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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17화 (417/500)

九十四章 혈마추락(血魔墜落) (3)

파앗! 파파팟! 파아앗!

누런색, 파란색, 빨간색…… 온갖 색깔의 독들이 사정없이 공기 중에 흩날렸다.

“하아!”

당홍은 부지불식간 한숨을 내쉬었다.

독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코로 흡입하기만 해도 신경이 차단되는 극독을 뿌렸는데, 복면인이 계속 쫓아온다.

마비를 일으키는 독도 뿌렸다.

두 다리가 마비되어야 한다. 절룩거리다가 끝내는 멈춰서야 한다.

독은 제대로 들어갔다. 얼굴 가득히 독분을 뒤집어썼다. 숨을 쉬지 않더라도 피부를 통해서 흡입된다.

복면인들이 독에 면역된 듯 전혀 개의치 않았다.

차라랑! 차라라랑!

‘아하!’

당홍은 또 신형을 쏘아냈다.

그녀는 매우 빠르다. 도천패와 함께 쌍학을 수련하면서 신법 부분에서는 독공만큼이나 큰 성취를 이뤘다. 하지만 복면인들을 따돌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쒜엑! 쒜에엑!

당홍은 동굴이 있는 산정을 고집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편해 보이는 길로 도주했다.

복면인들은 조금도 여유를 주지 않고 따라붙었다.

저들의 신법은 당홍을 능가한다. 신법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했는데, 금방 뒤를 잡혔다.

파라라라라락!

목정혈이 심하게 떨렸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복면인들을 보면 혈기가 더 빨리 치솟는다.

도천패와 해자수가 한순간에 혈마가 되었다. 싸우기 전까지만 해도 멀쩡했는데, 복면인을 죽이는 순간에 바로 홀리와 비슷한 상태로 변해버렸다.

다행히 생기로 정신을 일깨우기는 했지만…… 자신은 그렇게 해줄 사람조차 없다.

‘이 자들을 베면 나도 똑같이 돼.’

당홍은 최선을 다해서 신법과 독으로 버텼다. 그런데,

촤라라락!

불현듯 눈앞에서 구환도의 울림이 터졌다.

어느새 한 명이 앞을 막아섰다. 거세게 구환도를 내리친다. 뒤에서 구환도가 뻗어온다.

당홍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며 땅을 향해 데구루루 굴렀다.

나려타곤(懶驢打滾), 강호인이라면 모두가 꺼리는 신법이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동시에 양손을 활짝 폈다. 두 손에 들린 독분이 복면인들의 눈을 노리며 뿌려졌다.

화아악!

독분이 정확하게 먹혔다.

복면인들의 양 눈에 검은 독분이 잔뜩 묻었다.

두 눈에서 불이라도 일어난 듯 뜨거울 것이다. 아니, 용암에 녹는 느낌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다.

화륭열독(火烿熱毒)을 맞으면 살이고 뼈고 모조리 타들어 간다. 손에 맞으면 손이 녹고, 눈에 맞으면 장님이 된다.

화륭열독은 독의가 직접 만든 독이다.

매우 치명적인 독이라서 당홍은 만들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것인데, 이번에 사용했다.

“끄아아아악!”

“께에에엑!”

복면인들도 화륭열독은 이기지 못하겠는지 괴성을 내질렀다.

복면 사이로 피고름이 질질 흘러내렸다. 확실히 화륭열독은 효과가 있다. 결과가 너무 잔인해서 그렇지.

하지만 안심도 잠시, 당홍은 곧 경악성을 내질렀다.

“엇!”

복면인이 다시 쫓아왔다.

이번에는 전과 확연히 다르다. 해자수가 은인문 무공을 사용하다가 생기 무공을 쓸 때처럼 달려오는 속도가 확 달라졌다. 구환도 소리가 폭음으로 변했다.

꾸와와와와악!

‘할 수 없어. 이제는……’

더는 버티지 못한다. 생기를 사용하지 않으면 바로 이 순간에 목숨이 떨어진다.

파앗!

당홍은 나비가 되어서 허공으로 하늘하늘 날아올랐다.

진기 무공은 단전에 의념을 집중해야 한다. 단전 진기를 느끼고 경맥으로 유포해야 한다. 물론 어느 정도 익숙해지면 의념을 일으키는 순간에 곧 전신 유포가 시작된다.

생기는 그 순간보다도 짧다.

‘나비!’

당홍이 나비를 떠올리는 순간, 그녀는 이미 나비가 되어서 허공을 날고 있다.

눈앞에 맑은 빛이 보인다.

‘터트려야 해. 저걸 터트리면 맑은 빛이 뿜어져. 아주 기분이 좋아질 거야.’

복면인은 죽인다는 생각은 없다. 오직 맑은 빛을 흩뿌린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쒜에엑!

맑은 빛을 향해 검을 쳐 갔다. 그런데,

팟!

