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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22화 (422/500)

第八十五章 장기래료(藏起來了) (2)

이령귀화가 역천금령공 속으로 흘러들면서 수태음폐경을 막았던 혈도도 무너졌다.

파아아앗!

혈기가 단숨에 오른손을 점령했다.

모든 것이 끝났다. 다른 때 같으면 이 순간 괴소를 토하면서 환상 속으로 휘말려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혈기를 지켜보는 것, 조견이 있다.

휘르르릉!

조견은 혈기가 휘도는 모습을 봤다.

모두 푸른 빛…… 나쁜 것이 없다. 이것을 살인에 이용하면 혈기가 되고, 삶을 도모하는 데 쓰면 생기가 된다.

화라라락! 화라라라라락!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이 맹렬하게 휘돌면서 하나의 금단을 만들어 냈다.

절반은 이령귀화, 절반은 역천금령공.

빨갛고 하얀 두 개의 기운이 절반씩 섞여서 휘돈다.

태극환원공(太極還元功)!

호발귀의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이름, 무공에 대한 명색이다.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의 혼합이 태극환원공이라는 이름을 가진 실체로 등장했다.

- 태초의 세계는 아무것도 없는 혼돈 상태였다. 여기서 거대한 알이 생겨났고, 알에서 반고가 탄생했다. 반고는 거대한 도끼를 휘둘러 하늘과 땅을 갈랐다. 혼원(混元)이 태극(太極)으로 갈라지는 순간이다.

무극(無極)에서 하늘과 땅, 음과 양으로 갈라진다.

생기는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을 혼원 상태로 되돌렸다.

무림에 태극(太極)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문파나 무공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태극권, 태극검, 태극혜검, 태극소양검, 태극검진……

호발귀가 터득한 것이 절대는 아니지만, 능히 태극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단전에서 뒤엉킨 태극환원공이 전신에 퍼져 있던 붉은 기운을 쫙 빨아들였다.

실질적인 현상은 호발귀가 보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역천금령공이 이령귀화를 제압하기 위해 혈기를 빨아들였다. 반면에 이령귀화는 도움받을 곳이 없다. 적진에 단신으로 뛰어든 장수일 뿐이다.

그런데 묘한 일이 일어났다. 역천금령공이 커지자, 이령귀화도 커졌다. 두 진가 서로 균형을 맞춰서 휘돈다. 태극혼원공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도 두 힘은 균형을 이뤘다.

스읏!

호발귀는 눈을 떴다.

‘이것이 생기. 그렇군.’

호발귀는 고개를 끄덕였다.

혈마라고 해서 우주의 생기를 마음껏 끌어다 쓰는 게 아니다. 지극히 일부분, 문 한쪽을 살짝 열었을 뿐이다. 그만한 힘도 인간의 몸은 감당하지 못하고 이런 발광을 했던 거다.

향엄지한(香嚴智閑) 선사(禪師)의 오도송(悟道頌)이 떠오른다.

- 일격망소지(一擊忘所知), 갱불가수야(更不假修冶)……

한 번의 딱! 소리에 알려던 것 다 잊으니, 수행의 힘 빌릴 일이 아니었도다.

딱!

‘조견’ 한 글자에 혈기가 깨졌다.

호발귀의 느낌이 딱 그랬다. 생기도 없고 혈기도 없다. 혈기는 심성의 변화다.

혈기라고 생각했던 것은 뇌의 변형이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보고 가장 익숙한 것으로 변한다.

타악!

호발귀는 손목에 묶인 철삭을 끊어냈다.

태극혼원공의 힘이 이렇게 강하다. 진공의 힘을 손목에 집중시켜서 터뜨려냈을 뿐인데 철삭이 끊어졌다.

혈마가 발광해도 끊을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만든 철삭이었는데 과자처럼 부서져 나갔다.

타악! 탁!

손목과 발목에 묶인 쇠사슬마저 끊었다.

‘혈마, 나쁘지 않다. 혈마로 사는 것도 괜찮아.’

호발귀는 앞으로도 평생 혈기가 몸 안에 존재할 것을 안다. 조견을 잃는 순간, 혈마가 된다. 미친 생각을 지켜보고 한쪽으로 흘려보내지 않으면 바로 몸으로 간다.

호발귀는 혈마로 살기로 했다.

진정한 혈마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 * *

꾸우욱!

귀검은 눈을 감은 채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코끝으로 피 냄새가 전해져왔다.

실질적으로 어떤 냄새가 풍긴 것은 아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주위는 지극히 조용하다.

동굴 안도 쥐죽은 듯이 조용하고, 산속에서도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귀검은 역겨운 냄새를 맡고 듣는다.

