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八章 사기재현(死氣再現) (1)
호발귀는 귀검을 만났다.
“지옥유부검이 자신을 죽이는 검이라고 한 것 같은데.”
“네.”
“전에 도천패와 싸운 적이 있지? 나하고도 싸웠고. 하지만 그때는 지옥유부검을 쓰지 않았어.”
“그렇습니다.”
귀검은 묻는 말에 솔직히 대답했다.
지옥유부검은 두 종류가 있다.
인간에게 사용하는 검은 쾌검이다. 극쾌! 너무 빨라서 섬전밖에 느껴지지 않는 검법이 펼쳐진다.
혈마에게 사용하는 검초가 따로 존재한다.
인간에게 사용할 때는 자신을 죽일 필요가 없다. 자신을 죽인다는 말은 오직 혈마를 상대할 때만 쓰이는 말이다. 그리고 두 사람이 말하는 지옥유부검은 바로 이 검이다.
“지금 도천패와 해자수는 생기를 사용하잖아. 다시 싸우면 지옥유부검을 사용하겠지?”
“정확한 검명은 혈마자심이라고 합니다.”
귀검은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말했다.
“혈마의 심장을 찌른다. 그럼 심장에 철판 너덧 장을 붙이고 다녀야겠네.”
호발귀가 농담했다.
“지금 도천패와 싸운다는 순수한 혈마자심을 사용할 건가? 굉장히 강하잖아?”
“말했다시피 혈마자심은 혈마를 상대하기 위한 공부입니다. 혈마가 되기 이전과 혈마가 된 후의 검은 다릅니다. 혈마자심은 혈마가 된 후의 검입니다.”
“혈마가 되기 전에는 혈마자심은 쓰지 않겠다? 혈마를 이길 자신은 얼마나 되는데?”
“……”
귀검은 대답하지 않았다.
귀검은 언제나 승부에 관해서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는다. 상대가 아무리 하수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사자에게는 말한다. 병기를 들고 나서면 ‘망동하지 마라. 죽는다.’하고 경고한다.
“혈마자심은 어떤 무공이지? 단순히 혈마를 잡는 검? 아니면 필살검인가?”
“필살검입니다.”
“잡지는 못하고?”
“잡는 방법은 배우지 못했습니다.”
“날 주군이라고 부르면서 혈마가 되면 인정사정없이 죽이겠다? 너무하네.”
“혈마가 되면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이……”
“그 말을 더 기분 나빠. 그럼 내가 괴물이라는 거잖아?”
“……”
귀검이 침묵했다. 표정 변화조차도 없다.
“하! 정말 재미없는 사람이네. 계속 농담을 해도 받아주질 않아. 뭘 해야 이 사람을 웃기지?”
호발귀가 귀검을 빤히 바라봤다.
귀검은 혈의검의 유진을 따르지 않았다. 혈마가 되면 돌아오지 못하니 즉각 죽여야 한다는 것이 유진이다.
호발귀가 혈마가 되었을 때 바로 혈마자심을 펼쳤어야 한다.
그런데 그를 동굴에 가두고 묶어놨다.
혈마는 전해 내려오는 말과는 달리 가끔 제정신을 차린다. 다시 인간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이번에도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다.
반대로 말하면 호발귀가 다시 혈마로 돌아갈 것도 염려하고 있다. 지금은 인간이지만, 또다시 혈마 세계로 들어가는 일도 있을 것이라고 본다.
그때가 되면 혈마자심을 펼칠까? 그때 상황을 봐야 한다. 이제 인간으로 돌아오지 못한다고 생각되면 거침없이 죽음의 검을 떨쳐낼 사람이다.
귀검은 호발귀가 혈기를 다스릴 수 있다는 말을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는다. 호발귀의 말을 믿으면서도, 항시 혈마로 들어설 순간을 준비한다.
어쩌면 귀검은 정말로 웃을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항시 주군의 죽음을 생각하고 있어야 하니.
“혈마자심이라는 것, 병기와는 상관없겠지?”
귀검은 호발귀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상관없습니다. 수검(手劍)을 사용해도 관통됩니다. 혈마자심을 펼치면 혈마는 죽습니다.”
귀검이 손을 들어 보였다.
귀검의 손가락은 칼날 같다. 심장을 찌르면 살을 찢고 들어가서 심장을 꿰뚫을 수가 있다.
“필살검이라. 귀검, 우리가 검을 겨뤄본 지도 오래됐지? 한번 해볼까?”
“제 말, 기억합니까?”
생기격타를 하지 않고 검을 겨를 수 있을 때가 되면 언제든 상대해 주겠다!
생기로 진기를 누르면 힘을 쓸 수 없다.
귀검이 도천패나 해자수에게 자신감을 느끼는 것도 그들은 생기로 진기를 누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금 귀검이 하는 말도 바로 그 말이다.
예전의 호발귀는 싸움이 시작되기만 하면 생기를 눌렀다. 귀검의 생기도 눌렀다. 생기를 누르지 못하고 혈마무공을 사용할 때는 적수가 되지 못했는데, 어느 한 순간부터 귀검을 어린애 가지고 놓듯이 희롱했다.
