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五章 장기래료(藏起來了) (5)
“끄윽! 끄윽! 끄으윽!”
해자수가 신음을 쏟아냈다.
홀리에게 일격을 당할 때, 아니 정확히 말하면 홀리에게 멱살을 잡히는 순간에, 해자수는 저절로 생기가 일어났다.
철벽이 세워지고, 몸 안에서 일어난 돌풍이 몰아쳐 오는 철벽에 부딪혀갔다.
홀리의 혈기가 해자수의 생기를 자극했다.
퍼억!
홀리의 주먹이 복부를 강타할 때, 생기와 생기가 부딪혔다.
그 덕분에 해자수는 내장이 터지지 않았다. 오장육부가 멀쩡할 수 있었다. 하지만 배가 갈린 것은 사실이다. 그것에 주먹이 꽂힌 것도 현실이다.
“끄으윽! 끄윽!‘
해자수는 배를 움켜잡고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그 순간, 홀리는 해자수를 놓아버리고 방향을 틀었다. 해자수에게 칼을 쓴 복면인을 향해 쏘아 갔다. 그가 울려대는 구환도의 고리 소리가 홀리를 자극했다.
복면인이 구환도를 들어 올렸지만, 이미 홀리는 복면인의 목을 움켜잡은 후이다.
우둑!
복면인의 목뼈가 분질러졌다.
똑같은 혈마 상태인데…… 홀리가 혈기가 훨씬 강하다. 당홍, 도천패, 해자수가 보이지 못한 위력을 보인다. 복면인들을 장난감처럼 다룬다.
차랑!
홀리는 복면인이 흘린 구환도를 주워들었다.
’일어나야 해!‘
해자수는 사력을 다해서 일어섰다.
그는 이제 한계에 도달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은인문 술사로, 또 혈기를 다스릴 줄 아는 사람으로…… 모든 게 마지막을 향해서 치달리고 있다.
파라라라랑!
해자수는 용권풍을 일으켰다.
거센 회오리바람에 몸을 싣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철벽을 향해 치달렸다.
차라랑! 차랑!
앞에서 구환도가 울었다.
이 순간, 해자수는 철벽을 보지 않았다. 또 다른 철벽을 주시했다. 가장 강한 철벽…… 너무 강해서 덤벼볼 엄두가 나지 않는 철벽이 어디로 움직이는지 살폈다.
파아아앗!
역시 철벽이 자신을 향해서 다가온다.
혈기는 혈기를 자극한다. 해자수가 혈기를 일으키자 홀리가 어느 것에 앞서서 반응했다.
‘이제 됐어.’
해자수는 만족했다.
이제는 혈마가 되어도 상관없다. 자신이 복면인에게 다가가고, 홀리가 자신을 향해 쏘아온다.
북쪽이 뻥 뚫렸다. 벌써 궁충과 귀무살이 등여산을 업고 치달리는 중이다.
‘제발 이놈만 치고!’
해자수는 눈앞에 있는 복면인이라도 처리하고 싶었다. 그래야 혈마가 되어도 원이 없을 것 같았다. 일단 용권풍에 휘말린 이상, 다시 거둘 수는 없고…… 그렇게 피하려고 했는데, 결국 아씨와 싸우고 마는 건가?
아니, 싸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홀리는 혈기는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 자신이 풋내기 혈마라면 홀리는 아주 혈기에 능숙한 혈마다. 사람을 죽이는 면에서 도가 텄다고 할 수 있다.
‘일단 도주할 길은 뚫어줬으니까.’
쒜엑! 쒜에엑!
복면인이 구환도로 해자수를 공격해왔다.
해자수는 구환도를 피하지 않았다. 이 칼을 공격하면, 복면인은 기운을 감춘다. 안으로 숨어버린다. 그러면 홀리가 공격할 곳을 잃어버린다.
구환도를 정면으로 가슴에 얻어맞았다.
퍼억!
가슴이 쩍 갈라진다. 갈비뼈까지 단숨에 갈라진 것 같다.
”크으윽!“
해자수는 비명을 흘리면서 그 자리에서 그대로 무너졌다.
용권풍이 복면인의 칼을 피하려고 했다. 몸을 비틀려고 했다. 그것을 억지로 뒤틀었다. 복면인의 칼에 맞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니다. 억지로 맞아줘야 한다. 순간,
촤라라랑!
홀리의 구환도가 복면인의 머리를 후려쳤다.
복면인이 급히 구환도를 들어서 홀리의 칼을 막았다. 하지만 홀리는 복면인이 쳐낸 구환도의 검배를 손바닥을 눌러버렸다. 그리고 계속해서 구환도를 뻗어냈다.
촤라라랑! 퍼어억!
복면인의 머리에서 혈맥참이 터졌다. 복면인은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너졌다.
‘이제 두 명!’
해자수는 복면인만 쓰러트릴 생각이다. 그러자면 사력을 다해서 움직여야 한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나? 해자수가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는데, 복면인이 홀리를 공격했다.
