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九章 사활수련(死活修鍊) (4)
홀리는 반 시진 동안 적어도 오십여 차례 이상 격타당했다.
같은 반 시진 동안에 등여산이 네다섯 차례만 얻어맞은 것에 비하면 거의 열 배 가까이 더 맞았다.
호발귀가 훈련 방법을 바꿨다.
원래는 등여산과 똑같이 훈련하려고 했는데, 혈맥참을 접하는 순간에 ‘한가하게 차분히 습득시킬 시간이 없다’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완전히 방향을 틀어버렸다.
등여산과 훈련할 때는 구혼음소에 집중했다.
혈마가 구혼음소에 반응하기만 하면 곧바로 공격을 눈치챌 수 있다고 여겼다.
그래서 구혼음소를 충분히 들려준 후에 공격을 가했다. 그것도 본인이 느끼게끔 천천히.
홀리에게는 정반대로 운용했다.
구혼음소는 알아듣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구혼음소는 ‘소리가 들리면 공격이 일어난다’라는 의식을 심어주기 위한 용도로만 활용했다.
홀리의 훈련은 타격에 집중했다.
단지 육신에 타격한 게 아니다. 위험천만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홀리의 혈기를 직접 타격했다.
홀리가 허리를 비틀면서 고통스러워했던 것은 육신의 아픔보다는 혈기의 비틀림이 싫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혈기에 가해진 충격이 컸다.
혈기로 혈기를 친다!
이것은 단순한 권격보다 훨씬 큰 자극을 가했다.
홀리가 겨우 두 번을 타격당한 후에 즉시 구혼음소에 반응하기 시작한 것도 혈기 타격 때문이다.
생기격타. 그렇다. 생기격타다.
예전에 생기격타로 내공을 증진해 주었듯이 혈기로 혈기를 어루만졌다.
등여산과 훈련할 때도 이 방법을 생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생기격타를 할 줄 아는 만큼 혈기 격타도 충분히 생각했었다.
그러면서 하지 않은 이유는 혈기로 혈기를 치면 자칫 더 나쁜 결과가 일어날 수도 있어서였다.
자신의 혈기는 홀리의 혈기보다 훨씬 강하다. 아니,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어느 것이나 똑같은 인간의 기운일 뿐이니 강약을 따질 수가 없다.
다만 호발귀가 훨씬 진하게 물들었다.
영에서 십 중 호발귀의 혈기 상태가 팔구 정도 된다면 홀리가 물든 상태는 오륙 정도에 불과하다.
진하게 물든 혈기로 약하게 물든 혈기를 치면 약한 혈기가 변질할 수도 있지 않을까?
등여산이나 홀리가 단숨에 호발귀처럼 진해질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이유로 망설였다.
혈기에 대한 문제는 어떤 문제든 쉽게 생각할 수 없다.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어서 더 어렵다.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있어서 망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혈기 타격을 더는 미룰 수 없었다. 어떤 결과가 생기든 오로지 자신이 감수할 몫이라고 생각하면서 생기격타를 펼쳤다.
그리고 혈기를 타격하자마자 이 방법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것을 바로 확신했다.
일단 혈기를 발현한 사람은 더는 혈기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
검사는 검을, 도객은 칼을, 창수는 창을, 궁사는 활을 병기로 삼는 것처럼 자신이 발현한 혈기의 성질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타인의 혈기에 자극은 받지만,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투사는 싸움 현장을 보면 나도 싸우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것은 자극이다.
영향은 자극과는 다르다.
상대방이 검을 잘 쓴다고 해서 도객이 칼을 버리고 검을 취하는 예는 없다.
창술의 대가가 뛰어난 검술을 보고 ‘아! 나도 검을 배워야지.’하고 창을 버리지도 않는다.
혈기는 병기처럼 이미 몸에 틀어박혀 있다. 몸속에 뿌리를 굳건히 내렸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성질이 변하지 않는다.
다른 혈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생기격타는 생기로 진기를 어루만지는 일이기 때문에 당장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호발귀의 혈기가 상대방의 진기 속으로 고스란히 흘러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내면에 내재한 혈기를 끌어낼 뿐이다.
혈기가 우주 만물의 기운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본인 스스로 찾아내고, 키우고, 변형시킨 점에서는 완전히 다르다.
홀리에게 혈기 격타를 하는 동안, 이런 확신이 들었기 때문에 마음껏 혈기를 쳐냈다.
“휴우!”
호발귀는 등여산 옆에 누워있는 홀리를 보면서 깊은 탄식을 토해냈다.
호발귀는 땅에 쓰러진 홀리를 보면서 한숨을 토해냈다.
혈기 타격, 이 방법이 맞다.
홀리가 혈기 격타에 곧바로 반응했다.
혈기 격타를 한 후의 반응도 완전히 달랐다.
홀리는 구혼음소만 들려도 몸을 움찔거리면서 뒤돌아섰다. 뒤에서 공격이 일어난다는 점을 인지했다.
