九十四章 혈마추락(血魔墜落) (2)
그때다. 세 사람이 막 싸움을 벌이려고 할 때, 당홍이 쾌속하게 달려왔다.
쒜엑! 쒜에엑!
당홍은 내려서자마자 궁충 앞을 가로막았다.
“그놈은?”
도천패가 얼굴을 활짝 펴며 웃었다.
“곧 쫓아올 거야. 지금은 독에 당해서 정신없을 거고. 이놈들은 또 뭐야?”
“반인강시(伴人殭屍).”
“반인강시? 그런 것도 있어?”
당홍이 되물었다.
“뭐라고 딱히 부를 말이 없으니까.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한 말이지. 반은 인간이고 반은 강시 같은 놈들이랄까? 혈마는 혈마인데, 이게 참 뭐라고 말할지 모르는 괴물이야. 우리 생기로 감지되었다가 안 됐다가 해.”
해자수가 대신 대답했다.
뛰어!”
당홍이 말했다.
“좌우에 있는 놈은 내가 맡을 테니까 두 사람이 앞에 있는 놈만 밀어내고 뛰어.”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해!”
“이놈들 생기에 안 잡힌다는 말, 못 들었어?”
도천패와 해자수가 동시에 외쳤다.
“알아. 나도 방금 느꼈어. 하지만 나한테는 독이 있잖아. 이놈들이 열 명이든 백 명이든 상대할 수 있어.”
“당매!”
“내 걱정하지 말고 빨리 가라니까!”
“……”
“왜 이래! 정말! 지금 우리한테 선택의 여지가 있어? 없잖아! 좀 말 좀 들어!”
당홍이 급하게 말했다.
촤르르릉! 촤라락! 촤륵!
구환도를 든 복면인들이 다가왔다.
그들은 두리번거리지도 않았다. 오직 목표만 쳐다보면서 차분히 다가왔다. 홀리가 일행과 합류하는 것을 보면서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당매, 곧 온다!”
“그래. 빨리 와.”
당홍이 도천패를 보며 웃었다.
“가자!”
궁충이 세차게 외치며 뛰어나갔다.
등여산과 홀리를 업은 귀무살이 냅다 앞으로 치달렸다.
궁충이 이미 전면에 있는 복면인을 향해 화살을 열 대나 쏘았다. 앞에서 다가오는 복면인만 노리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위아래를 전부 겨냥했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깡! 까까깡! 까아앙!
복면인은 이번에도 흔들림 없이 차분하게 화살을 쳐냈다. 그리고 옆으로 빠져나가려는 귀무살에게 구환도를 뻗어냈다. 결코, 지나갈 수 없다는 듯이.
촤라락! 차랑! 쒜엑!
구환도가 순식간에 귀무살을 덮쳤다.
그 순간 복면인의 머리 위로 도천패의 대도가 떨어졌다.
꽈아아악!
대력도강에 생기가 더해졌다. 아니, 생기가 대력도강의 형태로 풀려나왔다.
복면인은 귀무살을 놓아버리고 도천패를 향해 구환도를 돌려세웠다. 귀무살을 막 베기 직전이었는데, 급히 칼을 회수해서 도천패를 향했다.
복면인에게는 혈마에 대항하는 방어기재(防禦機制)가 형성되어 있는 듯하다.
꽈앙! 까앙!
구환도와 대도가 부딪쳤다.
결과는 극명하게 나타났다. 복면인이 주춤거리면서 밀려났다. 천하무적일 것 같던 복면인도 도천패의 대도 앞에서는 한수 뒤지는 모습을 보였다.
그 순간, 해자수의 검이 불쑥 튀어나왔다.
기척을 전혀 흘리지 않고 은밀히 다가와서 복면인의 복부를 조용히 긋고 지나갔다.
파아악!
해자수의 검은 도천패의 대도에 가려져서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파아아악!
복면인의 배가 갈라지면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그런데도 복면인은 비명 한 마디 내지르지 않았다. 상처와 자신은 전혀 상관없다는 듯 태연히 움직였다.
찰랑! 촤르르르륵!
복면인은 물러나는 해자수를 향해 구환도를 내질렀다.
하지만 도천패가 가만히 있을 리 없다. 다시 대도가 허공을 갈랐고, 사정없이 복면인을 후려쳤다.
까앙! 깡! 까아아앙!
대도는 잠시도 틈을 주지 않고 연달아 복면인은 핍박했다.
이것이 생기 무공의 특징이다. 일단 공격을 시작하면 끝장이 날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상대가 사정권 밖으로 툭 튀어 나갈 때 외에는 잠시도 병기가 멈추지 않는다.
팟! 파아악!
복면인의 몸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핏줄기가 몸 여기저기서 솟구쳤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퍽퍽퍽퍽!