차라라라랑!
복면이 두 명이 좌우에서 홀리를 협공했다.
한 명은 요란하게 구환도를 울려대고, 다른 한 명은 암도를 전개한다. 한 명은 모습을 드러내고, 암도를 쓰는 자는 순간적으로 생기를 감췄다.
촤라라라랑!
홀리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구환도를 뻗어냈다.
그 순간, 홀리의 구환도가 파르르 떨렸다. 그리고 복면인의 떨림의 진의를 파악하지 못했다. 정확하게 파악해도 막기가 힘든데,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홀리의 구환도를 피해서 소리를 죽이기에 급급했다.
그때, 해자수가 암도를 향해 신형을 쏘아냈다.
해자수는 가슴에 일격을 당하는 순간, 용권풍에서 벗어났다. 사경에 처하자 깜빡 생기를 놓쳤다.
오히려 그 점이 해자수에게는 이로워졌다. 그는 숨어서 달려드는 복면인을 봤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암도 앞에 내던졌다. 생기를 일으키면서.
쒜에엑! 까앙!
해자수는 사력을 다해서 검으로 암도를 쳐냈다.
생기를 일으키면 자신도 암도를 보지 못한다. 그러니 돌풍에 휘말리기 전에 친다.
물론 전신 진기로 쳐낸 검이기 때문에 구환도를 당할 수는 없다. 귀무살처럼, 천살단 무인들처럼 복면인의 검 아래 잘려나갈 것이다.
쒜에에에엑!
해자수는 등 뒤에서 칼이 날아오는 것을 감지했다. 철벽이 옆으로 누워지더니 목을 쳐왔다. 홀리는 복면인들을 죽이는 것보다 해자수를 죽이고 싶어 한다.
해자수는 본능적으로 머리를 숙였다.
퍼억! 퍽!
칼 두 자루가 상대를 격타했다.
복면인의 칼을 해자수를 짓이겨 놨다. 홀리의 칼은 복면인의 가슴을 반이나 갈았다. 그때,
쒜엑! 쒜에엑! 쒜에엑!
허공을 가르면서 화살이 날아왔다.
해자수는 궁충에게 떠나가라고 경고했다. 화살을 쏘지 말라고. 하지만 궁충은 떠나지 않았다. 묵묵히 지켜보다가 해자수가 위험해지자 홀리를 향해서 화살을 열 대나 쏘았다.
타앙! 탕탕탕! 타앙!
홀리는 장난처럼 화살을 쳐냈다.
이미 귀무살은 동굴을 향해서 달려가는 중이다. 궁충은 귀무살을 지킬 부담이 없다.
쒜엑! 쒜엑! 쒜에엑!
그는 계속해서 화살을 쏘았다.
홀리에게 화살 열 대를 쏘고, 또 다른 복면인을 향해 다섯 대를 쏘았다.
순식간에, 그야말로 촌각 만에 화살 열다섯 대를 쏘았다. 뇌공일사가 아니면 불가능한 속도다.
그런 화살들이, 열다섯 대가 모두 튕겨 나갔다.
홀리는 단 한 번의 칼질만으로 화살 열 대를 떨어냈다.
복면인도 마찬가지다. 구환도를 크게 휘둘러서 화살 다섯 대를 떨궜다. 하지만 그 화살 다섯 대는 홀리에게 복면인의 위치를 알려주기에 충분했다.
홀리가 구환도를 향해 덮쳐갔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홀리가 복면인을 공격한다. 한데, 어느 순간…… 홀리가 멈칫거렸다. 눈앞에서 생기가 팍!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어떤 현상인지 궁충은 너무 잘 안다.
쒜엑! 쒜엑! 쒜에엑!
궁충은 다시 복면인을 향해 화살 다섯 대를 날렸다.
복면인은 어쩔 수 없이 구환도를 들어서 다시 화살을 쳐냈다. 그 순간,
슛!
복면인의 아랫배를 가르고 들어간 칼이 등 뒤까지 쭉 베면서 빠져나왔다.
복면인은 허리가 잘리면서 쓰러졌다.
‘됐어!’
궁충은 피식 웃었다.
홀리가 해자수를 노리고 달려갔다.
해자수는 거의 인사불성이다. 간신히 숨만 붙어 있다. 지금 당장 치료를 해도 살아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저 정도의 상처라면 살릴 자신이 없다.
홀리? 홀리는 더 막지 못한다.
지금까지는 복면인이 있어서 홀리의 주의를 끌어당겼지만, 자신은 주목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다시 화살을 쏜다고 해도 해자수가 죽는 것은 막지 못한다.
스읏!
홀리가 칼을 들어 올렸다.
해자수…… 그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며 길을 열었다.
”고맙소!“
궁충이 목청껏 크게 말했다.
”킥킥! 뭐가?“
해자수가 쓰러진 채 말했다.