이제 두 가지가 남았다.
구혼음소를 읊어주지 않았을 때도 공격을 인지할 수 있어야 한다.
진기를 가졌던 인간이 갑자기 눈앞에서 사라지면 타격이 일어난다는 점을 알려주어야 한다.
구혼음소를 읊는 대신에 진기를 흘려보낼 생각이다.
하나 더 알려줄 것이 있다.
타격은 등 뒤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몸 전반에 대해서 일어날 수 있다는 점도 알려주어야 한다.
이런 점들을 알려주면서 반응 속도를 높여 나간다.
아직도 할 일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면 너무 요원하다. 하루 이틀 사이에 해결될 수 없어 보인다.
어쩌면 일 년, 이 년…… 오랜 기간에 걸쳐서 훈련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만한 시간이 없는 것은 확실하다.
무엇보다도 등여산과 홀리 상태가 심각해졌다.
이 상태에서 계속 훈련만 시킬 수는 없게 되었다. 이러다간 영영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궁극적으로 이 훈련은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
결국, 혈기를 발현한 모든 사람은 조견을 깨우쳐야 한다.
본인 스스로 혈기를 억누르고 통제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의미가 없다.
지금 두 여인에게 하는 훈련은 혈천방이나 천살단에 당하지 않도록 하는 임시방편이다.
“구혼음소 대신에 진기를 사용하면 즉시 눈치챌 텐데. 다음 훈련에서는 내가 더 바빠질 수도 있겠어. 후후”
호발귀가 웃었다.
구혼음소를 흘리지 않고, 대신 진기를 흘린다? 어떻게 진기를 쏟아내야 효과적일까?
호발귀는 고민했다.
무공을 수련한 무인이 진기 사용을 고민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 하지만 혈마가 되면 고민하게 된다.
순수한 진기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니까.
진기 무공을 사용하라는 말은 보검을 지닌 무인에게 부엌 식칼을 사용하라는 말이나 마찬가지다.
초절정 무인에게 기본공만 쓰라는 말보다도 더 심하다.
진기는 생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염원에서 나온 수단이다.
인간은 생기라는 존재는 알지만 사용할 줄을 모른다. 얻어서 쓰는 법을 모른다.
그래서 어떻게든 소매 끝자락만이라도 잡고자 만들어 낸 공부가 단전을 이용한 기운의 활용법, 진기다.
진기는 인간이 만들어 낸 최고의 공부다.
하지만 현재 인간이 만들어 낸 진기운용법으로는 자신의 몸에 깃든 생기 중 채 오 푼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 초절정 고수라는 사람들이 일 할 정도 사용한다.
혈천방주, 천살단주 등이 이 경우다.
그들은 생기를 안다. 그래서 더더욱 생기를 완전히 활용할 수 있는 방도를 얻고자 한다.
영생불사(永生不死)나 무적군림(無敵君臨)은 생기를 얻는 목적이 아니다.
생기를 얻어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 명확하게 알지도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생기를 십분 사용하기를 바란다.
단 일 할만 사용하고도 혈천방주나 천살단주가 될 수 있었다면 십 할을 사용했을 때는 어떤 무위를 보일 수 있을까?
혈마를 소멸시키고 현재 상태에서 무적이 되는 것은 원하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혈마처럼 생기를 십 할 사용할 수 있는지 알아내고자 한다.
저들이 혈마를 제압할 수 있는 무공을 찾아내고도 계속해서 혈마를 잡고자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호발귀는 이미 생기 무공의 최정점에 서 있다.
생기가 혈기로 변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이백 년 전 혈마도 손대지 못한 혈기 통제 단계에까지 접어들었다.
그야말로 인간사에 등장한 적이 없던 혈마가 되었다.
이런 상태에서 진기를 사용하면…… 제대로 된 진기가 나올까?
최대한 생기를 묻히지 않은 채 혈마 무공을 전개하려고 한다.
태극환원공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태극환원공은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의 총화다. 음양(陰陽)의 이상적인 조화가 어떤 자극을 가할지 모른다.
단순하면서도 자극이 강한 무공이 필요하다.
투골지!
혈마록 표지에 숨겨져 있던 투골지를 사용할 생각이다.
투골지는 모든 무공을 파해할 수 있다.
혈마 무공에 수록된 모든 무공을 깨트릴 수 있다. 태극환원공을 제외한 모든 무공이 단숨에 깨진다.
이런 말은 혈마 무공에 달통한 호발귀만 할 수 있다.
투골지와 태극환원공이 부딪치면 어떤 무공이 망가질까?
모순(矛盾), 창과 방패의 싸움이다. 만약 같은 사람이 펼친다면 승부가 나지 않는다.
투골지는 만류귀종에 해당하는 지공이다.
스읏!
호발귀는 손가락을 들어올렸다.
혈기가 저절로 운집되었다. 아니다. 운집이라는 말은 틀렸다. 혈기는 운집하지 않는다.
