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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11화 (411/500)

第九十三章 불입호혈(不入虎穴) (2)

스읏!

주치균은 천살단주 앞에 내려섰다.

단주는 자그마한 야산 위에서 책사와 홀리를 업고 달려가는 일단의 무리는 지켜보고 있었다.

“몸은 괜찮은 거냐?”

천살단주가 주치균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괜찮습니다.”

주치균은 공손히 두 손 모아 포권하며 답했다.

천살단주에 대한 존경심은 사라지고 없다. 천하무적인 줄 알았던 사람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안 순간, 단주에 대한 두려움이 일거에 거둬졌다.

하지만 단주는 아직도 천살단의 수장이다.

단주도 별 것 없구나 하는 생각은 들지만, 인간적인 면에서는 미워하지 않는다.

천살단주는 그를 중용했고, 신뢰했다.

“신법을 보니 비사칠초구나. 가볍고 편해 보여. 딱 맞는 옷을 입었다고나 할까? 오의를 깨달은 거냐?”

단주는 주치균을 훑어보기만 했는데도 새로운 성취도를 알아봤다.

비사칠초는 각성 무공이다. 제대로 깨달으면 몸이 달라진다. 단숨에 달라진다. 근골이 바뀌고 피가 바뀐다. 실제로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실제로 바뀌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완전히 달라진다.

근육을 쓰는 형태가 달라져 버리기 때문에 몸이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경맥도 확장된다.

지금까지 경맥 속에 흐르는 진기가 실개천이었다면 각성한 후에는 강이 되어서 흐른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주치균이 천살단주 옆에 서서 멀어져가는 해자수 일행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쩌다 보니까 알게 됐습니다.”

“어쩌다가…… 후후! 그 말이 딱 맞아. 비사칠초는 오공(悟功)이지. 깨달음, 각성이 있어야만 터득할 수 있는 공부라서 기회가 닿지 않으면 평생 수련해도 제자리걸음밖에 못 해.”

천살단주가 웃었다.

“단주님은 언제나 사부님에 대한 평가가 후하시죠.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주치균이 답했다.

“검신은…… 내 맞수야. 허허!”

천살단주가 말했다.

천살단주가 주치균을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검벽주로 발탁한 것은 주치균이 검신 구학봉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그런 인연이 아니라면 결코 발탁될 리 없었다.

검벽주는 단순히 천살단주를 지키는 호법이 아니다.

천살단 사대 실권자 중 한 명이다. 위치로 보면 책사, 천원주, 살단주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

천원주 밑에는 삼각 사전 십삼당이 있다. 지금 당장 천원주가 되어도 손색이 없는 사람들이 무려 스무 명이나 있다. 경륜이나 무공 면에서도 뛰어나다.

검벽주의 위치는 그들 위에 있다.

각주, 전주, 당주조차도 검벽주에게는 말을 함부로 하지 못한다.

물론 검벽주가 그들의 상관은 아니다. 주치균은 그들을 존중하고 예의를 갖췄다. 윗사람도 아니지만, 아랫사람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연륜에서 차이가 많이 난다.

천살단주는 그런 높은 위치에 겨우 스무 살을 갓 넘긴 햇병아리를 앉혔다. 검신 구학봉의 제자, 또 왕부 사람이라는 뒷배경이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주치균은 이번 일이 있기 전만 해도 자신의 무공에 대해서 부족함을 몰랐다. 솔직히 마음 한편으로는 십삼당 당주보다도 자신이 강하다고 자신했다.

젊은이가 가지는 오만함이다.

천살단주는 그런 주치균을 보고도 한마디 하지 않았다. 주치균이 비사칠초 대신에 건곤구혼검을 쓸 때도 아무 말 않고 묵묵히 지켜보기만 했다.

비사칠초는 뛰어난 검공이니 계속 수련하라는 충고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야 비사칠초가 강한 무공이라고 말한다. 사부가 천살단주의 맞수라는 사실도 오늘에서야 알았다. 실제로 맞수인지는 모르지만, 천살단주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 싸움을 보고 있던데, 좀 와서 도와주지 그랬어.”

천살단주가 말했다.

“단주님이 싸우시는데 감히 끼어들 수 있어야지요.”

“그랬나? 흠! 그럴 수도 있겠군.”

“……”

“그래, 지금은 어딜 가는 길이고?”

“해자수를 쫓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자를 이대로 놓아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서. 때마침 비사칠초도 깨달았으니 제대로 시험해 볼까 합니다.”

“자신 있나?”

“네.”

대답은 공손했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불손했다.

천살단주가 놓친 해자수를 쫓아간다. 천살단주와 평수를 이룬 자인데, 자신 있다고 말한다.

천살단주보다 내가 낫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천살단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해자수를 쫓으면 혈천방에서는 방주가 직접 나올 거야. 아! 혈천방주가 와있는 것은 알지?”

“……”

주치균은 대답하지 못했다.

알지 못했다.

혈천방에서도 무인들을 대거 파견했다는 사실만 알았지 누가 왔는지는 모른다.

