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八章 사기재현(死氣再現) (3)
깡! 까까깡! 까아앙!
두 사람은 격렬하게 부딪쳤다.
두 사람은 비무를 하는 게 아니다. 아예 처음부터 결전 양상을 띠더니, 점점 살기까지 짙어진다. 내뿜는 칼에 반드시 상대를 죽이겠다는 살심이 담겼다.
도천패는 혈기를 띄니 당연하다.
귀검도 아예 처음부터 살기를 싣고 검초를 전개했다. 극쾌로 극강을 짓누를 생각이다.
깡! 까까깡! 까앙! 까깡! 까아앙!
귀검은 도천패의 대력도강을 빠름으로 잡아챘다.
쏟아지는 폭포를 한 번 쳐서 방향을 비튼다. 비틀어진 칼날을 또 한 번 쳐서 아예 빗나가게 만든다. 세 번째 검초는 곧바로 도천패의 머리를 노린다.
쿠웅!
도천패가 뒤로 물러섰다.
도천패는 귀검과 정면승부를 벌이지 않으려고 애썼다. 일어나는 생기를 억누르려고 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도천패의 몸은 혈기로 휘감겼다.
귀검은 도천패를 빠른 시간에 혈마로 만드는 데 성공했다.
“굉장하군. 천살단주와는 또 달라. 빠름만 논한다면 천하제일이야.”
해자수가 감탄했다.
생기로 일으킨 대력도강을 쾌검으로 나눠서 받아친다.
원래 지옥유부공은 무광검이다. 검광이 새어나가지 않는다. 이 말은 검에 진기를 싣되, 진기의 강함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진기가 전혀 실리지 않은 검법처럼 보인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두 사람의 싸움이 한 시진을 넘겼다.
도천패의 칼이 점점 살기를 띄어갔다. 대도가 귀검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 난 것처럼 거칠게 쏟아졌다.
꽈앙! 꽝! 꽈아앙!
도천패는 연신 후려쳤고, 귀검은 물러서기 바빴다.
시간이 흐르자, 싸움의 결과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토록 빠르던 귀검이 점점 느려졌다. 진기가 고갈되고 있으니 당연하다. 전력을 다해서 맞받은 지 벌서 한 시진을 넘겼다. 숨이 턱에까지 차오르고 입에서는 단내가 풍긴다.
“후우우욱!”
귀검이 거친 숨을 쏟아냈다.
귀검은 이런 점을 미리 알고 시작했다.
도천패가 대도를 마구잡이로 휘둘러도 귀검은 묵묵히 방어만 해야 한다. 완벽한 혈마가 될 때까지…… 그러니 싸움 초반, 두 시진이라는 시간은 귀검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시간이다.
더욱이 도천패가 전개한 칼은 상상 이상으로 강했다.
당금 무림에서 이런 칼을 받아낼 사람이 귀검 말고 또 있을까 싶다. 아니, 있기는 하다. 천살단주가 해자수와 거의 두 시진 가까이 싸웠다.
“크크크크!”
드디어 도천패의 입에서 괴소가 흘러나왔다.
쒜엑! 쒜에엑!
도천패의 칼이 갑자기 변했다.
지금까지는 그래도 초식이라는 것을 가미했는데, 이제는 일절 변초가 없다. 대신 무척 빠르고 강하다. 피할 수가 없다.
쫘아아악!
허공이 두 쪽으로 갈라졌다.
귀검도 피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몸이 칼날에 갈라진다. 한데…… 귀검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옆으로 쭉 빠졌다. 신법으로 아슬아슬하게 피했다.
꽈아앙!
대력도강이 달리 대력도강이 아니다. 집채만큼 큰 바위가 두 쪽으로 쫙 갈라졌다. 빗겨 친 칼날에 아름드리 거목이 단숨에 잘려서 나뒹굴었다.
대력도강은 도법 자체가 신도(神刀)다. 더군다나 도천패같이 장사인 자가 휘두르는 칼, 거기에 생기까지 덧붙여진 칼은 감히 맞받을 사람이 없다.
귀검의 검도 만만치 않다.
귀검은 대력도강과는 전혀 다르다. 완전히 속으로 감춰져서 보이지 않는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면 눈앞에 검이 다가와 있다. 벌써 몸을 찌르는 중이다.
파앗!
도천패의 손목에서 피가 튀었다.
이것은 확실히 의외다. 생기로 쳐낸 도강을 진기로 쳐낸 검기로 잘라냈다.
의외로 귀검이 먼저 승기를 잡았다.
스으읏! 스읏! 스스스슷!
귀검은 매우 빠르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무형검이 번뜩였다. 검은 보이지 않고 도천패의 양 손목에서 핏줄기가 줄줄 흘러내린다. 연신 손목을 친다.
