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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52화 (452/500)

第九十一章 소실무종(消失無蹤) [구름같이 사라지다] (2)

“음!”

주치균은 신음을 쏟아냈다.

동굴에서 나와 넓은 세상을 보자, 비로소 천원주가 돌아가자고 한 말의 뜻이 깨달아졌다.

온 산에 사마가 가득하다.

‘혈천방이 전력을?’

천살단은 더는 사용할 패가 없어서 살단 무인들까지 물렸는데, 혈천방은 더 많은 사마를 끌어냈다.

물러설 의도가 없다.

혈천방주가 호발귀와 전면전을 벌이고자 한다. 어느 한쪽은 죽어야 끝나는 싸움이다.

‘이렇게까지…… 이러면 내가 할 것이…… 없지 않은가.’

주치균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천원주는 이곳에 찾아올 필요가 없었다.

일부러 동굴을 찾아와서 돌아가자고 말할 이유도 없었다. 조언이라고 해도 좋고 명령이라고 해도 좋다.

‘돌아가자’라는 말을 해줄 필요가 없었다.

살단 무인들을 돌려보냈을 때, 주치균은 이미 이 싸움에서 손을 뗐다.

천살단이 얻어갈 것은 아무것도 없고, 죽을 위험은 훨씬 깊어졌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다만,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지켜봐야 하지 않나.

그러다 보면 혹여 자신에게도 기회가 돌아올지 모른다.

아수라장이 벌어지면 생각하지도 못한 콩고물이 떨어질 때도 있다. 그것이 혈마 목숨이라면 더 좋고.

“혈천방…… 대단하군요. 사마를 이렇게까지 많이. 이 정도면 능히 중원 무림을 제패하고도 남을 정도인데…… 후후! 우리 살단 같은 것은 한주먹감도 안 되고.”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살단도 아주 강해.”

천원주가 위로하듯 말했다.

“혈천방이 사마를 이렇게 준비하고 있던 것, 알고 계셨습니까?”

주치균이 물었다.

“우리는 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나? 마공관도 준비했고, 불마촌 낭견대도 준비했고. 우린 혈천방이 사마를 준비한 것에 대해서 시비를 걸지 못해.”

“전력 차이가 너무 크게 벌어져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전력 차이? 무슨 차이?”

주치균은 천원주를 쳐다봤다.

천살단은 동원할 무인이 없다. 쓸만한 무인은 모두 꺼내 썼다.

남아있는 무인들을 모두 박박 긁어모아도 사마 앞에서는 추풍낙엽이 될 것이다.

이 정도면 하늘과 땅 차이이지 않나.

그런데도 천원주는 무척 편안해 보인다. 아무 문제가 없다는 듯이 말한다.

주치균의 눈길을 느꼈는지 천원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호호호! 혈천방만 대단해? 어떻게 살단주가 우리 천살단을 너무 모르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 천살단도 결코 혈천방에 뒤지지 않는다는 거야. 그동안 준비해온 과정만큼은.”

“과정만큼은요? 어쨌든 결과에서 차이가……”

“혈천방의 결과물은 사마고, 우리 천살단의 결과물은 단주님이야. 혈천방은 분산, 우리는 집중. 혈천방은 비이성, 우리는 이성. 혈천방은 사이비, 우리는 최선.”

천원주가 이해하기 힘든 말을 했다.

주치균은 천원주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자세히 말해줘?”

천원주가 웃었다.

“부탁드립니다.”

“단주님의 무공이 뭐일 것 같아? 천수신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혈마에게 사용한 무공은 암약혼기와 도수척혼이야. 그러면 이게 단주님의 무공이야?”

“……”

주치균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것도 아닌 것 같다. 무공의 일부분인 것은 확실하지만 전부는 아니라고 본다.

“혈마가 사용하는 혈기처럼 혈천방은 인간이 추구하지 못할 부분을 연구했어. 쉽게 얻을 수 없는 부분을 억지로 얻으려 한 결과가 저 사마지.”

“우리도 시마를 만들지 않았습니까?”

“그건 괴마가 만든 것이고. 우리 천살단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부분을 연구했지.”

“후후! 괴변인 건 아시죠? 괴마가 한 일도 저희가 한 일입니다.”

“우리는…… 인간 능력의 최대치, 최극한의 상태. 단주가 수련한 무령환살공처럼 인간의 생명을 갉아먹는 마공이 아니라 수련하면 수련할수록 더 강해지는 무공.”

주치균은 잔잔히 흐르는 천원주의 음성을 들었다.

‘수련하면 할수록 강해지는 무공? 그게 단주의 무공?’

