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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24화 (424/500)

第八十五章 장기래료(藏起來了) (4)

혈천방주는 도천패의 대도만 치웠을 뿐, 바로 손을 쓰지는 않았다. 손만 올리면 천령혈을 누를 수 있는데도, 가까이 다가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번에는 사내인데, 하나 양보해 드릴까?”

혈천방주가 허공에 대고 말했다.

“하나는 양보했지만 두 번째는 양보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허허허! 이렇게 양보해 주신다니 기꺼이 받아야 도리 아니겠소. 다 잡은 걸 주니 미안하기도 하고.”

숲에서 천살단주가 걸어 나왔다.

“계속 쫓아오시기에 빈손으로는 가시지 않겠다 싶었죠. 이거 하나로 만족하시기를.”

“흠!”

“우리 서로 이 악물고 싸울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혈천방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기왕이면 잡아서 주시지. 상처가 쑤셔서 진기를 일으키기도 힘들어서 말이죠.”

“하하하! 밥상을 차려드렸으면 밥은 손수 드셔야지.”

“그런가요?”

“그렇죠. 하하하!”

혈천방주가 웃었다.

혈천방주는 혈마를 제압할 수 있다. 당홍을 잡으면서 그 점을 보여주었다.

천살단은 어떤가? 등여산을 잡은 수법, 다시 한번 보여봐라. 그때는 자세히 보지 못했으니 이번에 봐야겠다.

“그럼!”

천살단주가 도천패를 향해 걸어갔다.

순간, 천살단주의 몸에서 검은 운무가 뭉클 피어났다.

도천패는 멍하니 앉아 있다. 단주가 가까이 다가서는데도 전혀 감지하지 못하고 있다.

“멋진 암약혼기!”

혈천방주가 감탄했다.

단주는 비수를 꺼내서 도천패의 단중혈을 푹 찔렀다.

그러자 도천패가 심장 뚫린 곰처럼 쿵! 소리를 흘리면서 무너졌다.

짝짝! 짝! 짝짝짝!

혈천방주가 손뼉을 쳤다.

“정말 뛰어난 수법, 암약혼기만 해도 인간이 수련해 낼 수 없는 무공이라고 하는데, 도수척혼(刀手滌魂)까지! 하아! 단주님의 무공을 보자면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시험을 하는 듯해서…… 정말 신중해야겠어요. 단주님과 싸우는 건.”

혈천방주가 고개를 설래설래 흔들면서 말했다.

“허허허! 겸손도 지나치면 비례라는 말이 있어요. 제 무공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한들 방주의 사령청공(死靈晴功)에 견주겠습니까? 사령청공이야말로 인간의 한계를 무너트린 공부 아닙니까?”

“제 무공도 알고 계시고……”

혈천방주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지금 천살단주를 죽일 것인지 생각을 하는 중이다.

단주는 현재 부상을 입은 상태다. 만약 단주와 싸운다면 지금처럼 좋은 기회는 없다.

단주라고 그런 마음을 모를까. 알면서도 태연히 방주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그동안 방주는 몇몇 무공을 흘렸는데, 기억 안 납니까? 소이구혼공(騷耳句魂功), 촉음악감각술(觸音握感覺術). 이런 건 감각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공부이고 사혼진령음(死魂震靈音)은 뭐랄까? 무당의 진언이라고 할까? 이런 것들이 사령청공의 기본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도 아는 문제인데.”

“그런가요? 하하! 이거 내가 내 발등을 찍었네.”

‘우리는 언젠가 한 번 부딪혀야 할 테니까, 알아둘 건 알아둬야겠지. 허허허!’

“우리 애들이 다른 놈들을 쫓고 있는데, 그놈들까지 데려가실 욕심이 없으시다면……”

혈천방주가 도천패를 데려가라고 손짓했다.

“방주의 호의를 받아들이죠. 사실, 혈마는 하나만 있으면 되는 것 아닙니까? 후후!”

천살단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속이 빤히 보이는 거짓말이다. 천살단주는 혈마를 모두 잡을 속셈이었다. 등여산을 낚아채 간 홀리를 유유히 따라나선 것도 그런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천살단주는 두 가지를 실수했다.

혈마가 되기 이전의 인간, 생기를 사용하는 인간의 무공이 자신과 필적할 정도로 강한데 놀랐다. 두 번째 실수는 사마의 존재를 새카맣게 몰랐다.

괴마가 만든 시마가 있었다면 사마와 좋은 승부를 이뤘을 텐데.

이럴 줄 알았다면 괴마를 괜히 죽였나? 시마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조금만 발전하면 사마가 된다. 암약혼기를 절반쯤 섞은 시마가 사마다.

혈천방주에게 사마가 있는 한, 오늘 싸움은 절대적으로 불리하다.

