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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19화 (419/500)

九十四章 혈마추락(血魔墜落) (5)

혈마 눈에 다른 혈마는 그저 살아있는 생명체일 뿐이다. 아니, 제거해야 하는 적이다.

호발귀 같은 경우, 다른 혈마는 보통 사람과 전혀 다를 바 없는 푸른 빛이다. 빛을 가두고 있는 물체를 터트려서 푸른 빛을 자연 속으로 되돌려 보내야 한다.

결국은 죽여야 할 생명체다.

혈권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과 동물이 죽음을 면치 못한다.

‘가만! 그런데 혈기를 어떻게 찾아냈지?’

홀리와 해자수를 봤을 때, 그들 역시 푸른 빛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이 혈기에 휘감겼다는 것을 알았다.

푸른 빛이 오염되어서 다른 색으로 변한 것도 아니다. 붉은색, 혹은 검은색으로 변한 것도 아니다.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들이 혈기에 휘감긴 것은…… 그냥 보니까 알았다.

도천패와 당홍도 마찬가지다. 그냥 딱 보고 혈기에 휘감긴 사실을 알았다.

그들 모두가 푸른 빛이었다. 혈기라고 할 것이 없었다. 그러니 거둬낼 것도 없다.

오염된 부분을 거둬냈다고 하는데, 정확히 무엇을 거둬냈는지 호발귀 자신도 모른다.

그런데도 호발귀는 생기격타를 했다. 그리고 그들에게서 무엇인가를 거둬냈다.

혈기다. 혈기를 거둬낸 후, 그들은 멀쩡해졌다.

혈기를 거둬내기 전이나 후나, 그들의 생기는 여전히 푸른 빛이었다. 그런데도 호발귀는 혈기가 사라진 것을 알았다. 색을 보고 안 것이 아니다. 그냥 알았다.

그렇다면 자신의 혈기는 다른 사람 눈에는 어떻게 보일까?

빛을 보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 역시 푸른 빛으로 보일 것이다.

현재 혈기를 느끼고 있는 사람은 자신까지 모두 여섯 명이다. 하지만 그중에서 푸른 빛을 보는 사람은 자신 혼자다. 그러니 다른 사람 눈에는 자신이 어떤 모습으로 보이는지 모른다.

모두가 다 같이 푸른 빛으로 보인다고 할 때, 그들 눈에는 자신도 역시 푸른 빛이다.

혈기가 몸 전체를 뒤덮고 있지만 살아있는 생명체, 푸른 빛인 것이다.

혈기는 저들도 감지한다.

혈마가 혈마에게 특히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혈기를 감지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본능인 것 같다. 그냥 보면 알게 되니까.

‘앗!’

호발귀는 차분히 생각을 이어가다가 벼락을 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받았다.

혈마가 죽으면 혈기는 세상 밖으로 터져 나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때 세상 밖으로 터져 나가는 혈기는 오염된 혈기가 아니다. 순수한 생기, 푸른 빛이 터져 나간다. 육신은 남고 우주에서 받아들인 기운만 쏙 빠져나간다.

여기까지는 전에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생각이 이어서 그러면 일반 사람들은 어떤 생기가 흩어질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여기서 벼락을 맞았다.

생기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일반 사람들도 생기가 오염된다!

오염된 증상으로는 노쇠, 질병, 치매, 피부 탄력 감소 등등…… 노쇠에 따른 현상이 일어난다.

늙는 것 자체가 생기 오염이다.

확실히 ‘오염’이라는 말은 잘못되었다. 다른 말로 바꿔야 한다.

어린애는 생기가 왕성하다. 청년도 왕성하다. 그러다가 장년이 되면서부터 쇠락한다. 노인이 되면 급격하게 쇠락한다. 푸른 빛이 사라지고 거의 회색에 가까워진다.

이 모든 색이 자신의 눈에는 하나의 색, 푸른 빛으로 보였던 것이다.

해자수는 철벽이 보이다고 하는데, 그것도 잘못되었다.

실제로 생기를 말해주는 부분인 것은 맞다. 하지만 자칫하면 빛이나 물체로 고정시켜 버리는 잘못을 저지르면 생기를 단단히 오해하게 된다.

이것이 진실인데, 혈마는 상리를 벗어난다.

나이가 들수록 생기의 힘이 약해진다. 오염되는 것이 아니라 힘을 잃는다.

혈마는 힘을 잃지 않는다. 여전히 극성을 부린다. 그러면서 악에 물든다. 마공 수련에서 심마(心魔)가 일어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오염이라는 말은 크게 잘못되었다.

생기가 오염됐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오염된 걸 풀어내려고 했다.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

생기는 오염되지 않는다.

생기가 대자연의 기운이라면 이것을 조금 사용했다고 해서 오염될 수는 없다.

그럼 이 혈기는 무엇인가?