“세월이 지날수록 몸은 부드러워지고 힘은 강해지고…… 이론상으로는 일생에 걸쳐서 가장 강한 무공이 강해질 때는 죽기 직전이야. 죽어야만 성장이 멈추니까.”

“그런 무공이?”

주치균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눈을 부릅떴다.

“지금 단주의 무공이 혈마와 비슷하지?”

“훅!”

주치균은 헛바람을 삼켰다.

천원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었다.

단주는 해자수와 싸워서 호각지세를 이뤘다. 하지만 앞으로 십 년만 지나면……

아니, 강해지는 속도가 날로 발전하니 앞으로 이삼 년만 더 지나도 혈마 해자수는 단주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게 천원주가 하는 말이다.

세상에 이런 기막힌 무학이 어디 있나? 그런 무학이 있다면 빨리 수련할수록 이득이다.

젊었을 때 수련하면 나이가 들수록 강해지니……

숨이 막힌다.

인간이 혈마를 능가한다? 전혀 생각해보지 못했던 일인데,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한가?

천원주는 주치균의 속마음을 눈치챈 듯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 이 무공을 수련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되어 있어. 이 세상에서 선택받은 몇 사람만이 수련할 수 있지. 보통 자질로는 어림도 없어.”

“원주님도 수련하셨습니까?”

“아니. 나도 이런 무공이 있다는 걸 얼마 전에 알았어. 그리고 난 수련할 엄두도 나지 않고. 천살단에서 몇 사람이나 이 무공에 도전했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단주님 혼자야.”

“그 무공…… 이 무엇입니까?”

“가자. 여기서는 더 할 일이 없잖아?”

천원주가 일어섰다.

주치균도 따라서 일어섰다.

지금 천원주는 자신에게 그 무공을 수련해 보라고 권유하는 것이다.

무령환살공처럼 생명을 갉아먹는 무공이 아니라 단주가 익힌 초절정 무공,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지는 무공을 수련하라고 한다.

“마공관에 있는 무공입니까?”

“아니, 참회동.”

“네? 참회동이요?”

주치균이 놀란 눈으로 천원주를 쳐다봤다.

오늘 벌써 몇 번을 놀라는지 모르겠다. 가슴은 또 얼마나 뛰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중원 각처에 흩어져 있었는데 내가 참회동으로 모아놨어. 우리 천살단, 이 무공을 만들기 위해서 어떤 짓을 했는지 알아? 혈천방보다 더한 짓을 했다고 생각하면 돼. 세상에 알면 용서하지 않을걸? 호호!”

천원주가 웃었다.

‘혈마 연구!’

주치균은 퍼뜩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지금까지 천원주가 말한 무공은 혈마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파생되었을 것이다.

혈천방이나 천살단이나 혈마 연구에 집중했다.

혈천방이 사마를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혈천방도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천살단이 어디서 혈마 연구를 했는지는 비밀이다.

괴마가 형옥 지하에서 시마를 만들었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드러났다.

“이 짓들 이제 그만해야 할 것 같아서 모두 해산시켰는데…… 우리 천살단은 여기서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일부는 평범한 생활로 돌아갔을 거고, 일부는 일상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마인처럼 날뛰게 될 텐데…… 호호! 아무래도 뒤처리는 살단주가 해야 할 것 같은데?”

주치균은 천살단에서 어떤 연구를 했는지 묻고 싶었다.

하지만 말해주지 않는다. 천원주를 하루 이틀 보아온 것이 아니다.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너무 잘 안다.

결코, 불의에서 벗어날 사람이 아니다.

혈천방보다 지독한 짓이라.

인성을 상실한 상태에서 무척 잔인한 짓을 한 것 같다. 그래서 말해주지 않는다.

천원주는 이 일을 자신 선에서 묻고, 영원히 비밀로 할 것이다.

그나마 그에게 이런 이야기나마 하는 이유는 무공 속에 숨은 피와 땀을 알라는 거다.

어떻게 탄생한 무공인지 뿌리는 알고 있으라는 거다.

물론 무공을 접할 시기가 되면 지금보다 훨씬 상세한 내막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따라가겠습니다. 가서 그 무공을 보겠습니다.”

주치균이 산 정상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그래.”

천원주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사박사박 걸어갔다.

주치균이 급히 뒤따르며 물었다.

“그 무공을 수련한 사람…… 단주님 밖에 없는 게 확실합니까? 단주님이 무공 수련하는 모습을 지켜봤는데, 별달리 이상한 점은 보지 못해서.”

“이건 일단 수련하면 숨 쉬고, 걷는 것만으로도 수련이 돼.”

“그런 무공이!”

“어떤 무공인지는 가서 보면 되고…… 권하기는 하는데, 살단주가 수련할 것이라고 장담은 못 하겠네. 아까 말했지? 단주님밖에 수련한 사람이 없다고.”

