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七章 귀래혈마(歸來血魔) (2)
등여산이 그런 상태라면 홀리와 도천패는 어떤가?
두 사람은 등여산처럼 강한 혈마는 아니다. 이제 겨우 초입 단계에 들어섰다.
그동안 등여산이 얼마나 힘들게 세상을 돌아다녔는지 짐작된다.
혈마가 된 후에는 자신이 벌인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언젠가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듣게 된다. 자신이 벌인 일이다.
그 업보는 고스란히 등여산이 삭혀야 한다.
‘불쌍한 여자.’
자신이 아니었으면 혈마가 되지 않았을 텐데, 아니 지금도 천살단 책사로 풍족한 삶을 살고 있을 텐데.
혈마 상태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을 어떻게 할 것인지는 오로지 호발귀의 마음에 달려있다.
당홍이나 해자수처럼 멀쩡한 사람을 만들 수도 있다. 그것은 매우 쉽다. 지금 당장 할 수 있다.
물론 마냥 쉽다고만은 할 수 없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벌모세수를 하듯이 차분히 쓸고 내려가야 한다. 한 사람당 적어도 두 시진에서 세 시진은 걸린다.
다른 방법도 있다.
음문촌 삼자가 했던 것처럼 귀색무를 피워서 음기를 발동시키는 방법이다.
음기는 혈기를 밀어내는 성질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사악한 것이 혈기인데, 그 혈기가 음기에 밀려난다.
재미있지 않나? 혈기는 음기가 밀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둔다. 결국은 음기조차도 혈기에 물들고, 같이 동화될 것을 알고 있으므로 말릴 이유가 없다.
등여산이 음고를 사용해서 자신을 혈마 상태에서 빠져나오게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음기에게 자리를 살짝 양보했는데, 갑자기 구혼음소가 들이쳤다.
음기는 음양교합으로 해소되었고, 음기에 밀려난 혈기는 제 자리로 돌아오지 못했다.
호발귀는 여러모로 혜택을 참 많이 받았다.
홀리가 도와주었고, 등여산이 몸을 던져가며 지켜주었다.
지금의 혈마는 결코 자신이 만든 게 아니다. 이 여자들이 없었다면 결코 되지 못했다.
지금의 호발귀는 귀색무를 피운다고 해도 굳이 음양교합까지 들어갈 필요는 없다.
귀색무로 음기를 넣고, 음기와 혈기가 분리된 후에 양쪽으로 쳐낸다. 음기는 독기처럼 독섬칠공으로 밀어내고, 혈기는 생기격타로 툭 밀어낸다.
그러면 깔끔하게 해소할 수 있다.
둘째는 구혼음소를 읊어서 혈마로 조종하는 것이다.
물론 호발귀가 그럴 리는 없다. 하지만 그것도 가능한 상태라는 것이.
만약에 혈천방이나 천살단으로 끌려갔다면 혈마가 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천살단에서 발견한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혈천방으로 갔다면 틀림없이 혈마가 되었다. 귀색혼령대법은 통한다. 분명히 조종을 받는 혈마가 되었다.
동굴에서 당홍은 매우 위험한 상태였다.
삼자가 귀색무에 완전히 물들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귀색혼령대법을 펼쳤다면 당홍은 삼자의 혈마가 되었다.
구혼음소는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
물론 음문촌의 구혼음소는 정확한 것이 아니다. 당홍에게 딱 맞는 구결도 아니다.
음문촌이 간직한 구혼음소는 이백 년 전에 존재했던 혈의검에게 맞춘 것이다. 혈마에게 맞춘 것이 아니라 혈의검을 죽이기 위한 진결이었다. 반대로 혈천방이 알고 있는 구혼음소는 혈마후를 죽이기 위한 진결이다.
하지만 그 후, 구혼음소는 약간 변한다.
두 사람에게 전한 것은 서로 상대방을 상잔시키는 구혼음소가 맞다. 하지만 혈천방과 음문촌에 전해질 때는 보편적인 구혼음소로 바뀐다.
궁중에서 가장 많이 처방한 약재가 쌍화탕이라고 한다.
피로할 때, 몸살이 났을 때, 기분이 우울할 때, 식욕이 떨어질 때…… 모두 쌍화탕이다. 가장 보편적인 처방이면서 부작용도 거의 없다.
그런 종류의 구혼음소가 두 방파에 전해졌다.
그러니 구혼음소라고 해도 즉각적으로 통하지는 않는다.
삼자가 당홍에게 구혼음소를 읊었다면 당연히 통하기는 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드러냈을 것이다.
완벽한 혈마가 됐을 가능성도 있다. 약간 말을 안 들을 수도 있다. 간혹 이상한 행동을 할 수도 있고, 가장 재수가 없으면 삼자를 죽였을 수도 있다.
구혼음소가 작용은 하는데 제대로 작용한다는 보장은 없다.
다만 시간을 오래 두고 꾸준히 구혼음소를 적용하면 반드시 통한다는 것만은 장담한다.