인간을 혈마로 만드는 타락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호발귀는 처음부터 다시 생각했다.

생기격타!

생기로 생기를 격타한다.

현재 생기를 사용하는 여섯 명 중 생기격타를 할 수 있는 사람은 호발귀 한 명이다.

호발귀의 생기와 다른 다섯 명의 생기는 다른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상대방의 생기를 치지 못한다.

이러니 싸움 양상도 다르다. 호발귀는 일단 상대방의 생기를 짓눌러서 상대방을 힘을 쓰지 못하게 만든다. 그리고 편하게 죽인다. 그저 칼로 치면 저항하지도 못하고 죽는다.

다른 사람은 자신의 생기를 극대화시킨다. 상대방의 생기를 전혀 누르지 못한다. 상대방은 버려둔 채 자신이 터무니없을 정도로 강해져서 공격한다.

공격 양상이 전혀 다르다.

그런데도 혈기에 물드는 것은 똑같다. 아니, 저들이 훨씬 빠르다. 저들에 비하면 호발귀는 거의 네 배에서 다섯 배 정도 느렸다. 혈마가 되기까지.

호발귀는 몇 번이나 혈마 상태에서 빠져나왔다. 미쳤다가 제정신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저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등여산은 여전히 혈마 상태다.

그렇다면 혈기는 생기격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생기를 외부로 뿜어냈다가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오염된다는 생각은 상당한 모순이다.

다른 다섯 명은 생기를 외부로 내뿜지 않고 진기처럼 내부 안에서만 휘돌리는데도 혈마가 되었다.

‘뭔가가 잘못됐어, 뭔가가.’

호발귀는 멍하니 생기와 혈기를 쳐다봤다.

시간은 촉급한데, 한시라도 빨리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계속 문제만 일어날 뿐 해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호발귀는 그저 멍하니 동굴 벽만 쳐다봤다.

‘다른 사람은 생기격타를 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혈기를 뽑아내지 못한다는 말…… 혈기는 오직 나만 뽑아낼 수 있다는 말인가. 그럼 내가 죽으면……’

다른 사람은 타인을 돕지 못한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정화시킬 수는 있을 것 같다.

우선 자기 몸에 있는 혈기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이 부분은 호발귀도 못 하고 있다. 혈기가 있다는 것은 알지만 보지는 못한다.

호발귀는 수태음폐경을 장벽으로 해서 생기와 혈기가 나뉜다. 오른팔은 생기, 나머지는 혈기다.

이것도 느낌일 뿐이다.

생기도 혈기도…… 보지 못한다.

진기는 볼 수 있다. 의념을 일으키면 진기가 보인다. 진기를 이끌어서 경맥으로 유포시킬 수 있다.

생기나 혈기는 이런 게 전혀 안 된다.

오죽하면 두 기운을 쓰기 위해서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을 이용할까. 이런 기공을 이용하지 않고는 생기와 혈기를 나누는 것조차 하지 못한다.

지금은 불가능하지만, 확실히 혈기를 보아야만 한다.

정화될 당사자를 보아야만 정화를 시킬 수 있다. 더러운 물을 봐야 깨끗하게 만들 수 있다.

혈기만 볼 수 있다면……

가만! 가만! 가만!

굳이 혈기를 볼 필요가 있나? 없다. 혈기를 보지 못해도 혈기와 생기만 구분하면 된다.

지금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이 그것이다.

수태음폐경을 장벽으로 해서 한쪽은 생기, 다른 쪽은 혈기다.

그런데 웃기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사람이 미치고, 미치지 않고의 문제는 몸의 문제가 아니다. 머리의 문제다. 뇌다!

수태음폐경은 오로지 오른팔에만 작용한다. 오른팔에 뇌가 있나? 오른팔이 생각이란 걸 하나? 그럼 멀쩡한 정신으로 생각하고 있는 이 머리는 뭔가?

혈기에 파묻혀 있는 가운데 생각을 하고 있다.

혈기를 보지 못해서 정확히 어떤 것인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를 수도 있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 되든 안 되든 무조건 해보는 거야.’

츠으으읏!

호발귀는 이령귀화를 일으켰다.

이령귀화를 일으키면 순환 작용에 의해 역천금령공도 일어난다.

팡! 파아앙!

척택혈과 단전에서 양쪽의 기운이 극성을 부린다.

여기서 호발귀는 양의심공(兩儀心功)을 불러왔다. 두 공부를 일으키면 저절로 양의심공이 일어나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특별히 더 주의해서 양쪽을 분리시켰다.

혈마 무공 중에서 가장 쓸모없는 무공이 하나 있다.

다른 무공들은 모두 실전에서 사용하는데, 딱 하나의 무공만은 일부러 작심하고 전개하지 않는 이상 저절로 튀어나오지 않는다. 생각하고 펼쳐야 하는 무공이다.