상쾌한 기운만 흘러내는 산속에서 진하디진한 피비린내를 맡는다. 산새 소리만 들려오는 쾌적한 소리 속에서 생지옥에서나 벌어지는 아비규환의 울부짖음을 듣는다.

지금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귀에 들리지 않고 눈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음!’

귀검은 눈살을 심하게 찡그렸다.

온몸이 바르르 떨릴 정도로 격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동굴을 지킬 것인가, 뛰어나가서 자들 싸움에 끼어들 것인가.

귀검은 등여산과 홀리를 데리러 떠난 세 사람의 능력을 믿는다.

그들은 생기를 사용한다. 생기 무공은 당금 무림에서 무적이다. 그 누구도 상대할 수 없다.

하지만 혈마가 되면 달라진다.

저들은 오히려 혈마가 되는 순간 약해진다. 혈마라고 하면 굉장히 강할 것 같지만, 틀린 말이다.

이백 년 전이라면 분명히 상대할 사람이 없다. 무림뿐만 아니라 중원 전역에서 사람의 씨가 말라버렸을 것이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무림이 지난 이백 년 동안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천살단도, 혈천방도 혈마에 대응할 만한 무공을 창안해 냈다.

저들이 예상보다 빠르게 혈마가 된다면…… 이번 구출 작전은 실패한다.

귀검은 동굴을 쳐다봤다.

동굴은 매우 시끄럽기도 하고 조용하기도 하다. 괴물의 괴성이 들리는가 하면 지금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을 때도 있다.

인간의 음성이라기보다는 괴성이 더 많이 들리는 것을 보면 호발귀도 무척 힘들어하는 것 같다.

‘우선 데리고 와야 해.’

스읏!

귀검은 검을 들고 일어섰다.

하지만 쉽게 걸음을 떼어놓지 못했다. 일어서긴 했어도 여전히 눈을 동굴을 쳐다보게 된다.

그는 혈마가 뛰쳐나올 것을 염려하고 있다.

철삭이 혈마를 잡아놓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혈마는…… 천살단이나 혈천방에 잡힐 것이다. 무령환살공에 당했다면 그 외에 다른 무공에도 잡힐 수 있다.

이것은 주공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주공의 생명만큼은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끊어야 한다.

모든 것이 틀렸다면 지금 들어가서 주군의 목숨을 취할까? 아니면 조금 더 주군에게 맡겨볼까.

‘호발귀. 주군.’

귀검은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았다.

다른 일이라면 명쾌하게 결단을 내리는데, 혈마에 관한 부분은 전혀 알지 못하는 세계라서 좀처럼 판단이 서지 않는다.

맞는가 하면 틀리고, 틀리는가 하면 제대로 진행된다.

누군가가 동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염려하지 않는다.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그들은 운이 나쁜 것이다. 당연히 죽을 것이다. 혈마를 상대할 수 있는 자는 없다.

그러니 당연히 죽는다. 아니면 혈마가 죽는다.

양쪽 중 한쪽은 전멸한다.

호발귀가 포로로 잡힌다거나 하는 일은 절대 벌어지지 않는다.

자신이 동굴을 지키는 것은 사람들이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지, 동굴 안에 들어가서 혈마를 상하게 하지 못하게 하려고 지켜선 것이 아니다.

‘혈마를 믿자. 더는 버티기 힘들 거야.’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귀무살 태반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 개개인이 귀검에게는 피 같고, 살 같은 형제들이다. 어떤 자의 죽음도 평생 가슴에 묻는다.

이제 몇 명 남지 않았을 수하들…… 그들마저 힘에 부쳐서 갈 곳을 잃어버렸을 것이다.

‘혈마를 믿자.’

스읏!

귀검은 검을 들고 일어섰다.

더 망설이고 있을 시간이 없다.

조금만 늦으면 환청처럼 들리는 비명이 실제로 귀에 들릴 것이다. 막연히 맡아지는 피비린내가 동굴 앞에서 확 퍼질 것이다. 자신의 눈앞에서.

쒜엑! 쒜에엑!

귀검은 신형을 쏘아냈다.

* * *

스으읏! 스읏! 스스스슷!

혈천방주 앞에 여섯 명의 사내가 나타났다.

“이 여자는 당홍이라고 하는데, 뭐 순서라도 정한 게 있나? 아니면 무작위?”

혈천방주 사내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당홍이라면…… 큭큭! 내 거네. 이거 내가 제일 먼저 재미 보게 생겼는데?”

음문촌 다섯 아들 중 삼자가 나서며 말했다.

원래 삼자는 등여산을 맡기로 했지만, 사자와 순서를 바꿨다.

“순서가 정해져 있었네. 후후!”

혈천방주는 아무런 미련도 없다는 듯 옆구리에 끼고 온 당홍을 삼자에게 던졌다.

