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八十五章 장기래료(藏起來了) (3)
크아아아악!
짐승이 울부짖는다.
아주 거대한 짐승이 고통에 못 이겨서 처절하게 울부짖는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순간, 도천패가 움질거렸다.
이 괴소, 귀에 익숙하다. 조금 전에 자신이 내질렀던 바로 그 울부짖음이다.
“눈 찔끔 감고 가. 가야 해.”
해자수가 말했다.
해자수가 이 소리가 무엇인지 안다. 뒤에 남겨진 사람은 오직 한 명, 누가 질렀겠나.
도천패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걸음을 멈췄다.
“형님, 가실 수 있겠소?”
“……”
해자수가 도천패를 쳐다봤다.
“세상에서 가장 못난 놈이 마누라 팽개치고 도망치는 놈이랍디다. 형님, 나 당매 두고 정말 못 가겠네.”
‘지금 가봐야 늦었잖아.’
해자수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말을 꾹 눌러 참았다.
일단 괴소를 내질렀다는 것은 혈마가 되었다는 소리다. 도천패가 가도 무사히 데려오지 못한다.
아주 완벽히 잘하면, 운이 정말 좋으면 등여산이나 홀리처럼 칼로 찌른 후에 묶어올 수밖에 없다.
해자수가 도천패를 쳐다봤다.
“정말 가려고?”
“어차피 여기서 동굴까지는 멀지도 않으니까. 형님이 수고 좀 해주시오.”
“그래, 그래. 그러지 뭐. 휴우! 나라도 그럴 거야. 솔직히 마누라가 위험한데 모른척하면 사람 새끼도 아니지 뭐. 가봐. 앞은 내가 어떻게든 뚫어볼게.”
해자수가 한숨을 내쉬며 말랬다.
도천패의 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돌아가면 도천패도 혈마가 된다. 당홍을 도와주기는커녕 부부간에 서로 물고 뜯는 악귀 싸움을 벌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가봐야 할 것이다.
방금 들린 울부짖음을 보면 당홍은 이미 혈마가 되었다. 아직 초입 단계이기는 하지만 되돌리기는 어렵다. 곧 진짜 혈마로 변할 것이고 미친 듯이 살겁을 휘두를 것이다.
솔직히 그녀가 살겁을 휘두르는 것은 전혀 말리고 싶지 않다.
지금, 이 산에 모인 사람은 천살단 아니면 혈천방 무인들이다. 얼마든지 죽여도 죽여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천살단에는 등여산을 잡은 무공이 있다.
당홍도 바로 잡힐 것이다. 등여산처럼 칼에 찔릴 것이고 혈도가 제압될 것이다. 금잠사로 짐승처럼 사지가 묶여서 대롱대롱 매달린 채 끌려갈 것이다.
이런 모습이 환히 보이는데 안 갈 수는 없겠지.
“가려면 빨라 가!”
해자수가 도천패의 어깨를 탁! 쳤다.
“궁충, 뒤를 막아줘.”
“네!”
“내가 앞을 열 테니까, 바로 쫓아와. 틈 벌리지 말고.”
쒜엑! 쒜에엑! 쒜에엑!
해자수가 앞장서서 신형을 쏘아냈다.
궁충과 귀무살 네 명이 재빨리 쫓아갔다. 한시도 머뭇거릴 틈이 없었다.
도천패는 해자수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는 바로 뒤돌아섰다.
‘당매, 조금만 버텨.’
쒜엑!
도천패는 신형을 비호처럼 쏘아냈다.
“으음!”
도천패는 침음을 흘렸다.
당홍과 헤어졌던 곳으로 바로 돌아왔는데, 볼품없이 쓰러져 있는 복면인들 외에는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 피만 잔뜩 흩어져 있을 뿐,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어디로 갔지?’
도천패는 주변에 흩어진 핏자국을 훑었다.
적의 피냐, 당홍의 피냐!
도천패는 흩어져 있는 피를 살폈다. 그리고 미간을 있는 대로 찌푸렸다.
당홍이 흘린 피다.
피만 보고는 누가 흘린 피인지 알 수가 없다. 하지만 피가 떨어진 곳에서 익숙한 냄새가 난다. 당홍이 지니고 다니던 향낭(香囊) 냄새가 훅! 풍긴다.
‘당매가!’
“와아아아아아아악!”
도천패는 세상이 떠나가라 고함을 내질렀다.
당홍이 어디로 갔나? 당장 찾아야 한다. 시간을 지체할수록 찾기가 더 어려워진다.
그때, 사방에서 찰랑찰랑! 찰랑! 구환도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들이!’
나타난 자들이 누군지 알겠다. 하지만 지금은 아들과 싸울 시간이 없다.
