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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31화 (431/500)

第八十七章 귀래혈마(歸來血魔) (1)

“이런! 제부가 죽었네!”

해자수가 중얼거렸다.

‘응?’

제부가 죽었다는 말은 당홍이 죽었다는 말? 귀무살은 무슨 소리인가 싶어서 황급히 해자수를 쳐다봤다. 지금까지 횡설수설한 것처럼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하아! 얼마나 억울했으면 직접 마중을 나오나. 도천패가 형이라고 부르는 말도 듣지 못했을 텐데. 영혼이 통했나 보네. 이보게 귀검. 가는 길이 외롭진 않겠어.”

해자수가 귀검을 보며 히죽 웃었다.

“제부가 왔어. 제부가…… 날 데리러.”

해자수가 힘 잃은 음성으로 말했다.

“저…… 저!”

궁충이 너무 놀라 입을 쩍 벌렸다.

궁충뿐만이 아니다. 귀무살 모두가 너무 놀라서 벌떡 일어섰다.

해자수는 비몽사몽 간에 당홍을 봤다.

당홍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혈마가 된 것도 아니고 평소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태연히 걸어오니까 자신을 마중 나온 귀신이나 영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영혼이 아니다. 잘못 보지 않았다.

당홍이 태연히 걸어오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 옆에 호발귀가 있다는 것이다. 동굴 안에 있어야 할 호발귀가 당홍 옆에서 걷고 있다.

두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지 못하겠다.

귀검이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호발귀 앞으로 다가가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언제 나오셨습니까?”

“조금 전에요.”

호발귀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사람 음성이다. 확실히 사람이 맞다. 귀신이 아니다.

“혈기는 다 치유하신 겁니까?”

“어느 정도? 완전히는 아니고…… 이게 치유된 것인지 확신은 들지 않는데, 움직일 수는 있으니까.”

“다행입니다.”

귀검이 안심한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귀검은 지옥유부공을 잔뜩 끌어올린 상태였다. 말 한마디에 검이 튀어 나갈 상황이었다.

일단, 혈기를 추슬렀다니 이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을 것이다.

“철삭은 어떻게?”

귀검은 가장 먼저 물었어야 할 말을 뒤늦게야 물었다.

“그거, 혈마를 묶어두기에는 약해요. 조금 더 강한 것으로 만들어야겠는데…… 혈마를 묶어둘 생각이라면.”

호발귀의 말에 귀검은 눈을 부릅떴다.

어린아이 손목 두께의 철삭이 약하다면, 도대체 어느 정도로 두꺼워야 하나.

더 두꺼우면 아예 손발을 움직이지 못한다. 철판으로 눌러놓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제 혈기는 호발귀가 뽑아냈어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당홍이 궁충을 보며 웃었다.

궁충도 당홍이 터트리는 괴소를 들었다. 그 소리를 듣고 도천패가 몸을 돌렸다.

당홍은 완벽한 혈마였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궁충이 자기 일인 듯 기뻐했다.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던 해자수도 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하지만 말을 할 기운이 없는지 빙긋 웃기만 했다.

호발귀가 귀검을 제치고 해자수에게 다가가 앉았다.

“너…… 너…… 정말…… 괜찮은 거야?”

해자수의 음성이 속삭이듯 가늘었다.

그 정도의 말도 간신히 쥐어 짜낸 것이다. 해자수는 말을 하는 도중에서 깜빡 고개를 떨궜다.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정신을 잃었다가 다시 깨어났다.

“아! 진짜 잠시를 가만히 못 놔둔다니까. 조금만 한눈팔면 이렇게 얻어터지니. 이러고도 강호에서 살아남은 게 용하지. 앞으로 어디 가서 싸우자는 말 하지 말아요.”

“킥킥! 목소리를 들어보니 호발귀 맞네. 킥킥! 됐어. 네놈이 살아났으면 됐어. 이제 난 죽어도 여한이 없어. 이제는. 킥킥킥!”

해자수가 웃었다.

해자수는 호발귀가 눈앞에 앉아있는데도 보지 못했다. 이미 앞을 보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죽긴 누가 죽는다고 엄살일까?”

“이 상처를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제가 누군지 알면서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킥킥! 네가 뭐 신이라도 돼?”

“신은 못되어도 혈마는 되죠. 혈마가 뭐 아무나 되는 겁니까? 이것도 선택받은 사람만 된다니까요.”

“그래. 너 잘났다.”

“모든 사람이 치를 떠는 혈마 앞에서 감히 죽는다는 소리나 해대고. 정말 죽도록 내버려 둘까?”

“……”

해자수는 농담을 받지 못했다.

큰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툭 떨궜다. 누가 봐도 마지막 숨을 몰아쉰 게 확실해 보였다.

그때, 호발귀가 손을 썼다.