해자수의 검도 복면을 베었다. 다리, 허리, 그리고 다시 배.
복면인의 배가 쫙 갈라졌다. 배를 통해서 장기가 꾸역꾸역 밀려 나왔다.
그런데도 복면인은 여전히 구환도를 들어 올렸다.
아픔을 모르는 것 같다.
쒜에엑! 쒜에엑!
도천패가 다기 대력금강을 내리쳤다. 생기가 펼쳐낸 대력금강에는 평소보다 열 배 이상의 힘이 실렸다. 능히 천근 바윗덩어리가 떨어져 내리는 힘이다.
꽈아앙!
복면인의 구환도가 산산이 조각나면서 머리가 콱 찍혔다.
복면인의 머리는 두부처럼 두 쪽으로 갈라지면서 무릎을 털썩 꿇었다. 즉사다.
더는 살아날 수 없다. 구환도도 산산이 부서져서 손잡이만 쥐고 있다.
그런데도 해자수는 검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 대력도강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해자수도 검을 찔러넣고 있었다.
퍼억!
검이 복면인의 목을 꿰뚫었다.
쿠우웅!
복면인이 거칠게 쓰러졌다.
두 명이 합공을 취하자 그 공세는 어떤 자도 상대할 수 없을 정도로 거셌다.
굳이 도주할 필요가 없다.
이 여세를 빌어서 다른 복면인도 죽인다. 두 명이 아니라 열 명이 와도 모두 죽인다.
손속도 여러 번 떨쳐낼 필요가 없다. 복면인 한 명당 서너 번만 칼을 휘두르면 된다.
도천패와 해자수가 다른 복면인을 향해 돌아섰다.
“크크크크!”
“킥킥! 키키키킷!”
복면인을 노려보는 눈길에 혈광이 맺혔다.
죽여! 이 새끼들 다 죽여! 죽여!
“키키킥! 키키키킷!
해자수가 괴음을 토하면서 왼쪽 복면인을 향해 걸어갔다.
”카카카카칵!“
도천패도 말 대신 괴음을 쏟아냈다.
‘이런 빌어먹을 새끼들이! 이런 찢어 죽일 새끼들!”
도천패의 눈이 오른쪽 복면인을 사납게 노려봤다.
당홍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지 않았다.
도천패와 해자수가 어련히 복면인을 제치고 탈출할까. 두 사람이 합공을 취하는데도 복면인을 뚫지 못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틀림없이 뚫고 나간다.
다른 걱정은 접어두고 내 싸움을 해야 한다.
당홍은 목정혈을 주시했다.
주치균을 죽이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가 목정혈의 흔들림 때문이다.
일 초만 더 펼치면 주치균의 목숨을 거둘 수 있다. 한데 그 일 초가 혈마로 들어서는 길이다.
당홍은 망설이지 않고 일 초를 포기했다.
주치균이 비록 사악하지만, 그를 죽이느라 혈마가 될 수는 없다. 지금 상황도 좋지 않고……
최대한 혈기를 누른 채 호발귀가 있는 동굴까지 돌아가야 한다.
이번 복면인들과의 싸움도 혈기가 아니라 독을 사용할 생각이다.
혈마에게는 어떤 독이 통할까? 혈마도 살이 붙어 있고, 피가 흐르니 독이 통할 것이다.
‘단숨에 나가떨어질 독이어야 해.’
당홍은 차분히 독을 준비했다.
그런데…… 갑자기 등 뒤에서 ‘킥킥!’대는 괴소가 터졌다.
당홍은 깜짝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그리고 흉측하게 변한 두 사람을 봤다.
“아!”
당홍의 입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지금 도천패와 해자수의 모습은 마차로 뛰어들던 홀리와 거의 흡사하다. 홀리만큼 무서운 모습은 아니지만 이미 혈기가 치솟기 시작됐다는 걸 알 수 있다.
얼마 전 일이 생각난다.
도천패와 쌍학을 수련할 때…… 홀리만 나타나면 싸우고 싶었던 때가 있다.
“저! 미친년. 저거 배때기에 칼 한 번 쑤셔봤으면 좋겠어.”
당홍이 그런 말을 했었다.
“크크크! 음문촌 잡종 년이잖아. 난 저거 호발귀와 만났을 때도 처녀가 아니었을 것 같아. 음문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떻게 알아? 토초 봐, 토초. 완전 개잡년이잖아.”
도천패가 맞장구쳤다.
혈기를 제거한 다음, 그때 일이 생각나서 홀리 생각만 하면 가슴이 뜨끔했다.
비록 미쳐서 입 밖에 낸 소리지만, 마음 한구석에 일말의 의심이 있었기 때문에 나온 소리일 것이다. 그것을 온전히 혈기 탓만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창피했다.