당매를 찾아야 한다. 그래서 일부러 고함까지 내질렀다. 당홍이 혈마가 되었다면 당장 고함에 반응할 것이다. 생기 실린 음성이니 반응하는 게 맞다.
당홍이 고함을 들었다면 그녀도 즉각 고함을 내질렀어야 한다.
혈마는 혈마에게 반응한다. 혈마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 바로 같은 종류의 혈마다. 그러니 자신의 고함을 들었다면 당홍도 즉각 고함을 내질렀어야 한다
도천패는 귀를 기울였다.
당홍은 고함은커녕 미미한 소리조차 흘리지 않았다.
‘이미 잡혔다! 이놈들!’
당홍을 남겨놓고 떠날 때, 주위에는 복면인들이 늘어서 있었다. 바로 이놈들!
도천패는 대로를 들고 구환도를 든 복면인을 노려봤다.
복면인은 모두 세 명이다.
이들과 싸우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자칫 자신이 붙잡힐 수도 있다. 혈마가 되는 것은 피하지 못하고…… 그러니 복면인들을 피해서 움직인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워서 피한다.
지금은 당홍을 찾는 것이 가장 급한 일이기 때문에 싸움을 피하는 것이다.
그런데 복면인 세 명이 삼 방을 가로막았다.
세 명이 삼각형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그 사이로 뚫고 나갈 수가 없다. 복면인 사이를 뚫고자 움찔거렸는데, 당장 이들이 움직인다. 삼 방에서 합공을 받는다.
이들과는 칼을 부딪쳐봐서 안다. 속도가 장난이 아니다. 거의 섬전에 가깝다.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함정에 걸렸군.’
도천패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어떤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확신했다. 어떤 함정인지는 모르겠다. 좌우지간 이들이 쳐놓은 덫에 걸렸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이들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동굴을 향해서 치달려간 해자수도 위험하다.
이놈들! 혈마를 갈라놓고 하나씩 잡을 생각이다!
궁충과 귀무살은 이들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들 중 한 명만 앞을 가로막아도 그들 다섯 명은 손쉽게 나가떨어진다. 결국은 해자수 한 명이 이들을 상대해야 한다.
‘싸워야 한다면 최대한 많이……’
도천패는 대도를 들었다.
싸움을 피할 수 없다면 빨리 끝내도록 노력한다. 가장 강한 힘으로 단숨에 승부를 가른다.
스읏!
도천패는 든든한 반석이 되었다.
두 발을 땅에 푹 박았다.
실제로 두 발이 땅속으로 파고들지는 않았다. 하지만 느낌상으로는 무릎이 묻히는 정도까지 깊이 파묻혔다는 생각이 든다. 쑤욱! 파고 들어간다.
홀리는 두 발이 땅에 찰싹 달라붙는다고 했다. 그런 느낌과는 다르다. 홀리는 위험이 느껴지면 땅이 힘을 잃고 놓아버리지만, 도천패는 그때도 놓아주지 않는다.
도천패는 든든한 반석을 원해왔다.
두 무릎까지 땅에 깊이 푹 파묻히는 상태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최강 반석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주변에 날아다니는 날파리를 본다.
위이이잉! 웨에엥!
날파리 떼가 삼면에서 다가왔다.
날파리는 사람 형태를 지닌다. 동물의 종류에 따라서 각기 다른 형태로 보인다.
날파리들을 향해 대도를 쳐내면 된다.
두 발이 땅속에 깊이 들어가 있으니 하늘로 도약할 수는 없나? 있다.
이때도 두 발은 여전히 든든한 반석이다. 그는 허공으로 뛰어오르지만 두 무릎까지 푹 박힌 흙더미가 덩어리째 듬뿍 떨어진다.
그런 상태라면 당연히 몸이 무거워야 한다.
도천패의 경우는 다르다. 두 발에 묻어 있는 흙더미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의 신형은 훨씬 가볍고 강해진다.
흙은 발판이 된다. 두 발을 뒷받침해서 허공에 붕 뛰어오르고 만든다. 흙더미는 허공에서는 철근이 된다. 묵직한 무게로 단숨에 땅으로 잡아당긴다.
그가 쳐내는 대도는 등이 천 근 바위를 쪼갠다.
쒜엑! 쒜에엑!
도천패는 허공으로 솟구쳤다. 동시에 눈앞에 있는 복면인을 향해 대도를 쳐냈다.
촤라라락! 촤랑!
앞쪽에서 구환도 특유의 고리 울림소리가 들려왔다.
대도가 고리 울림소리를 향해서 사정없이 떨어졌다. 아니, 날파리 떼를 반으로 쫙 갈라버렸다.
까아아앙!