호발귀는 해자수의 상처를 보고도 즉시 손을 쓰지 않았다. 생기가 흩어지는 순간은 곧 혈기가 흩어지는 순간이기도 하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잘 이용하면 일부러 생기격타를 하지 않고도 혈기를 흩트릴 수 있다.

물론 생기를 뚜렷하게 볼 줄 알아야만 시도할 수 있는 기적의 생환법이다.

호발귀 옆에 당홍도 있었지만,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호발귀가 손을 쓰지 않고 있는 것도 이해했다. 해자수 상태는 누가 봐도 절망적이었다. 의원인 그녀의 판단으로는……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해자수의 상태는 절망적이었다.

호발귀가 손으로 해자수의 상처를 어루만지듯이 문질렀다. 세게 만지는 것도 아니고, 상처를 열어보는 것도 아니다. 그저 장난하듯이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지지직! 지직! 파아앗!

착각일까? 피와 금창약으로 범벅이 된 상처가 끓는 물처럼 끓어오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금씩 흘러내리던 핏물마저 뚝 멈췄다.

약간 과장하면 상처까지 아물어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치밀어오른다.

“이게……?”

호발귀가 손을 떼고 일어서자, 당홍이 즉시 달라붙어서 상처를 둘러봤다.

“어떻게 한 거야?”

당홍이 호발귀를 보며 물었다.

“진기접물(眞氣接物).”

“뭐?”

당홍은 너무도 태연한 대답에 즉시 되물었다.

진기접물은 무인들이 상처를 치료할 때 필수적으로 사용하는 요상술이다.

손끝에 진기를 운집시킨 후에 상처 부위에 쏟아붓는다. 그러면 확실히 지혈은 쉽게 된다.

물론 상처 쪽에서도 자신의 진기가 튕겨 나와야 한다. 손끝에서 일어나는 진기와 상처에서 일어나는 진기가 충돌하면서 칼에 베인 상처를 순한 방향으로 자극한다.

음양이분(陰陽二分)을 할 수 있다면 진기접물 요상술은 열 배 이상 강해진다.

상처에서는 음의 성질을 지닌 진기가 나오고, 손끝에서 양의 진기가 터지면 상처 부위에서 벼락이 일어난다. 마치 빨갛게 달군 인두로 지진 것 같은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이런 진기접물법은 강약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무인이 사용할 수 있다. 다만 눈에 확 띌 만큼 효과가 좋지는 않다. 대다수 무인은 그만한 공력이 없다.

진기접물법을 할 바에는 차라리 금창산 한 봉지를 더 쏟아붓는 게 나을 것이다.

호발귀는 별것 아니라는 듯 진기접물을 말했다.

당홍은 해자수의 상처에서 진기접물이 어떤 약보다도 뛰어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녀가……

독의의 후손인 그녀가 처음으로 진기 요상술을 봤다고 할 수 있다.

“생기를 집중시킨 거야?”

진기만으로는 이 정도까지 상처를 회복시키지 못한다.

“내 생기가 아니라 해자수가 가진 생기를 끌어모은 거에 불과해요. 별거 아니니까…… 그래도 한동안은 누워있어야 할 겁니다. 며칠 동안은 운공도 하지 말라고 하세요.”

호발귀가 일어섰다.

호발귀가 한 일은 손을 들어서 상처 부위를 쓰읏 문지르며 지나간 것뿐이다. 그런데 그 간단한 동작에 해자수의 얼굴이 확 피어났다. 생기가 감돈다.

방금까지는 누가 봐도 죽은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살펴봐도 죽을 사람으로 보이지 않는다.

해자수는 산다. 상처가 무척 심하지만, 요행히 치명적이지는 않다. 이 정도 상처라면 대략 보름? 길어야 한두 달이면 탁탁 털고 일어설 게 뻔하다.

이런 느낌은 조금 전과는 확연히 다른 것이다.

귀무살은 입을 쩍 벌린 채 할 말을 잊었다. 이것이 혈마인가? 혈마 무공은 신의 무공인가? 도대체 이런 무공을 누가 상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귀무살은 혈마들의 무공을 봤다. 홀리, 해자수, 도천패…… 하지만 방금 보여준 호발귀의 진기접물술은 그야말로 신이 내려와서 상처를 만진 것처럼 보였다.

“그럼 난 안에 사람들이 있어서.”

호발귀가 당홍에게 말했다.

“가봐. 난 해자수님은 치료할게.”

지금 동굴 안에는 호발귀의 손길을 기다리는 사람이 세 사람이나 있다.

그들을 빨리 치료해야 한다.

“안에 가서 보위 얼굴이라도……”

“지금 보면 뭘 해. 혼절해 있을 텐데. 내가 치료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빨리 치료해서 내보내 줘. 그게 날 위해주는 거야. 자잘한 상처는 내가 치료할 테니까, 그런 것까지 염려하지는 마.”