음문촌은 귀색혼령대법을 한 번만 시현하면 통할 것으로 생각하는데, 적어도 세 번에서 네 번 아니 십여 번 정도는 시전해야 온전한 혈마로 만들 수 있다.
호발귀는 등여산과 홀리, 도천패에게 맞는 구혼음소를 찾아낼 수 있다.
이들 세 사람의 혈기는 각기 다르다.
혈기는 같다. 생기라는 존재가 다를 수는 없다. 세상 모든 사람이 모두 같은 생기를 지닌다.
생기는 오직 하나뿐이다. 다만 진기를 도인하는 운공술처럼 이들도 생기를 각기 다르게 사용한다. 사용하는 길이 다르다.
개인 각자마다 사용하는 길이 달라서 더 강하게 달릴 수 있도록 인도하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다.
산에서 사는 사람은 산을 잘 타게 만들어야 한다. 두 다리가 튼튼해야 한다. 물론 폐도 강해야 한다. 힘을 이 부분에 집중시키면 산을 아주 잘 타게 된다.
물에 사는 어부는 노를 잘 저어야 한다.
두 팔과 허릿심이 굳건해야 한다. 다리와 폐도 튼튼하면 좋지만, 무엇보다도 팔 힘이 없으면 안 된다. 그러니 이 부분에 힘을 집중시키도록 만든다.
그다음은 과속이다.
일단 튼튼해지는 과정이 시작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끝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무한정 강해진다. 폐가 한도를 넘어서 터진다. 팔 근육이 찢어진다.
인간은 극한의 강함을 견디도록 만들어져 있지 않다.
이것이 구혼음소의 실체다.
물론 구혼음소는 모두 뇌를 노린다. 혈기가 뇌로 침습하기 때문에 뇌를 폭주하게 만들어서 기어이 폭발시킨다. 혈마로 날뛰다가 어느 순간, 풀썩 쓰러진다.
호발귀는 세 사람의 구혼음소가 보인다. 이들의 혈기가 보이기 때문에 이들의 혈기를 어떻게 하면 폭발시킬 수 있을지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럼 이백 년 전 혈마는 왜 혈기를 제거하지 않고 구혼음소를 알려준 것일까?
물론 혈기도 제거했다. 제거하고 또 제거했다.
하지만 여전히 이들은 생기 사용법을 안다. 깨끗한 몸을 만들어 놨어도 또다시 혈기를 불러들이고, 금방 혈기에 물든다.
혈기에 물드는 속도도 상당히 빨라진다.
생기 통로는 사용할수록 넓어진다. 진기 양성처럼 수련 기간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사용하기만 하면 폭이 쭉쭉 넓어진다. 지금은 작은 소로에 불과하지만, 곧 백만대군도 질주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길이 생길 것이다.
혈마 사후에 이들은 혈마가 된다.
방법은 하나, 이들을 모두 죽이고 죽으면 된다.
그리고 그런 일이 벌어졌다. 어느 한순간에 혈마를 비롯해서 혈의검과 혈마후, 악불사왕이 일시에 사라졌다. 그리고 중원의 절반을 휩쓸던 피의 광란이 멈췄다.
혈마가 그들 모두 죽였다.
그런데도 구혼음소만은 남겨놓았다. 혈의검에게 말해서 후인에게 전하게 만들고, 혈마후에게 말해서 음문촌 사람들이 계승하도록 해놨다.
왜? 혈마가 또 나타날 수도 있어서다.
혈마는 혈의검이나 혈마후에게 혈기를 넘기고 싶지 않았다. 우연히, 어쩌다 보니 그들도 혈기에 물들어 있었다. 악불사왕도 마찬가지 경우다.
꼭 지금 호발귀와 같다.
생기격타로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었는데, 진기를 함양시켜 준 것뿐인데…… 그것이 생기 통로를 열어버렸다. 결코, 본의는 아니지만, 혈마가 되어버렸다.
이런 식으로 우연히 생기를 건드린 사람들이 있을 수 있다. 중원 절반을 피로 물들였으니, 그중 누군가는 생기 통로를 열지 않았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러면 살아남아서 계속 지켜보면 되지 않았을까?
혈마도 그런 생각을 했겠지만, 그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어떤 일이 벌어졌다. 더는 살아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호발귀도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다.
혈의검에게, 혈마후에게 보편적인 구혼음소를 남겼다. 남자와 여자에게 두루 통하는 구혼음소다.
혈마 무공을 남긴 것도 그 때문이다.
생기격타를 하면 혈마가 되는 속도가 너무 빨라진다. 본인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순간에 혈마가 되어 버린다. 각성할 사이도 없이 악마가 된다.
누군가는 순차적으로, 차분히 혈마가 되어가야 한다. 혈마가 되지 않으려고 고민해야 한다.
그러다가 혈마가 될 수도 있다. 또는 이겨낼 수도 있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은 남겨놓는다. 혈마가 나타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그러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
이들을 모두 죽이고 생을 끝낼까? 이들 세 사람에 당홍과 해자수, 만일을 모르니 궁충까지. 이렇게만 죽이면 더는 혈마무공을 남길 이유도, 구혼음소가 존재할 이유도 없다.