검이 빛무리를 치려는 순간, 느닷없이 빛이 사라졌다.

‘없어!’

갑자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방금까지 있었는데…… 갑자기 검이 목표를 잃어버렸다. 검을 어디로 쳐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니 모든 행동이 멈춰진다. 그때,

촤라라라랑!

왼쪽에서 천둥 치는 소리가 울렸다.

구환도의 고리가 흔들리는 소리다. 구환도가 내뿜는 패력도 고스란히 전달되어 온다.

파아앗!

당홍은 급히 옆으로 몸을 틀며 검을 쳐냈다.

이런 행동들은 그녀가 한 것이 아니다. 본능적인 움직임으로, 생기가 주도한 공격이다.

쒜에엑! 쒜에엑!

구환도와 검이 서로 엇갈리며 지나갔다.

엇갈려? 생기가 목표를 타격하지 못하고 흘러가? 구환도가 바로 옆으로 지나가는데, 칼조차 맞추지 못한 것이 맞나? 정말 이런 일이 일어난 거야?

맞다. 당홍은 나비처럼 날지 못하고 툭 떨어졌다.

“크윽!”

그녀는 신음을 흘리면서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복면인들을 쳐다봤다. 자신이 칼을 치는 사이, 어느새 구환도 하나가 바싹 다가와서 옆구리를 훑었다.

당홍의 옆구리에서 핏물이 샘물처럼 쏟아졌다.

이들이 구환도를 들고 있는 이유를 알았다.

구환도는 칼을 쳐낼 때 쇳소리를 낸다. 쇠로 만든 고리가 칼에 부딪히면서 요란한 소리를 흘린다. 그런데 이들은 순간적으로 쇠막대기를 끼워서 소리를 죽인다.

암도(暗刀)가 탄생하는 것이다.

원래 생기는 이런 암도도 찾아낸다. 어둠 속에 숨는 은신술도 거침없이 깬다. 한데, 복면인들이 전개하는 암도는 어찌 된 일인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한쪽에서는 구환도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다른 쪽에서는 조용히 암도가 흐른다.

당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이들은 생기를 순식간에 지워버리는 무공을 펼친다. 무령환살공처럼 오랫동안 숨기지는 못하지만 한 호흡 동안은 생기를 감출 수 있다.

또 이들은 사람의 생기를 감지한다. 확실하다.

상대방이 어떤 공격을 하든 사전에 파악한다. 그러니 아주 쉽게 막을 수 있는 것이다. 생기를 감지한다기보다는…… 행동을 예측한다.

펼치려는 무공의 종류, 방향, 속도, 진짜 노리는 위치…… 병기가 어느 곳으로 다가올지 안다.

한마디로 말해서 괴물이다.

파라라락! 파라라락!

목정혈이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크크크크! 키킥! 킥!”

당홍은 괴소를 들었다.

자신이 입으로 토해낸 소리인데, 마치 먼 곳에서 귀신이 울어대는 소리처럼 들린다. 자신이 토해낸 소리가 아니라 누가 흘린 소리를 듣는 기분이다.

몸이 변하고 있다. 혈기가 일어나고 있다.

목정혈의 흔들림, 그리고 잠시 이어지는 의식.

생기가 혈기로 변하는 순간, 잠시 몸이 둔해진다. 지금이 그때이며, 딱 이 순간만 본인이 혈마로 변할 것이라는 사실을 의식한다. 이전에도, 이후에도 이런 의식은 찾아오지 찾는다.

이런 사실은 호발귀도 말한 적이 없다. 혈마가 되려면 아직 먼 것 같은데, 갑자기 찾아왔다고 했다. 그렇지 않다. 지극히 짧은 순간, 본인이 의식한다.

이 사실은 오직 당홍만이 찾아냈다.

‘하아!’

당홍은 탄식했다.

그토록 혈마가 되는 걸 두려워했는데, 드디어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밀려왔다.

이제 혈마가 된다.

혈마가 되면은 아까 그놈…… 주치균에게 잡힐 것이다. 그보다 먼저 복면인에게 죽으려나? 그러면 차라리 낫고.

주치균에게 잡히면 그놈이 말한 대로 발가벗겨진 채 우리에 갇힐 것이다. 만인의 구경거리가 될 것이며, 하루하루 치욕적인 삶을 살 것이다.

주치균은 그러고도 남을 놈이다.

이백 년 전 혈마는 천하를 오시하던 공포의 마왕이었는데, 지금은 구경거리에 불과하다.

아니, 이백 년 전 혈마도 완전한 혈마는 아니었다. 혈마가 되기 직전까지 살았을 뿐이다.

혈마가 된 후에는 피아를 분간하지 못하니 다른 역사가 펼쳐졌을 것이다. 예를 들어서 혈마가 혈천방도를 잔인하게 도륙했다고 하는.