지금 도천패와 해자수의 모습이 딱 그때의 모습이다.
“풋! 빨리 가라니까 멀리 가지도 못하고 바로 코앞에서 혈마로 변하나. 참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이네.”
츠읏!
당홍은 생기를 일으켰다.
자신의 목정혈도 무섭게 떨리고 있어서 생기를 쓰고 싶지 않은데…… 이번에는 써야 한다.
촤아아아악!
나비가 되어서 훨훨 날았다.
몸은 여전히 땅 위에 서 있지만, 마음은 벌써 허공에 둥실 떠 있다. 높이, 높이 솟구친다.
쌍학이 제대로 펼쳐진다. 만상이 눈 아래에 쫘악 깔린다. 순간!
“끼아아아아아아악! 끼아아악!”
당홍은 뱃속에서부터 튀어나오는 거대한 울음을 쏟아냈다.
당홍은 규성조음(叫醒早音)을 전개할 생각이었다.
독활칠수를 수련하다 보면 무공과는 다른 여러 가지 잡공도 수련하게 된다.
독활칠수가 원래 독물을 채집하기 위한 수단이다. 그러다 보면 예상치 못한 맹수나 독충과 만날 때도 있고, 죽이는 것이 아니라 쫓아내고 싶을 때도 있다.
그중 하나가 규성조음이다.
소리를 질러서 쫓아내는 방법인데, 진기로 성대를 울리면 범종이 새벽을 깨울 때처럼 우렁차고 장중한 소리가 울린다. 그래서 명명한 이름이 ‘새벽을 깨우는 소리’, 규성조음이다.
그런데…… 당홍의 입에서 나온 소리는 아름답고 장중한 규성조음이 아니라 익룡의 울부짖음이 튀어나왔다.
당홍이 외치는 소리에 도천패와 해자수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웃!”
두 사람은 복면인을 노려보며 달려들다가 정신이 번쩍 들어서 서로를 쳐다봤다.
“가! 가란 말이야!”
당홍이 소리쳤다.
두 사람은 그제야 자신들의 실태를 깨달았다.
혈마가 되기까지는 아직도 많은 기회가 남은 줄 알았는데…… 벌써 혈기에 휘감겼던 것인가? 조금 전 기억이 깜빡거리는 것을 보면 혈기에 취했던 것 같다.
아니, 지금 모습만 봐도 알 수 있다. 동굴을 향해서 뛰어가고 있어도 모자랄 판에 복면인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처참하게 쓰러져 있는 복면인……
“정신 들었으면 어서 가! 궁충과 귀무살을 벌써 빠져나갔어! 어서 빨리 가서 보호해!”
당홍이 쩌렁 일갈을 내질렀다.
“당매! 버텨!”
쒜엑! 쒜에엑!
도천패와 해자수가 신형을 쏘아냈다.
궁충과 귀무살이 벌써 움직였다면 신속히 따라가야 한다. 아직도 주변에는 천살단과 혈천방 무인들이 득실거린다. 그들 몇 명으로는 도저히 빠져나가지 못한다.
‘가! 난 괜찮으니까…… 가.’
당홍은 멀어져가는 도천패의 등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파라라랑! 파라라랑! 파락!
목정혈이 마구 떨린다.
생기를 일으키고, 괴음을 토해내고, 바로 빠져나왔다. 조금만 더 생기를 유지하면 나오고 싶어도 나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모든 것을 탁 놓아버렸다.
그런데도 목정혈이 사정없이 떨린다.
두 사람이 빨리 호발귀를 만나야 한다. 몸에 깃든 혈기를 거둬낸 후, 빨리 와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녀는 이 자리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요원한 일…… 희망 사항이다.
저들이 호발귀에게 달려가서, 혈기를 제거하고, 다시 달려오는 이런 일……
아무리 빨라도 한 시진은 넘게 걸린다. 그동안을 어떻게 버티나.
당홍은 자신의 운명을 예감했다.
정말 싫다. 지금 죽기는 정말 싫다. 하지만 곧 죽음이 덮쳐올 것이다. 그것도 예상보다 훨씬 빨리.
파르르르르!
목정혈의 떨림이 더 기승을 부렸다.
촤르릉! 촤랑! 촤르르르륵!
구환도가 그녀를 향해 쏘아왔다.
당홍은 상대하지 않고 뒤로 물러섰다. 생기를 일으키지 않고 이들과 싸우는 최고의 방법은 무조건 피하는 수밖에 없다. 부딪치면 바로 죽는다.
스으읏! 스읏! 스스스슷!
당홍은 복면인이 다가오기도 전에 먼저 신형을 빼냈다. 그렇다고 멀리 가지도 못한다. 싸울 것처럼 공격 모습을 보였다가 물러서기를 반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