그렇다면 혈천방주는 왜 도천패를 양보하나? 천살단에 다른 수단이 있다고 본 건가?

아니다. 방주는 천살단이 혈마를 데려가서 무엇을 얻어낼지 궁금한 것이다.

도천패는 안심하고 데려가도 된다.

“이놈, 데려가라!”

천살단주가 말했다.

그러자 숲에서 네 명이 들것을 가지고 뛰어나왔다.

도천패의 덩치가 워낙 커서 네 명이 들었는데도 힘에 겨워 보였다.

“앞으로 한 시진 이내는 깨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안에 손발을 묶어야 해.”

“알고 있습니다.”

네 사내가 우렁차게 대답했다.

혈천방주는 그들을 훑어보고는 도천패에게는 조금도 미련이 없다는 듯 등을 돌렸다.

그들 네 명, 천살단 무인이 아니다. 네 명 모두 일반인 복장을 하고 있다.

쒜엑! 쒜에엑!

그들이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 * *

해자수는 곧바로 난관에 부딪혔다.

도천패와 헤어지고 대략 삼십여 장쯤 달려갔을 때, 갑자기 거대한 철벽이 세워졌다.

철컥! 철컥! 철컥!

지금까지 많은 철벽을 봤지만, 이번처럼 거대한 철벽은 처음이다. 철벽 하나가 앞을 모두 막아버린다. 과연 이런 철벽을 일 검에 갈라낼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전후좌우, 사방에 철벽 네 개가 세워졌을 뿐인데 감옥에 갇힌 느낌이 든다.

해자수는 이런 철벽을 알고 있다.

“아!”

해자수가 한숨을 토해내며 걸음을 멈췄다.

궁충과 귀무살이 가까이 다가서며 물었다. 그들도 이상한 기미를 느낀 것이다.

“뭐죠?”

“우리 걸려든 것 같은데.”

“걸려들어요? 제 눈에는 아무것도……”

“음! 흩어지지 말았어야 했어. 우리가 다 같이 모여 있었다면 힘을 더 쓸 수 있는데. 이게…… 참 곤란하게 됐네. 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겠어.”

해자수가 미간을 찡그렸다.

해자수의 말은 곧 현실로 드러났다.

차라랑! 찰랑! 찰랑! 촤라라랑!

사방에서 구환도가 울어댔다. 고리가 검배가 마구 부딪치면서 귀신의 울음을 흘렸다.

복면인이 사방에서 나타났다.

“앞쪽만이라도 뚫을 수 없겠습니까?”

궁충이 물었다.

해자수는 대답하지 않았다. 지금 그는 궁충과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뚫지 못한다!

이것은 확실하다. 어떤 수단을 강구해도 복면인 네 명을 뚫고 나갈 수는 없다. 자신은 이들 중 한두 명과 싸우는 사이에 혈마가 될 것이다.

최대 난관이다.

궁충과 귀무살은 복면인 한 명도 감당하지 못한다.

이 싸움은 완벽하게 졌다. 자신들도 지고 천살단도 졌다. 처음, 격렬하게 부딪쳐온 쪽은 천살단이지만, 혈천방에서 내보낸 이들 복면인 몇 명이 판세를 갈라버렸다.

혈천방이 이겼다.

‘이렇게 되면 방법은…… 없는 거지. 후후! 방법이 없는데 무슨 수로 싸워.’

“거기 아씨 내려놓지.”

해자수가 홀리를 업고 있는 귀무살에게 걸어가며 말했다.

“네?”

귀무살이 언뜻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되물었다.

“궁충. 잘 들어. 나는 지금부터 아씨를 풀어놓을 거야.”

“뭐라고요!”

궁충이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일단 나와 아씨가 최선을 다해보겠는데…… 상황 봐서 안 되겠다 싶으면은 책사님도 풀어. 우린 할 만큼 했으니까 나머지는 남은 사람들에게 맡기자고.”

“음! 상황이 그렇게까지 중합니까?”

궁충이 침음하며 물었다.

해자수는 홀리의 밧줄을 풀면서 말했다.

“저놈들이 덤벼들면 무조건 피하고…… 괜히 나서지 마. 목숨이나 구해. 아씨를 풀면 난 앞으로 달려나갈 건데…… 조심해서 따라와. 너무 급하게 쫓아오면 아씨에게 죽어. 너무 늦게 쫓아오면 저놈들이 죽일 거고.”

해자수가 복면인을 쳐다보며 말했다.

“싸우는 우리도 어렵지만, 도망치는 너희도 어렵네. 킥킥! 알아서 잘해봐.”

“어떻게 저라도 남아서.”

궁충이 옆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괜히 싸우려고 해봤자 안 된다는 거 알잖아. 화살 날리지 마. 날려봤자 이놈들한테 먹히지도 않아. 몸이나 피해. 일단 피하면 무슨 방법이 생기겠지. 지금 귀무살도 거의 다 죽었는데, 몇 사람이라도 남아서 귀검 곁에 있어 줘야지.”