생기를 누르면 싸움이 안 된다.
물론, 이러면 곧바로 혈마자심을 펼쳐야 한다. 필살검, 혈마와 귀검 중 한 명은 죽는다.
“생기로 진기(鎭氣)하지는 않을 거야. 어떤 영향도 주지 않아. 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내 자신의 생기는 최대한 끌어올릴 거야. 한 마디로 혈마가 된다는 거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귀검은 호발귀가 생기를 쓰겠다고 말했는데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생기로 진기만 건드리지 않으면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넘쳤다.
“아니, 혈마자심을 펼쳐달라고.”
“혈마자심은 혈마에게만 통합니다. 정신이 멀쩡한 사람에게는 통하지 않죠. 그런 점에서는 무령환살공과 같습니다. 암약혼기나 사령청공은 눈을 뜬 사람에게도 쓸 수 있으니…… 지옥유부공보다 한 단계 발전한 무공이라고 할 수도 있고.”
“그럼 눈을 감을게. 그러면 되잖아.”
“죽습니다.”
호발귀에 대한 경고다.
“해보자니까. 눈을 감고 생기를 끌어올릴 거야. 혈마자심을 펼쳐. 나를 죽인다는 게 어떤 건지 보려고. 부탁인데, 최선을 다해주기 바래.”
“혈마자심은 제 의지로 조절하지 못합니다. 부탁하지 않으셔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귀검이 일어섰다.
귀검은 호발귀가 무엇을 보고자 하는지 안다. 왜 지옥유부공을 보려고 하는지도 안다. 하지만 방법이 너무 위험하다. 단언컨데 혈마자심은 펼치면 죽는다.
휘링! 휘리리링! 휘링!
호발귀가 칼을 휘둘렀다.
혈천도법이다. 만근 바위도 단숨에 갈라버린다는 혈겁도가 사납게 휘둘러졌다.
칼날이 온 천하를 피바다로 물들일 듯 윙윙거린다. 엄청난 바람이다. 감히 저 칼바람 속으로 뛰어들 수 있을까? 아니, 지금은 곤란해. 속도가 죽기를 기다려야 해.
누구나 똑같은 생각을 할 것이다.
스읏!
호발귀가 혈겁도를 멈추고 조용히 섰다.
순간, 귀검이 기다렸다는 듯이 신형을 띄었다.
슈우우웃!
신형이 쏘아진다.
호발귀가 약속한 대로 진기를 누르지 않았다. 그리고 눈까지 꾹 감아버렸다.
휘르르르르릉!
혈천도법이 다시 펼쳐졌다.
이번에는 머리, 몸통, 다리를 따로 떼어낸다는 혈마삼분이다. 혈도가 정확하게 귀검을 노리고 쳐나갔다.
호발귀의 생기는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귀검을 잡아냈다.
지금도 호발귀에게는 사권이 존재한다. 물론 혈권도 그대로 유지된다. 귀검이 사권을 넘어서 혈권 안으로 들어왔고, 혈기는 당장 응징하려고 한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칼날이 귀검을 쪼개갔다.
귀검이 움직이는 것보다 혈도가 훨씬 빠르다. 누가 봐도 빠르다. 혈도는 고양이처럼 뛰는데, 귀검은 거북이처럼 느리게 움직인다. 속도 차이가 확 드러난다.
“아!”
지켜보던 사람들이 탄식을 토해냈다.
호발귀는 늘 경고했다. 혈권 안으로 들어서면 모두 죽일 수밖에 없다고.
실제로 그 말을 증명하고 있다. 어떤 식으로 죽이는지. 순간,
팟!
귀검의 신형이 혈도 앞에서 사라졌다.
귀검이 보인다. 혈기가 들끓어 오른다. 검을 들고 마주 설 때는 느끼지 못했던 폭주를 느낀다. 귀검이 혈권 안으로 들어서니 혈기가 미친 듯이 난동을 부린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혈도가 귀검을 잘라갔다.
이 칼, 지금은 조절할 수 있다. 혈권 안으로 사람이 들어와도 진기 폭주를 누를 수 있다. 밝은 광채가 지긋이 혈기를 누르면 조용히 가라앉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혈기가 들뜨도록 내버려 두었다.
귀검에게 혈마자심이 없다면, 혈마자심이 혈마를 죽이지 못한다면…… 귀검은 죽는다.
순간, 귀검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눈앞에서 팍 사라졌다.
이것이 무령환살공, 암약혼기, 사령천공, 지옥유부공의 공통된 특성이다.
혈마가 되면 바로 이런 수법에 당한다.
상대가 보이지 않는다. 호발귀 다른 혈마와 동등한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눈을 감았다. 그리고 오직 혈기로 혈권만 형성했다. 그 혈권 속에서 귀검이 사라졌다.
스으으으으!
귀검은 여전히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혈권 안으로 흘러드는 한 줄기 흐름을 봤다.
