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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07화 (407/500)

第九十二章 본격시동(本格始動) (3)

천살단주가 쳐낸 회심의 일격은 해자수에게 막혔다.

타탁! 타타탁!

천살단주와 해자수는 동시에 물러섰다.

처음 검을 맞댄 이후, 거의 한 시진이 흐른 후에야 검을 멈추고 물러섰다.

두 사람 모두 전신이 땀으로 흥건했다.

천살단주는 해자수를 치지 못했다. 하지만 해자수도 단주를 건드리지 못했다.

금방 철벽이 잘려져 나갈 것 같았는데, 잘려나갔어야 정상인데…… 그걸 피해낸다. 그리고 다시 철벽을 우며 휘몰아쳐 온다. 베어내면 또 세우고, 또 베면 다시 세운다.

“쌍검탈명?”

“후후!”

해자수는 웃었다.

천살단주가 생기를 숨기기 위해서 말한 무공을 믿는다.

솔직히 해자수 자신도 믿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신이 펼친 무공 속에는 분명히 진기도 깃들었다. 생기만 움직인 것이 아니다. 진기도 같이 따라서 올라왔다.

아직은 혈기에 많이 물들지 않았다.

생기 초반 상태, 갓 생기를 파악하고 쓸 때와 거의 비슷한 상태로 보인다.

“더 싸우는 건 의미가 없을 것 같군. 물러서지.”

천살단주가 빙긋 웃으면서 뒤로 물러섰다. 정말로 해자수 앞을 막지 않을 생각이다.

무림이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놀랄까?

은인문 술사가 천살단주와 평수를 이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절초풍할 것이다.

스읏!

해자수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쌍검을 들었다.

그런데 천살단주가 정말 검을 거뒀다.

스릉!

검을 검집에 넣고 뒤로 두 걸음이나 더 물러섰다.

“후후! 어쩌지? 난 물러서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오늘 네 목을 딴다고 했잖아.”

해자수가 쌍검을 살랑살랑 흔들며 말했다.

“하마터면 말이야. 깜빡 속을 뻔했지 뭔가. 정말로 쌍검탈명이라고 착각할 뻔했어. 허허허!”

“뭔 헛소리를 하는 거야? 싸우다 말고!”

“난 아직 사용할 무공이 많아. 정말 많지.”

“그럼 써! 쓰면 되지 뭘.”

“내 몸이 검에 관통되지 않았다면 벌써 잡았을 텐데…… 아쉽게도 평수로 끝난다고 생각했지 뭔가? 죽일 수 있는데, 놓아준다고. 허허!”

“꼭 뒈지는 놈들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 아깝다. 아쉽다. 한수만 빨랐으면. 큭큭! 오늘 세상 한 번 뒤집히는 거야. 은인문 술사가 천살단주를 잡는 거지.”

해자수는 천살단주를 놓아줄 생각이 없었다. 조금만 더 몰아붙이면 잡는다.

이미 천살단주는 지쳤다. 진기도 거의 고갈되었다. 상대방의 상태가 이토록 환히 읽히기도 처음이다.

천살단주가 말했다.

“그런데 말이네. 자네를 죽이지 못한 것이 오히려 잘된 일인 줄 어찌 알았겠나? 허허! 이래서 세상일이란 모르는 것이라고는 하는 게지.”

“뭔 소리야? 알아듣게 말해야지?”

“내 허점을 정확하게 파고든 무공. 암약혼기마저 꿰뚫은 안목. 철판비검을 피한 몸놀림. 이건 인간의 행동이 아냐. 생기가 감지한 판단력이지. 허허! 자네, 혈마가 맞아.”

“그래서 뭘 어쩌겠다는 건데?”

“악착같이 싸울 필요가 없다는 거지. 자넬 죽일 이유도 없고. 뭐하러 힘들게 싸워서 죽이나. 혈마가 되면 휴지 줍듯이 주울 수 있는데. 허허!”

“그러니까 오늘 네가 죽어야 한다고.”

“말귀를 못 알아듣는군.”

슷!

천살단주가 손을 들었다.

그러자 논두렁 사방에서 불쑥불쑥 무인들이 일어서기 시작했다.

천살단주를 호위하는 검벽 무인들이다. 두 사람이 싸우는 한 시진 동안에 논두렁을 기어와 잠복해 있었다.

사실, 해자수는 이들의 존재를 진작 알았다. 다만 이들이 다가오는데도 불구하고 철벽이 세워지지 않았다. 아직은 위험 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한데, 이들이 활을 들었다.

검벽 무인이라면 당연히 검을 써야 하는데…… 활을 들어 올렸다. 아니, 아니다! 검벽 무인만 있는 게 아니다. 비천당 무인들도 골고루 섞여 있다.

“치사하게!”

해자수가 천살단주를 노려봤다.

“말했잖은가. 혈마는 생포한다고. 후후! 가라. 보내줄 테니.”

