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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40화 (440/500)

第八十八章 사기재현(死氣再現) (5)

호발귀는 등여산을 안고 자신이 철삭에 묶여있던 동굴 안쪽까지 깊이 들어갔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혈기의 영향을 받으면 안 된다.

등여산의 혈기는 자신보다 약하다. 그러니 자신의 혈권만 생각하면 된다. 거리를 그 정도로 벌려놓으면 동굴 밖에 있는 사람들은 영향을 받지 않는다.

호발귀는 홀리도 걱정했다.

지금은 생기도에 막혀서 누워있지만, 등여산의 혈기를 접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른다.

“등매, 지금부터 시작이야. 잘 버텨줘야 해.”

호발귀는 등여산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등여산은 숨이 매우 고르다. 마치 좋은 꿈을 꾸고 있는 소녀 같다. 하지만 생기도를 푸는 순간, 그녀는 매우 난폭한 혈마가 되어서 날뛸 것이다.

혈마가 날뛰는 모습은 소름끼친다.

혈마가 달리 혈마가 아니다. 악마를 대변해서 세상을 파탄시키는 자이지 않나. 그래서 혈마라고 한다. 그러니 혈마가 날뛸 때의 모습은 미친 사람과 똑같다.

혈마가 광란하는 모습을 보고 흥분하는 사람 있다. 혈마다.

혈천방 마인도 혈마가 광란하는 모습을 보면 기가 질려서 벌벌 떤다. 아무리 사악한 마인도 혈마 앞에서는 오금이 저려서 사시나무처럼 떨어댄다.

혈마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미쳐 날뛰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찢어지도록 아플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 등여산은 이미 겪었다.

자신이 혈마가 되어서 날뛸 때, 등여산과 홀리는 묵묵히 자신을 이끌어 주었다.

얼마나 고마운 여인들인가.

“이제는 내가 해줄게. 어떻게든 내가 해줄 테니까. 몸만 견뎌내. 견뎌내기만 하면 돼.”

호발귀는 등여산을 꼭 껴안고 속삭였다.

툭!

생기도를 풀어냈다.

등여산은 벌떡 일어서지 못했다. 생기도를 푸는 즉시 혈마가 되어서 날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너무 잠잠하다. 마치 혼절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렇구나! 생기도는 뇌와 몸을 갈라놓는다. 당연히 상당한 타격을 준다.

그 타격을 완화하고 다시 일어설 때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생기도는 절대 좋지 않다. 얼마나 좋지 않았는지는 모르겠는데, 등여산의 상태를 보니 좋은 게 아니다.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까?

“킥킥! 킥!”

등여산이 괴소를 흘리기 시작했다.

드디어 혈마가 나온다!

호발귀는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았다.

혈마는 준비할 필요가 없다. 다만 조견을 놓치면 혈마 대 혈마의 싸움이 된다. 그때는 파탄이다. 그러니 조견을 놓치지 않도록 단단히 주의해야 한다.

사실, 호발귀는 약간 긴장했다.

상대가 사랑하는 여인이다. 이 여인을 다치게 할 수 없다는 마음이 긴장감을 불러왔다.

“키키키!”

등여산이 어깨를 들썩이면서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몸은 완전히 정상이다. 단중혈은 깨끗하게 아물었다. 천령혈도 소통이 자유롭다. 진기도 마음대로 쓸 수 있고, 혈기도 마음껏 뿜어낸다.

천살단주에게 당한 충격도 모두 빼냈다. 뇌의 붓기가 완전히 가셨다.

“키키키키킥!”

그녀가 눈을 뜨고 호발귀를 쳐다봤다.

순간, 눈과 눈이 마주쳤다.

새빨간 눈동자와 새빨간 눈동자가 서로 부딪쳤다.

호발귀처럼 등여산의 눈동자도 새빨갛다. 혈기에 물들어 있다. 완벽한 혈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감도는가 싶었다.

착각이다. 혈마는 미소를 흘리지 않는다. 오직 눌러 죽여야 할 생기만 본다. 순간!

파아아앗!

그녀가 쾌속하게 손을 뻗어서 호발귀의 목을 잡아왔다.

쉬잇!

호발귀는 간발의 차이로 그녀의 손길을 피해냈다.

혈마 대 혈마일 때, 등여산은 절대 호발귀에게 뒤지지 않는다. 빠름과 속도가 비슷하다. 혈기의 강약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혈기는 진기가 아니다.

여기서 호발귀가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일단 생기격타를 할 수 있다. 생기로 등여산의 생기를 눌러버리면 힘을 쓰지 못한다. 또 혈기로 혈기를 쳐서 허공 속으로 흐트러뜨릴 수 있다.

