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七章 귀래혈마(歸來血魔) (5)
“정말 혈마가 되고 싶습니까? 지금은 생기에 물들지 않았을 수도 있어요. 말한 것처럼 정말로 세상을 정리해야겠다 싶을 때는 궁충님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호발귀가 차분히 말했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면 궁충도 제거 대상에 포함된다. 하지만 무작정 죽이지는 않는다.
“이 세상에 본의 아니게 생기를 경험한 사람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산사태가 나서 집으로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두 손으로 밀어낸 사람도 있죠. 이런 사람들이 모두 혈마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때가 되면…… 분명히 점검해볼 겁니다.”
궁충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단순히 강해지고 싶어서 혈마가 되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길이라면 차라리 귀검님을 쫓겠습니다. 저는 지금…… 혈마님을 보호한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귀검님과 남은 놈들, 그놈들만은 지키고 싶어서 이럽니다.”
궁충이 머리를 푹 숙였다.
“지금은 아무 영향도 없다고 자신해요. 한두 번 생기격타한 것으로 혈마가 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계속 시도를 하면 틀림없기 혈마가 됩니다. 돌아가지 못해요.”
“부탁드립니다!”
“휴우!”
호발귀는 한숨을 내쉬었다.
궁충이 와서 이런 말을 하는 데도 귀검은 와보지 않는다. 두 사람이 알아서 할 문제라고 판단한 것이다.
호발귀는 생각에 잠겼다.
한 사람이라도 혈마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은데…… 생기를 맛본 사람들은 굉장한 유혹이 된다.
궁충이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궁충이 염려하는 바를 잘 안다.
대체로 그렇다는 말이다. 생기를 맛보면 혈마가 되는 한이 있어도 꾸준히 이어가고 싶어한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묻습니다. 혈마가 되어도 좋습니까?”
“주군이 혈마님께 말을 올리고 있습니다. 제가 혈마님의 존대를 받을 수 없습니다. 말씀을 내려주십시오.”
호발귀는 멍하니 궁충을 쳐다봤다.
혈마가 되느냐 마느냐 하는 점을 물었는데, 난데없이 무슨 존대니 하대니 하는 말을.
“흠! 그쪽 조직은 정말 융통성 같은 것은 없네요.”
“혈마님!”
“마지막으로 묻지. 혈마가 되어도 좋나?”
“네.”
궁충이 힘차게 대답했다.
“이왕 할 거면 도움을 줬으면 좋겠는데. 좀 힘들 수도 있고.”
“상관없습니다.”
호발귀는 궁충의 대답에 눈빛을 빛냈다.
“형수님, 부탁이 있어서……”
호발귀가 당홍 옆에 앉으며 말했다.
“문주놈! 넌 왜 당매한테는 꼬박 존대하면서 나한테는 잡아먹지 못해서 으르렁거리는 거야!”
당홍 옆에 있던 도천패가 이를 드러냈다.
“그러게? 우리 참 진짜 이상한 사이다.”
당홍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호발귀는 나한테 형수라고 말하고 해자수님은 제수라고 하고, 그러면 두 사람은 위아래가 분명한데 서로 반말하고, 문주와 보위 그거 해야 해?”
당홍이 말했다.
“할까요?”
호발귀가 짐짓 심각하게 고민하는 투로 말했다.
“서로 족보 정리 좀 해야 하지 않을까?”
“맞아. 우리 서로 족보 정리 좀 하자. 이건 내게 반말하는 놈이 내 아랫놈에게는 존대하고……”
해자수가 못마땅하다는 듯 귀검과 호발귀를 쳐다보며 말했다.
“아! 안 되겠다.”
호발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왜 안 돼?”
당홍이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나 싶어서 되물었다.
“제가 저렇게 나이 많은 사람들한테 이래라저래라할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족보 정리를 하면 제가 제일 밑이 되는데, 그걸 왜 해요. 안 하죠.”
“뭐? 이유가…… 그거?”
당홍이 입을 쩍 벌렸다.
“저, 저, 저, 저놈! 내 저럴 줄 알았다니까! 저놈 저거 인간 되기 틀렸어.”
도천패가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보위! 보위가 문주한테 말 너무 심하게 하는 거 아니야? 한 번 보위면 영원한 보위라는 거 모르나?”
“어휴! 내가 왜 깨어나서. 차라리 혈마로 있는 게 낫지!”
도천패가 씩씩거리면서 말했다.
“참 정말…… 이 사람들 어쩌냐? 이 사람들 어쩌죠?”
당홍이 궁충을 보면서 말했다.
“그걸 저한테 물으시면……”
궁충도 할 말을 잃고 그저 어색하니 웃기만 했다.
다른 사람은 호발귀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오직 딱 한 사람 당홍만은 이해한다.
호발귀가 혈마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부분을 말해도 앞뒤를 추측해낸다.
당홍은 지금 호발귀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안다.
“그럼 지금 혈기를 푼 상태가 아니네?”
“혈기와 공존하고 있는 상태죠. 그래서 제 자신을 혈마라고 하는 겁니다.”