“무슨 개수작이야! 혈마는 생포한다면서? 날 그냥 보내줄 리 없잖아?”

“홀리는 혈마가 됐지? 등여산도 혈마가 됐고. 후후! 마차가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아?”

“하아! 이런 능구렁이!”

해자수는 천살단주의 의도를 알았다.

해자수가 혈마라고 가정했을 때, 무공 사용은 곧 혈마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 그러니 과도하게 생기를 사용하도록 만들면 된다. 그리고 그 일을 꼭 천살단주가 할 필요는 없다.

천살단주는 마차를 괴롭힐 생각이다.

해자수를 비롯해서 등여산, 홀리, 도천패와 당홍까지 모두 잡을 생각이다.

홀리는 도천패에게 식량을 전달하기 위해서 몇 번 생기를 사용했다. 순수하게 도천패에 대항하기 위해서 일으켰을 뿐, 싸우려는 의도는 없었다.

그 상태만으로도 그녀의 혈기는 높이 올라갔다.

반면에 자신은 천살단주를 상대로 근 한 시진 가까이 가까이 사투를 벌였다.

생기를 사용한 양으로 보면 자신이 훨씬 더 많다.

그만큼 호발귀가 많은 양의 혈기를 뽑아냈다는 얘기가 되는데, 어쨌든 자신도 위험하다.

하지만 마차로 가도 위험하다.

이미 자신은 혈기가 충만해졌다. 언제 혈마가 될지 모른다. 그럴 경우, 도천패와 당홍은 자신을 상대하기 위해서 생기를 써야 한다. 아군끼리 싸우면서 서로 혈마가 되어간다.

마차로 가지 않으면 어떻게 되나? 비천당 무인들이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 혈마가 될 때까지. 비천당 무인들이 너무 많이 쓰러지면 천살단주가 다시 나설 텐데, 그때는 이미 자신 역시 혈마가 되기 직전일 것이다.

이래저래 단주에게 잡힌다.

‘이럴 바에는 나도 아씨처럼 단중혈에……’

혈마가 되더라도 발광하지 않고 호발귀에게 가는 길이 있다.

“보내줄 때 가지? 지금이라도 쫓아가야 행동을 같이 할 수 있을 텐데? 그래야 탄광에 쉽게 가지.”

천살단주는 마차가 탄광으로 가는 것까지 안다.

“좋아, 좋아. 우리 다음에 다시 보자고.”

해자수는 천살단주와 싸우는 것보다 일행과 함께 하는 길을 택했다. 누가 언제 혈마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이런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혈마가 되면 틀림없이 잡힌다.

예전에는 혈마가 왕이었지만, 지금은 종이호랑이가 되어버렸다.

쒜에엑!

해자수는 신형을 날려 마차를 쫓아갔다.

주치균은 단주와 해자수의 싸움을 봤다.

잠시 다른 길로 빠졌지만, 곧 다시 쫓아왔고, 이번에는 제대로 눈요기를 했다.

우선 해자수의 몸놀림이 범상치 않은데 놀랐다.

단주의 허점을 매우 정확히 파고든다. 마치 단주의 무공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같다.

단주와 함께 적어도 이십 년 이상을 같이 수련하지 않고는 펼칠 수 없는 검초를 펼쳐낸다.

단주가 어떤 공격을 할지 너무 정확히 안다.

당연히 검초의 맥도 효과적으로 끊어버린다. 반격은 말할 것도 없다. 절묘하다 못해 탄성이 터진다. 거기에다가 해자수의 반사 신경은 천살단주보다 앞선다.

이 부분은 매우 중요하다. 반사 신경이 앞선다는 말은 선천적인 자질이 더 뛰어나다는 것이다.

해자수가 천살단주보다 자질이 더 뛰어날 리 없다.

그럴 수는 있다. 은인문 술사라고 해서 숨겨진 보옥이 없을 리 없다. 제대로 재질을 닦지 못했다면 뛰어난 재질로 드러나지 않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나 천살단주가 되는 게 아니다.

천살단주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이미 무재(武才)는 충분히 검증받았다.

그런데도 천살단주보다 앞선다? 다른 부분도 아니고 반사신경이?

확실히 생기를 사용하고 있다. 기본적인 힘, 원천적인 힘이 최고조로 끌어 올려진 현상이다.

주치균은 단주에게도 놀랐다.

분명히 해자수가 더 빠르다. 검초도 요소요소를 찔러온다. 도저히 피할 수 없는 검초다.

자신이 저런 검초를 당했다면?

비사칠초는 피할 수 있다. 비사칠초는 순변(巡變), 역변(逆變)이 가능하다. 순간적으로 휘돌거나, 아니면 뒤로 빠질 수 있다. 그러니 검초가 다가오기 전에 피한다.

신법으로 피하는 게 가능하다.

