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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27화 (427/500)

第八十六章 혈마초출(血魔初出) (2)

활에 화살을 재웠다.

“후우우웁!”

최대한 호흡을 고르게 유지했다.

머릿속은 텅 비운다. 이 먼 거리에서 화살을 어떻게 쏘나 하는 불안감도 지운다.

산을 달려내러 간다고 해도 여전히 백 장 거리가 남는다.

목표를 조준하고 쏠 수 있는 거리의 두 배가 넘는다. 그 거리에서 활을 쏘면 열 대 중 하나 맞으면 요행이다. 아니, 마차가 달리는 점을 생각하면 거리는 순식간에 벌어진다.

어차피 마차를 멈출 수는 없다.

‘바람은 미풍. 북에서 남으로…… 상공에는 와류(渦流)가 있어서 휘말리면 끝장.’

새가 나는 모습을 보고 와류를 판단했다.

새는 기류 변화에 민감하다.

기류를 잘 타면 힘들이지 않고 멀리 날 수 있다. 사람이 보면 힘차게 날고 있는 듯이 보여도 그저 조용조용 날개를 조정하면서 기류를 타는 경우가 많다.

하늘에 떠 있는 새가 날개를 움직이지 않는다.

와류를 타고 있다. 무척 빠르게 날고 있으니 와류 또한 강하다고 봐야 한다.

‘와류에 걸려들지 않게…… 딱 저 높이로……’

궁충은 화살을 날려야 할 높이를 정했다.

스으읏! 타악!

드디어 허공으로 화살을 쏘았다. 목표를 직접 겨누지 않고 허공을 향해 쏘았다.

쒜에엑! 쒜에엑!

호선을 그리면서 날아간 화살이 바람을 타고 조금 더 날아간다. 그리고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완전히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유시(流矢)다.

특정한 목표가 없이 ‘맞을 테면 맞아라. 아무나 맞아라’하고 쏜 화살처럼 보인다. 그런데,

슈우우웃! 퍼억!

하늘에서 내리꽂힌 화살이 대기하고 있던 말의 목을 정확하게 꿰뚫었다.

히이이이잉!

말이 크게 울부짖으며 앞발을 쳐들더니 이내 앞으로 치달렸다. 그러다가 풀썩 쓰러졌다.

순간, 놀란 말들이 마구 날뛰기 시작했다.

사두마차는 죽은 말고 난동하는 말로 인해서 한순간에 뒤엉켜 버렸다. 어자석에 앉아 있던 마부는 퉁겨나가 버렸고, 마차는 앞으로 달리다가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사두마차를 향해서 달려가던 무인 네 명이 우뚝 걸음을 멈췄다.

무슨 일인가 싶을 것이다.

“됐다!”

궁충은 환히 웃었다.

이로써 최대 사거리가 변경되었다. 어쩌면 유효사거리도 바뀔지 모르겠다.

스읏!

그는 다시 활에 화살을 재웠다.

“후우우웁!”

숨을 고르고 조용히…… 하늘을 살폈다. 바람을 봤다. 그리고 어느 순간, 탁! 시위를 놓았다.

쒜에엑!

화살이 허공을 가르며 날아갔다.

궁충은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의식하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든 정신을 활에 집중시켰다.

뇌공일사!

머리속은 오직 뇌공일사만 생각한다. 몸은 뇌공일사를 쫓는다. 진기가 일어나 두 눈과 두 팔에 집중된다. 옆에서 뱀이 기어와 물어도 모를 정도로 오직 활에만 집중한다.

활에 화살을 재고 세상사는 잊어버린다. 오직 활과 목표 간에 거리만 본다.

지금 그가 보는 거리는 직선이 아니다. 곡선이다. 화살과 목표를 잇는 허공의 거리……

긴 호선을 이으면서 날아갈 수 있는 거리를 살핀다.

쒜에엑! 타악!

화살이 허공을 날다가 힘을 잃고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유시가 된다. 궁충이 집중시킨 힘은 모두 소진되었다. 이제는 오로지 낙하하는 힘에 의지해서 날아간다.

타악!

화살이 목표에 꽂혔다.

“크아악!”

들것을 들고 가던 사내 네 명 중 앞에 선 자가 목을 잡고 뒤로 넘어갔다.

화살이 목을 꿰뚫었다.

말의 목을 꿰뚫은 것고 똑같이 화살이 목 옆으로 들어가서 반대쪽으로 튀어나왔다.

궁충이 쏜 화살은 철시(鐵矢)가 아니다. 활도 강궁이 아니다. 평범한 활에, 천살단 무인을 상대하기 위해서 준비한 평범한 화살들만 가지고 있다.

궁충은 활을 사용하지만 멀리 있는 목표를 타격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유효사거리가 사십 장이지만 실제로 사십 장 거리를 쏜 적도 별로 없다.

