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마전인-421화 (421/500)

- 조견오온개공(照見五蘊皆空)

장진 스님이 반야심경을 왜 읊고 있는지 이유를 알았다.

지금 호발귀는 생사의 격전을 벌이고 있다.

이미 이령귀화가 역천금령공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싸움은 벌어졌다. 어느 한쪽도 물러설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되었다. 이 싸움에서 지면…… 생기는 혈기가 된다. 이령귀화는 사라지고 역천금령공이 전신을 지배한다.

물론 그때가 되면 역천금령공도 사라진다. 진기 무공은 소용이 없어진다. 오직 혈기만 남아서 몸과 정신을 지배할 것이다. 환상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죽어간다.

그러니 이령귀화는 힘에 부치더라도 계속 때릴 수밖에 없다.

귀화미요공의 효과가 상실되면 역천금령공은 다시 살아난다. 즉시 본 자리로 환원해서 이령귀화를 밀어낸다. 그 힘이 워낙 강해서 이령귀화는 장난감처럼 퉁겨진다.

‘이 싸움에서 패하면 수태음폐경조차도 혈기에 물들어. 끝나. ’

호발귀는 세 사람의 혈기를 뽑아낸 후, 자신의 생기는 거의 소멸한 상태였다. 겨우 티끌만 한…… 백 중 하나도 아니고 천 중 하나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의 생기만 남았다.

솔직히 역천금령공을 두들기고 있다지만 이령귀화의 존재조차도 느끼지 못하겠다.

이런 상태에 이르자 반야심경의 모든 글자가 사라졌다. 반야심경을 재변형시킨 자신만의 구결도 사라졌다. 그리고 딱 한 글귀 ‘조견오온개공’이라는 글귀만 남았다.

전신이 혈기로 물든 속에서 글귀 하나만 빛을 뿌리면서 존재한다.

- 조견오온개공

오온(五蘊)은 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다. 정신이나 물질을 이루는 다섯 덩어리다. 색수상행식은 존재하지만, 본래의 색수상행식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반야심경의 요체다.

잠시 후…… 오온개공이라는 말도 떨어져 나갔다.

남은 글자는 딱 하나, 조견(照見)이다.

조견은 확 비춘다는 것이다. 캄캄한 방에 조그만 촛불을 켜서 자신의 주변만 일부 밝히는 것이 아니다. 어둠이 단숨에 물러나도록 강렬한 태양 빛을 확 밝힌다.

오온의 본질을 한눈에 확 꿰뚫어 본다.

환상의 본질, 혈마의 본질, 생기의 본질을 꿰뚫어 본다.

파앗! 파파파파팟!

이령귀화가 보였다. 역천금령공도 보였다. 두 진기를 감싸고 있는 기운도 보였다.

푸른 빛이다.

생기도 푸른 빛, 혈기도 푸른 빛이다.

두 기운이 다른 것인 줄 알았는데, 같은 것이었다. 서로 섞여도 무방한 것이었다. 같은 기운을 두 개로 가른 것은 자신이다. 무인이 가장 쉽게 접하는 것은 폭력, 살인, 복수, 원한, 승부…… 그러니 혈마로 발전할 수밖에 없다.

스읏!

호발귀는 편안한 마음으로 이령귀화를 일으켰다.

아마도 이것이 생전에 일으키는 마지막 이령귀화일 것이다.

스으읏!

활짝 일어난 이령귀화로 역천금령공을 향해 생기격타를 펼쳤다.

지금까지 펼친 생기격타가 두들기고 짓누르는 두 번째 생기격타였다면, 이번에는 첫 번째……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보완해주고 발전시키는 방법을 사용했다.

스읏! 꾸우우욱!

이령귀화가 역천금령공을 부드럽게 감싸자 두 진기가 하나로 뒤엉켰다.

순간, 이령귀화가 역천금령공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역천금령공은 강하다. 너무 강하다. 이령귀화 정도는 단숨에 빨아들인다.

호발귀는 티끌만큼도 저항하지 않고 이령귀화를 흘려보냈다.

두 진기 모두 푸른 빛이다. 푸른 빛을 보고 있는 한, 혈기는 일어나지 않는다.