귀화미요공!

이 무공은 참으로 뜬금없다. 인간의 시력을 잠시 멀게 만드는 무공인데, 사파 무공으로써는 쓸만하다. 하지만 감각이 예민한 사람에게 펼치면 오히려 역공당한다.

혈마무공에서 귀화미요공의 대응은 마영심도 십칠 식이다.

음양의 강세로 볼 때는 그렇다. 그래서 마영심도를 끼워 넣기 위해서 귀화미요공을 억지로 넣었다고 생각했다. 양쪽 기운을 맞추기 위해서 집어넣었다고.

지금 호발귀는 귀화미요공을 펼칠 생각이다.

대상은 자신이다. 자신에게 펼쳐서 잠시 두 눈을 멀게 만든다. 귀화미요공이 일으키는 명멸 속에는 사고도 포함되어 있다. 눈이 머는 순간, 일시 사고도 정지된다.

‘지금은 한 가닥 희망만 있어도 해야 해!’

스읏! 탁!

손가락을 부딪치자 귀화미요공이 터졌다.

호발귀는 일부로 손가락을 쳐다봤다. 손가락 끝에서 진기의 부딪침이 일어나는 것을 봤다. 음기와 양기가 부딪치면서 번갯불 같은 섬광을 터트렸다.

‘훅!’

지극히 짧은 순간, 호발귀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일시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온 세상에 어둠에 휘감긴 듯 깜깜했다. 아니, 깜깜한 가운에 노란 번갯불이 번쩍였다.

생각한 대로 귀화미요공은 자신에게도 작용했다.

이령귀화가 일어나면 역천금령공도 일어나야 한다. 그래야 양쪽의 균형이 맞는다.

촤아아악!

왼손에서 마영심도 십칠 식이 전개되었다.

비록 빈손으로 허공을 휘젓는 손길이지만, 매초마다 암벽을 두들기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호발귀는 마영심도를 더욱 거세게 휘저었다.

역천금령공이 전심전력으로 마영심도에 달라붙도록 만들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양의심공을 특별히 점검했던 것이다. 최상의 마영심도를 끌어내기 위해서.

쒜에엑! 쒜에엑!

마영심도가 일으키는 바람 소리가 동굴을 휘저었다.

그 순간, 이령귀화는 곧장 단전을 후려쳤다. 이령귀화에 생기가 실려있다면, 생기가 혈기를 후려친 것이다. 이럴 경우, 생기는 당장 혈기로 변한다. 그래서 지금껏 접촉을 삼갔다. 수태음폐경으로 벽까지 쌓아놨다.

이번에는 정면 공격이다.

꽈앙!

이령귀화와 역천금령공이 부딪쳤다.

생기와 혈기가 정면충돌했다.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역천금령공은 마영심도를 펼치느라 상당 부분이 단전에서 빠져나간 상태다. 역천금령공의 정수가 왼손에 운집되어 있다.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서 귀화미요공으로 두 눈을, 생각을 멈추게 했다.

지금은 본능의 싸움이다.

생기격타!

여섯 명의 혈마 중 오직 호발귀만 할 수 있는 생기격타가 본인에게 행해졌다.

지금까지 호발귀는 세 종류의 생기격타를 사용했다.

첫 번째 생기격타는 생기로 단전 진기를 어루만져주는 것이다.

호발귀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의 진기가 보였다. 그래서 미비한 부분은 보충시키고, 물렁물렁한 부분은 단단하게 만져주고, 딱딱하게 굳은 진기는 부드럽게 풀어주었다.

그러면 내공이 급진전했다.

혈천방으로 가는 길에 거의 매일 생기격타를 펼쳤다. 단 며칠 만에 일행들을 절정 고수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렇게 단전 진기를 만져준 것이 그들로 하여금 생기에 눈을 뜨게 만들었다.

이것은 하등 이상하지 않다.

생기가 와서 단전을 어루만져주면 단전이 강해진다. 호발귀의 시전을 받으면 몸이 상쾌해진다.

강해진다. 본인은 의식하지 않아도 몸은 수련 이외에 또 다른 요소로 진기가 강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본인들은 전혀 의식하지 않았지만, 생기로 향하는 길을 몸이 알아서 열기 시작한 것이다.

호발귀가 혈기를 밀어 넣은 것이 아니다. 선후의 차이는 있지만, 본인들 스스로 눈을 뜬 것이다.

그런 생기격타를 매일매일 해줬다.

한두 번 펼쳤다면 미처 눈치를 채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매일 했다.

호발귀도 시전을 받는 사람도 생기격타가 그들의 몸을 변모시킨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것뿐이다.

이것이 일행을 혈마로 만들었다.

다시 말해서…… 인간 이상의 힘, 생기에 눈을 뜨고 활용하는 사람은 모두 혈마가 된다.

첫 번째 생기격타의 위험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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