생기도로 무너트리는 것도 가능하다.

할 수 있는 것은 무척 많다. 하지만 어느 것도 등여산에게 도움이 안 된다.

호발귀는 오히려 자신의 혈기를 짓눌렀다. 정확히 말하면 조견으로 혈기를 눌렀다. 동시에 진기까지 주저앉혔다. 어떻게 보면 살아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사기를 일으킨 것과 똑같은 상태다.

그러자 등여산이 공격 목표를 잃어버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호발귀가 바로 옆에 있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스읏!

호발귀는 등여산의 등 뒤로 돌아갔다.

등여산은 눈뜬장님이 되었다. 호발귀가 매우 여유 있게 움직였는데도 감지하지 못한다.

‘이거였여!’

의외로 사기는 일으키기 쉽다. 생기만 누르면 된다.

물론 호발귀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귀검이나 천살단주, 혈천방주 같은 경우에는 몸에 극심한 무리가 온다. 진기로 사기를 끌어내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길이다.

하지만 생기를 사용하는 자는 생기를 가라앉히기만 하면 사기가 드러날 수 있다.

물론 이 사기는 가짜다.

진짜 사기는 오직 생기 소멸에서만 일어난다. 생기가 흩어진 상태를 사기라고 하는데, 사실상 사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생기가 없는 텅 빈 자리일 뿐이다.

‘눈치채지 못했다.’

탁!

호발귀는 등여산의 등을 가격했다.

공격 수법은 삼마돌각수다. 원래는 혈기를 사용해서 강력하게 타격할 생각이었지만, 차마 사랑하는 여인을 칠 수 없었다. 그래서 건드리는 선에서 그쳤다.

“키키키킥!”

등여산이 즉시 뒤돌아섰다.

하지만 그녀는 눈앞에 있는 호발귀를 찾지 못했다.

완벽하게 생기를 눌러버리자 혈마가 찾을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렸다.

호발귀는 다시 진기를 탁! 터뜨렸다.

쒜에에에엑!

등여산이 즉시 공격해 왔다.

그녀의 손에서 번갯불이 번쩍 빛났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태산파의 절기 태산금나를 펼쳤다.

휘리리리릭! 휘릭!

손 그림자 수십 개가 호발귀를 후려쳤다.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혈마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이 수련했던 무공을 터뜨린다.

등여산이 태산파의 무공을 사용하듯이 자신도 혈마무공을 펼쳤을 것이다. 혈천도법, 마영심도 등등이 거침없이 터져 나갔을 것이다. 혈기까지 담고.

타악!

호발귀는 손가락을 마주쳐서 귀화미요공을 터트렸다. 그리고 즉시 진기를 눌러서 가라앉혔다.

스읏!

홀리의 등 뒤로 돌아섰다.

‘제발 눈치채라!’

하지만 등여산은 또다시 공격 목표를 잃어버렸다. 이미 떨쳐낸 태산금나가 목표를 잃고 허우적거린다.

‘이번에도……’

등여산이 목표를 잃자, 호발귀는 다시 삼마돌각수를 일으켰다. 그녀의 등을 찍을 참이다.

한데, 갑자기 등여산이 동굴 밖을 향해 쏜살같이 달려나갔다.

“훗!”

호발귀는 깜짝 놀라서 즉시 따라붙었다. 그리고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생기도를 쏟아냈다.

퍼억!

등여산이 힘을 잃고 무너졌다.

호발귀는 재빨리 달려가서 무너지는 그녀의 몸을 받아 안았다.

등여산은 죽은 사람처럼 고개를 툭 떨궜다.

생기도를 너무 심하게 쳤나? 그래서 목숨을 잃은 것인가? 뭐가 잘못되었지?

호발귀는 가슴이 철렁 무너졌다. 혹시 죽은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숨을 쉰다.

“하아!”

호발귀는 안도의 한숨을 토해냈다.

등여산은 새근새근 아주 곱게 쉰다. 언제 혈마가 되었냐는 듯이 아주 편하게 쉰다.

아! 미치겠다. 이 여인을 어떻게 정상으로 되돌릴까.

등여산의 생기는 기분이 좋고 나쁨에서 일어난다.

감정의 변화다. 그러면 어떤 감정에 가장 심한 반응을 보일까? 여인이라면 당연히 깨끗한 것인데…… 등여산은 더러운 것과 깨끗함에 대한 개념이 거의 없는 편이다.

그녀는 털털하다. 그녀의 집무실은 늘 온갖 서적으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물론 그녀는 어떤 책이 어디에 있는지 정확히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뛰어난 기억력 때문이지 정리 정돈이 잘 되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녀의 집무실은 늘 쓰레기장을 방불케 했다.