상대방이 십여 장으로 들어왔을 때, 칼이나 창이 닿지 않는 거리에서만 쏘면 족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최대한 가까이 끌어들인 후에 쏘면 백발백중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안전은 보장된다.

궁충처럼 활을 쏘려면 자신의 실력을 십분 믿어야 한다.

실력을 믿지 못할수록 화살을 쏘는 거리가 멀어진다. 멀리 떨어져 있는 자를 타격하려고 한다.

궁충은 오십 장 너머에 있는 자를 쏘아본 경험이 별로 없다. 하물며 지금은 무려 이백 장 거리다.

궁충은 사십 장 거리를 쏠 때 명궁 소리를 듣는다.

십 장 거리는 활만 쏠 줄 알면 거의 맞힌다. 이십 장 거리는 조금 어렵고, 삼십 장 거리는 적어도 활 당기는 손에 굳은살이 베여야 맞힐 수 있다.

사십 장 목표를 맞히는 사람은 드물다.

궁충도 사십 장을 넘어서면 명중이 떨어진다. 빗맞히는 경우가 많아진다.

지금 궁충은 전혀 명궁답지 않은 행동을 하고 있다.

“후우우웁!”

다시 호흡을 가다듬고 활에 화살을 재웠다. 그리고 허공을 향해 쏘았다.

쒜에엑! 타악!

화살이 허공을 날아간다.

궁충은 화살을 보고 있지 않았다. 활을 떠난 화살은 이미 제 스스로 길을 찾아간다. 궁충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라. 오른쪽으로 조금만 휘어져라 하고 안달을 부려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활을 떠난 화살은 이제 내 것이 아니다.

궁충은 다음 화살을 꺼내 활에 재웠다. 그리고 이번에는 자신 있게 쏘았다.

이백 장 거리…… 그런데 뇌궁일사가 틀어박히고 있다.

궁충은 화살 다섯 대를 날렸다.

화살 네 대가 무인 네 명을 맞췄다. 처음 한 명은 무방비 상태에서 나가떨어졌고, 다음 세 명은 나름대로 방어태세를 갖췄지만,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화살을 막지 못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타악! 탁탁!

화살이 연달아 무인들을 타격했다.

마지막 화살 한 대는 숲을 향해 날아갔다.

솔직히 궁충은 자신이 왜 숲을 향해서 화살을 쏘았는지 알지 못했다. 막연하게…… 숲에 누군가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살 한 대 더 쏘아도 나쁠 것 같지 않았다.

타악!

숲에 꽂히는 화살 소리는 조금 딱딱했다.

사람을 맞추지 못하고 나무에 틀어박혔다.

궁충은 다시 눈앞을 주시했다.

바둑판이 그려진다. 죽은 무인 네 명이 보이고, 주위에 누가 있는지 살핀다. 숲에서 숨어있는 자가 있나? 없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조용하다.

쒜에엑! 쒜에엑!

궁충은 비로소 신형을 쏘아냈다.

‘이게 뭐지?’

궁충은 신형을 날리면서도 자신 스스로 깜짝 놀랐다.

신법이 이전과는 비할 바가 안 되게 빨라졌다. 갑자기 진기가 불쑥 들어찬 느낌이다.

- 사력을 다해서 움직인다.

- 죽을힘을 다해서 움직여라!

사력을 다한다는 말은 귀에 익숙한 말이다. 자신도 수하들에게 종종 쓰는 말이다.

한데 어디까지, 어느 정도까지 움직여야 사력을 다하는 게 될까? 이런 부분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사실, 이런 부분을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그저 최선을 다해서 움직이라는 소리다.

그런데, 정말 이번이 아니면 평생 후회가 된다는 생각이 치미는 순간, 젖먹던 힘까지 쏟아져 나왔다.

주군을 위해서!

자신의 주군은 귀검이다. 호발귀가 아니다. 오직 귀검을 위해서 사력을 다한다.

이번에 또 귀검에게 목숨 하나를 얻었다. 홀리가 죽이려는 것을 말려주었다.

이렇게 귀검은 항상 자신의 목숨을 돌보아준다.

목숨을 구함 받은 은혜는 삼대에 걸쳐서 보은해야 한다고 하는데…… 이번에는 바로 보은할 수 있게 되었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뛰어들면 되는 거다. 지금처럼!

쒜엑! 쒜에엑!

궁충은 단숨에 산을 치달려 내려가서 들것에 실려 있는 도천패 앞에 섰다.

“하아아악!”

들것 앞에 선 후에야 비로소 큰 한숨이 토해져 나왔다.

들것에 실린 사람이 도천패라는 것도 지금에서야 알았다. 당홍 곁을 지키겠다고 떠났던 사람이 이런 모습으로 쓰러져 있을 줄 누가 알았겠나. 그때,

스읏!

숲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주치균!’

궁충은 눈썹을 찡그렸다.

주치균의 무공이 상상 이상으로 높다는 것은 이번에야 알았다.

주치균의 나이는 궁충보다도 어리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무시하게 된다.

