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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41화 (441/500)

第八十九章 사활수련(死活修鍊) (1)

“오늘 몇 번째지?”

“열두 번.”

“반 시진 간격이지?”

“응. 저놈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네. 저러고도 몸이 버텨나는지 모르겠어.”

해자수가 걱정했다.

동굴 안에서 격전이 벌어지고 있다. 권풍(拳風)이 동굴 밖까지 휙휙 몰아친다.

혈마가 울부짖는 소리도 가슴을 저려 울린다. 마음 깊이 묻어놓은 혈마가 자극된다.

어떤 싸움인지 모르겠지만, 동굴 안으로 들어가서 같이 어울리고 싶다.

“끝났나?”

괴소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았다.

혈마는 스스로 괴소를 멈추지 못한다. 울부짖음이 그쳤다는 것은 호발귀가 혈마로 변한 등여산을 제압했다는 뜻일 것이다.

“혈마를 너무 간단하게 제압하는데. 혈마가 되면 저놈 밥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어.”

도천패가 말했다.

어찌 호발귀 밥만 되겠나. 천살단주, 혈천방주, 주치균까지 많은 사람이 혈마를 제압할 수 있다.

도천패와 당홍은 실제로 포로가 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어떻게 잡혔는지는 모른다. 누구에게 어떤 무학으로 잡혔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제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알지 못한다.

머리로는 알아도 몸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지금, 등여산이 호발귀에게 잡히는 것을 보니 단박에 깨달아진다.

혈마가 되면 자신을 죽이는 지옥유부공 같은 무공을 당할 수 없다는 것이 강하게 인식된다.

“키키키키! 키키킥!”

잠시 조용한가 싶더니 다시 혈마 괴소가 터져 나왔다.

꽈앙! 꽝! 꽈아아앙!

석벽을 후려치는 소리가 격렬하게 울렸다.

동굴은 일 장이 채 되지 않는다. 폭이 넓은 동굴이라고 할 수 있지만, 고수가 싸우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한두 걸음만 움직이면 벽에 부딪힌다.

꽈앙!

발로 벽을 후려치는 소리가 둔중하게 울렸다.

퍽! 퍼퍼퍽!

주먹으로 벽을 연타하는 소리도 울렸다.

쌍방이 어우러져서 치고받는 권격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그것도 매우 격렬하게.

휘이이익! 쒜에에에엑!

움직임이 매우 빠르다. 순식간에 이삼 장을 따라붙는다.

쫓아가는 중에도 계속 권풍을 쏟아낸다.

“으음!”

도천패가 신음을 흘렸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동굴 안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정도로만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도천패, 당홍, 해자수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와닿는다.

세 사람은 동굴 속의 혈기를 감지한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미약한 혈기만 느꼈는데도 피가 끓어오른다. 당장이라고 동굴 안으로 뛰쳐들어가서 저들과 손속을 섞고 싶다는 충동이 일어난다.

혈기를 느끼는 거리가 조금만 더 가까웠어도 당장 뛰쳐들어갔을 것이다.

호발귀는 이런 점까지 고려해서 적절한 거리를 유지해놓고 싸움을 시작했다.

세 사람이 일으키는 혈권과 사권을 정확히 고려한 후에 격전을 벌인다.

“쉬지를 않네. 지치지도 않나?”

해자수가 중얼거렸다.

“그러게요. 책사가 호발귀 저놈을 무척 좋아했는데. 혈기에 휘감기니까 정인도 보이지 않는 모양이네요.”

도천패가 말했다.

“책사만 좋아했나? 호발귀도 좋아했지. 책사는 혈마가 되어서 마음껏 싸우지만, 정인이 혈마가 된 모습을 보면서 공격을 피해야 하는 호발귀는 얼마나 괴롭겠어.”

당홍이 말했다.

“알지. 그냥 해본 소리야.”

도천패가 우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데 호발귀 말이야. 수투는 거의 반은 사기꾼이라던데,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치고는 참 입에 발린 소리를 못 해. 손기술만 좋은 수투였나?”

“무슨 소리야?”

“자기 여자한테도 좋아한다는 표현을 못 하잖아. 옆에서 보면 답답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야.”

“문주놈이? 문주놈이 표현을 못 한다고? 하! 능구렁이처럼 잘만하던데?”

도천패가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이 말했다.

“하기는 어떤 곰보다는 낫지. 어떤 곰은 맨날 살을 맞대고 있어도 좋다 싫다고 말 한마디 안 하더라고.”

“그걸 꼭 말을 해야 아나?”

“흥! 말하지 않으면 어떻게 알아? 여자가 독심술(讀心術)을 배운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네가 내 마음을 알아서 헤아려라. 이거 아냐? 너무 이기적이야.”