귀검이 봐주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생기로 쳐내는 대력도강 앞에서는 귀검도 감히 방심하지 못한다. 오히려 전력을 다한 결과가 이 정도 선에서 그친다. 절정검 지옥유부공이 겨우 손목을 긋는 데 그치고 있다.
“크크크크크!”
도천패의 입에서 연신 괴소가 흘러나왔다. 피를 보자 혈기가 더욱 충천했다.
까앙! 깡! 까까깡! 까아앙!
두 사람은 팽팽하게 맞섰다.
도천패는 광풍폭우였고, 귀검은 말 그대로 번뜩이는 번갯불이다.
귀검이라는 말이 어떻게 해서 나왔는지 알겠다. 눈앞에 도깨비처럼 무엇인가가 번뜩인다. 그러면 반드시 검이 흘러든다. 형체는 보이지 않고, 상처만 남긴다.
도천패가 사용하는 생기 무공은 육안이나 느낌에 의존하는 바가 크지 않다. 생기를 쫓는 무공의 특성이다. 오직 생기만 노린다. 삶을 무너트릴 생각만 한다.
파아아앗!
호발귀는 푸른 빛을 보고, 당홍은 나비가 되어서 난다. 도천패는 점을 본다.
두 발이 땅에 꽉 붙은 채 점들이 생긴다.
이 점은 당홍과 같다. 당홍은 나비가 되어서 날아올랐을 때, 점이 생긴다. 도천패는 두 발을 꽉 붙여야지만 점이 생긴다. 쌍학의 영향이다.
귀검이 아무리 신출귀몰하게 움직여도 역시 점의 흐름이다. 또 작은 점도 아니다 매우 큰 점이다. 그러니 어김없이 몸통을 가격할 수가 있다.
꽈아아아앙!
하늘에서 떨어진 칼날이 점을 반으로 갈랐다. 틀림없이 갈랐다. 그런데 다시 점 옆에 또 하나의 점이 생겼다. 그리고 도천패가 갈라친 점이 옆으로 옮겨간다. 옆으로 옮긴 점이 도천패만큼이나 빠르게 반격해 온다.
귀검이 어느새 도천패의 칼을 피하고 재차 반격한다.
이것은 지옥유부공이 무기(無氣)이기 때문에 가능하다. 진기가 겉으로 드러났다면 상당히 곤욕스러웠을 것이다. 천살단주도 해자수에게 쩔쩔매지 않았나.
“이거 지옥유부공…… 대단한데.”
“두렵네요. 지옥유부공이 저 정도로 강할 줄은 몰랐는데.”
“저 정도는 되니까 혈마를 죽인다고 장담했겠지.”
해자수와 당홍이 감탄을 터뜨렸다.
“귀검께서는 인귀가 되신다고 하셨는데 이미 인귀셨군요. 저도 혈마와 맞상대할 줄은 몰랐습니다.”
궁충이 말했다.
“인귀?”
“혈마를 혈귀라고 하고 사람이 혈마의 경지에 이르는 걸 인귀라고 하셨죠.”
“왜 하필 귀신[鬼]이야. 그 귀 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만 혈귀나 혈마나 도긴개긴. 이해하지, 이해해.”
해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인기 된 게 맞네. 저 정도 검이면 인귀라고 불러줘야 해. 그러나저러나 계속 저렇게 맞고 있을 건가? 생기를 제대로 쓰고 있는 거 맞아?”
당홍이 속상해서 투덜댔다.
도천패의 양 손목은 혈흔이 낭자했다.
“나도 천살단주하고 싸워봤는데, 저 인간은 또 다르네. 둘 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은 맞아.”
“천살단주는 몸의 유연함이 대단했다면서요?”
“대단했지. 그 인간…… 사람이 아니라 문어 같다는 생각을 했어. 차후에 부딪히면 참고로 해. 어느 상황에서도 몸이 꺾여. 반격도 이상하게 들어오고.”
해자수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지금 도천패도 기가 막힐 것이다. 자신이 펼칠 수 있는 모든 방위로 광풍폭우가 쏟아져 나가는데, 그 속에서 유유히 그림자가 번뜩번뜩 빛난다.
그림자는 폭우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어떤 때는 폭풍우에 휩쓸리다가도 어떤 때는 꿋꿋이 서서 버티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대력도강과 똑같은 속도로 옆으로 흐른다. 굉장히 빠른 자다
그렇다. 귀검의 무공은 쾌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인간이 펼칠 수 없는 바람, 그런 검이었기 때문에 광풍폭우를 맞이해서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는 것이다.
깡! 까까깡! 까아앙!
대도와 검이 부딪혔다.
귀검이 들고 있는 가느다란 검으로는 대도를 막아낼 수가 없다.
대도와 검이 부딪치면 검은 두 동강 난다. 하지만 귀검은 검으로 대도를 막고 있지 않나? 맞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대도를 정면으로 받지 않는다. 항상 검배로 튕겨낸다.
