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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46화 (446/500)

第九十章 일촌간극(一村間隙) (1)

호발귀는 공격 속도를 높였다.

수련 방법을 혈기격타로 전환한 만큼 짧은 시간에 많은 타격을 가할 필요가 있었다.

쉬잇!

투골지를 날카롭게 곧추세워서 등여산을 후려쳐갔다.

진기는 필요치 않다. 뼈도 뚫어버리는 투골지의 강맹함도 사용하지 않는다.

사실 이 지점에서는 투골지나 강호상 무인이라면 누구나 펼칠 수 있는 이선지(二禪指)나 하등 다르지 않다. 단지 치기만 할 뿐, 위력은 상관하지 않는다.

‘받아쳐!’

호발귀는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다.

등여산이 반응해야 한다.

투골지를 상대할 수 없어도 무방하다. 격타당해도 괜찮다.

반격하면 더없이 좋지만 단지 피하는 행동만 취해도 만족한다.

어떤 움직임이든 투골지를 받아쳐 주기만 하면 된다.

쉬잇!

등여산이 손을 움직였다.

뱀처럼 부드럽게 휘어진 손이 투골지를 빠르게 낚아챘다.

진기가 밀집된 손가락을 밀어내고, 안으로 깊숙이 파고들면서 손목을 잡아채려고 했다.

호발귀는 손목을 비틀어서 등여산의 손을 뿌리쳤다.

‘반응했어!’

놀라움은 잠깐이다. 기쁜 감정이 온몸에 회오리치지만, 애써 가라앉혔다. 그리고 다시 투골지를 쳐냈다.

타탁! 타타탁! 타탁!

투골지와 태산금나가 거칠게 어우러졌다.

송곳처럼 날카롭게 곤두선 지법이 등여산을 치려고 한다. 등여산은 사마귀 앞발을 밀어내면서 손목을 움켜쥔다.

다섯 손가락이 갈퀴처럼 다가온다.

쉐에에엑!

태산금나에서 날카로운 경풍이 일어났다.

등여산은 태산금나에 혈기를 담았다. 사실은 그녀가 담으려고 해서 담은 것이 아니다.

혈마가 쳐낸 손길에는 언제나 최강의 진기가 담긴다. 늘 전력을 다하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저절로 일어난다.

반면에 호발귀는 투골지에 혈기를 담지 않았다. 물론 의식적으로는 담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호발귀의 손에도 혈기가 조금은 스며 있다. 호발귀 역시 혈기를 완전히 배제하지 못한다.

등여산을 가격하는 손길은 무력하다. 완전히 힘을 빼고 툭 친 것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미약한 손길로 무공의 기준으로 보면 전력을 다한 투골지에 맞먹는다.

옛날, 참회동에서 혈마무공을 배우고 막 뛰쳐나왔을 때와 비슷한 정도라고 할까? 그 정도로 강한 투골지가 펼쳐진다. 물론 이런 투골지는 호발귀가 작심하고 떨쳐내는 투골지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완전히 천지 차이다.

쉬이이익!

투골지가 등여산의 머리를 후려쳤다.

등여산은 손등으로 투골지를 쳐올렸다. 동시에 손목을 빙글 뒤틀면서 손목을 잡아챘다. 그 순간,

슷!

호발귀는 즉시 심등으로 외벽을 둘러쳤다.

모든 혈기가 안에 갇혔다. 겉으로 표출되던 혈마의 혈기가 밝은 빛무리 속에 갇혔다.

등여산은 공격 목표를 잃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등여산은 두 눈을 활짝 뜨고 있지만, 호발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직접 보면서도 못 찾았다.

혈마가 되면 시력을 잃는다. 혈기가 시신경을 무디게 만들어 버린다. 그러니 장님이 되어서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과 하등 다르지 않다.

혈마가 되면 시력보다 열 배는 더 밝은 감각의 눈을 얻는다.

감각의 눈은 시력이 파악하지 못하는 범위까지도 살필 수 있다. 매의 눈을 가지게 된다고 할까? 십 장 밖에서 기어가는 개미까지도 세밀히 살펴볼 수 있다.

감각의 눈은 멀리, 자세히 볼 수 있는 것보다도 더 중요한 것을 보게 해준다.

인간이 펼치는 무공을 세밀히 쪼개서 볼 수도 있다.

정신이 멀쩡했다면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난 기분이 들었을 것이다. 전에는 보지 못했던 공격도 아주 느리게 보인다. 쾌공을 여유 있게 상대한다.

이런 눈을 얻었으니 시력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테리말라흐 에네기 알라늠……’

호발귀는 구혼음소를 떠올렸다. 평온의 구혼음소가 입 밖으로 흘러나가려고 했다. 순간, 호발귀는 이를 악다물며 입 밖으로 기어 나오는 소리를 꿀꺽 삼켰다.