“불똥이 왜 내게 튀어? 기껏 문주놈 이야기하다가.”

“그러고 보니 투심문 사람들은 전부 표현을 못 하네?”

“난 투심문에 한쪽 발만 걸쳐놓은 상태니까 엄밀히 말하면 투심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없지. 내가 투심문 사람이었으면 벌써 문주가 되었지, 보위 노릇을 하겠어?”

“응.”

“응? 무슨 뜻이야?”

“투심문 사람 맞고, 보위 맞고, 선배이면서도 호발귀에게 잡아먹힌 것 맞아.”

“그런가?”

“맞아. 그러니까 투심문 사람들 죄다 왜 이 모양이냐는 말을 듣기 싫으면 앞으로는 표현 좀 하면서 살아. 좋아한다고 말하는데 돈이 드는 것도 아니잖아.”

“당매, 정말 좋아하는데.”

“알아.”

“알면서 굳이 말을 해달라고?”

“그런 말은 몇 번을 들어도 질리지 않거든. 그러니까 매일매일 입에 달고 살아.”

“킬킬! 질리지 않을 것 같지?”

옆에서 듣고 있던 해자수가 말했다.

“질려요?”

당홍이 해자수를 돌아보며 말했다.

“질리지. 살 만큼 살면 먹고 사는 문제 외에는 관심 없게 돼. 사랑이 밥 먹여줄 줄 알지? 돈도 못 벌면서 ‘사랑해’라는 말만 주야장천 하는 놈을 보면 어떨 것 같아? 킬킬! 당장 때려죽이고 싶을걸? 이게 현실이지. 킬킬!”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요.”

“응? 왜?”

“저 곰탱이, 돈은 많잖아요. 투심문 재산에서 조금만 빼돌려도 평생 먹고 살 걸요?”

“그런가? 킬킬킬!”

그들은 웃었다.

이런 이야기라도 늘어놓으면서 웃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혈기에 휘말린다.

“에휴! 잠이나 잤으면 좋겠는데, 이놈의 심장이 자꾸 벌렁거려서 잠을 잘 수가 있나.”

해자수가 팔베개를 하고 드러누우며 말했다.

그들의 사권과 동굴에서 뻗어 나오는 사권은 겹치지 않는다. 호발귀가 이미 계산을 끝내놓은 후에 격전을 벌이고 있다. 직접적으로 혈기가 닿지 않는다.

그런데 한 가지, 호발귀도 간과한 점이 있다.

소리!

싸우는 소리가 심기를 건드린다. 혈기를 자극한다. 피를 갈망하게 된다.

동굴에서 일어나는 소리를 지워버리고 싶다는 살심이 뭉실뭉실 치솟는다.

“그냥 마음 편히…… 꿀꺽!”

당홍이 말을 하다말고 마른 침을 삼켰다.

그녀도 입이 말랐다. 살심이 신체 변화까지 끌어내고 있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는 마음이 손발까지 덜덜 떨리게 만든다.

눈가에 피가 맺힌다.

퍽!

둔탁한 소리를 끝으로 싸우는 소리가 그쳤다.

“휘우!”

도천패가 긴 한숨을 불어 쉬었다.

* * *

“이스 트리하 틀하 뎅간 니아만……”

호발귀는 구혼음소를 읊조렸다.

순간 등여산이 잠시 조용해졌다. 호발귀가 눈앞에서 진기를 일으키고 있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본능적으로 구혼음소가 자신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카우 아만. 테리말라흐 에네기……”

호발귀는 천천히 구혼음소를 읊으면서 한편으로는 단전 진기를 끌어냈다.

츠으읏!

손에 진기가 운집되었다.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이 하나로 합쳐진 태극환원공이다.

등여산의 혈기는 쉽게 잠재울 수 있다. 자신의 혈기를 눌러주는 ‘조견’은 등여산의 혈기에도 통한다.

등여산의 혈기를 보고 있다. 당연히 달랠 수도 있다.

등여산의 몸뚱이 안에 똘똘 뭉쳐있는 혈기를 실타래 풀듯이 풀어서 허공으로 흩어버리면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정신을 잃고 쓰러지는 것이 아니다.

혈기가 완전히 풀린 상태가 된다. 멀쩡한 등여산으로 돌아오게 된다.

그런 간단한 길을 두고도 일부러 먼길로 돌아간다.

슷! 팟!

순간적으로 호발귀가 등여산의 감각에서 사라졌다.

이미 호발귀는 등여산의 등 뒤로 돌아갔다.

생기는 죽인 상태다. 무령환살공이나 암약혼기를 펼쳤을 때와 똑같은 상태를 유지했다.