도천패의 생기가 위력을 더해가자, 귀검도 검초를 제대로 쓰지 못했다. 속도도 많이 느려져서 이제는 두 사람의 빠름이 비슷하게 어우러졌다.
도천패가 귀검의 빠름을 따라잡고 있다.
귀검은 대도가 달려오는 것을 정면으로 받아치지 않고 몸 옆으로 흘러가게 한 다음, 살짝 반격한다.
하지만 귀검의 검에는 막강한 진기가 실려 있다. 두 병기가 부딪칠 때마다 손목을 시큰 저려 울리는 충격이 전해진다.
깡! 까까깡! 까아앙!
두 사람의 싸움이 얼추 반나절 넘겼다.
귀검이 두 시진을 버틸지 의문스러웠는데 버텨내고 있다. 하지만 그의 몸은 만신창이다.
처음에는 도천패를 압도했다. 유리하게 손목을 그어냈다. 하나 이제는 피하기 급급하다. 그가 아무리 귀신처럼 번뜩였다고 해도 도천패의 칼은 이미 정상 범주를 넘어섰다.
쫘아아아악!
칼이 몸을 긋고 지나갔다.
귀검의 등에서 핏물이 튀었다.
두 사람은 비무가 아니다. 실전이다. 하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호발귀도 말리지 않는다.
귀검은 지극히 평온하다. 몸이 갈라지고 피가 솟구쳐도 그의 눈빛은 차게 가라앉아 있다.
도천패에게는 분명히 허점이 있다. 하지만 달려들지 못했다. 틈이 있어도 공격할 수 없다. 이제 도천패의 반사신경은 거의 맹수에 가깝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머리는 얼음처럼 차가워야 한다.
깡! 까까깡! 까앙!
검과 칼이 거세게 부딪쳤다.
귀검이 버티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물러섰다.
“크크크크! 크크크크큿!”
도천패의 눈에 혈광이 감돌았다. 입에서 튀어나오는 괴소는 소름 끼치도록 진해졌다.
“혈마!”
“아!”
도천패는 기어이 혈마가 되었다.
도천패가 혈마가 되자, 해자수와 당홍의 혈기도 꿈틀거렸다.
웃기는 이야기이지만, 도천패와 싸우고 싶다. 혈마를 혈기로 짓뭉개고 싶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하늘에서 칼이 떨어졌다.
꽈아앙!
귀검은 간신히 검을 들어서 칼을 막았다. 하지만 거력에 떠밀려서 뒤뚱거리면서 연달아 십여 보나 물러섰다. 그 순간,
쉐에에엑!
또다시 칼이 날아온다.
혈마는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막강한 힘을 발휘하면서 귀검을 따라붙는다. 귀검의 몸을 반으로 갈라버린다.
아! 피하지 못한다! 호발귀! 호발귀가 나서야 한다!
그 순간, 이미 칼이 귀검을 갈랐다. 누군가가 나서서 막아주기는 늦었다.
귀검의 몸이 두 쪽으로 갈라진다. 한데,
팟!
절체절명의 순간, 귀검의 신형이 허공에서 사라졌다.
부우우웅!
도천패의 칼이 허공을 그었다.
귀검은 이미 도천패 등 뒤로 내려섰다. 그리고 검으로 심장을 찔렀다. 몸 앞에서 심장을 찌르는 것이 아니다. 등에서부터 심장을 꿰뚫는다.
지옥유부공, 혈마자심이다!
타앙!
귀검의 검은 중간에서 막혔다. 완벽한 혈마자심이었는데, 누군가가 가로막았다.
스읏! 퍼억!
귀검의 검을 막아낸 호발귀는 바로 뒤돌아서서 도천패의 등을 격타했다.
퍽! 퍼억! 퍽퍽퍽퍽!
곧추세워진 손가락이 연신 도천패의 등을 격타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요혈에서 물과 불이 섞일 때처럼 치지직! 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혈기가 태워지고 있다.
“아! 혈마자심. 장담할 만하네. 도천패가 졌어.”
해자수가 말했다.
이 싸움은 완벽한 귀검의 승리다.
혈마가 되기 전, 극강과 극쾌가 부딪쳤다. 그리고 귀검이 우세했다.
생기가 극성을 향해 달리자 귀검이 밀렸다. 이번에는 도천패가 귀검을 유린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귀검을 끝낼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혈기가 충천했다. 혈마가 되었다. 그리고 터진 혈마자심은 정확히 심장을 겨냥했다.
혈마가 되기 전이나 되고 난 후나 모두 귀검의 승리다.
“커억!”
도천패가 신음을 흘리면서 쓰러졌다.
혈마가 되었다가 너무 급작스럽게 혈기가 소멸하면 마치 쇠망치로 두들겨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받는다.
도천패는 급격히 조용해졌다.
혈기를 너무 갑작스럽게, 일시에 태워버린 탓에 잠시 정신을 잃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