기껏해야 귀무살 정도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솔직히 신경 쓰지 않았다.

혈천방주? 방주가 직접?

주치균이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후후! 좋아. 그럼 쫓아가 봐. 잡을 수 있으면 잡고. 잡지 못한다고 해도 탄광까지 계속 몰아붙여. 저놈들은 피곤해져야 혈마가 되는 특성이 있더군. 허허!”

단주가 웃었다.

주치균은 단주를 쳐다봤다. 차분하게…… 그리고 조용히, 지극히 진중하게 말했다.

“부탁이 있습니다.”

“……”

단주는 듣기만 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책사만은 제게 주십시오.”

“허허허! 뒤는 네가 쫓을 거잖아. 책사를 가지든 말든 네 마음이지. 내게 그런 것까지 말할 필요는 없어. 잡으면 갖든 죽이든 마음대로 해.”

단주가 흔쾌히 말했다.

“단주님, 단주님은 탄광에 앞질러가서 기다리고 계실 것 같은데요. 혈천방에서 방주까지 나섰다면 제가 저들을 잡기는 무리일 것 같고……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만, 탄광에 도착할 때까지 잡지 못할 수도 있어서.”

단주는 저들을 쫓는 척하고 실제로는 쫓지 않는다.

쫓을 필요가 없다. 싸울 것이 아닌 이상은 굳이 애써서 쫓을 이유가 전혀 없다. 쫓는 척 연기하는 것은 검벽과 비천당 무인만으로도 충분하다.

저들은 결국 탄광으로 간다.

목적지를 알고 있으니 먼저 탄광에 가서 기다리면 된다.

귀무살은 무너진 갱도 주변에 포진해 있었다. 그 후에도 탄광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싹 사라졌다. 어디로 갔는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탄광 주변에 있는 것은 확실한데, 대체 탄광 어디에 숨어 있는 것일까.

탄광 주변을 이 잡듯이 뒤졌는데도 숨은 곳을 찾지 못했다.

탄광 광부들도 저들을 알지 못했다. 인근 주민도 본 적이 없다고 한다. 하다못해 식량조차도 사다 먹지 않았다. 귀무살답게 완전히 숨어버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찾으면, 조금만 더 범위를 넓혀서 찾으면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럴 필요도 없다. 탄광 길목에 가서 기다렸다가 저들이 가는 걸 쫓으면 된다. 그러면 그곳에 귀검이 있고, 호발귀가 있다. 갱도에서 빠져나온 호발귀를 만날 수 있다.

호발귀는 살아있다.

홀리가 혈마로 변해가고, 해자수가 생기 쓰는 것을 보니 더욱 확실해졌다.

단주는 그곳에서 저들 모두를 잡을 것이다.

주치균은 단주가 등여산을 잡을 때,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떻게 잡았는지 알지 못한다. 단주가 암약혼기를 쓴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어쨌든 단주가 잡고자 한다면 저들은 이미 잡힌 것이나 다름없다.

“책사는 제가 쓰겠습니다.”

주치균이 다시 말했다.

“여산이는 이미 혈마가 됐는데, 가져서 뭘 하려고? 옛날처럼 다정하지도 않을 것이고, 예쁘지도 않아. 그 아이의 괴성을 들으면 있는 정도 떨어질걸?”

“우리에 가둬 놓고 지켜볼 생각입니다. 짐승처럼.”

“잔인하군.”

“그래도 한때는 정을 줬던 여자입니다. 뒤처리는 제가 하겠습니다.”

“지금은 정을 끊은 것처럼 들리는데, 맞게 들었나?”

“이미 정리했습니다.”

“정리하지 못한 것 같은데? 아직도 애증이 들끓어. 허허허! 책사는 주지.”

단주가 웃었다.

* * *

“저대로 놔두면 홀리는 비참해질 게 분명합니다. 차라리 제가 죽이겠습니다.”

육자가 말했다.

“죽이는 건 나중에 생각하지.”

음문촌장이 말했다.

“아버님!”

육자가 화난 듯 소리쳐서 음문촌장을 불렀다.

“살리는 방법이 있잖아. 혈군. 쯧! 혈마후가 되라고 했더니 혈마가 되면 어떡해.”

촌장이 못마땅한 듯 말했다.

“아버님! 혈군이 되려면 홀리를 범해야 합니다! 동생을 범하라는 말씀입니까! 어떻게 그런 말씀을!”

“사실 뭐 이미 혈마가 됐으면 인간이라고 볼 수 없지. 천하를 안겨줄 보물이잖아. 그럼 눈 딱 감고 하룻밤 잘 수도 있는 거고. 문제는 구혼음소가 통하냐는 건데. 통할까요?”

이자가 외눈을 번뜩이며 말했다.

이자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렸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영원히 무림에서 도태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혈천방을 보고 나니 그런 생각이 더욱 깊이 들었다.

음문촌은 아무것도 아니다.

적어도 혈마 같은 병기라도 손에 쥐어야 천살단 그리고 혈천방과의 싸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이자는 오직 그 생각만 했다.