생기가 몸 전체에 퍼져 있어서 운집할 필요가 없다.
손가락에 깃든 생기가 타격 준비를 마쳤다.
이때, 기의 중심은 손가락이 된다. 무인에게는 진기의 중심이 단전이지만, 생기를 사용하면 몸뚱이 중 어느 곳이라도 중심이 될 수 있다.
투골지를 쓰면 손가락이 중심이 되는 것이고, 장법을 사용하면 손바닥이 중심이 된다.
파앗!
투골지가 석벽을 찍었다.
마음속에 심등이 환하게 밝혀진 상태에서 혈기를 이용하여 일으킨 지법.
퍼억!
석벽이 두부처럼 움푹 찍혔다.
내일…… 세 시진쯤 쉬고 난 후, 등여산에게 펼칠 지공이다.
호발귀는 등여산을 깨우기 전에 마지막 점검을 마쳤다.
두 여인을 훈련하면서 그녀들의 혈기를 염려한 만큼 자신의 혈기도 걱정했다.
혹여 훈련 중에 심등이 꺼지지는 않을까? 항시 조마조마했다. 하지만 그런 염려는 기우에 불과했다.
심등을 밝힌 것, 조견은 의지로 취하는 행동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조견이라는 말에는 ‘의식적인 행동’이 포함되어 있다.
본인 스스로 무엇인가를 뚫어지게 쳐다본다는 행위는 분명히 의식적인 행동이다.
하지만 호발귀가 찾아낸 심등, 조견은 어떠한 의식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숨을 쉬는 것처럼 본인이 의식하지 않아도 저절로 일어난다.
숨 쉬는 행동은 의식과는 전혀 상관없이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숨을 조절해서 일정한 간격으로 유지할 수도 있고, 자유롭게 풀어놓을 수도 있다.
숨은 의식이 완전히 뚝 떨어진 상태에서도 유지된다.
미약에 중독되거나, 마혈이 제압되거나, 혼혈이 눌린 상태에서도 숨은 쉬어진다.
인체 중 숨처럼 의식과는 전혀 상관없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는 기관들이 있다.
위장도 마찬가지다. 음식이 들어가면 저절로 움직인다. 심장도 저절로 뛴다.
조견도 마찬가지다. 일단 찾아내기만 하면 절대로 떨어지지 않는다.
끊임없이 혈기를 지켜본다. 그러니 조견을 찾기만 하면 혈기를 극복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이렇듯 의식을 초월해서 일어나는 불길을 단순히 심등이라거나 조견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마땅히 부를 이름이 없어서 조견이라고 부를 뿐이다.
조견을 성취한 후에도 혈기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 혈기가 피가 튀는 살인 현장에서는 어떤 상태로 변할지도 의문이다.
혈기가 살인이나 피에 자극을 받는다면 당연히 어떤 특정한 상태로 변할 텐데.
“후우웁!”
길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
호발귀에게는 아직도 혈권과 사권이 존재한다.
사권에 들어선 생명체를 판별해 내고, 혈권에 들어서면 당장 혈기가 치민다. 생명을 끊고자 손이 뻗어나간다.
이런 행동은 무인이 취하는 살의와는 아주 다르다.
살의는 억누를 수 있다. 죽이고 싶지만, 이성적인, 혹은 이해타산적인 계산 하에서 살수를 숨길 수 있다.
혈기는 무조건 전개된다. 생명체가 찾아지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이 불쑥 나간다.
살의라는 것을 느끼기도 전에 죽이는 행동이 튀어 나가는 것이다.
조견은 그런 행동을 잡아준다.
등여산과 홀리가 지척에 있는데도 목숨이 붙어 있는 것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혈기를 조견이 계속 붙잡아 주기 때문이다.
호발귀가 살심을 억누르는 게 아니다. 살심은 처음부터 느끼지 못한다.
살의가 튀어 나가는 것도 어쩌지 못한다. 다만 움직이기 직전에 조견이 방어막을 쳐준다.
‘날 믿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갈 수 없지. 나 자신부터 철저하게 믿고 시작한다. 할 수 있어!’
호발귀는 눈을 감았다.
혈기를 발현한 사람은 운공조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숨을 들이쉬기만 해도 생기가 정화된다. 들어오는 공기 속에 생기가 스며 있고, 나가는 숨 속에 탁기가 묻어 있다.
혈마에게는 숨을 쉬는 매 순간이 운공조식이다.
그러니 싸우는 와중에도 생기는 정화된다. 운공조식을 취하면서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다.
호발귀는 몸이 피로하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등여산에 이어서 홀리까지 연달아 훈련했지만,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정신적인 피로함은 느낀다.
등여산을, 홀리를…… 어떻게 하나. 도천패는, 당홍은 어떻게 하나. 해자수는 궁충은…… 조견을 깨우쳐줘야 할 혈마가 여섯 명이나 되는데……
호발귀는 모든 생각을 놓고 푹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