그도 홀리가 자신을 격타한다는 사실을 안다. 홀리를 빤히 보고 있는데 모를 수 없다. 하지만 홀리와 싸우지 않고, 혈마에 물들지 않은 상태에서 죽는다는 게 이리 기쁜 일인지……
처음 알았다. 이 정도 죽음이면 감수할 수 있다.
”우리 귀무살…… 임무를 완수하지 못 할 뻔했는데, 임무를 완수하게 해줬으니 고맙다고 할 수밖에!“
”그럼 인마! 저승 가는 길에 술이나 한잔 사! 노잣돈이 있냐?“
”하하! 설마 귀무령이 계시는데 지전 한 장 안 살려주겠소. 술 한 잔 사리다!“
”킥킥! 나는 지전 살려줄 사람이 없다. 그 귀무령인가 뭔가 하는 인간한테 지전 좀 듬뿍 뿌려달라고 해! 가면서 실컷 취하자! 염라대왕 질색하게. 하하하!“
해자수가 농담하며 홀리를 쳐다봤다.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홀리가 검을 내리치고 있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때, 궁충 앞으로 한 사람이 불쑥 내려섰다. 그는 귀신처럼 신형이 흐릿했다.
실체인가 환영인가?
궁충 앞에 나타나는 자는 즉시 궁충의 허리춤에 있는 전통에서 화살 네 개를 뽑았다. 궁충이 말릴 사이도 없이 화살을 빼앗은 사내는 즉시 홀리를 향해 힘껏 던졌다.
수전(手箭), 손으로 쳐내는 화살이다.
스읏! 촤라라랑! 까앙!
홀리가 해자수를 공격하지 못했다. 즉시 뒤돌아서며 화살을 쳐냈다.
그 순간 다시 흐릿한 그림자가 귀신처럼 부드럽게 움직였다. 그는 이미 홀리의 등 뒤로 들어가 있었다.
팍!
둔탁한 소리가 일어나고, 홀리가 털썩 무너졌다.
타악! 탁탁! 탁탁!
느닷없이 경쾌한 타격 소리가 일어났다.
그림자는 재빨리 홀리의 요혈 다섯 군데를 타격했다.
그림자의 손속이 너무 빨라서 어느 혈을 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순식간에 등 쪽 요혈 세 군데를 찍고, 몸을 돌려서 앞쪽 혈도 두 군데를 찍었다.
“뭐해! 빨리 와서 치료해야지!”
그림자가 궁충을 보며 소리쳤다.
궁충은 그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뛰어갔다.
나타난 사람은 귀검이다. 귀무령 귀검!
귀검이 지옥유부검을 펼쳤다. 지옥유부검이 홀리에게도 통했다. 홀리를 쉽게 무너트렸다.
홀리는 지옥유부검의 실체를 전혀 잡아내지 못했다.
“아! 이거 너무 심한데.”
궁충이 해자수의 상태를 살펴보며 말했다.
“아씨는…… 아씨는……?”
해자수가 깜빡깜빡 정신을 잃으면서도 귀검을 보고 물었다.
“무사하다. 걱정하지 마라.”
귀검이 차게 말했다.
귀검은 해자수의 상처는 전적으로 궁충에게 맡기고 주위를 경계했다.
“애들이 동굴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궁충이 해자수를 치료하기에 앞서서 재빨리 홀리부터 묶으면서 말했다.
“오면서 봤다.”
“안 가보셔도 괜찮겠습니까?”
”동굴 안에 들어가지 말라고 전했다. 책사를 안쪽으로 밀어 넣기만 하라고. 그 정도면 주군께서 알아서 하실 거야.“
“주군께서는 무사하십니까?”
궁충이 묻는 ’무사’라는 말속에는 많은 말이 함축되어 있다.
“나도 모르지.”
귀검이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말했다.
귀검은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 하지만 변하지도 않는다. 늘 한결같다.
“도천패와 당홍은?”
“잡혀간 것 같습니다.”
“음!”
귀검이 침음을 흘렸다.
그동안 궁충은 홀리를 결박했다. 그리고 해자수에게 다가가서 급히 금창약을 뿌렸다.
“살릴 수 있겠나?”
“솔직히 힘듭니다.”
그러자 귀검이 허리를 숙여 해자수의 머리를 잡았다. 그리고 빠르게 말했다.
“해자수. 버텨! 생기를 일으켜서 버텨! 이제 곧 승부가 날 거야. 모두가 죽던가, 모두 살던가. 모두 주군에게 달린 문제겠지만, 버텨서 끝을 봐!”
귀검이 해자수를 놓고 일어섰다.
“후후후! 견딜 수 있어. 견딜 수 있지. 견딜 수 있지 말고. 후후! 우리 아씨…… 살았네. 아씨를 내가 죽음으로 몰아넣었는데 우리 아씨가 살았어. 후후!”
해자수가 기적처럼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실성한 듯이 웃었다.
그만큼 홀리가 다시 잡힌 것이 천만다행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