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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39화 (439/500)

第八十八章 사기재현(死氣再現) (4)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찰나에 불과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사이에 많은 일이 벌어졌다.

도천패가 괴성을 토해냈다. 드디어 도천패가 혈마 상태로 들어갔다. 누가 봐도 혈마다.

순간, 귀검과 호발귀의 눈이 마주쳤다.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귀검은 자신이 전력을 다해도 호발귀가 막아낼 것을 안다. 하지만 혹시나 해서 눈길 한 번 주었다.

호발귀가 귀검의 눈짓을 알아채고 고개까지 끄덕였다.

도천패는 완벽한 혈마 상태다. 이제 혈마자심을 펼친다. 귀검과 도천패, 둘 중 한 명은 죽는 검이다.

스읏!

귀검은 도천패와 진기를 연결했다. 그리고 죽음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 일신의 진기를 모두 버렸다. 암흑 속에 몸을 던졌다. 오직 선 하나에 의지해서 흘러 들어간다.

까앙!

예상치 못한 소리가 울렸다.

귀검의 귀에는 ‘퍽!’하고 살을 파고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어야 한다. 왜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나? 다시 선을 찾는다. 다시 검을 쓴다.

그 순간, 도천패의 진기가 뚝 끊겼다.

지옥유부검을 펼치는 동안에는 귀검도 자신이 누구인지, 어떤 환경에서 검을 펼치는지 알지 못한다. 무의식 속에서 오직 선만 따라간다. 그리고 ‘퍽!’ 소리와 함께 깨어난다.

“크윽!”

귀검이 신음을 흘렸다.

혈마자심이 두 번이나 무너졌다.

미리 호발귀와 행동을 맞춘 후에 펼친 검공이지만, 지옥유부공이 깨졌다는 자괴감이 퍼뜩 일어났다. 물론 귀검이 의지로 떠올린 생각은 아니다. 본능적으로 일어난 생각이다.

싸움은 끝났다.

지옥유부검을 봤다.

희한한 것은 귀검이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는 점이다. 그런데도 도천패는 멍청하게 가만히 서 있었다.

이것은 호발귀가 경험한 지옥유부검과도 다르다.

호발귀는 지옥유부검이 매우 빠르다고 생각했다. 귀검이 자신의 진기를 놓치고 갈팡질팡했지만, 그전까지는 확실히 천하제일 쾌검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무방했다.

그런데 옆에서 직접 보니 매우 느리게 움직였다.

호발귀는 이번에 지옥유부공을 보는 것과 동시에 다른 시험도 해봤다.

자신의 혈기를 강하게 일으켰다.

그런데 도천패의 혈권에 걸려들지 않았다. 해자수나 당홍의 혈권에도 잡히지 않았다.

도천패의 입장에서는 혈권에 잡히지 않은 사람이 두 사람이나 생긴 셈이다.

귀검과 호발귀.

이 둘이 쳐낸 검을 전혀 보지 못했다. 호발귀가 무령환살공을 당했을 때처럼.

도천패는 혈마가 되었지만, 눈뜬장님이나 마찬가지였다.

호발귀는 도천패의 목 뒤 아문혈을 찔렀다. 그리고 목 앞 염천혈까지 생기를 그어 넣었다.

생기가 도천패를 일직선으로 관통했다.

등여산과 홀리를 제압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도천패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머리와 신체가 분리되면서 힘을 잃었다.

호발귀는 도천패의 혈기를 태웠다. 그리고 그를 마비시킨 염천혈 생기도 흩날려버렸다. 도천패를 혈기가 일어나기 이전 상태로 돌려놓았다.

그런데도 도천패는 깨어나지 않았다.

혈기를 전폭적으로 일으켰기 때문에 혈기가 소멸될 때 받는 충격도 컸다.

도천패가 눈을 떴다.

그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위를 돌아봤다.

“뭐야? 진 거야?”

도천패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괜찮아?”

당홍이 염려스러운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멀쩡하지. 내가 몸 하나는 탄탄하게 타고 태어났잖아.”

“팔 봐. 멀쩡한가.”

도천패가 손목을 쳐다봤다.

손목에는 거친 검흔이 대여섯 개나 새겨져 있다.

금창약을 바르고 생기로 상처를 치료해서 거의 아문 상태다. 하지만 그래도 검흔은 남아있다. 매우 강한 검을 맞았다는 기억만큼은 아직도 뚜렷하다.

“귀검은?”

“저기.”

당홍이 한쪽 구석에서 거친 숨을 토하고 있는 귀검을 가리켰다.

“왜 저러고 있어?”

“호발귀가 치료를 해주지 않아. 알잖아. 건들면 혈마가 되는 것. 한 사람이라도 덜 건드려야지.”