그런 일은 없었지 않나.

‘호발귀. 이젠 너만 믿어. 나, 구해줘.’

당홍은 호발귀를 떠올렸다.

이제 안심하고 혈마가 된다.

혈마가 되어도, 주치균에게 잡혀도, 그놈 말대로 발가벗겨져서 철창 우리에 갇혀도 도천패는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다.

이미 더럽혀질 대로 더럽혀진 여자라면서 버린다고 해도 어쩔 수가 없다. 호발귀가 구해주지 않아도 괜찮다. 파신금령술을 당해서 폐인이 되어서 할 수 없다.

이제 정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얼마 되지 않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도천패와 정말 진한 사랑을 나눴다. 그런 남자가 옆에 있었다는 게 행복하다. 다음 세상에 태어나도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는 힘들 것이다.

‘좋아! 할 만큼 했어!’

당홍은 피식 웃었다.

이미 혈기가 들어찬 얼굴은 흉신악살로 변해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만은 활짝 웃었다. 순간,

퍽!

목정혈이 터져 나간 듯했다. 이후, 목정혈은 잠잠해졌다.

당홍은 혈기가 거칠게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아주 사납게, 흉포하게 일어난다.

이놈들! 죽이고 싶다! 감히 내 몸에 상처를 입혀!

“끼아아아아!”

당홍은 괴소를 지르면서 복면인을 덮쳐갔다.

슛!

눈앞에 화려한 빛무리가 나타났다. 투명하도록 맑고 신선하다. 강하고 화려하다.

빛무리를 터트려서 세상에 내보내자!

쒜엑! 쒜에엑!

검이 빛무리를 향해 쏘아갔다. 그 순간, 환하게 빛나던 빛무리가 팍! 사라졌다.

촤르르르릉!

이번에는 오른쪽에서 구환도 소리가 울렸다. 홀리는 즉시 오른쪽으로 반응했다.

사람은 이럴 경우, 왼쪽에서 암도가 흘러온다는 것은 안다. 그러니 오로지 오른쪽에 집중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소리가 나는 구환도는 가볍게 넘기고, 왼쪽을 공격할 수도 있다.

생기는 오로지 현재 일어난 현상에만 반응한다.

쒜에엑!

당홍의 검은 구환도를 치지 못했다. 구환도와 부딪치려는 순간, 갑자기 소리가 죽었다. 빛도 사라졌다. 동시에 등에서 꽝! 거센 타격이 일어났다. 등뼈가 부서지는 듯한 충격이다.

“끄아아아!”

당홍은 괴물처럼 비명을 내지르며 일 장이나 날아가 떨어졌다.

구환도가 등을 후려치는 힘은 매우 거셌다. 그녀의 등은 뼈가 보일 정도로 날카롭게 찍혔다.

하지만 이 순간, 당홍의 검도 복면인의 심장을 찔렀다.

복면인이 등을 칠 때, 아주 잠깐 생기가 드러났다. 아니, 숨겼던 생기가 밖으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당홍이 낚아챘고, 즉시 검을 찍었다.

복면인은 심장이 꿰뚫린 채 쓰러졌다.

“크크크! 크크크크!”

당홍은 괴소를 토해냈다. 하지만 움직이지는 못했다. 일어서려고 발버둥을 쳤지만, 일어설 수 있는 상처가 아니었다. 웬만한 장정도 즉사했을 정도로 깊은 상처였다. 그때,

삐리! 삐리릴리! 삐리리!

숲에서 풀피리 소리가 울렸다.

그러자 구환도를 들고 달려들던 복면인이 거짓말처럼 걸음을 멈춰 세웠다.

쉬이이잇!

혈천방주가 당홍 앞에 내려섰다.

“이건 바라던 결과가 아닌데. 적어도 독의의 핏줄만은 내 손으로 끊고 싶지 않았는데. 쯧! 그러니까 본방에서 독이나 연구하라니까 뭘 잘났다고 뛰쳐나가서는. 쯧!”

혈천방주가 당홍을 보며 혀를 찼다.

“이 싸움은 무조건 이 대 일이군. 일대일로는 부족하고…… 혈마가 둘이면 시마(屍魔)가 지고, 시마가 둘이면 혈마를 잡고. 이 정도면 괜찮은 장사야.”

혈천방주가 죽은 복면인들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것도 운명이니 원망하지 마라. 하하하!”

혈천방주가 당홍에게 다가갔다.

당홍은 손을 허우적거렸다. 본능적으로 저항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독의가 아니었다. 혈마는 독을 알지 못한다. 본능적으로 저항하려고 하지만 몸을 움직일 수가 없다. 겨우 손만 허우적거린다.

혈천방주가 당홍의 천령혈(天靈穴)을 꾹 눌렀다.

그러자 당홍이 실 끊어진 연처럼, 영혼이 떠난 육신처럼 피식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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