“후후! 어떤 무공인지 모르지만, 반드시 수련해내겠습니다.”

주치균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호호호! 나중에 원망만 하지 마. 날 죽이려고 작정했냐고 욕할지도 모르겠는데?”

천원주가 발길을 옮겼다.

주치균은 묵묵히 뒤따랐다.

이 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혈천방이 호발귀를 죽일 수도 있고 아니면 호발귀가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이 할 일은 없다.

사실,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면서 요행을 바라고 끝까지 남아있는 것도 미련한 짓이다. 무령환살공은 이제 두세 번밖에 펼치지 못한다.

그런 무공으로 뭘 어쩌겠다는 건가?

주치균은 천원주를 쫓아가면서 산 이곳저곳을 쳐다봤다.

이 산 어딘가에 천살단주가 있을 것이다. 천살단 단주라는 지위를 훌훌 던져버릴 정도로, 아무 미련 없이 던져버릴 정도로 최강의 무학을 수련한 사람이.

단주는 무엇을 생각하나?

그만한 무공을 얻었는데 또 무엇을 바라나?

저벅! 저벅!

두 사람은 빠르게 산을 벗어났다.

* * *

“흠!”

천살단주는 천하가 환히 내려다보이는 벼랑 위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천원주가 주치균을 데리고 간다.

이럴 줄 알았다. 천원주에게 천살단의 비밀을 보여주면 바로 주치균에게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다.

주치균은 천살단 제일 기재다.

나이 스물을 갓 넘긴 청년이…… 소년티를 벗어나지 못한 풋내기가 검벽 검주가 된다는 것이 쉬운 일인가?

그렇지 않다. 그만한 무공을 겸비한 것이다.

천살단 검벽 검주가 되었다는 말은 중원 어느 곳에 내놔도 검이 통한다는 소리다.

주치균은 그만큼 검에 대한 조예가 깊다.

스물을 갓 넘긴 나이에 검을 그 정도로 깊게 수련해냈다.

주치균은 천살단의 비공을 수련할 자질이 충분하다.

재질로만 놓고 보면 천살단주 자신보다도 뛰어나다. 그러니 이제 남은 것은 인내력이다.

뼈를 깎고 살을 뜯어내는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몇 년이나 걸릴까? 모른다. 오성만 가지고 말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인내력, 끈기만으로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하늘의 운이 닿아야 수련할 수 있는 무공이다.

천살단주는 눈길을 거둬서 하늘을 쳐다봤다.

‘이제 천살단은 안정세로 들어섰고…… 그러면 나는 혈마에게만 집중하면 되나? 후후!’

무학이 탐나서 혈마를 노리는 게 아니다. 무학이라면 이미 더는 가질 수 없을 만큼 높은 무학을 수련했다.

남은 것은 하나, 천기를 엿보는 일이다.

혈기는 막연히 존재한다고 생각되는 우주의 기운을 현실로 보여준다. 눈으로 볼 수 있게끔 실체로 형상화해서 보여준다.

확실히 보고 느낄 수 있다.

우주의 기운을 엿보고 싶다!

이 대자연의 기운에는 무엇이 담겨 있나!

진기도 우주의 기운이다. 다만 아주 야트막한 끝자락일 뿐이다. 평생 진기를 양성해도 혈기 한 토막만 못하다.

혈기를 쓰면 한낱 무지렁이가 초절정 고수로 둔갑한다.

감히 해자수 같은 자가 자신이 수련한 천하제일 무학을 견뎌낸다. 아니, 오히려 핍박했다.

혈마로 변신하는 순간이 반 각만 늦었어도 오히려 당하는 사람은 자신이었다.

이게 혈기다.

이 혈기를 단지 무공에만 쓸 필요는 없다. 목숨을 연장하고 죽지 않게 만드는 불로불사에 쓸 수도 있다.

아니면 부처처럼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다.

생기로 무엇을 할지는 일단 생기가 무엇인지 보고 난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천하에서 가장 크고, 넓고, 강한 기운!

이것을 접해보고 싶은 것이다.

천살단주는 혈천방과 호발귀의 싸움에 가세할 생각이 없다. 두 사람 중 누가 이기든 상관이 없다.

자신은 언제든지 혈마를 낚아챌 수 있다.

지금 당장은 안 되지만 싸움이 벌어지면 기회가 생긴다.

“부디 무공을 얻어라. 너는 정상적으로 살아야지. 후후!”

천살단주는 떠나가는 주치균을 보며 웃었다.

살단주 주치균이 아니라 검벽 검주 주치균이 그립다. 그때는 편안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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