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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34화 (434/500)

第八十七章 귀래혈마(歸來血魔) (4)

이제 귀무살 중 살아남은 사람은 네 명뿐이다.

팔이 긴 원숭이 길성(吉猩), 죽어주면 관은 무료로 준다고 해서 판수(版授), 여인처럼 곱상한 여괴(女魁), 검을 전개하면 심장만 노린다고 해서 착심(着心).

이들만 살았다. 아니, 궁충까지 다섯 명이다.

이렇게 되면 부대주라는 말이 의미 없어진다.

궁충은 귀무살의 큰 형이 되는 것이고, 다른 네 명은 동생뻘로 재조정된다.

귀무살은 둘만 모여도 수장을 정한다.

수장의 조건은 나이가 아니다. 완수한 업적 횟수로 정한다. 가장 많이 성공한 자가 수장이 되어서 이끈다. 부대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완벽하게 임무를 수행한 사람들이다.

굳이 부대주라는 직함이 없어도 다른 귀무살들은 궁충을 존중하고 받든다.

“사람이 고작 다섯 명인데, 부대주가 있고 수하들이 있다는 게 웃기지 않나. 모두 주군 밑에 있는 수하일 뿐이다. 앞으로 나를 부대주라고 부르지 마라. 궁충이라고 불러.”

궁충이 말했다.

어차피 궁충이라는 말도 이름은 아니다. 귀무살은 이름을 잊은 지 오래되었다. 그들에게 붙은 이름은 무림에서 불리는 별호와도 다르다. 다른 사람이 지어준 것도 있지만, 본인 스스로 짓기도 한다. 하면 그대로 이름이 불린다.

“옛날 혈마님 밑에는 악불사왕이 있었다. 우리는 한 명 더 많아. 악불오왕이다. 우리가 옛날보다 더 세.”

“후후!”

귀검은 궁충의 말을 들으면서 웃기만 했다.

“남쪽에 천살단 아이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언제 공격해 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에 비해서 유난히 팔이 긴 길성이 말했다.

“북쪽은 혈천방 애들이 장악하고 있습니다. 빠져나갈 길이 없어요. 폭이 무려 십 리에 이릅니다.”

판수가 보고했다.

“저것들이 저희 위치를 알아낸 것 같습니다. 일단 간을 떠볼 것 같은데요. 저희 선에서는 막기 힘듭니다.”

착심이 말했다.

“그런 건 걱정하지 마. 어떤 놈이 오든 간에 우리가 막을 수 있으니까. 동생과 제수는 혈천방을 맡아. 나는 천살단 쪽을 맡을게.”

해자수가 말했다.

“그 몸으론 아직 무리에요.”

당홍이 해자수를 눌러 앉혔다.

“아악! 아프다니까!”

해자수가 고함을 내질렀다.

“아프다면서 싸우려고요?”

“싸우는 건 또 다른 문제지.”

“일단 해자수님은 쉬세요. 가가, 천살단을 맡아. 내가 혈천방을 맡을게. 이놈의 새끼들, 이번에는 그냥 안 둬. 나를 또 잡아갈 수 있는지 보자고.”

당홍이 이를 부드득 갈며 말했다.

“귀검님은 호발귀를 지켜요. 호발귀를 건드릴 사람은 없겠지만, 그래도 손이 필요하니까.”

“그러지.”

귀검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귀검이 존중하고 받드는 사람은 오직 한 명, 호발귀뿐이다. 다른 사람은 한수 아래로 접어놓고 본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고칠 수도 없다.

도천패와 당홍, 해자수는 생기를 사용한다. 실제로 싸우면 귀검을 능가할 수도 있다. 아니, 능가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런데도 여전히 무시한다.

귀검이 눈길을 돌려 귀무살에게 명했다.

“너희는 사방을 감시해라. 무슨 일이 생기면 즉시 보고해. 맞서 싸울 생각은 하지 마라.”

귀검은 귀무살 네 명에게 말했다.

궁충은 아침부터 어디론가 사라져서 보이지 않았다. 귀검에게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스읏!

궁충은 활을 들었다.

‘이백 장!’

이백 장 밖에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쏠 수 있을까?’

불가능하다. 신력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전에도 이백 장 거리가 너무 멀다고 느껴졌었다. 도저히 쏘아낼 수 없는 불가능한 거리로 보였다.

그래도 화살을 쏘는데 망설이지 않았다.

지금은 망설여진다. 중간에 화살이 떨어질 텐데, 밑에 우연히 지나가는 사람이라도 있어서 유시에 맞지 않을까 하는 우려까지 생긴다. 확실히 자신감이 사라졌다.

