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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26화 (426/500)

第八十六章 혈마초출(血魔初出) (1)

지금 당장, 귀검의 눈앞에 목숨이 위태로운 사람이 두 명이나 있다. 그중 특히 해자수는 칼을 제대로 맞았다. 그가 아무리 생기를 잘 이끈다고 해도 생명이 위태롭다.

그런데도 귀검은 모든 뒤처리를 궁충에게 맡긴 채 먼 숲만 쳐다봤다.

아직도 위험하다.

귀검은 지금 즉시 검을 터트려도 하등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팽팽하게 긴장했다.

스읏!

궁충이 일어섰다.

“대충 수습은 했습니다. 지금 당장 본격 치료에 들어가지 않으면 생명이 위독합니다.”

“버틸 거다.”

“네?”

“해자수가 원하는 것은 홀리의 목숨이다. 홀리를 우선적으로, 그다음이 해자수. 이게 우선순위다. 만일, 몸을 빼야 할 일이 생기면 홀리부터 챙겨.”

“알겠습니다.”

궁충이 활을 든 채 사방을 주시했다.

귀검이 아직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상당한 강적이 대기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궁충의 눈에는 어떤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휘이이이잉!

숲에 바람이 분다.

바람은 평화롭기만 하다. 어떤 피 냄새도 풍기지 않는다.

“그럼 저는 먼저.”

궁충이 홀리를 메고 움직이려고 했다.

“그대로 있어.”

귀검이 나직이 말했다.

궁충은 즉시 긴장했다. 귀검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주변에 적이 있다는 뜻이다.

사실이 그랬다. 잠시 후, 숲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궁충도 잘 아는 사람……

너무 잘 알아서 모습을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포권을 취해서 인사를 했다.

혈천방주가 뒷짐을 진 채 여유 있게 걸어왔다.

“자네는 인사도 없나?”

혈천방주가 귀검을 보며 말했다.

“서로 입장이 갈린 것 같은데 예의는 그만두지.”

귀검이 차게 말했다.

“정나미는 떨어지지만 그래도 꼬박꼬박 존댓말을 할 때가 좋았는데 말이야. 이렇게 대놓고 무시하니 기분이 살짝 나빠져. 내가 말했지? 서로 입장이 갈리더라도 내 앞에서 깝죽대지 말라고. 그러다가 죽는다니까.”

“귀검의 검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검을 뽑는다면 언제든지 받아주지.”

“하하하! 야, 이거…… 입장이 바뀌었다고 사람이 완전히 바뀌네. 이거 무서워서 어디 여기 있겠나. 그러나저러나 지옥유부검이 혈마한테도 통할 줄은 몰랐는데. 그런 검이면 사마도 장난처럼 잡아내겠어. 본방에 있을 때 검을 많이 숨겼어.”

혈천방주가 죽은 사마를 둘러보며 말했다.

“궁충.”

귀검이 말했다.

“넷!”

궁충이 즉시 대답했다.

“홀리와 해자수를 데리고 가라. 앞을 막는 자는 내가 벤다. 누구를 막론하고.”

“넷!”

궁충이 서슴없이 홀리를 등에 업었다. 그리고 해자수를 어깨에 부축한 채 일으켰다.

“베고 싶으면 마음대로 벨 수 있는 건가? 귀검은 이런 자신감을 가지고 강호를 돌아다녔군. 재미있어.”

혈천방주가 웃었다.

“그런데 말이야, 귀검.”

혈천방주가 귀검 앞으로 걸어와서 마주 서며 말했다.

“그 지옥유부검. 정말로 순간적으로 승부를 결정짓는데…… 그 검으로 혈마까지 잡을 줄은 몰랐다는 거지. 도저히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추측이 안 돼. 궁금한 게 하나 있었는데 말이야. 그 지옥유부검. 혈천방 무공도 아니고…… 어디서 얻었나?”

“사령청공도 혈천방 무공이 아니지. 후후! 방주, 사령청공만 수련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방주를 모시고 있을 것. 왜 그따위 잡술에 현혹되었나. 혈천방주가 되어가지고.”

“잡술? 하하하! 지옥제일공(地獄第一功)이라는 사령청공을 잡술로 폄하라는 사람은 귀검밖에 없을걸? 하기는…… 지옥유부검도 지옥검이지. 같은 지옥이라면 사령청공이 위가 아닐까? 아! 발끈하지는 마. 우리, 언젠가는 부딪쳐.”

슷! 탁탁!

혈천방주가 손을 들어서 귀검의 어깨를 탁탁 쳤다.