꼭 그래서 생기 치료를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직도 지옥유부공을 더 봐야 한다. 혈마가 사기(死氣)를 찾아낼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방법을 찾지 못했다.

“이거 괜히 미안해지네. 패한 나는 멀쩡한데, 이긴 사람이 저러고 있으니.”

도천패가 귀검에게 걸어갔다.

“이겼다며?”

귀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할 힘도 없어 보인다.

“앞으로 이틀은 이러고 있어야 한다고 들었는데. 너무 희생이 큰 거 아냐?”

“정작 큰 문제는 혈마를 제거할 수 없다는 데 있지.”

“호발귀?”

“주군이 혈마가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하는데, 막을 방법이 없어. 주군께 내 무공은 안 통해.”

“우리가 잡을 방법은 없나?”

귀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호발귀는 혈마 중에서도 최상위에 포진한다. 다른 모든 혈마를 짓누른다. 귀검에게 진기를 드러내지 않은 것처럼, 다른 혈마에게도 자신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사람을 무슨 수로 잡나.

“어쨌든 한 가지는 알았네. 혈마가 되는 순간, 우리는 바로 끝장난다는 것.”

도천패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무공 네 개만 피하면 되지. 무령환살공, 사령청공, 암약혼기, 지옥유부공.”

“그 무공을 피할 방도가 있어야지. 혈마가 되면 제일 먼저 나타날 무공들인데. 후후!”

도천패도 마주 웃었다.

“걱정하지 마. 그놈들에게 끌려갈 일은 없어. 그 전에 내가 죽여주면 되니까. 약속하지. 천살단이나 혈천방에 끌려가기 전에 죽여준다고. 하지만 주군은…… 방법이 없어. 휴우!”

귀검이 한숨을 내쉬었다.

호발귀는 귀검이 지옥유부공을 펼친 후, 축 늘어진다는 점에서 활로를 찾았다.

힘든 곳에 길이 있다.

지옥유부공은 결코 쉽게 펼칠 수 있는 공부가 아니다. 숱한 고련 끝에 간신히 터득한 절공이다. 구결을 안다고 해서 누구나 펼칠 수 있는 무공이 아니다.

그런 면에서 주치균은 타고난 무인이다. 그는 무령환살공을 단시일 내에 수련했다.

마공관에 소장된 무공치고 쉬운 공부가 없다. 모두 평생을 수련해도 터득할까 말까 한 절공들이다.

주치균이 너무 쉽게 터득해서 쉬운 공부처럼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주치균 외 다른 세 사람, 천살단주나 혈천방주, 귀검은 거의 몇십 년 동안 한 가지 무공에만 매진해왔다. 그들이 암약혼기를 펼치고 사령청공을 펼치는 것은 고련의 결과다.

해답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고련(苦練)!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생기를 훈련시킨다.

가능할지는 해봐야 안다. 호발귀도 어떤 결과가 나올지 전혀 알지 못한다. 지금은 조그마한 단서라도 잡으면 무조건 해보는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 동굴 안으로 들어오면 안 됩니다.”

호발귀가 침착하게 말했다.

“동굴 안은 혈기가 휘몰아칠 겁니다. 누구든 들어오면 당장 혈기에 휘말릴 거예요?”

“정말 하려고?”

당홍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해봐야죠.”

“그럼 내가 할게. 내가.”

해자수가 나섰다.

동굴 안에는 등여산과 홀리가 있다. 혈마가 된 상태로 얌전히 잠들어 있다.

호발귀는 그녀들을 깨우지 않을 생각이다.

깨우기는 하겠지만 혈기는 풀지 않는다. 혈마가 된 상태에서 사기에 적응하는 훈련을 시킨다.

“혈마가 여섯 명 있는데, 두 명이 내 아내예요. 팔이 안으로 굽지, 밖으로 굽습니까? 제 여인들부터 무사하게 만든 후에 시간남으면 다른 분도 돌보든지 말든지. 뭐? 불만 있어요?”

호발귀가 말했다.

모두 무겁게 짓눌린 표정으로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가 웃긴 말을 했지만, 전혀 웃을 수 없었다.

호발귀는 지금 두 여인에게 사기에 저항할 수 있는 수련을 시키려고 한다.

수련은 일단 등여산부터 시작한다.

등여산의 혈기가 가장 강하다. 다행히 호발귀는 혈마를 제압할 수 있는 마선(痲線)을 찾아냈다.

아문혈에서 염천혈에 이르는 생기의 길이다.

호발귀는 일직선으로 꽂히는 생기의 길, 몸과 머리를 끊어버리는 마비의 선을 생기도(生氣刀)라고 명명했다.

생기의 칼!