그런 이자에게 홀리는 동생이 아니라 혈마일 뿐이다. 홀리가 친동생이라고 해도 혈마로 간주할 텐데, 하물며 이복동생이다. 전혀 아낄 이유가 없다.

이자가 말했다.

“사실 우리 솔직히 말해볼까? 우리 사이에 형제간이라고 할 만한 정이 있나? 없잖아. 솔직해지자고. 아무도 혈군이 안된다면 내가 하지. 홀리 혈군. 후후후!”

육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흐흐흐! 나도 마찬가지. 어차피 홀리는 우리와 인연도 끊은 계집인데 뭐하러 봐줘. 혈마가 되었으면 써먹어야지.”

삼자가 말했다.

“너는 어떠냐?”

촌장이 일자를 쳐다봤다.

“그래도 우리 동생입니다. 죽이는 것이.”

일자가 감정 없는 음성으로 말했다.

의견은 완연히 갈렸다. 일자와 육자는 죽이자는 쪽이고, 이삼사자는 혈군이 되겠다는 쪽이다.

“저쪽에 여자 셋, 남자 셋이 있다. 호발귀가 살아있다고 가정한다면…… 살아있겠지만.”

촌장이 자식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구혼음소는 통한다. 다만 어디까지 통할지는 모르지. 홀리가 호발귀에게 했을 때는 통했는데, 너희가 여자에게 할 때는 어떨지 의문이기는 해.”

“아버지! 안 된다니까!”

육자가 인상을 확 찡그리면서 말했다.

촌장은 육자의 말을 무시했다.

“첫째는 도천패를 맡고, 둘째는 홀리를 맡아. 셋째는 등여산, 넷째는 당홍. 여섯째 너는 해자수를 맡으면 되겠네.”

“아버지!”

“너무 흥분할 거 없어. 어차피 혈마가 되면 인간이 아니야. 사람 죽이는 괴물이지. 이왕 괴물이라면 우리를 위해서 힘 좀 써주는 것도 괜찮지 뭘.”

촌장에게는 네 가지 구혼음소가 있다.

음문촌에 전해지던 구혼음소와 혈천방주가 알고 있던 구혼음소를 모두 가졌다. 혈천방주가 서로 다른 구혼음소를 비교해 보라며 내준 것인데, 바로 음문촌 차지가 되어버렸다.

물론 혈천방주가 이런 사실을 모를 리 없다.

혈마를 죽이든 살리든, 또는 구혼음소가 통하지 않아서 무용지물이 되든…… 이제 음문촌은 오직 구혼음소에만 목숨을 걸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두 문파 틈에서 견디지 못한다.

“일단 도천패에게도 삼 단계를 걸어봐. 걸리면 좋은 거고, 안 걸리면 바로 보내버려.”

촌장이 일자를 보며 말했다.

“형님, 내가 등여산을 가지면 안 될까?”

“당홍이 왜? 당홍도 까무잡잡하고 예쁘잖아. 어차피 둘 다 남의 계집인데, 뭐? 애인이라도 삼으려고?”

“내가 혈군이 된다면 평생을 함께 보내야 하는데…… 내 취향이 등여산 쪽이라서. 바꾸자.”

“킥킥! 그래. 난 당홍 그게 탕탕해 보이고 좋아. 킥킥!”

삼자와 사자는 음문촌장이 말을 하고 있는데도 듣지 않고 잡담을 하며 웃었다.

“저놈들이 탄광에 들어가면 바로 싸움이 시작될 거다. 천살단도 바보가 아니니 저쪽에 가서 기다리고 있겠지. 방주도 그때는 물러서지 못할 테니까 들이칠 것이고.”

음문촌장이 첫째를 보며 말했다.

“둘이 아귀다툼을 벌이는 사이에 너희는 재빨리 일을 해치워. 사내들한테는 구혼음소밖에 쓸 게 없으니…… 해보고 안 되면 즉시 죽여. 너희 셋은 혈마를 낚아채는 즉시 귀색무부터 터트려. 귀색혼령대법은 토초가 하는 걸 봤으니 잘 알 것이고. 실수하지 마. 후후! 너희 셋 중에서 하나라도 혈군이 되면…… 그때부터 이 세상은 우리 것이야.”

음문촌장이 만족한 듯 웃었다.

일자와 육자는 대답 없이 침묵했다.

일자는 원래 말이 없는 사람이고, 육자는 불만이 가득했다.

“너희 셋 다 혈군이 되면 혈마가 셋. 하하하! 그러면 누가 우릴 막나. 하하하!”

음문촌장은 천살단주가 등여산을 잡은 문제는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했다.

혈마가 단독일 때는 잡힐 수 있다. 하지만 혈군이나 혈마후와 영(靈)이 통하게 되면 그때는 전혀 다른 혈마가 된다. 천살단이나 혈천방도 감히 손대지 못하는.

그때는 천살단주도 혈천방주도 자신들이 엉뚱한 꿈을 꾸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하하하하!”

음문촌장은 기분 좋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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