이왕 시작한 김에 한 걸음 더 나아가자.

구혼음소를 버리고 진기를 흘려보자. 강호 무인이 되는 것이다. 천살단이나 혈천방 무인처럼 등여산과 싸운다.

호발귀는 즉시 이령귀화를 운용했다.

공격에는 이령귀화보다도 역천금령공이 더 뛰어나다. 강하고, 탄력이 있다. 하지만 역천금령공은 일반적인 진기 순환법이 아니다.

역순환에 근거한다.

일반적인 무공과는 매우 다르다.

등여산에게는 가장 정상적인 무공을 사용해야 한다.

츠으읏!

단전에서 진기가 일어났다. 이령귀화의 구결에 따라서 뜨거운 진기가 경맥을 흘렀다.

호발귀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몸속에 흐르는 이것은 진기인가, 혈기인가? 아니면 생기인가?

호발귀는 이령귀화를 손에 담고 마영심도 십칠 식을 펼쳐나갔다.

수도(手刀)가 칼이 되어서 등여산을 공격했다.

그러자 등여산이 곧바로 반격해 왔다.

등여산도 이번에는 공격 수법을 바꿨다. 태산금나가 아니라 설화팔극검이다.

아니, 설화팔극검과 비슷하기는 한데…… 훨씬 강하고 빠르다.

설화팔극검의 단점을 보완해서 다시 창안해 낸 혈마만의 설화팔극검이다.

그 순간 탁! 호발귀가 사라졌다.

등여산은 호발귀를 잃어버리고는 멈칫거렸다.

쉐에엑! 퍼억!

”케엑!“

느닷없는 타격에 등여산이 비명을 내질렀다. 하지만 비명은 매우 짧았다.

등여산은 즉시 뒤돌아서며 반격을 취해왔다.

곧바로 호발귀를 찾아냈고, 대응했다.

‘됐어. 반응해!’

호발귀는 벅찬 희열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은 부족하다. 육신이 가격당하기 전에 공격을 알아채야 한다.

지금 자신이 펼친 수법은 매우 미약하다.

천살단이나 혈천방과 마주치면 인정사정없이 공격당할 것이다.

주치균과 마주쳤다면 벌써 파신금령술이 터졌겠지.

육신에 칼이 들어왔겠지.

호발귀는 이령귀화를 흘렸다. 무인이 진기를 흘리는 과정이다.

등여산이 반응하면 즉시 심등으로 전신을 감쌌다.

모든 기척을 감추고 숨었다. 암약혼기나 사령천공과 같은 혈마에게 특화된 공격을 흉내 낸다.

그다음은 약간의 틈을 두었다가 즉시 공격했다.

등여산은 공격하는 마지막 수법에는 진기를 담지 않았다.

저들이 혈마를 공격할 때는 소리나 기척이 전혀 드러나지 않으니까. 당한 후에나 알게 되니까.

호발귀가 등여산을 상대하는 수법은 저들이 혈마를 상대하는 수법과 완전히 동일했다.

등여산은 이미 최종 단계에 올라와 있다.

이 순간만 겪어내면 이제 일차 목표는 달성한 셈이다.

여기에서도 등여산이 대응하면 즉각 혈기를 제거하고 예전의 등여산으로 환원시킬 수가 있다.

그때는 너무 아프게 때리지 않았느냐고, 너무 아팠지 않냐고, 놈이 상한 곳은 없냐고 물어볼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안으며 꽉 안아줄 수 있다.

타탁! 쒜에에엑! 타타탁!

혈맥참이 허공을 갈기갈기 찢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치달려갔다.

“하!”

호발귀는 탄성을 내질렀다.

홀리는 불의의 기습을 맞받아치지 않았다.

대신 혈맥참으로 허수(虛手)를 쏟아내고는 즉시 몸을 피했다.

진기가 끊기면 공격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진기가 끊어지는 순간, 어디서든 공격이 일어날 수 있다. 그래서 사방으로 혈맥참을 터트린다.

상대를 공격한다기보다는 공격을 저지하는 수법이다. 동시에 자신은 빠르게 이동한다. 상대방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빠르게.

쉬이이잇! 쉬이익!

홀리는 일다경이나 신형을 휘돌렀다.

무작정 움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혈기가 몸을 움직이는 쪽과 기척을 탐지하는 쪽으로 양분되었다.

인간이 숨을 쉬지 않고 견딜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될까?

일다경을 넘기지 못하는 것은 확실하다. 일다경 전에는 숨을 토해내야 한다. 그러면 진기도 흔들린다.

혈마는 그 순간을 탐지하기 위해서 움직인 것이다.

“좋은 수법!”

호발귀는 환하게 웃었다.

정말 만족한다.