혈마록은 태워버렸다.
천살단에 한 장이 남아있지만, 그것으로는 무엇도 하지 못한다.
이백 년 전 혈마는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을 죽였다. 또 혈마후와 혈의검은 웃으면서 혈마의 검을 받았다. 모두 그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비참한 결말이다.
‘나는? 나는 어떻게 하지?’
이들과 함께 은거할 수도 있다.
깊은 산속에 숨어서 혈기가 일어나면 밀어내주면서 살아가면 된다. 그러다가 이들보다 먼저 죽게 되면, 이들을 모두 모아놓고 일시에 죽으면 된다.
자신의 수명에 이들의 수명이 걸린 셈이다.
이게 옳은가?
또 하나, 무림이 가만히 있지 않는다.
지금은 이백 년 전과는 상황이 다르다. 저들은 혈마를 제압할 수 있다.
무령환살공이 통했다. 혈마로 변하는 족족 잡혔다.
혈마는 잡혀갈 것이고, 노예 혈마가 된다.
노예 혈마는 호발귀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노예 혈마의 혈기도 밀어낼 수 있을지, 혈기를 밀어낸 후에 혈마의 신상에는 무리가 없을지 전혀 알지 못한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노예 혈마가 되게 할 수는 없다.
귀색혼령대법 같은 더러운 수법에 망가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다.
호발귀는 동굴에 멍하니 앉아서 치료를 시작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해야지.’
세 명 중 가장 경한 사람은 도천패다.
도천패는 당홍이나 해자수에 비해서 별반 다를 바 없다. 정신을 잃고 있지만 이제 처음으로 혈마를 경험한 초입자다.
호발귀는 일어나서 도천패의 몸에 손을 댔다.
스으읏! 스읏! 스스스슷!
도천패의 몸에서 푸른 빛을 본다. 푸른빛을 슬쩍 밀어서 몸 밖으로 밀어낸다. 생기를 밀어낸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숨을 통해서 싱싱한 생기가 공급된다.
호발귀가 밀어낸 만큼 우주의 생기가 흘러든다.
호발귀는 생기를 운용하지만, 혈기에 물들지 않았다. 심등이 환히 밝혀진 상태라서 생기의 움직임을 환히 보고 있다. 악이 물들 틈을 주지 않는다.
탁! 타타탁! 타타탁!
마지막으로 가볍게 전신 요혈을 두들겼다.
이 방법은 생기격타가 아니다. 원충노인의 팔십일수, 순형공(楯形功)으로 몸의 원기를 북돋아 준다.
“커억!”
도천패가 거친 기침과 함께 핏덩이를 쏟아냈다.
“으으!”
도천패가 눈을 떴다. 하지만 눈앞에 호발귀가 서 있자, 깜짝 놀라서 입을 쩍 벌렸다.
“너!”
“이야기가 깁니다.”
호발귀가 웃으면서 말했다.
“밖에 나가면 형수님이 계실 겁니다. 나가보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 형수님이 대충 말해줄 겁니다.”
“너 괜찮지?”
“네.”
“됐다. 그럼. 너 괜찮으면 됐어.”
탁!
도천패가 호발귀의 어깨를 힘있게 쳤다.
도천패는 동굴 바닥에 쓰러져 있는 등여산과 홀리를 봤다.
“모두 다 괜찮은 거지?”
두 여인을 쳐다보는 도천패의 눈에 걱정이 가득했다.
“괜찮죠. 내가 있는데 괜찮을 수밖에 더 있어요?”
“아! 재수 없어.”
도천패가 눈을 흘겼다.
“됐다! 사람들 다 구했고. 너도 멀쩡하고. 우선 한숨 돌렸으면 된 거지 뭐. 천만다행이다.”
도천패가 웃으면서 일어섰다.
저벅! 저벅! 저벅!
도천패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져 갔다.
“엇! 다 나았네?”
“멀쩡하잖아!”
“가가!”:
동굴 밖에서 여러 사람의 음성이 들려왔다.
호발귀는 묵묵히 홀리와 등여산을 쳐다봤다.
내 여자, 아내. 오직 자신밖에 모르는 여자들.
호발귀는 손을 쓰지 못했다.
도천패는 혈마 진입 상태다, 당홍과 마찬가지로 혈기를 쉽게 밀어낼 수가 있다.
하지만 등여산 홀리는 혈마 진입 상태를 넘어섰다.
이미 혈기가 뇌에 자극을 가하고 있다. 부술(剖術)에 능숙한 의원이 있어서 머리를 갈라내고 뇌를 봤다면 두 여인의 뇌가 상당히 부풀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뇌의 어떤 부분을 자극한 것이 아니다. 뇌 전체를 자극했다. 뇌가 정말로 부풀어 올랐다.
이 상태에서 혈기를 빼낸다 한들 금방 다시 부풀어 오른다.
“음!”
호발귀는 침음만 흘렸다.
두 여인만 왜 다른 사람과 달리 이런 상태가 된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