하지만 태극환원공의 진기만은 매우 가늘게 흘렸다.

마지막으로 남은 한 줄기 진기!

등여산은 이것을 쫓아야 한다.

있는 듯 없는 듯 초고수의 감각에도 걸리지 않는 한 줄기의 진기를 찾아내야만 한다.

바로 지옥유부검에서 말한 귀검과 혈마를 잇는 선이다.

지옥유부검의 요체는 간단하다.

자신과 혈마를 진기로 잇는다. 그리고 자신을 죽인다.

생기를 완전히 죽인 후에 가사 상태로 들어간다. 그런 상태에서 마지막 비공이 터진다.

가사 상태로 들어가기 전에 일으킨 진기가 자신과 혈마를 이은 선을 쫓아간다.

진기의 끝을 격타한다. 혈마의 심장에 검을 꽂는 혈마자심이 이것이다.

지옥유부검은 호발귀에게 영감을 안겨 주었다.

귀검은 지옥유부검 속으로 사라졌지만, 그가 남긴 진기는 세상에 남아있다.

혈마가 볼 수 있는 진기다.

암약혼기나 사령천공도 같은 이치라면 그런 무공들 또한 세상에 남겨놓은 진기가 있을 것이다.

완벽한 소멸이 아니다!

혈마가 세상에 남겨진 진기를 쫓아갈 수 있다면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도 당하지 않는다.

그때야말로 어떤 무공도 통하지 않는 무적의 혈마가 된다.

지금 바로 그 일을 하고 있다.

일부러 태극환원공을 일으켰다. 진기 한 줄기를 남겨놓았다. 그런 상태에서 귀검처럼 자신을 소멸시켰다.

호발귀는 귀검처럼 가사 상태에 빠질 필요가 없다.

조견을 강하게 일으켜서 몸속 구석구석을 살피면 된다.

혈기를 강하게 누르면 호발귀 자체가 사라지는 것처럼 보인다.

호발귀는 이미 혈기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스읏! 타악!

태극환원공이 등여산의 등을 격타했다.

이번에 펼친 수법은 원충 노인의 팔십일수 중 삼마돌각수다. 원래는 생기를 아주 강하게 펼치려고 했다.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단박에 등여산을 무너트리는 것이다.

염천혈을 쳐서 순식간이 아문혈까지 꿰뚫는다. 혈기가 단숨에 무너진다.

생기도로 강하게 충격을 주면 그만큼 각성도 빨라지지 않을까?

그런데 등여산이 너무 힘들어한다.

혈마는 힘들지 않다. 혈기는 세상의 기운이다.

기운 덩어리가 힘들 리 없다. 생기도에 맞아도 아픈 줄을 모른다. 뭉쳤다가 흩어지면 그만이다.

정작 힘든 것은 등여산의 몸이다.

혈기를 담은 그릇이 무척 힘들어한다. 혈마로 변해있을 때는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힘이 넘친 듯 펄쩍펄쩍 날뛰기까지 한다. 오히려 상대방을 압도한다.

하지만 혈기가 흩어지고 나면 육신은 무리하게 움직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세월이 흘러서 관절이 뻣뻣해졌다면 청년처럼 유연하게 움직일 수는 없다. 당연하다.

여기에 혈기라는 약초가 투입되었다. 혈기는 관절에 힘을 가해서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게 만든다. 청년처럼 유연해진다.

그러나 혈기가 빠져나가면 다시 빳빳해진 관절로 돌아온다. 혈기의 힘으로 유연해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더불어서 빳빳한 관절을 억지로 사용한 대가도 치러야 한다.

등여산의 몸이 그렇게 된다. 아니, 혈기를 사용하는 모든 몸이 그렇게 된다.

호발귀, 도천패, 당홍, 해자수 그리고 이제는 궁충까지 그런 몸이 된다.

이런 사실도 이번에 알았다.

생기도처럼 혈마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안겨주는 공부는 사용할수록 좋지 않다.

혈마를 단숨에 제압할 수는 있지만, 몸이 큰 충격을 받는다.

그래도 굳이 생기도를 쓰겠다면 몸이 원상태로 회복될 수 있을 만큼 오래 쉬어야 한다.

몸에 휴식을 주지 않고 계속해서 생기도를 쳐내면 몸뚱이가 버티지 못한다.

생기는 무한한 힘이 아니다.

우주 밖에서는 무한한 힘이지만, 몸 안으로 들어온 생기는 단지 사람을 움직이게 하고 목숨을 연명시키는 도구로 이용된다.

거기서 거대한 힘을 끌어내려고 하니 불협화음이 생긴다.

퍼억!

등여산이 태극환원공에 격타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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