뇌가 환상을 끌어낸다면, 조견은 그 위…… 하늘 높은 곳에서 환상을 지켜본다. 혈기는 오온처럼 존재하는 것이지만, 실상은 텅 비었다는 것을 본다.

찻잔은 찻물을 담는 그릇이다.

혈기라는 말은 찻잔이라는 말처럼 명색(名色), 이름과 형태를 가진 물질이다.

찻잔이 땅에 떨어져서 산산조각이 나면 사람들은 더는 찻잔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릇 조각이라고 부를까? 찻잔이라는 이름과 형태를 잃는다.

혈기도 흩어놓으면 혈기가 아니다. 흩어진 혈기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머릿속에 일어난 환상을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면 몸에 어떤 작용도 하지 않는다.

혈기가 일으킨 환상이 몸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도록 차단할 수 있다. 혈기는 없애지 못하지만, 소멸시킬 수 있다.

혈기는 계속해서 일어나지만, 몸에 작용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이것은 조견이 가능할 때만 시도할 수 있다.

구혼음소는 혈기를 더한층 부풀어 오르게 한다. 극한 상태까지 치달리게 해서 터트려버린다.

혈마 스스로 뇌를 터트려서 죽게 만드는 공부다.

다만, 혈마가 이 공부를 거부하기 때문에 믿는 사람이 순식간에 거사를 치르는 것이다.

호발귀는 등여산과 홀리가 몇 차례 구혼음소를 시전했다. 아주 약하게 시전했다. 그것도 극한으로 혈기를 치솟게 하는 방법이 아니라 노예로 만드는 구혼음소였다.

여기서 면역이 생겼다. 그리고 등여산과 홀리를 믿지 못하게 만들었다.

홀리가 구혼음소를 읊을 때, 장진 스님이 나타나서 대응한 것이 그것 때문이다. 홀리는 나를 죽일 사람이라는 것을 혈마가 인식했다는 거다.

구혼음소를 찔끔찔끔 흘리면 면역이 되어 버린다.

완전히 믿게 한 후, 일시에 확! 쏟아내어야만 혈기가 충천하고, 뇌가 터져서 죽는다.

홀리가 호발귀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호발귀는 벌써 죽었다.

호발귀는 ‘조견’을 하면서 혈기와 구혼음소의 관계까지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백 년 전, 혈마도 여기까지는 왔었다.

지금 상태라면 호발귀도 새로운 구혼음소를 만들 수 있다. 환상의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으니, 움직임을 더욱 빠르게 유도하는 주문을 만들기는 매우 쉽다.

더 빨리, 더 강하게 움직여라. 몸이, 머리가, 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움직여도 괜찮다. 마음껏 움직여서 더욱 강한 혈기를 끌어내면 신이 된다.

해라! 해라! 꽈앙!

이것이 구혼음소다.

혈의검에게 준 구혼음소와 혈마후에게 준 것이 다른 것은 그들 두 사람의 혈기가 달랐기 때문이다. 등여산과 홀리가 다른 환상을 보는 것처럼.

똑같은 구결을 주어도 괜찮지만, 두 사람에게 더욱 알맞은 구혼음소를 만들어주었다. 즉, 음문촌과 혈천방이 알고 있는 구혼음소는 오직 혈의검과 혈마후에게만 통용되는 진결이다.

호발귀에게도 통할 수 있지만, 혈기가 다르므로 효과가 즉각적이지 않았다.

지금 밖에는 다섯 명의 혈마가 있다.

그들을 일시에 자진케 하려면 구혼음소도 다섯 개가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 딱 맞는 구혼음소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하나의 구혼음소로 그들 모두에게 사용한다면 자진하는 시간 차이가 상당히 벌어진다. 즉각적인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고, 상당히 늦게 반응할 수도 있다.

호발귀는 자신에게 맞는 구혼음소도 찾아냈다.

자신이 보는 푸른 빛…… 이 빛을 더욱 강하게 밝힐 수 있는 조언이 있다. 이 조언을 읊조리면 뇌의 일정부분이 자극된다. 그리고 혈기가 충만해진다.

물론 반대로 가능하다.

환상이 일어나는 것을 늦출 수도 있다. 하지만 늦추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결국은 혈기에 짓눌릴 것이기 때문에.

호발귀는 조견 속에서 마지막 남은 생기, 이령귀화를 역천금령공에게 던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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