귀검은 혈천방주의 손길을 무심히 받아들였다.

“보아하니 등여산, 홀리, 해자수는 내 손에 들어올 것 같지 않고…… 이럴 줄 알았으면 도천패를 괜히 양보했어. 지옥유부검의 실체를 알지 못한 게 패착이지. 다 내 실수인데, 누굴 원망해. 가봐. 잡지 않을 테니까. 죽지 말고.”

혈천방주가 멍하니 서 있는 궁충을 보며 말했다.

“후우!”

귀검은 한숨을 토해냈다.

혈천방주의 사령청공은 지옥유부검에 못지않은, 아니 승패를 짐작할 수 없는 초절정 검공이다. 지옥의 울음을 뱉어낸다는 절대 검공이다.

두 사람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 장담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혈천방주가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귀검을 만나서 농담 몇 마디하고 돌아갔다.

귀검이 반가워서 나타난 것도 아니고,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기 위해서 나선 것도 아니다. 싸우지 않을 생각이었다면 조용히 지켜보다가 돌아갔어도 된다.

그가 나타나서 괜히 몇 마디 나누고 간 것에 주목해야 한다.

그렇다. 혈천방주는 나타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굳이 나타나서 귀검에게 사나운 소리만 들었다. 옛 부하에게 하대를 듣는 것이 결코 기분 좋지는 않을 텐데.

그런 말을 듣더라도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는? 혈천방주가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했다. 이럴 줄 알았다면 도천패를 양보하는 게 아니라고.

혈천방주는 도천패를 천살단에 내줬다.

천살단이 도천패를 가져가도록 도와준 것이다. 말 몇 마디 나눌 시간이면, 저들은 이미 쫓아갈 수 없을 만큼 멀어질 수 있다. 그만한 자들이 왔다.

두 사람을 잃었다. 도천패와 당홍.

주군의 보위와 형수라고 부르는 여인을 빼앗겼다.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그들의 운명이 예감된다. 그들은 지금보다 더 가공할 혈마로 변형될 것이다. 천살단과 혈천방의 연구가 집중될 것이다.

그들을 얌전히 내버려 둘 천살단과 혈천방이 절대 아니다.

그 두 사람…… 지금 되찾아오지 않으면 결코 살아서 만날 수 없다.

하지만 찾을 방법이 없다.

도천패와 당홍은 이미 멀리 사라졌다.

‘조금 더 일찍…… 일찍 나섰어야 해. 이번에는 완벽한 내 실수…… 주군을 뵐 낯이 없군.’

귀검은 자책하며 돌아섰다. 그런데……

‘응?’

귀검은 인상을 확 찡그렸다.

궁충에게 어깨를 맡긴 채 질질 끌려가고 있어야 할 해자수가…… 스스로 걷고 있다. 한 손으로는 복부를 움켜쥐고, 등에는 홀리를 업은 채 비틀거리면서 걷는다.

생사가 경각에 달린 해자수가 홀리를 끌고 간다.

‘궁충!’

귀검은 인상을 확 찡그렸다.

지금, 이 순간, 제일 먼저 생각나는 말은 ‘이 미친놈!’이다. 궁충에게 두 사람을 맡겼는데…… 어디로 사라진 것인가? 환자를 버리고 어디로 갔나?

하지만 귀검은 즉시 다른 부분에 주목했다.

궁충이 움직이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궁충이 자신의 이목을 속일 정도의 고수가 아닌데…… 전혀 감지하지 못했다.

귀검은 지금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즉각 눈치챘다.

스읏!

귀검은 해자수에게서 홀리를 건네받으며 물었다.

“무슨 일인데?”

“뭐 말도 하지 않고…… 막아야 한다고. 무조건 막아야 한다고. 그 말만 하고는 냅다 달려가서…… 좀 이따 보자고 하던데.”

해자수가 더듬더듬 말했다.

“몸은?”

귀검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칼도 너무 맞으면 통증을 못 느껴. 킥킥! 차라리 이게 낫지.”

해자수가 웃었다.

아니다. 해자수의 상처는 결코 아픔을 느끼지 못할 정도가 아니다. 너무 아파서 움직이지 못해야 한다. 그런데도 어기적거리면서 잘도 걷고 있다.

‘주군!’

귀검은 호발귀를 떠올렸다.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귀검도 알지 못한다. 하지만 해자수나 궁충 모두 신력(神力)을 발휘하고 있다. 궁충은 자신의 이목을 속일 정도로 빠르게 이동했고, 해자수는 생사지경에 처한 상처를 입고도 움직인다.