“됐어! 이 정도면 된 거야.”

등여산보다 홀리가 먼저 대응을 시작한 것은 그녀가 먼저 혈기격타를 당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

본격적인 혈기격타를 홀리부터 시작했다. 그러니 그녀가 먼저 반응한 것이다.

이제 등여산을 깨워서 공격해 보면 그녀도 즉시 반응을 보일 것이다.

“됐어!”

호발귀는 외벽에 둘러친 심등을 거뒀다. 순간,

쒜에에에엑!

홀리가 혈기를 감지하고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그 순간, 호발귀는 그녀의 손을 슬쩍 피하면서 장난처럼 가볍게 백회혈(百會穴)을 툭 건드렸다.

스릇! 푹!

홀리가 줄 끊어진 인형처럼 스르륵 무너졌다. 육신의 모든 힘이 일순간에 사라진 듯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호발귀는 차분하게 홀리 곁에 앉았다.

“이제 깨워줄게. 고생했어. 홀리.”

호발귀는 들끓고 있는 그녀의 혈기를 차분하게 쓰다듬었다.

혈기격타가 아니다. 혈기안무다. 혈기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서 달래준다. 혈기를 제거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무지했을 때나 할 법한 오만한 생각이다.

혈마에게서 혈기를 제거하게 되면 살 수가 없다. 혈기를 제거하는 즉시 혈마가 죽는다.

혈기는 곧 생기다.

인간의 몸에서 생기를 거둬내면 죽음만 남는다.

그동안 혈기를 걷어내서 정상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한 것은 아주 큰 착각이요 오만이었다.

마구 들뜬 혈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팔팔 끓는 혈기를 차게 식힌다.

스스스스!

혈기를 가라앉혀주었다.

혈마가 정신을 잃으면 혈기가 가라앉을까? 그렇지 않다. 정신을 잃어도 혈기는 마구 들끓는다.

한 번 들끓기 시작한 혈기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계속 들끓는다.

호발귀가 혈마 상태가 되어서 산을 뛰어다닐 때도 그랬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혈기는 끓어올랐다. 인위적으로 힘을 가하지 않는 한 계속해서 용암처럼 끓어오른다.

호발귀가 혈마가 된 사람들을 정상적인 상태로 돌려놓았던 것은 들끓는 혈기를 차분하게 가라앉혀주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혈기를 제거했다고 착각했던 것이고.

혈기 제거는 생각할 수도 없다. 고요히 가라앉힌다.

치이익! 츠으윽!

혈기 안무를 펼치자, 홀리의 혈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언제 들끓었나 싶게 고요해졌다.

“됐어!”

호발귀는 혈기 안무를 멈추고 인당혈(印堂穴), 솔곡혈(率谷穴), 천추혈(天樞穴), 그리고 양쪽 눈 사이에 있는 찬죽혈(攢竹穴)을 부드럽게 눌렀다.

두통을 완화해주는 혈이다.

혈마가 되었다가 정신을 차리면 극심한 두통이 밀려온다.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조금 도움을 주었다.

스윽!

홀리가 힘없이 눈을 떴다. 그리고 흐릿하던 눈동자에 생기가 맺히고…… 호발귀를 찾아냈다.

“훗!”

홀리는 호발귀를 보자마자 피식 웃었다.

“왜 웃어?”

호발귀도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나 살았네. 내가 살게 되면 네가 반드시 옆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대로야.”

“날 너무 믿는 거 아니야?”

“서방 있는 여자가 서방을 믿어야지, 누굴 믿어? 이 세상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남편밖에 더 있어?”

“목소리 들으니까 반갑다.”

“나도. 그런데 기운이 하나도 없어. 눈 떴을 때, 네가 옆에 있으면 안아주려고 했는데.”

“내가 기운이 있잖아. 내가 안아줄게.”

호발귀가 홀리를 안았다.

“책사는?”

“아직.”

“잘 안 풀려?”

“곧 풀릴 거야. 믿어.”

“그럼 이러고 있을 시간이 없잖아? 빨리 책사부터 깨워!”

홀리가 힘없이 말했다.

그녀의 생기는 곧 채워진다. 들끓던 혈기가 차분하게 가라앉으면 일시적으로 탈진 현상이 일어난다.

하지만 이 순간은 길지 않다. 곧 생기가 충만해진다.

“잠시만. 잠시만 이대로 있을게.”

“그래도 돼?”

“그럼.”

“이렇게 안고 있으니 참 좋다.”

그 말에 호발귀는 홀리를 더 힘껏 껴안았다.

“널 다시 못 보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는데…… 믿으면서도 걱정이 되더라고.”

“그럴 일 없어. 누구도 혈마로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아.”

“그래. 꼭 그렇게 해줘.”

“고마워. 깨어나 줘서.”

호발귀가 진심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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