“그렇구나.”
당홍이 신기한 듯 호발귀를 쳐다봤다.
호발귀는 평범한 사람이다.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다. 하지만 분명히 혈마다. 전신에 오염된 생기, 혈기가 가득 들어차 있다.
그러니 미쳐서 날뛰어야 한다. 제정신을 잃고 발광해야 마땅한데, 정신을 차리고 있다.
한데 이 멀쩡한 상태가 스스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호발귀는 어느 한순간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아니, 심등을 꺼트려서는 안 된다. 무공으로 말하자면 운공을 단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계속 진행해야 한다.
이게 무공이라면 불가능하다.
하지만 잠을 자는 순간에도 정신 한 구석은 혈기의 움직임을 살펴보고 있어야 한다.
사람 할 짓이 아니다.
조견을, 심등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말만 들어도 숨이 턱 막힐 노릇이다.
사람을 숨을 쉬어야 산다. 하지만 숨 쉬는 것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저절로 이루어진다. 조견도 이와 같은 상태라고 말해주어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어쨌든 조견은 집중이지 않나. 집중하는데 어떻게 신경을 놓을 수 있나.
직접 경험해보지 않고는 말할 수 없는 세계다.
“그럼 만약 혈기가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또 혈마가 돼?”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우리도 혈기가 움직이는 것을 보면 너처럼 되는 거야?”
“그걸 알아보려고요.”
“어떻게?”
정상적인 혈마…… 혈마가 결코 정상일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호발귀는 그 길을 열었다.
아직 안정된 것은 아니다. 호발귀가 감지하고 있는 조견에 이상이 생긴다면 당장 탈이 난다. 특히, 이것이 사람의 정신에 관계된 문제이기 때문에 장담할 수가 없다.
하지만 이런 상태나마 모두 가졌으면 한다.
해자수나 도천패 등등 다섯 명은 이미 늦었다. 그들은 심등을 밝힐 틈도 없이 혈마로 넘어간다.
이 문제는 차차 해결해 나가야 한다. 조급하게 서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새롭게 혈마가 되겠다는 궁충이라면…… 어쩌면 호발귀처럼 조견을 터득할 수도 있다.
호발귀도 궁충이 혈마가 되는 과정을 세밀히 살핀다.
궁충이 혈마가 되겠다고 나선 것은 혈마 모두에게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당홍이 생기격타를 한다.
당홍은 생기격타를 하면서 생기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궁충은 격타를 당하면서 움직임을 살핀다. 예전에는 막연히 치고받았다면, 이번에는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인다.
“해보시겠습니까?”
호발귀가 당홍에게 물었다.
“잘못되면 어떻게? 생기격타는 진기를 어루만져야 하는데, 우린 치는 것밖에 못 하잖아.”
“괜찮습니다.”
궁충이 불쑥 끼어들어서 말했다.
“모든 과정을 혈마님이 지켜보고 계시니까, 목숨에 지장은 없을 겁니다. 안심하고 해보세요.”
당홍보다도 오히려 궁충이 여유 있게 웃었다.
당홍이 생기격타를 한다.
궁충을 치면서 혈기가 들끓어오는 것을 관찰한다. 혈기가 들끓다가 혈마가 되기 직전에 호발귀가 개입한다. 어쩌면 완전히 혈마가 되고 난 후에 개입하게 될지도 모른다.
궁충은 생기격타를 당하면서 관찰한다.
정교한 손길이 아니라 거친 손이 생기를 만지기 때문에 단박에 알아챌 수도 있다.
이런 부분들은 호발귀가 할 수 없다.
“이거 처음에 어떻게 하지? 생기를 일으키고…… 자, 일으켰어. 다음은 어떻게 해?”
파아아아앗!
당홍이 무형의 기운을 뿜어냈다.
“궁충을 보세요. 생기가 보일 겁니다. 격산타우(隔山打牛)를 생각하세요. 천천히 생기를 밀어내서 궁충의 생기를 살짝 만지기만 해요. 별 것 아닙니다.”
당홍에게 부탁한 것은 지금으로서는 유일하게 해볼 만한 것이다.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지만, 어느 것부터 시도해야 할지 전혀 알지 못했다.
당홍이 만약 성공을 거둔다면 다른 사람도 지금 상태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자신처럼 전신이 혈기로 들끓고 있지만 냉정하게 통제를 할 수 있게 된다.
사람이 혈마로 둔갑하는 틈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그 찰나를 놓치면 혈마가 되고, 그 찰나에 심등을 밝히면 혈기는 되돌아간다.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극강한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이 틈, 찰나를 보는 부분은 수련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이미 찰나를 놓쳐버렸다. 당홍이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조견에 이르는 길을 찾아낸다면 당연히 다른 사람도 시도해본다.
한데 여기에는 문제가 있다. 지금, 이 방법은 한 사람이 조견을 배울 때, 다른 또 한 사람은 혈마가 된다. 양쪽 모두 조견을 볼 수 있다면 천만다행이지만.