‘쏴보면 알지.’

근심을 떨구고 힘차게 화살을 날렸다.

탁! 쒜에에엑!

화살이 날아갔다.

전신 진기를 아낌없이 끌어내어서 쏜 화살이다. 어깨 근육이 찢어질 듯 당겨졌었다.

“아!”

궁충은 탄식했다.

화살이 백여 장 정도 날아간 후에는 힘을 잃고 뚝 떨어졌다.

이백 장? 어림도 없다. 확실히 그날은 신명 난 날이었다. 오직 그날만 그런 화살을 쏠 수 있었다.

“음!”

궁충은 침음했다.

사방이 적이다. 지금은 자신의 활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방법이 없나? 아니다. 있다. 혈마에게 있다.

‘혈마에게 도움을 받으면……’

혈마에게 도움을 받는다는 것이 어떤 것이라는 것도 안다. 자신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혈마가 되어 간다는 거다. 무인의 자긍심은 사라지고 오직 싸우는 병기만 남는다. 혈마는 사람이 아니라 병기, 흉마에 불과하니까.

‘방법이 그것뿐이라면……’

“휴우!”

궁충은 한숨을 내쉬며 활을 거뒀다.

“혈마가 되어야겠습니다.”

궁충이 담담하게 말했다.

“네 활을 믿으면 된다.”

“고련을 하면 뇌궁일사의 위치에 오를 수 있다는 걸 압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장 힘이 필요합니다. 제가 나서지 않으면 일차 접근을 저지할 수 없습니다.”

“얘들을 믿어라. 네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버려.”

“지금 혈마님에게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호발귀에게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얼마나 필요한 지는 아무도 모른다. 호발귀 자신도 모른다. 등여산과 홀리의 상태를 보아가면서 치료를 해야 하니 앞으로 며칠이나 더 소축령에 갇혀 있어야 할지 모른다.

또 해자수나 도천패, 당홍도 주시해야 한다.

도천패와 당홍은 일단 혈마가 되었던 사람이다. 또다시 혈기가 치솟아서 혈마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일단 혈마를 경험하면 그다음에는 무척 빠른 속도로 혈마가 된다고 했다.

이것은 호발귀가 한 말이다. 그러니 믿어야 한다.

천살단과 혈천방이 들이치면 도천패와 당홍은 바로 그날, 혈마가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해자수 역시 마찬가지다.

혈마는 되지 않았지만, 근처까지 가봤다.

물론 귀검은 혈마가 사방에서 난동을 부린다고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천살단과 혈천방 무인 중에 사정을 봐줄 만한 사람은 없다.

문제는 혈마가 되기 전까지는 무적으로 군림하다가 어느 한순간에 종이호랑이가 되어서 나가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들은 딱 혈마가 되기 전까지만 필요하다. 혈마가 된 후에는 즉시 물러서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하다

적에게 잡히는 것을 감수하면서 적을 쳐야 한다,

궁충이 이런 혈마가 되겠다니. 하지만 지금 상황을 보면 궁충의 활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사방에서 적이 몰려들 경우, 효과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궁충이 혈마가 된다면, 이제 막 생기를 접하게 되니 적어도 며칠 동안은 버틸 수가 있다.

“혈마가 되면…… 되돌릴 방법이 주군에게도 없는 것 같다.”

“짐작하고 있습니다.”

“혈마가 되면 결국 주군 손에 죽임을 당할지도 몰라.”

“아마 그럴 겁니다.”

궁충이 태연히 대답했다.

이백 년 전, 혈마와 함께 움직였던 모든 사람이 일시에 사라졌다.

그 이유를 은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잠적 같은 것을 택할 사람들이 아니다. 그렇다면 피살이다. 혈마에게 죽임을 당했을 가능성이 십중팔구다.

그 정도도 예측하지 못하지는 않는다

“궁충!”

“어차피 저는 이미 한 번 생기 도움을 받았습니다. 만약에 혈마께서 어떤 결심을 하게 된다면, 저를 놓고 가시겠습니까? 저까지 데려가야 후환이 끊기지 않겠습니까.”

“음!”

“이 세상에 생기에 노출된 사람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아시지 않습니까?”

“가라!”

귀검이 말했다.

“인귀(人鬼)가 되고 싶었는데, 혈귀(血鬼)가 되어서 죄송합니다.”

“아니. 너는 혈귀를 택했지만 그래도 인귀가 될 놈이다. 믿는다. 안심하고 가라.”

