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章 일촌간극(一村間隙) (3)
혈마에게는 개인마다 조금씩 다른 특성이 있다.
당홍도 사람이고 도천패도 사람이다. 사람이라는 면에서는 같다. 하지만 도천패와 당홍은 성별과 모습과 성격이 다르다. 같은 사람이 아니다.
혈기도 그와 같다.
혈기가 생기라는 점에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모두 같은 종류다. 하지만 개개인이 어떤 식으로 혈기를 이끌었느냐에 따라서 혈기의 성격과 모습이 달라졌다.
물론 이것은 겉으로 드러나는 외형적인 모습이다.
혈기의 내면, 속성은 모두 같다.
혈기의 내면이 같으니 구혼음소는 모두에게 공통으로 적용된다.
누구에게는 통하고 누구에게는 통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모두에게 통한다.
음문촌의 귀색혼령대법은 사법(邪法)이다.
진짜 구혼음소는 단박에 죽음을 불러오거나 아니면 단숨에 기운을 북돋아 준다.
다만 겉으로 드러나는 혈기의 모습이 다르니 구혼음소도 달라져야 한다.
공기를 진동시키서 자극을 가하는 진파!
당연한 말이지만 구혼음소에도 생사(生死)가 있다. 죽음의 구혼음소와 평온의 구혼음소가 존재한다.
구혼음소는 주문인가? 중얼중얼 읊조리기만 하면 뇌가 소리를 듣고 반응하나?
아니다. 구혼음소는 무공이다. 산을 가운데 두고 건너편에 있는 소를 격타한다는 격산타우(隔山打牛)처럼 공기의 진동을 일으켜서 뇌를 강타한다.
그러니 자신이 자신에게 구혼음소를 읊어줄 수는 없다. 본인 스스로 구혼음소를 중얼거리면서 싸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항상 안정적인 상태에서 싸울 수 있지 않을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방법이다. 구혼음소는 반드시 타인이 읊어줘야 한다.
그러면 언제 구혼음소를 읊어야 하나? 구혼음소를 적용해야 할 시기를 알아야 한다.
혈기가 몸을 지배하는 것은 한순간이다.
그 시간은 너무 빨라서 혈기가 일어나는 순간을 잡아챌 수 없다. 혈마가 된 후에야 알아챈다는 것이다.
그러면 혈기가 일어나기 전에 구혼음소를 말해줄 방도는 없나? 없다.
혈기가 일어나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 인간과 혈마로 구분된다.
인간일 때는 비록 생기를 사용하고 있어도 뇌가 생기 영역으로 넘어가지 않은 상태다.
그때 구혼음소를 말해주는 것은 그냥 평범한 사람에게 이상한 주문을 읊어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구혼음소는 오직 혈마에게만 통한다.
혈기가 들끓어 오른 후에야 구혼음소에게 영향을 받는다.
그러니 정신이 뚝! 하고 떨어졌을 때, 구혼음소를 말해야 하는데, 이 순간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아무리 빨라도 혈마가 된 후에야 구혼음소를 말해주게 된다.
물론 이때도 혈마는 구혼음소 영향을 크게 받는다.
죽음의 구혼음소를 들으면 죽을 것이고, 평온의 구혼음소를 들으면 살심을 누그러트릴 것이다.
“지금부터 알려주는 구혼음소는 반드시 외워. 혈마가 되는 것을 막지는 못해도 늦출 수는 있으니까. 최소한 혈마가 힘이 떨어져서 싸우지 못하는 일은 없게 될 거야.”
“이건 조견과 상관없는 거지?”
당홍이 물어왔다.
“대답 보류예요. 현재는 상관이 없을 것 같기는 한데……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니까. 혈마가 구혼음소를 들을 때는 정신을 잃었을 때뿐이니까…… 어쩌면 도움이 될지도 모릅니다.”
“조견 수련 방법은 아직 찾지 못했고?”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등여산과 홀리를 훈련하면서 방법을 찾아보았지만, 조견은 본인 스스로 터득하는 수밖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런데 조견은 혈기가 일어난 상태에서만 찾아진다.
혈기가 없으면 조견도 찾아지지 않는다.
상당한 모순이다. 결국은 정신을 잃었을 때, 본인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말이 된다.
호발귀가 말했다.
“각기 두 명씩 짝을 지어서 상대방의 구혼음소를 말해주려고. 보위와 형수님은 당연히 서로 짝이 될 거고, 등매와 홀매가 짝이 되고, 해자수와 궁충이……”
“아니, 아니. 내가 아씨랑 짝이 될래.”
해자수가 불쑥 말했다.
모두 무슨 말이냐는 듯 해자수를 쳐다봤다.
누가 봐도 등여산과 홀리가 짝이 되어서 움직이는 게 맞는 듯이 보인다.
해자수가 말했다.