생기도를 사용하면 혈마는 머리는 움직이되 몸이 움직이지 않는 상태가 된다.

그 상태로 혈기를 풀지 않는다.

그러면 일부러 혈마가 될 때까지 자극할 필요가 없다. 계속 혈마인 상태에서 지옥유부공을 펼치고, 펼치고, 또 펼친다. 사기에 반응할 때까지 고련을 시킨다.

물론 호발귀가 펼치는 것은 지옥유부공이 아니다. 하지만 호발귀 역시 다른 혈마의 눈을 속일 수 있다. 감쪽같이 등 뒤에 나타나서 생기도를 쳐낼 수 있다.

호발귀가 등 뒤로 돌아가는 순간, 등여산이 반응을 일으키면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염려스러운 부분도 있다.

생기도는 이번에 발견한 길이다. 생기도가 혈마를 잡아두지 못하면 자칫 혈마 대 혈마의 싸움이 벌어질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에는 등여산을 죽여야 할 수도 있다. 충분히 혈마를 제압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사람 일은 모르는 것이니까.

이 고련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성공한다면 천군만마를 얻게 될 것이다. 이후부터는 혈마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호발귀밖에 없게 되니까. 귀검이나 천살단주, 혈천방주도 혈마를 손대지 못하니까.

지옥유부공, 무령환살공, 암약혼기, 사령청공이 무휴가 된다.

그들의 선의의 뜻으로 혈마를 잡겠다면 호발귀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혈마를 사로잡아서 자신들의 사욕을 채우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정조 유린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내 사람들을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둘 수는 없지 않나.

“정말 괜찮을까? 그렇게 여러 번 생기도를 맞으면 잘못될 수도 있어. 혈기가 어떻게 반응할지도 모르고.”

“잘못돼도 이해해 줄 겁니다. 이 방법밖에 없어요.”

사실 호발귀가 취하는 방법은 여태까지 그 누구도 해보지 않은 것이다.

우주의 기운을 훈련하다니 이게 말이나 되나.

호발귀는 생기가 혈기로 변하는 점에 착안했다. 생기에 악심을 더하면 혈기가 된다. 그렇다면 생기에 다른 느낌도 얹을 수 있지 않을까?

계속 사기로 숨을 끊다 보면, 언젠가는 혈기가 위험을 느끼고 반응하는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 또 어쩌면 영원히 그런 순간이 안 올 수도 있다.

“이거 하루에 몇 번이나 할 수 있는데?”

“일단 등매의 상태를 봐야죠. 생기도를 맞은 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모르니. 괜찮으면 계속하고, 위험하다 싶으면 중단하려고 하는데, 잘 될지 모르겠어요.”

“위험하다 싶으면 당장 그만둬.”

“그래야죠.”

“일단 혈기를 풀면 정상적으로 살 수는 있잖아. 그러니까 정말로 위험하면 당장 그만둬.”

당홍이 신신당부했다.

지금 혈기를 풀면 정상인이 된다. 싸움이 시작되고 두 시진 쯤 지나면 혈마가 된다.

이 시간은 점점 짧아진다.

혈기가 왕성한 등여산이라면 고작 한 시진이면 혈마가 될 것이다.

등여산은 이미 혈마 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나중에는 반 시진이면 혈마가 될 것이고, 그다음에는 싸움이 일어나자마자 혈마가 될지도 모른다. 종래에는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이고.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저는 등매와 홀리를 수련시킬 테니까, 다른 방법이 또 없을지 생각해 봐요.”

호발귀가 당홍과 귀검에게 부탁했다.

“알았어. 최대한 해볼게.”

당홍이 대답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그래도 너라도 멀쩡하니까 다행이다. 너마저 혈마가 됐으면 어쩔 뻔했어. 네가 멀쩡하니까 이렇게라도 할 수 있지. 여긴 걱정하지 말고 들어가 봐.”

당홍이 말했다.

밖에는 절정 고수가 다섯 명이나 있다.

이제 궁충도 점점 생기를 깨달아 가는 것 같다. 어떤 느낌을 잡은 것은 확실하다.

화살을 쏘면 이백 장까지는 가지 않아도 백오십 장은 넘어간다.

이미 생기를 알아냈다는 거다. 이제 이 상태를 조금 유지하다가 혈기를 일으키기 시작한다. 하지만 혈기를 일으킬 동안 최소한 한 달 이상은 현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아마도 누군가가 동굴로 침입한다면 귀검과 궁충이 적극적으로 싸워야 할 것이다.

그들이 밀릴 때, 도천패와 당홍, 해자수가 나선다.

위험인물은 최대한 싸움을 자제한다.

“그럼!”

호발귀는 모두에게 눈인사하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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