귀검이 말했다.

귀검은 인간이 창안한 무공, 진기 무공으로 능히 천신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혈마와 싸워도 절대 지지 않는다.

진기 역시 우주의 힘을 빌린 공부다. 어떤 기운을 눈으로 보고 사용하면 생기 사용이 되는 것이고,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존재를 느끼고 사용하면 진기 무공인 것이다.

그러니 정신을 올바로 가진 인간 귀신이 돼라.

혈마는 정신을 잃은 인간이다. 혈귀다. 혈귀는 순간적으론 강해 보일지 모르지만 결국 인귀에게 꺾인다. 그런 믿음을 가지고 무공을 수련하라.

“죄송합니다.”

궁충은 고개를 숙여 귀검에게 인사했다.

호발귀가 궁충을 도와줄지 거절할지 알지 못한다.

또한, 호발귀가 궁충을 도와줘서 생기를 사용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해도, 여전히 귀검을 주군으로 모시는 데는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귀검이 늘 강조하던 인귀의 길을 버리고 혈귀가 되기로 생각한 것이 못내 죄스럽다.

이런 말을 하는 자체로 귀검에게 큰 죄를 짓는 기분이다.

그래서 인사를 하는 것이다.

귀검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생기를 사용하게 해주십시오.”

궁충이 말했다.

“그건 한 번으로……”

호발귀는 즉시 거절했다.

“책사님, 홀리님, 해자수님, 도천패님, 당홍님. 혈마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까?”

“……”

호발귀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분들을 죽이실 때, 저는 내버려 두실 겁니까?”

“……”

“한 번이든 두 번이든 생기가 닿았다 싶은 사람은 모두 죽이실 것. 그렇다면 제대로 쓰게…… 도와주십시오.”

궁충이 정중하게 요청했다.

“음!”

호발귀는 침음했다.

궁충의 말이 맞다. 그런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것은 최후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있다.

이대로 저들을 죽음으로 몰고 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궁충이 말했다.

“생기를 사용하지 못한다면 산을 떠나겠습니다. 어느 한적한 곳에 묻혀서 살 생각인데…… 찾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영원히 찾지 않겠다고 하면 떠나겠습니다.”

“무지막지하게 몰아붙이시네.”

호발귀가 웃으면서 말했다.

생기를 사용하게 할 수 있다. 아주 간단하다. 생기격타를 하면 궁충은 한순간에 생기 덩어리가 된다. 예전처럼 이백 장 밖에 있는 목표를 맞출 수 있다.

백발백중 뇌궁일사가 된다.

지금의 호발귀는 예전과 아주 다르다. 생기격타도 예전보다 훨씬 정교하게 펼칠 수 있다.

생기를 잘 보살피면서 격타하면 혈마가 되는 기간을 최대한 늘릴 수 있을 것이다.

옛날, 혈천방으로 갈 때, 자신에게 생기격타를 당한 사람은 진기가 급성장하는 경험을 했다. 진기가 급성장하면서 생기도 따라서 일어난 것이다.

생기가 일어나서 힘을 발휘하니 진기는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 일이 궁충에게도 즉각 일어난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궁충은 해자수나 도천패와 다를 바 없다.

생기를 계속 사용하다가 어느 한순간에 혈마로 넘어가 버린다. 그 틈은 찰나다. 인간에서 혈마로 넘어가는 순간이 너무 짧아서 미처 조견할 시간이 없다.

심등을 밝힐 사이도 없이 탁! 넘어가 버린다.

생기가 변하는 것을 막을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이 찰나를 보지도 못한다.

수련 같은 것도 할 수 없다. 찰나를 볼 수 있는 어떤 방법도 없다.

이 찰나를 보기 위해서는 인간에서 혈마로 넘어가는 단계가 매우 느리게 진행되어야 한다.

본인 스스로 혈마 상태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한다.

혈마가 되었다가 누구의 도움도 없이 다시 인간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몇 번만 거쳐도 찰나를 볼 가능성이 생긴다.

호발귀가 그랬다.

자신은 혈마가 되었다가 인간으로 돌아오는 과정을 몇 번에 걸쳐서 이루어냈다.

외부의 힘으로 혈기를 제거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 자신이 지금 도천패에게 해주는 것 같이 혈기를 제거하는 방식은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이런 식으로서 해서는 찰나를 보지 못한다.

본인 스스로 혈마 상태를 깨닫고 인간으로 되돌아 나와야 한다.

‘그렇다면!’

호발귀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퍼뜩 스쳐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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