무슨 일인가 일어나고 있다. 그리고 그 일은 절대 나쁘지 않다.

“어깨를 줘. 부축해줄게.”

“아니. 난 정말 아프지 않다니까. 걸을 만해. 아씨만 부탁해. 아씨…… 정말 불쌍한 분이라서.”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

“묻지 말지.”

해자수가 히죽 웃었다.

귀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에게나 말하기 싫은 사연이 한두 개씩은 있는 법이니까.

궁충은 있는 힘껏 치달렸다.

그는 자신이 왜 죽을힘을 다해서 치달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하려는 것인지도…… 또 홀리와 해자수를 그 상태로 던져 놓고 온 것도 마음에 걸렸다.

‘귀무령께 보고라도 하고 오는 건데.’

상황이 너무 급해서 귀검에게 온다간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냅다 뛰었다.

지금 무슨 상황이 벌어졌나?

모르겠다.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다. 다만 지금 이 길로 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느낌이 일어난다. 지금 즉시 움직이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단지 그것뿐이다. 그런 느낌이 들어서 어딘지도 모를 곳을 치달리고 있다.

스으읏! 스읏! 스스스슷!

궁충은 산 중턱으로 치달렸다.

앞에 넓은 바위가 보였다. 저 위로 올라가면 사방이 환히 조망될 것 같다.

쉬이이잇!

궁충은 빠르게 신법을 펼쳐서 바위 위로 올라섰다.

그는 즉시 매의 눈이 되어서 사방을 살폈다.

착착! 착착착착!

주변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바둑판을 보듯이 가로와 세로로 구역이 정해진다. 모든 풍경이 잘게 쪼개져서 눈에 들어온다.

‘아니고…… 여기도 아니고……’

바둑판처럼 쪼개진 구역을 하나씩 지워나갔다. 아무것도 없는 구역은 버린다.

그러다가 네 명을 찾아냈다.

누군지 모를 자들인데, 네 명이 들것을 들고 신법을 펼쳐서 치달리고 있다.

그들 앞쪽에는 마차가 대기하고 있다.

‘사두마차!’

산 아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들것에 싫어서 옮기는 사람을 마차에 태워서 달려갈 것이라는 점을 모를 수는 없다.

궁충은 즉시 화살을 꺼내 활에 재웠다.

저들이 누구인지 모른다. 들것에 실린 사람도 모른다. 하지만 막연히 저들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천패 아니면 당홍이 실려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이 산에서는 싸움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천살단과 혈천방, 그리고 귀무살이 서로 뒤엉켜 있다. 주된 목표는 혈마이지만, 천살단과 혈천방도 철천지원수다.

들것에 실린 사람이 단순히 부상자일 수도 있다.

하지만 들것에 실린 사람을 마차에 태워서는 안 된다는 느낌이 일어났다.

‘거리가 너무 멀어!’

궁충은 활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서 있는 바위 위에서 산 아래 마차까지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어림잡아도 이백 장은 넘어 보인다.

궁충은 최대 백삼십 장까지 쏘아본 적이 있다.

목표 타격과는 상관없이 화살을 얼마나 멀리 날릴 수 있냐 하는 단순한 궁금증에서 허공 높이 쏘아봤다. 스무 대를 쏴서 가장 먼 거리에 떨어진 것이 백삼십 장이었다.

목표를 조준하고 타격하는 뇌궁일사의 유효사거리는 사십 장이다.

보통 활을 좀 쏜다는 사람, 명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가지는 유효사거리가 삼십 장이다.

궁충은 활에 대해서는 단연 압권이다.

하지만 지금은 거리가 무려 이백 장이다.

‘이 거리는 무리……’

지금까지 궁충이 날린 최대 사거리보다 절반은 더 멀다.

평소 같으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거리라서 화살도 재우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저들을 말려야 할 이유가 있다면 화살을 쏘는 것보다 산을 치달려 내려가는 것이 더 빠르다.

저들은 마차에 도착하기까지 대략 이십 장 거리가 남았다. 들것에 실린 사람을 마차에 옮겨서 싣는데도 시간이 필요하다. 또 누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서 급하게 서둘지도 않는다.

지금 산을 치달려 내려간다면 마차가 출발하기 전까지 백여 장은 좁힐 수 있다.

마차가 출발할 즈음에는 백여 장 밖에 거리가 남지 않는다.

그때는 활을 쏠 수 있다. 물론 마차를 적중시킬 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백 장 거리에서 활을 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지금도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치민다.

“후우우욱!”

궁충은 활에 화살을 재우면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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