꿀꺽!

궁충은 마른 침만 삼켰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자신들은 확실히 복면인들의 상대가 안 된다. 자신과 귀무살 전원이 합공을 취해도 복면인 한 명을 감당하지 못한다.

‘어디서 이렇게 강한 놈들이!’

해자수가 홀리의 손발에 묶인 밧줄을 모두 풀어냈다.

“이제 혈도만 풀면 아씨는 깨어날 거야. 아씨가 깨어나면 난 바로 저쪽으로 달려갈 테니까, 잘 피해. 괜히 아씨 표적이 되지 말고. 우리가 저놈을 박살 내는 사이에…… 알지?”

“알겠습니다.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궁충이 말했다.

“책사님이라도 동굴로 데려가야지. 아씨도 모시려고 했는데…… 거참 우습게 됐네. 설마 우리가 몽땅 무너질 것이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나. 쳇!”

해자수가 혀를 찼다.

스읏!

막힌 혈을 풀었다. 아니, 막힌 혈을 푼 게 아니다. 비수에 찔린 혈도, 단중혈에 다시 비수를 찔러넣었다. 단중혈을 재차 자극한 후, 금창약을 상처 부위에 밀어 넣었다.

누가 시켜서 안 게 아니다. 찔린 상처를 다시 칼로 찔러서 자극하는 치료법도 없다. 설혹 있다고 해도 해자수는 들어보지 못했다. 다만, 그래야 홀리가 깨어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자수의 생기가 홀리를 지켜봤고, 살 방법을 알려주었다.

스읏! 팟!

홀리가 눈을 떴다.

“아씨! 저 해자수입니다. 알아보시…… 웃!”

해자수는 말을 하다 말고 급히 머리를 뒤로 젖혔다.

슈웃!

홀리가 손을 뻗어서 해자수의 목을 잡아 왔다.

해자수는 머리를 젖힌 후, 급히 두 발을 퉁겨서 뒤로 물러섰다.

‘생기를 사용하면 안 돼!’

생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홀리를 피하지 못한다. 복면인의 구환도는 더더욱 피하지 못한다. 그래도 생기를 사용하면 홀리를 더 강하게 자극한다. 더욱이 자신마저 혈마가 되면 복면인과 싸우기 전에 홀리하고 먼저 싸울 것이다.

자신이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아씨와 싸울 수는 없다.

슈우웃! 슛!

홀리가 벌써 손을 세 번이나 휘저었다.

홀리는 혈도가 뚫리고, 손발이 묶여 있는 사이에 상대가 더 나빠졌다. 지금은 누가 봐도 혈마다. 두 번 다시 제정신으로 돌아올 수 없을 것 같다.

아마 등여산도 홀리와 같은 상태일 것이다.

지금 등여산은 죽은 듯이 누워 있지만, 그녀를 풀어놓는 즉시 홀리와 똑같이 변할 것이다.

그렇다면 등여산의 혈도를 푸는 자는 그 즉시 즉사한다.

이런 점을 각오하고 혈도를 풀어야 한다. 해자수가 썼던 방식 그대로 칼로 찌르고 금창약을 채워 넣는다. 그러는 동안 목이 잡히고 목뼈가 부러진다.

쒜에엑! 쒜에엑!

해자수는 급히 신형을 날렸다.

홀리에게 배운 음문촌의 신법, 산화신법을 펼쳤다.

“키키키킥! 킥킥킥!”

홀리가 키득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해자수도 혈기에 자극을 받았다. 홀리가 혈기를 일으키니, 자신도 철벽이 세워지려고 한다.

‘안 돼!’

해자수는 눈을 부릅뜨고 복면인을 쏘아봤다. 결코,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돌풍에 휘말리지 않을 생각이다. 홀리에게 맞아 죽는 한이 있어도 혈마만은 안 된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해자수는 전력을 다해서 복면인에게 달려들었다.

음문촌의 신법, 산화신법은 혈맥참을 만들어주는 절정 신법이다. 하지만 해자수가 사용하자 형편없이 변했다. 더욱이 은인문 진기만 사용해서는 산화신법이 제대로 운용되지 않는다.

퍼억!

눈앞에서 불이 번쩍 튀었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구환도가 해자수의 복부를 후려쳤다.

“크으윽!”

해자수는 일격을 받고 뒤로 나가떨어졌다. 그 순간, 홀리가 훌훌 날아가는 해자수의 멱살을 움켜잡았다. 그리고 다짜고짜 복부에 일 권을 틀어박았다.

“크아아아악!”

해자수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을 내질렀다.

구환도에 베인 곳, 바로 그곳에 혈기가 실린 일 권이 틀어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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