는 것 아냐.”

해자수가 산을 둘러싸고 있는 혈천방도를 보며 말했다.

“싸워야 한다면 싸워야죠. 우리가 전력으로 돌파하면 저 사람들은 쫓아오지 못해요.”

“잊었나 보네. 혈천방주, 천살단주, 살단주. 그 사람들, 우릴 두려워하지 않아.”

“그 사람들은 가가가 막아줘.”

등여산이 호발귀를 쳐다봤다.

등여산은 이미 장소를 옮겨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듯하다. 혈천방주와 싸우는 것까지 고려했다.

모두 손만 쓰면 바로 혈마가 되어버린다는 사실을 알면서.

“걱정되는 거라도 있어?”

호발귀가 등여산을 쳐다보며 물었다.

“여기 있으면 당할 것 같아서.”

“그 사람들은 내가 막을 수 있습니다.”

궁충이 자신 있게 활을 들어 보였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두 가지야. 하나는 혈천방의 사마, 또 하나는 천살단주.”

“에이, 난 또 뭐라고.”

해자수가 대수롭지 않게 받아넘겼다.

혈천방의 사마는 염려하지 않는다. 그놈들…… 강하다. 하지만 호발귀가 막아낼 수 있다.

천살단주는 더 염려하지 않는다. 그는 해자수도 막아낼 수 있다. 혈마 상태에 빠지면 호발귀가 도와주면 된다.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하지만 등여산은 사뭇 진지했다.

“해자수님, 단주님과 싸워보니 어때요?”

“천살단주? 놀랐지. 내 혈기 무공을 근 한 시진이나 받아넘겼으니까. 솔직히 인간이 아닌 것 같긴 했어. 하지만 또다시 싸운다면 내가 이길걸?”

천살단주가 전개하는 암약혼기는 네 사람이나 피할 수 있다.

호발귀는 말할 것도 없고, 등여산과 홀리, 당홍이 피해낸다. 그렇다면 백전백승이다.

등여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뇨. 이번에 다시 싸우면 해자수님이 질 거예요. 혈마가 되기 전에 잡힐 거예요.”

“뭐, 뭣!”

해자수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단주님의 무공은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에요.”

“그게 전부가 아니라고? 그럼 나랑 싸웠을 때, 날 봐준 거라고?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게 봐준 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고요. 단주님은 최선을 다한 게 맞아요. 누가 혈마를 상대로 싸우면서 봐줄 수 있겠어요. 그때는 최선을 다한 게 그것이고, 지금은 달라졌다는 거죠.”

“그동안 뭐 보약이라도 먹나?”

“비슷해요. 제 생각이 맞는다면 단주님의 무공은 날이 갈수록 강해져요. 해자수님과 큰 싸움을 벌였으니까, 그것을 바탕으로 더 강해졌을 거예요. 경험치가 쌓였으니까.”

“지금 그게 무슨……?”

해자수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물론 큰 싸움을 하고 나면 실력이 괄목할 정도로 는다.

모든 무인이 같은 경험을 한다. 단지 큰 싸움을 하는 것만으로도 십 년 연공에 버금가는 무공을 얻는다.

하지만 천살단주 정도 되면 그런 말이 통하지 않는다. 단주는 이미 싸움을 경험할 만큼 했다.

큰 싸움을 통해서 무공이 증진될 단계는 넘어섰다.

등여산이 하는 말은 무림에 갓 출도한 풋내기들에게나 해당하는 말이다.

등여산이 그런 점을 모르고 이런 말을 할 리는 없다. 뭔가 아는 게 있으니까 말하는 것이다.

천살단주 정도 된다면 이미 무공이 한계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미 정상을 밟은 사람이지 않다.

그런 사람이 날이 갈수록 무공이 증진된다는 말도 믿기 어렵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생각나는 게 있어서 그래요.”

등여산이 말하기 난감한 듯 미간을 찡그렸다.

“단주 정도 되는 사람도 무공이 느나? 그것도 책사 말을 빌리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한다는 건데.”

도천패도 등여산의 말이 믿기 어려운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휴우! 정확하지 않은 거라서…… 제가 책사로 있을 때 약전에 자주 가곤 했어요. 약전주님께 부탁한 게 많아서. 그러다가 주워들은 말이 있거든요.”

단주의 근골은 기형이다. 타고난 기형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만든 기형이다. 특이한 무공을 수련한 결과인 것 같은데, 근골이 하루가 다르게 강해진다.

뼈가 단단해지고, 힘줄이 탱탱한 고무처럼 탄력을 받는다.

“단주님의 무공은 살단주가 거침없이 대할 정도로 평범했어요.”

“에이! 천수신검을 평범하다고 하면 말이 안 되지.”

당홍이 웃으면서 말했다.

“천수신검이실 적에는 그랬다는 거죠. 그때도 천하제일이기는 했지만, 반야호신공이 넘볼 정도는 되었다. 이 정도로 이해해 주세요. 살단주님은 천수신검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랬어?”

“하! 천하의 천수신검이 평범하다는 말을 다 듣고…… 세상 사람들이 들으면 곡하겠네.”

당홍과 해자수가 동시에 말했다.

“그랬던 분이 혈마하고 팽팽하게 싸웠어요. 한 시진 넘게 전력을 다해서 치고받았죠. 해자수님의 혈기는 철벽이에요. 본능이라는 거죠. 본능적인 감각. 모든 사람이 순간적으로 나가떨어지는데, 단주님은 한 시진 넘게 버텼어요.”