휘익! 척!

삼자가 당홍을 받아서 제일 먼저 눈꺼풀부터 뒤집어봤다.

“혈기는 제대로 맺혔고…… 동공이 풀리지 않은 것을 보면 혈마 초입. 딱 좋네. 여기서 안 되면 안 된다고 봐야지. 천령혈이 찍힌 건 아는데, 다른 건 뭐 한 것이 없으신지?”

삼자가 혈천방주를 보며 물었다.

당홍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잘못 알면 혈군이 되는데 장애가 될 수 있다.

“혼절만 시킨 상태니까, 곧 깨어날 거네. 깨어나면 바로 혈기를 드러낼 텐데…… 그 전에 혈군이 되는 게 좋아. 안 그러면 감당하지 못할 테니, 이상하다가 싶으면 바로 죽이게.”

“혈천방은 혈마에 대해서 조금도 미련이 없나 봅니다.”

“우리 사마 봤잖나? 솔직히 혈마가 사마나…… 혈마가 조금 강한 측면이 있지만 사마 둘이면 혈마도 상대하지. 혈마에 대한 미련은 없으니까 마음껏 요리해보시게.”

혈천방주가 활짝 웃었다.

당홍의 상태는 지금 바로 구혼음소를 걸면 걸려들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남자가 여자 혈마에게 시전하는 건 처음이라서 제대로 될지 모르겠다.

일단 귀색혼령대법을 최대한 펼쳐서 음마(淫魔)라도 만들려고 한다.

해보고 안 되면 바로 죽인다.

새로운 여인에게 구혼음소를 가르치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 남자 혈마를 잡아둘 수 있으니……

그때, 제대로 된 혈마 탄생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여자 혈마, 혈군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삼자가 당홍을 들춰서 어깨에 멨다.

“그럼 전 먼저…… 귀색무를 진하게 피울 거니까 구경할 생각은 말고. 킥킥!”

삼자는 만족한 듯 웃고는 음문촌장을 쳐다봤다.

음문촌장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삼자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신형을 쏘아냈다.

“이제 곧 나머지도 다 잡을 것 같은데, 홀리는 누가?”

혈천방주가 음문촌장을 쳐다봤다.

“둘째가 혈군이 되기로 했습니다.”

“죽이지 않고? 하! 이건 뜻밖인데. 시험해 볼 혈마가 많으니까 홀리는 죽일 줄 알았는데.”

“여자 혈마 탄생은 예상하지 못한 것이라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죠. 셋 중 하나만 제대로 만들어도 성공이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다 죽여야 할지도 모르고.”

“어쨌든 죽일 때는 죽이더라도 남녀 교합인가? 그건 해야 하잖아. 하! 동생을…… 나도 나쁜 놈이지만 이 사람은 더 나쁘네. 정말 나쁜 오라비야.”

혈천방주가 둘째, 이자를 보면서 웃었다.

“혈마가 되면 어차피 인간은 아닌 거지요. 더욱이 그 아인, 우리 곁을 떠난 지 꽤 됐으니까.”

이자가 입가에 잔인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그럼 난 나머지를 공급해줘야 하니까. 이거 방주라는 사람이 물건이나 나르고 있고. 하하하!”

혈천방주가 웃으면서 신형을 쏘아냈다.

“으음!”

음문촌장이 신음을 흘렸다.

말은 태연하게 했지만, 촌장을 비롯해서 오자 모두 깜짝 놀란 상태였다.

혈천방주가 혈마가 되기 직전인 당홍을 너무 손쉽게 잡았다.

방주는 혈마 곁에 태연히 다가섰다. 그리고 장난처럼 천령혈을 눌러버렸다.

확실히 당홍이 쓰러지는 모습은 너무 충격적이었다.

천살단도 이런 공부가 있다. 주치균이 수련한 무령환살공은 장난이나 다름없다. 단주가 펼친 암약혼기야 말로 혈마를 제압할 수 있는 최강 무공이다.

혈천방주도 그런 무공을 구사한다.

그러면 정말로 혈천방주는 혈마를 우습게 여기나? 그래서 음문촌 혈마를 다 내주고 있나?

이 부분은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어떤 목적이 있으니까 음문촌에 혈마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그냥 내줄 리는 절대 없다.

하지만 그 문제는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우선 당장은 혈마를 노예로 부려야 한다.

혈마가 다섯 명이라고 하니…… 다섯 명 전부 다 혈마로 거둬들여야 한다.

당홍은 손에 쥐었고, 홀리, 등여산, 도천패, 해자수까지 전부다.

그런 다음에 혈천방주의 의도를 분석하고 대응해도 늦지 않다.

‘혈마를 손에 쥔 후……’

음문촌장의 눈빛이 반짝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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