“귀검이 혈마에게 충성하듯이 나는 아씨를 보필하거든. 이건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변하지 않는 관계지. 아씨가 혈마가 되든 아니면 팔다리가 다 떨어져 나가든. 아씨가 혈마로 변해도 난 아씨 곁에 있을 사람이니까.”
“해자수, 이제 뭐 다 똑같은 혈마인데 뭐. 그러지 마. 내가 놔줄게. 호호호!”
홀리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내가 궁충과 짝이 되어서 움직이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아씨 것도 알려줘. 그럼 됐지?”
“구혼음소를 두 개나 외울 수 있을까? 각기 음률이 달라서 상당히 헷갈릴 텐데.”
호발귀가 해자수를 쳐다보며 말했다.
구혼음소는 음률과 정확한 발음이 생명이다. 음의 높낮이가 정확해야 한다.
실제로 구혼음소를 들어보면 거의 괴성에 가깝다. 인간 세상에 없는 문자를 늘어놓는다. 그러니 그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안 된다.
음률이 공기를 흔들어서 진파를 만들어 내는데 글자 해석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글자 수도 각기 다르다.
짧게는 백 마디부터 길게는 이백 마디 넘게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구혼음소를 모두 읊을 필요는 없다. 혈마는 구혼음소의 첫 마디만 듣고도 당장 영향을 받는다.
혈천방이나 음문촌에 정해진 것처럼 형식만 알아서는 혈마를 자극하지 못한다.
엉터리 구혼음소도 티끌만 한 영향은 주지만, 정확하게 요점을 치고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면 전부 외울 필요가 없나? 아니다.
구혼음소를 읊다가 중간에서 그치는 것과 완전히 한 바퀴를 휘돌리는 것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구혼음소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는 것을 전륜(轉輪)이라고 한다.
그런 말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법에서 말하는 전륜과 흡사한 뜻을 지닌다.
혈마의 영혼을 크게 한 바퀴 휘돌렸다는 뜻이다.
진기를 일주천하는 것과 같다. 혈마가 혈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훑어본 것으로 간주한다.
전륜하면 평온함을 유지하는 면이 완전히 달라진다.
혈기가 들끓는 시기를 잘 잡으면 들끓던 혈기를 가라앉히고 정상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물론 혈마 초입 단계에서만 가능한 말이다.
혈기를 일으켜서 무자비하게 살상을 일으키기 시작하면 평온의 구혼음소는 통하지 않는다. 그러기에는 혈기가 너무 뜨겁게 달아오른 후이다.
사정이 이러니 한 사람의 구혼음소만 외우는 것도 벅차다.
“외우는 것은 내가 할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고. 이래 봬도 외우는 머리는 있어.”
“머리만 따라준다면 가르쳐주지 못할 것도 없지.”
호발귀가 웃으면서 말했다.
“머리? 가만…… 이게 무슨 말이야? 날 완전 개무시하는 말이잖아? 이거…… 아씨! 이놈이 날 개무시하는데요?”
해자수가 호발귀를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해자수가 말하는 그 이놈이 내 신랑인데?”
“그러니까 아씨한테 고자질 하잖수?”
“왜?”
“원래 사내들은 마누라에게 꼼짝 못 하는 법이거든. 킥킥! 아씨가 한마디만 하면 저놈 꼼짝 못 해. 안 그러냐? 이놈아. 킥킥! 요런 건 몰랐을 거다.”
해자수가 호발귀를 보면서 연신 키득거렸다.
호발귀는 각기 다른 구혼음소 여섯 개를 말해주었다.
“이건 예전의 구혼음소와는 완전히 다르네. 첫 음률부터 상당히 낯설어.”
홀리가 말했다.
음문촌의 구혼음소, 또 혈천방의 구혼음소와도 다르다.
두 개의 구혼음소는 음률만 다를 뿐, 내용은 같았다. 하나의 구혼음소에 소리의 장단과 높낮이만 달랐다.
호발귀가 말해준 여섯 개의 구혼음소는 고양이의 울음소리와 소의 울음소리처럼 완전히 달랐다.
“저들이 어떻게 움직일지 모르니까 될 수 있는 한 빨리 외워.”
“우린 언제부터 해?”
당홍이 물었다.
등여산이나 홀리처럼 남은 사람들도 마수에서 벗어나는 훈련을 받아야 한다.
“이거 외우고요.”
“구혼음소보다 암약혼기를 피하는 게 더 급한 것 같아서.”
당홍이 말끝을 흐렸다.
“구혼음소를 외운 후에 두 사람씩 훈련할 거예요. 한 사람이 혈마가 되면, 다른 사람은 구혼음소를 읊어줄 겁니다. 혈마가 되어도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암수를 막는 방법을 동시에 수련하는 거죠. 그게 나을 것 같은데요.”
“아! 그렇구나. 미안. 우리도 빨리 암수를 피하고 싶은 마음에 재촉했네. 정말 미안.”