“음! 놀랍긴 해.”

“단언해요. 제가 천살단에 있을 때의 단주님, 그리고 위수에서 만났을 때의 단주님, 해자수님과 싸울 때의 단주님이 모두 달라요.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지셨어요.”

“음!”

모두 침묵했다.

등여산이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말하는 것과는 궤를 달리한다. 그녀의 말은 아주 무거운 힘을 지니고 있다.

남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까지 꿰뚫어 본 후에 말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하는 말은 거의 사실이 된다.

“정확히 지금 뭐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단주님이 다시 우리 앞에 나선다면……”

“음! 그건 그렇고 혈천방 사마는 왜?”

당홍이 물었다.

이곳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사마를 경험했다. 사마를 죽이기까지 했다.

상당히 강하지만,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혈마 상태만 늦게 된다면 얼마든지 상대한다.

등여산이 산 아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혈천방이 산을 에워싼 채 물러서지 않고 있어요. 저들이 우리를 막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텐데. 그러면서 공격해 오진 않죠.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우릴 상대할 수 있는 자들. 혈천방주는 우리와 싸울 생각이에요.”

“싸워도…… 되지 않을까? 호발귀도 있고.”

해자수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혈천방에 무슨 힘이 있어서 혈마와 싸울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등여산이 걱정하고 있다.

그러니 때가 되면 혈천방은 그 힘을 드러낼 것이다.

“내 생각에는 빨리 자리를 피하는 게 좋겠어.”

등여산이 호발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지금은 저들을 뚫는 데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아. 힘이 준비되지 않았을 때 치고 나가. 그러면 천살단주가 달려들 텐데. 살단주도 달려들 거고.”

“혈천방주는 염려하지 않아도 돼?”

홀리가 물었다.

“혈천방주는 승산 없는 곳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지금 위험은 두 사람뿐이야.”

“기회가 있을 때 빠져나가자?”

“응.”

“그러면 가야지.”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 그리고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뭐해? 안 가?”

“지, 지금? 지금 가자고?”

해자수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호발귀를 쳐다봤다.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떠난다고?

“왜요? 뭐 가져갈 거라고 있어요?”

“그런 건 없지만……”

“말 나온 김에 가죠. 불안해하면서 있을 필요가 없잖아요.”

“그래도 일단 포위망부터 살펴야 하지 않을까? 충돌이야 피할 수 없다지만 그래도 잘 살펴보면 약한 구석이 있지 않겠어? 우리가 갈 곳도 정해야 하고.”

“그거야 뭐 가면서 생각하죠. 갑시다.”

호발귀는 이미 마음을 정한 듯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했다.

“주군, 좀 천천히 가시죠. 아이들을 먼저 내려보내겠습니다. 해자수 말이 영 틀린 건 아닙니다.”

귀검이 말했다.

“하하! 귀검. 내가 혈마라는 사실을 잊었나 보네.”

“……”

귀검이 일시 말을 잇지 못했다.

호발귀가 혈마라는 사실을 잊을 사람은 없다. 한데 그게 약한 곳을 뚫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나?

약한 곳이나 강한 곳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뜻인가?

호발귀가 씩 웃으면서 귓속말을 하듯 나직이 말했다.

“혈마라고 다 같은 혈마가 아니지. 난 좀 특별한 혈마인데. 아직도 생각나는 게 없어?”

호발귀는 나직이 말했지만, 그가 하는 말은 모든 사람의 귀에 들렸다. 호발귀의 음성이 커서가 아니다.

모두 풀잎에서 굴러떨어지는 이슬방울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어서다.

“치잇! 아니꼽게 구네. 혈마면 다 같은 혈마지 뭐! 조견인가 심등인가 할 줄 안다고? 에잇! 배알 뒤틀려서 나도 빨리 모닥불인지 뭔가를 피워야지 원.”

도천패가 투덜거렸다.

하지만 귀검은 반응이 전혀 달랐다. 귀검의 눈에 번쩍 기광이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귀검이 말했다.

“후후! 앞으로 싸움이 편해지겠군요.”

“주군 잘 모신 덕이지.”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군을 잘 고른 덕에 말년 복이 터진 것 같습니다.”

“내 말을 그렇게 받는다고?”

“사실이니까요.”

“하! 귀검하고는 농담을 못 하겠네. 세상에 그 말을 그렇게 받으면 내가 뭐가 돼.”

“영명하신 주군이 되시는 거죠.”

“아! 항복! 도대체 말을 못 하겠네.”

두 사람은 싸움을 앞둔 사람답지 않게 편안히 농을 주고받았다.

“귀검이 이런 농담도 하네요?”

등여산이 놀리듯이 말했다.

“말씀드렸다시피 영명하신 주군님이시라.”

“무슨 말이에요? 특별한 혈마라는 말이?”

등여산은 많은 말 중에서 가장 중요한 한 마디를 놓치지 않았다.

“제 입으로 말하면 너무 심심하고…… 곧 아실 겁니다. 후후!”

귀검이 웃었다. 순간,

“아!”

등여산도 뭔가 생각난 듯 활짝 웃었다.

“뭐야? 뭔데 그래?”

옆에 있던 홀리가 당장 물었다.

“나도 그래. 내 입으로 말하면 심심해. 호호호! 곧 알게 될 거야. 호호호!”

등여산이 기분 좋은 듯 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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