대도와 구환도가 부딪쳤다.
구환도는 단박에 잘렸다. 동시에 앞에 섰던 복면인이 단번에 머리가 으깨져서 풀썩 주저앉았다.
대력금강 일도에 몸이 머리부터 가슴까지 쫙 쪼개졌다.
그때, 소리 없는 암도가 흘러왔다. 생기마저 완전히 감춰져서 날파리떼가 날아온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퍼억! 퍽퍽!
암도는 뼈를 갈라버릴 듯 등을 후려쳤다.
“크으윽!”
도천패는 신음을 쏟아냈다.
구환도 두 자루가 등을 가르며 지나갔다. 하지만 칼에 맞는 순간, 도천패의 생기가 즉시 작용했다. 두 어깨뼈가 급격하게 움츠러들면서 어깨살에 탄력을 일으켰다.
근육의 탄력이 구환도를 밀어냈다.
등이 베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근육이 워낙 단단하게 밀집되어 이어서 척추까지 갈라지지는 않았다.
든든한 반석!
당홍에게 항상 등을 내주던 그 탄력이 이번에도 작용했다.
등은 도천패의 신체 중 가장 강한 부위다
“크크크큭! 크크큭!”
도천패의 입에서 괴소가 흘러나왔다.
‘안 돼! 벌써 혈마로 변하면…… 제발! 당매를 찾은 후에…… 그럼 받아들일 테니까, 제발!’
도천패는 자신이 흘린 괴소를 들었다.
“크크크크! 이 새끼들! 크크크! 죽여! 이놈들! 크크크크!”
괴소와 욕설이 계속 섞여 나왔다.
괴소는 혈마의 소리고, 욕설은 혈마로 변신하지 않겠다는 도천패의 의지다. 인간의 음성이다. 최대한 혈기를 억누르면서 저항하는 중이다.
하지만 괴소는 인간의 음성을 단번에 삼켜버렸다.
“크크크큿! 크크큿!”
스읏!
도천패가 태도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이미 정상이 아니었다. 붉은 핏빛, 혈광으로 물든 채 살기를 띄웠다.
저벅! 저벅!
그는 복면인들을 향해 다가갔다.
촤라락! 촤랑!
눈앞에서 구환도가 움직였다.
도천패는 거침없이 구환도를 향해 대도를 쳐냈다.
구환도 소리도 듣고 날파리도 봤다. 그러니 공격하는 게 당연하다. 거침없이 반으로 쪼개버린다. 그런데……
방전까지 보였던 날파리들이 싹 사라졌다. 요란하게 울리던 구환도의 고리 울림도 거짓말처럼 스러졌다.
당홍은 여기서 움찔거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니 검을 쳐낼 수 없었던 것이다.
도천패는 달랐다. 그는 계속 대도를 뻗어냈다.
쒜에엑!
대도가 사정없이 떨어졌다.
도천패의 대도는 팔십 근에 이른다. 보통 사람은 들어 올릴 수도 없는 엄청난 무게다.
힘을 좀 쓴다는 사람은 간신히 들어 올릴 수 있을 뿐, 초식을 펼쳐내지는 못한다.
그런 칼로 내리치면 가속이 생긴다.
도천패가 칼을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는다. 일단 땅으로 떨어진 후에야 멈춘다. 도천패가 칼을 내리치는 속도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탄력으로 칼이 계속 흘렀다.
칼이 내리쳐지는 중력이 중간에서 멈추려는 생기보다 강했다.
쒜에엑! 깡! 까까깡! 까아앙!
대도와 구환도가 부딪쳤다.
구환도도 소리가 싹 사라졌는데, 대도를 계속 내리치자 부딪치는 소리가 울렸다.
구환도가 산산이 부서지면서 복면인이 상반신이 갈린 채 쓰러졌다.
쒜에엑! 퍼억!
바로 그 순간, 구환도가 또 등을 훑으면서 지나갔다.
“크으으윽!”
도천패는 털썩 무릎을 꿇었다.
이번에도 생기를 일으켜서 구환도를 밀어내기는 했다. 하지만 이미 강한 칼을 세 대나 얻어맞았다.
그의 등이 아무리 강한 철판이라고 해도 구환도 세 자루를 견뎌내기는 힘들다.
스으읏!
도천패의 눈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역시 힘센 놈은 참 문제야. 힘만 믿고 날뛰는 데는 대책이 없어. 어지간히 날뛰어야 봐주기라도 하지.”
혈천방주다.
도천패는 나타난 사람이 혈천방주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이미 혈마가 되었다. 사람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혈천방주를 치기 위해서 대도를 휘저을 뿐이다.
혈천방주가 발길로 대도를 툭 쳐서 멀찍이 떨궈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