“저, 급하신데 한 말씀만.”

궁충이 급히 호발귀를 따라가며 말했다.

“잘해줬어요.”

호발귀가 궁충을 보며 씩 웃었다.

“네?”

궁충은 호발귀의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 어떤 말이 나올지 짐작했다. 하지만 정작 예상했던 대답이 나오자,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자신을 자극했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까지 물어볼 시간이 없었다.

“나중에 시간이 나면.”

“아, 네. 감사합니다! 절 써주셔서! 혈마님 덕분에 최고의 궁술을 써봤습니다!”

궁충이 허리를 팍 숙였다.

“음!”

동굴에 누워있는 세 사람을 보자, 호발귀는 침음부터 흘렸다.

당홍과 해자수는 혈기에 물들어 있었다. 당홍은 완전히 혈기에 물들어 혈마가 된 상태였고, 해자수는 혈마가 되기 직전이었다. 거의 구할 구 푼까지 진행되었다고 할까?

두 사람을 치료하는 데는 차이는 없었다.

해자수는 상처 부위에 생기를 집중시켜 주는 것으로 끝났다. 목숨이 떨어지는 순간이었고, 혈기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중이었다. 그 순간, 한 줌의 생기를 거둬서 상처에 밀집시켰다.

혈기가 완전히 흩어진 후라면 호발귀도 어쩔 수 없다.

그는 혈마이지 신이 아니다. 생기를 이용할 줄 아는 것이지, 우주가 아니다. 약간 힘을 빌어와서 쓰는 것이지, 우주 전체를 관장하는 신이 아닌 것이다.

호발귀는 보통 인간이다. 그러니 죽은 자를 살릴 수는 없다.

해자수가 죽기 직전에 생기를 붙잡으면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하늘에 떠 있는 빛나는 물체를 보고 저건 ‘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확신이다.

생각한 것이 너무도 분명해서 의심할 필요도 없었다.

당홍은 생기격타로 치료했다.

폐광 갱도에서는 혈기를 흡수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생기와 혈기를 명확하게 알고 나면 혈기 역시 생기라는 사실도 알게 된다.

악기를 툭 쳐서 몸 밖으로 밀어내면 된다.

그 자리는 곧 다른 생기가 들어찬다. 숨을 쉬고 있지 않나. 들이쉬는 숨과 함께 우주의 생기가 가득 밀려든다. 그러니 생기가 부족할 것이라는 생각은 접어둬도 좋다.

이제 혈기를 제거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다만 이런 작업을 하는 동안 계속해서 ‘조견’을 해야 하는데, 이것도 크게 신경 쓸 문제가 아니다.

조견은 염두에 두지 않아도 계속 작동한다.

일단 마음의 빚을 밝히면, 그 빛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마음을 밝혀준다.

자신이 혈기를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 한가운데에서 밝은 빛이 빛난다. 몸 전체를 환히 밝혀주는 빛이 혈기의 움직임을 지켜본다. 낱낱이 쏘아본다.

조견은 다른 말로 심등(心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심등을 밝혀라’라는 말은 결코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다. 심등은 진짜로 밝혀진다. 심등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심등에 대해서 이렇고 저렇고 말을 많이 한다.

심등이 밝혀지면 자신의 모든 행동은 물론이고 기운의 움직임까지 고루 살펴준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나.’

이것을 확실하게 말해주는 것이 심등이다.

그러니 혈기의 움직임이 세밀히 관찰되는 것은 당연하다. 생기의 움직임도 느껴진다.

혈기를 제거하는 것에는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동굴 속에 세 사람이 쓰러져 있다.

등여산, 홀리, 도천패.

세 사람의 혈기는 똑같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다르다.

등여산은 완전한 혈마가 됐다. 자신보다도 더 강한 혈마다.

자신이 철삭에 묶여있을 때보다도 더 강하다. 그때, 자신은 수태음폐경이라도 살려놨었다.

등여산은 그만한 생기도 없다.

완전히 이백 년 전 혈마 상태다.

자신이 이런 상태였다면, 혈마 무공을 수련하고 곧바로 등여산과 같은 상태가 되었다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바로 걸려들었다. 다행히 여러 단계를 거쳐서 혈마가 되었기 때문에 현 모습까지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등여산에게 토초가 달려들어서 귀색혼령대법을 펼치면 등여산은 조정받는 혈마가 된다.

음문촌의 구혼음소는 헛된 연구가 아니다.

음문촌장이 혈천방주의 구혼음소를 읊으면 등여산은 당장 죽는다. 아니, 조금 시간이 더딜 수는 있다. 등여산에게 맞춘 구혼음소가 아니니까. 하지만 죽는 것은 확실하다.

“음!”

호발귀는 미간을 잔뜩 찡그렸다.

무조건 혈기만 뽑아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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