그렇다면 등여산이 가장 기분 나쁜 일은 무엇일까? 정신의 쇠락이 아닐까?

등여산은 책사다. 책을 많이 읽고, 생각을 깊게 한다.

온갖 정보를 분석한다. 그녀가 글을 많이 읽었다는 것은 기억하고 이해한 것이 많다는 뜻이다.

글은 눈으로만 읽어서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러니 정신에 쇠락이 일어났을 경우, 그녀는 가장 기분이 안 좋을 것 같다.

호발귀는 등여산의 몸을 꼼꼼히 점검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충실하게 생기를 더듬어 나갔다.

등여산의 혈기는 머리 앞부분에서 일어난다.

혈기가 일어난 후 뇌가 부풀어 오르는 현상 또한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녀의 혈기 자체가 뇌를 망가뜨린다. 거기에 천살단주에 혈마 제법이 또 뇌를 망가뜨리는 방법이다.

혈마가 진행되면 될수록 그녀는 기억을 잃어간다. 오성(悟性)을 잃는다.

“후우!”

호발귀는 한숨을 내쉬었다.

첩첩산중! 어떻게 혈마를 알아갈수록 더 심한 난관이 생긴다.

이백 년 전 혈마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이백 년 전의 혈마는 조견에 이르지도 못했다. 그는 조견 직전에서 멈췄다. 모두 자진하는 것으로 결말을 냈다.

그런데도 혈마무공을 수집해서 남겨놓고 보편적인 구혼음소까지 만들어 놓은 걸 보면, 그도 고심깨나 했던 것 같다.

“이스 트리하 틀하 뎅간 니아만……”

호발귀는 진결을 읊조리기 시작했다.

구혼음소다. 오직 등여산에게만 특화된, 그녀에게만 통하는 구혼음소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등여산을 죽이기 위해서? 아니다. 구혼음소라고 해서 반드시 죽음을 불러오지는 않는다. 오히려 생기를 북돋아 줄 수 있는 진결이 되기도 한다.

이백 년 전 혈마는 삶의 구혼음소를 읊을 여유가 없었다. 아니, 이런 진결이 있다는 것을 알지도 못했을 것이다. 삶의 진결은 혈기를 환히 꿰뚫어 볼 때나 보인다.

조견, 심등을 밝힌 자만이 삶의 구혼음소를 본다.

“카우 아만. 테리말라흐 에네기 알라늠 세메스타……”

호발귀는 등여산에 생기를 북돋아 주었다.

혈기를 제거하지는 않지만, 지금, 이 상태에서 몸이 더 나빠지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생기를 북돋아서 머리를 보호한다.

이 진결은 글자가 아니었다. 구혼음소를 글자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구혼음소나 혈마록을 글자로 생각해서 해독하려고 한 것 자체가 무모한 짓이다.

혈마록에 쓰인 글도 고대 언어가 아니다.

혈마록을 고대 언어로 생각하고 연구하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그런데 등여산은 혈마록에서 혈마무공 일부를 해독해냈다.

이건 뭐라고 해석해야 하지? 언어가 아닌데 언어로 생각하고 풀이해 낸 것은? 엉터리가 분명한데, 그래도 혈마 무공 일부를 해독해냈으니…… 기가 막힌다고 해야 하나?

혈마록과 구혼음소는 언어가 아니다. 우주의 진동이다.

호발귀의 머릿속에서 혈마록과 구혼음소의 진실한 내용이 순식간에 풀어 헤쳐졌다.

몸의 진동과 우주의 진동을 맞춘다.

서로의 진동이 합일되면, 평화가 찾아온다. 진동이 불협(不協)하면 혈기가 일어난다.

진동! 진동을 울린다.

이 진동은 오직 등여산에게만 맞춘다.

혈마 개개인에게 맞는 구혼음소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구혼음소는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원래부터 있던 것을 찾아낸 것이다. 진동의 흐름을 쫓아가기만 하면 된다. 삶의 구혼음소와 죽음의 구혼음소가 동시에 파악된다.

“등매, 다시 시작해 볼까?”

타악!

생기도를 풀었다.

역시 등여산은 꼼짝도 하지 않는다. 생기도를 푸는 순간부터 혈마가 되기까지 약간의 시간이 걸린다. 이것도 이번에 새롭게 알아낸 사실이다.

도천패는 생기도를 푸는 순간에 혼절했다. 당홍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즉시 일어났다.

혈기가 짙어질수록 생기도는 심각한 손상을 준다.

“키키키키킥!‘

등여산이 괴소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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