“괜찮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미안’이라는 말, 쓰지 말죠? 우리 사이에는 그런 말을 쓸 필요가 없을 것 같아요.”
“우리 사이?”
“가족이란 말이죠. 우리 모두.”
“그런가? 호호! 가족. 좋네.”
당홍이 환하게 웃었다.
한 사람분의 구혼음소를 외우는 데 칠 일이 걸렸다.
머리가 비상한 등여산이나 나이가 든 해자수나 외우는 시기가 비슷했다.
구혼음소는 머리로 외우는 것이 아니다.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진동을 느끼고 깨달아야 한다.
일곱 혈마는 같은 혈마이지만 이미 층차가 벌어졌다.
호발귀가 제일 강하고, 그 뒤로 다섯 명이 고루 비슷하다. 엄밀히 말하면 호발귀 다음으로는 등여산이 강하다. 그녀가 가장 깊이 들어갔다.
등여산 다음으로는 홀리가 강하다.
이들 사이에는 약간씩 층차가 생겼다. 그 뒤로 도천패. 홀리, 해자수는 엇비슷하다.
하지만 이들 사이에 벌어진 층차라는 것은 겨우 종이 한 장 차이에 불과하다.
호발귀와 등여산이 보여주는 층차만큼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가장 약한 사람은 얼마 전에야 생기를 알게 된 궁충이다.
혈마 다섯 명과 궁충 사이의 간극도 상당히 벌어져 있다.
혈마 다섯 명이 늘 혈기에 휘감겨 있다면 궁충은 혈기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 아직은 생기만 사용한다.
이 간극이 바로 구혼음소를 외우는 순서가 되었다.
여섯 명 중 구혼음소를 가장 빨리 외운 사람은 등여산이지만, 그녀의 머리가 비상했기 때문이 아니다. 여섯 명 중에 혈기를 가장 깊이 이해한 혈마이기 때문이다.
구혼음소를 외운다는 것은 혈마가 새로운 무공을 받아들이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됐어! 궁충! 네 것은 외웠어!”
해자수가 히죽 웃었다.
그는 궁충의 구혼음소를 칠 주야 만에 외우고는 굉장히 만족스러워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해자수는 홀리 것까지 외우겠다고 한껏 욕심을 부렸지만, 사실 나이 들어서 무엇을 외운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데 천살단 책사였던 등여산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외웠으니 만족할 수밖에 없다.
“이만하면 내 머리도 괜찮지? 그러고 보면 머리 좋다는 사람도 따지고 보면 다 꽝이야. 나하고 따져도 겨우 한두 시진 차이밖에 나지 않잖아. 킥킥!”
“조금 겸손하면 안 되나?”
도천패가 핀잔을 주었다.
“아니 겸손할 게 따로 있지. 이건 겸손할 필요가 없지. 왜 겸손해야 하지? 자랑하기도 바쁜데. 키키키키!”
해자수가 기분 좋게 웃었다.
홀리와 귀검이 마주 섰다.
귀검의 검은 등여산이 받을 생각이었지만 일부러 홀리가 나섰다.
등여산은 아주 깊은 혈마 상태에 잠겼다가 며칠 전에야 빠져나왔다.
어떤 면에서는 호발귀보다도 더 깊은 상태에 빠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홀리가 혈마가 되기로 했다.
“시작하지.”
귀검이 말했다.
“정말 괜찮겠어요?”
홀리가 오히려 귀검을 불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스릉!
귀검이 검을 뽑아 들었다.
홀리도 사양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귀검의 검은 혈의검 일맥이다. 홀리의 혈맥참보다 연원이 더 깊고 넓다.
스읏! 까앙! 스으읏! 까아앙!
두 사람은 천천히 움직이면서 검을 부딪쳤다.
홀리가 혈마로 변하는 데는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변하고 싶다고 당장 변하지 못한다. 혈기가 충만하게 끓어오른 후에야 마성이 드러난다.
지금 당장은 급박하게 손을 쓸 필요가 없다.
까앙! 깡! 까아앙!
두 사람은 검을 부딪쳐가면서 천천히 몸을 풀었다.
가벼운 싸움만으로는 결코 혈마가 되지 않는다. 홀리를 혈마로 만들려면 아주 격렬한 싸움을 벌여야 한다.
두 사람은 그 싸움을 준비하는 중이다.
부딪히고, 부딪히고, 또 부딪힌다.
“저걸 꼭 해야 하나? 암수를 피할 수 있다고 하면 그런가 보다 하고 탁 믿으면 안 돼?”
해자수가 투덜거렸다.
해자수는 홀리를 걱정하지 않는다. 다만 홀리가 혈마로 변하는 것이 싫은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죽고 죽이는 싸움이 아니잖아요.”
당홍이 옆에서 해자수를 다독였다.
“죽고 죽이는 싸움이면! 귀검이 감히 우리 아씨 옷자락이나 건드릴 수 있을 것 같아?”
해자수가 코웃음을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