자칫하면 한 사람이 구원을 받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지는 일이 벌어진다.
그래서 도천패와 해자수는 짐승을 대상으로 해서 시도해 볼 생각이다. 만약, 인간에게는 통하는데 짐승에게는 통하지 않는다고 하면, 이 방법은 과감하게 폐기되어야 한다.
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혈마로 만들 수는 없다.
일단 당홍과 궁충은 좋은 실험을 하게 될 것이다.
당홍이 생기를 일으켜서 궁충을 쳤다.
스으으읏! 타아아악!
“커억!”
궁충이 헛바람을 내지르며 나뒹굴었다.
당홍이 치는 방법은 매우 독특하다. 그녀는 나비가 되어서 날아오른다. 적을 본다. 궁충을 본다. 그리고 궁충을 향해 검을 쳐낸다.
단지 지금은 검이 들려 있지 않다. 그래서 손바닥으로 후려친다. 어루만지듯이 살살.
그런데 궁충은 격타를 당할 때마다 나뒹굴었다.
퍼억!
“끄윽!”
궁충이 거센 발길질에 걷어챈 것처럼 허공을 붕 날아가 떨어졌다.
“컥! 커어억!”
궁충이 통증을 견뎌내기 힘든 듯 거친 숨을 토해냈다.
당홍은 생기를 조절한다고 조절했지만, 호발귀처럼 정밀하게 조정하지 못한다.
그녀의 타격은 무지막지하다.
다행히 지금까지는 궁충이 견딜 수 있는 정도다. 만약 정도가 심해지면 당연히 멈춘다.
관건은 당홍의 생기 조절에 있다.
호발귀가 생기격타를 할 때처럼 부드럽게 어루만져야 한다. 호발귀는 일행이 잠잘 때도 어루만졌다. 그래도 잠든 사람이 깨지 않았다. 전혀 알지 못했다.
당홍에게는 이것조차도 힘들다.
나비처럼 훨훨 날아올라서 점을 친다. 부드럽게…… 하지만 손에서는 이미 사나운 경풍이 일어났다.
쉐에에엑! 퍼억!
등여산과 홀리는 치료한 지 오 일이 지났다.
백회혈이 다시 열렸다. 진기의 유입이 부드럽게 이어진다. 기운의 순환도 원활하다.
단중혈은 이미 거의 완쾌되었다.
이제는 혈기를 빼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호발귀는 서둘지 않았다. 뇌의 부기가 완전히 정상인처럼 가라앉은 후에야 시도할 생각이다. 두 여인을 즉시 깨우고 싶지만, 최대한 안전을 추구한다.
“이틀 정도만 더 안정시키고……”
혈마에게는 풀어야 숙제가 세 가지나 있다.
첫째는 말할 것도 없이 조견이다. 혈기의 변화를 봐야 한다.
이 부분은 현재 당홍이 시험하고 있다. 이것만 완성된다면 다른 두 가지 숙제는 풀 필요가 없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숙제는 혈마가 된 후에 벌어질 일들이다.
하나는 혈마가 되는 순간, 죽는 방법이다. 다른 하나는 천살단이나 혈천방에 잡히지 않아야 한다.
일단 죽는 방법은 찾아낸 것 같다. 구혼음소가 있고, 단중혈과 백회혈을 이용하는 방법도 있다. 구혼음소는 즉각적인 죽음을 일으키고, 혈을 이용하는 방법은 다소 느리게 진행된다.
하지만 이 두 가지 방법 모두가 타인이 펼쳐줘야 한다.
본인 스스로 제동을 걸어서 죽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하지만 이 방법은 조견을 터득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울 것 같다. 혈기를 봐야 하기 때문이다.
세 번째 숙제는 매우 중요하다.
혈마가 된 후, 무령환살공 같은 무공에 당하면 잡힌다. 그러면 귀색혼령대법을 사전 받는다. 누군가가 자신을 이용해서 살업의 도구로 쓴다.
그 과정에서 몸이 욕보이는 것은 필연이다.
그러니 세 가지 숙제 중에서 가장 급한 숙제가 아마도 이것이 아닐까 싶다.
혈마가 되자마자 적에게 잡히면 매우 난감해진다.
혈마를 잡아갈 사람이라면 주치균이나 천살단주, 혹은 혈천방주일 것이다.
그들과 싸울 수 있는 사람은 혈마와 귀검밖에 없다. 운이 나빠서 그들이 곁에 없다면 꼼짝없이 잡힌다.
혈마이면서도 중원을 홀로 다니지 못하는 묘한 강자가 되는 셈이다.
호발귀는 다른 두 가지 숙제는 차후로 미루고 일단 무령환살공에 대응하는 방법부터 찾을 생각이다.
‘그때 어떤 느낌이었지?’
호발귀는 주치균에게 당하던 광경을 떠올렸다.
자신이 무령환살공에 당하고, 파신금령술을 당했는데…… 사실, 그 부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혈마가 되면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다. 혈마가 되어있던 동안은 일생에서 두 번 다시 찾을 수 없는 시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