혈기가 본 것이 아니다. 조견이 봤다.
밝은 광명은 자신의 몸만 비춰주는 것이 아니다. 몸 주위도 비춰준다. 몸 안과 몸 밖의 교류를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그 속에서 부드럽게 흐르는 이상 기류를 찾아냈다.
츠으으읏!
조견이 흐름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러자 확 달려들던 흐름이 멈칫거렸다. 방향을 잃은 것처럼 검 끝이 흔들린다.
계속 찔러오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물론 그 순간은 귀검 자신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순간적이다.
타아아앙!
호발귀는 칼로 귀검의 검을 튕겨냈다.
귀검이 입을 쩍 벌렸다.
“지옥유부공으로 주군을 죽일 수 있을지 확신하지 못했습니다. 죽일 수 없었군요. 이렇게 되면 간절히 부탁드리는 수밖에 없군요. 부탁드립니다. 제발 혈마가 되지 마십시오.”
귀검이 머리를 숙였다.
“그랬으면 나도 좋겠는데.”
호발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호발귀는 지옥유부공을 퉁겨냈다. 그러니 천살단, 혈천방의 다른 절공도 통하지 않는다. 두 번 다시 무령환살공에 당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세상은 호발귀를 막지 못한다. 그가 혈마가 되면 세상이 피바다로 변한다.
아니, 사실은 이 말도 틀리다.
지옥유부공을 본 것은 조견이다. 조견이 제 기능을 잃을 때만 혈마가 되는 것이니…… 혈마가 되면 호발귀 역시 당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중간에 길을 잃은 듯이 보였는데?”
“주군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가 보이지 않았다고?”
“혈마자심을 펼치면 나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그러니 그 전에 주군의 진기를 보고 내 진기와 서로 끈을 연결하죠. 그런 후에 죽으면 이미 맺어놓은 선을 따라서 몸이 움직입니다.”
“그런데 내 진기가 중간에 사라졌다 이거군.”
“네.”
“그러면 다시 찾지 못하나?”
“혈마자심을 풀면 됩니다. 하지만 이미 혈마의 혈권 안에 들어가 있으니 혈마자심을 풀면 바로 당하죠.”
“혈마가 되어도 진기만 흘리지 않으면 무령환살공을 막을 수 있다는 거네?”
“이론상으로는 그렇습니다. 하지만 무령환살공이나 암약혼기 같은 무공들을 서로 무리가 다르니 장담은 못 합니다. 지옥유부공만은 확실히 막아냅니다.”
“이걸 펼치면 몸에 무리가 가는 것 같은데?”
호발귀가 귀검을 쳐다보며 물었다.
귀검은 멀쩡하다. 전혀 싸운 사람 같지 않다. 이마에 땀 한 방울 흘리지 않는다.
하지만 귀검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다.
호발귀는 귀검의 몸 상태를 정확히 읽어냈다.
혈마자심은 결코 좋은 공부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완전히 죽이는 검이다.
귀식대법만 펼치더라도 정상적으로 돌아오는 데는 한 시진이나 두 시진 정도가 걸린다. 귀식대법만 탁 풀어버리고 숨을 정상으로 돌린다고 해서 바로 정상인이 되는 게 아니다.
뚝 떨어졌던 체온을 다시 끌어올려야 한다. 몸의 활동을 되돌려야 한다. 심장, 폐, 위장, 피의 흐름이 비정상적인 상태에서 정상으로 환원해야 한다.
귀식대법에서 빠져나오는 데는 적어도 반나절 정도가 소요된다.
숨었던 곳에서 반나절 이상을 더 쉰 다음에 상황 봐서 기어 나와야 한다. 그러니 귀식대법은 목숨이 경각에 달린 상황이 아니면 절대 펼쳐서는 안 된다.
하물며 지옥유부공은 귀식대법보다 몇 배나 더 육신을 혹사한다.
“하루만 푹 쉬면 됩니다.”
거짓말이다. 아무리 귀검이라고 해도 이틀 정도는 쉬어야 한다.
“후후! 귀검은 지금 내가 누군지 모르는 모양이네. 귀검의 몸 상태는 내가 귀검보다 더 잘 알걸? 지금 기분이 말할 수 없이 안 좋을 거야. 구토도 일어날 거고, 심장이 무척 빨리 뛰는데?”
“후후! 맞습니다. 머리도 어지럽고, 오한도 나고, 무엇보다 살심이 치솟습니다.”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상태 내가 가라앉혀 줄 수 있는데, 하지 않으려고.”
“무슨 말씀인지 압니다.”
귀검이 말했다.
호발귀가 손을 대면 귀검도 혈마가 된다.
지금 당장 귀검에게 일어나는 모든 나쁜 증상을 없애줄 수가 있다. 간단하게 생기만 툭 건드려 줘도 당장 싱싱한 생기가 북돋아진다. 당장 활발해진다. 이런 증상들이 말끔히 사라진다.
하지만 내버려 둘 생각이다. 귀검 혼자서 이기고 일어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