검신의 진전을 이었다지만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궁여지책으로 전임 살단주의 반야호신공을 수련한 듯한데, 그마저도 신통치 않다.

검벽주로써는 어떤지 모르지만, 살단주는 영 아니다. 제 몫을 못 하는 자다.

그런데 그런 판단이 이번에 확실히 달라졌다. 아니, 그가 호발귀를 잡은 순간부터 달라졌다.

주치균은 궁충이 상대하기 껄끄러운 자다.

“뭐야? 나는 누가 이렇게 엄청난 화살을 쏘나 했더니 겨우 귀무살 잡종이야?”

주치균의 눈가에 비웃음이 흘렀다.

허공에서 날아온 화살을 보고 숲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다가 나타난 사람이 궁충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나선 모양이다. 그렇다면 너도 소인배.

스읏!

궁충은 활에 살을 재웠다.

“내 활을 시험해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하지만 이 거리는 내게 무척 유리해. 이 정도 거리에서 화살을 날리면 틀림없이 꽂혀. 당신…… 피하지 못해.”

궁충은 예전에는 하지 못했던 말까지 했다.

이런 자부심이 깃든 말, 전에는 하지 않았다. 실제로 지금은 더더욱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보다 더 가까운 거리에서 화살을 쏘았는데도 홀리나 복면인은 모두 쳐냈다.

주치균도 쳐낼 수 있다.

하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이번에는 자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주치균이 피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과연 그럴까?”

“해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나는 손가락 한 번 튕기면 되니까.”

스읏!

궁충이 시위를 잡아당겼다.

파파팟! 파파파팟!

주치균과 궁충의 눈길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예기와 예기가 부딪혔다. 서로 상대방의 진기를 탐색한다. 무공을 살핀다.

‘거짓말이 아닌데?’

주치균은 궁충에게서 엄청난 예기를 느꼈다. 궁충의 화살이 곧바로 심장을 꿰뚫는 듯한 착각마저 일어났다.

이자가 혈마와 사마에 쫓기던 궁충인가? 이런 자가 왜 쫓겼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어떤 역사(力士)에 비해서도 절대 뒤지지 않는다.

궁충이 화살을 날리면 정말 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호발귀를 빼앗길 수는 없다.

스릉!

주치균은 검을 뽑았다. 그때,

“물러서라!”

주치균의 등 뒤에서 천살단주가 나타나며 말했다.

“네?”

주치균이 의아한 표정으로 천살단주를 쳐다봤다.

설마 단주는 자신이 저 자에게 진다고 생각하는 건가? 그럴 리 없겠지?

“단주님, 왜?”

“지금 궁충이 활을 쏘면 막지 못한다.”

“네? 후후! 저 정도 활은……”

“지금은…… 저 화살이 날아오면 나도 당한다. 지금은 그래.”

“네에?”

주치균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봐야겠지. 하지만 지금은 그래. 죽기 싫으면 물러서라. 시험해 봐도 좋고. 너와 나의 인연은 끝났으니 말리지는 않으마.”

주치균은 물러섰다.

주치균이 물러서자 궁충도 활을 내렸다. 그리고 도천패를 둘러업고 신형을 날려 사라져갔다.

‘음!’

주치균은 궁충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면서 신음을 흘렸다.

도천패는 체격이 몹시 크다. 웬만한 곰만큼이나 크다. 보통 사람은 도저히 업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물론 궁충은 뛰어난 무인이다.

진기도 상당하다. 화살을 이백 장이나 날린 자다. 도천패를 업고 뛴다고 해서 놀랄만한 일은 아니다.

궁충은 도천패를 업고 뛰면서도 화살을 날릴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도 여력이 남았다.

“궁충이 이만한 고수였습니까?”

주치균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그건 네가 알아내야지. 난 이제부터 천살단과 인연이 끝났으니. 하지만 이번 일은 너와 내가 같이 겪은 일이니 말해주마. 아무래도 혈마가 개입한 것 같다.”

“네? 혈마라면?”

주치균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말했다.

궁충은 혈마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생기를 쓰는 것 같지도 않다. 정신이 너무 멀쩡하다. 주변에 다른 혈마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혈마가 있다면 당장 잡을 수 있으니 더 좋지 않나.

주치균은 단주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천살단주가 말했다.

“호발귀. 진짜 혈마. 혈마가 아니면 이런 일이 있을 수 없어. 지금 궁충의 활은 옛날 악불사왕 궁마의 활과 버금간다. 누구도 당해내지 못해. 허허허!”

“설마?”

“얘기했잖니. 시험해 봐도 좋다고. 사실 알고 싶었거든. 정말 그런지. 가거라.”

천살단주는 도천패를 빼앗기고도 뒤쫓지 않았다.

정말로 궁충의 활을 위협으로 여긴 것이다.

부상을 입지 않은 상태라면 달려들어서 되찾았겠지만…… 지금은 어렵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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