천살단주도 신법을 써서 피했다. 다만 주치균처럼 움직이지 않고 선 자리에서 오로지 몸의 움직임만으로 피해냈다. 검초와 육신이 살얼음판 싸움을 벌였다.

천살단주는 말도 안 되게 쳐오는 검을 모조리 피해냈다.

단주도 생기를 사용하나?

순간적으로 치민 의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단주의 몸놀림은 생기와는 전혀 다르다.

몸이 불가사의한 각도로 꺾인다.

보통 사람 같으면 넘어지고도 남았을 자세를 취하면서도 꿋꿋하게 버틴다.

‘말이 안 되잖아! 어떻게 저런 모습으로 버틸 수가 있지?’

‘웃! 음! 저렇게 균형을 잡으면……’

‘후후! 대단하군, 저런 자세에서도 반격을……’

단주의 몸놀림을 보다 보면 경탄이 쉴새 없이 쏟아진다. 모든 움직임이 놀람의 연속이다.

단주와 싸우는 해자수도 기가 막힐 것이다. 분명히 나가떨어져야 할 사람이 버티고 있으니. 그것도 검 한 대 맞지 않고 반격까지 취해오니.

천살단주와 싸우게 된다면 검이 몸을 뚫기 전에는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아니, 검이 박혀도 마찬가지다. 숨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단단히 긴장해야 한다.

검에 맞은 것처럼 보이지만, 맞지 않았을 수가 있다. 뒤로 넘어가는 자세에서도 검초를 쏟아내는 사람이다.

천살단주의 몸이 그렇다.

손가락 하나로 모든 걸 지탱하기도 하고, 무릎 하나로 빙글 몸을 돌면서 검을 쳐내기도 한다. 몸을 뒤로 훌쩍 넘기면서 머리를 땅에 대고 두 발로는 상대를 걷어찬다.

정말 기기묘묘한 무공이 튀어나온다.

마치 인간이 아니라 문어가 춤을 추는 것 같다.

‘당신을 잘못 봤군. 인정.’

주치균은 피식 웃었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동안 단주의 무공을 본 적이 없다. 검벽주로 있으면서도 전혀 보지 못했다. 검을 들고 서 있는 모습은 보았지만, 수련조차도 하지 않았다.

“공격해야 하지 않을까요?”

검벽 무인이 말했다.

지금 단주를 도와서 해자수를 공격하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주치균의 생각은 다르다.

공격에 가세해봤자 양상은 똑같다. 이쪽 희생만 늘어난다. 생기 무공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은 썩은 짚단에 불과하다.

“단주님이 싸우고 계신다.”

“네. 그러니까……”

“단주님이 직접 손을 쓰시는데 가세한다는 것은 단주님에 대한 모욕이지.”

“……”

검벽 무인은 대답하지 못했다.

검벽주 임명강이 살아있다면 주치균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었다. 아니, 주치균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당장 달려들어서 천살단주를 호위했다.

검벽 무인의 임무는 명확하다.

하지만 주치균이 지켜보고 있고, 싸움에 가세하지 않는다. 이 싸움에 끼어드는 것은 단주에 대한 모욕이라고 말한다.

전임 검벽주가 이렇게 말하면 공격할 수 없다.

단주는 위험해 보인다. 해자수가 날카롭게 공격하고 있다. 하지만 항상 피해낸다. 늘 위태롭게 보이는데, 항상 피해낸다. 검에 스치지도 않는다.

정말, 이 싸움에 끼어드는 것이 단주에 대한 모욕일까?

“포위한다!”

비천당은 주치균의 말을 듣지 않았다.

비천당 당주는 산정에서 주치균이 목을 베어오라고 한 말에 감정이 상한 모양이다.

그는 일갈을 내질렀다.

비천당 무인들이 즉시 사방을 에워쌌다. 그리고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그러자 검벽 무인도 주치균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이내 비천당 무인들과 합류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단주를 보호하는 게 바르다고 생각된 모양이다.

‘하루살이들!’

주치균은 비천당 무인들이 꼭 하루살이처럼 보였다.

해자수가 결코 뛰어난 놈이 아닌데…… 해자수를 보다 비천당 무인을 보면 살짝 손가락으로 짓눌러도 목숨을 뺏을 수 있는 하루살이처럼 보인다.

슈웃!

해자수가 신형을 날려 사라졌다.

천살단주가 손을 들어서 비천당 무인을 일으켜 세운 것으로 봐서는 이들을 이용한 것 같다.

단주가 싸움을 피했다.

비천당 무인들이 일어선 후에도 해자수는 여전히 싸울 뜻을 비쳤다. 그리고 몇 마디 말을 주고받은 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해자수가 신형을 쏘아냈다.

‘거기까지인가?’

주치균은 피식 웃었다.

단주라면 검에 맞아 죽더라도 끝까지 싸울 줄 알았다. 하지만 단주가 먼저 싸움을 피했다.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해자수를 놓아주었다. 놓친 것인가?

이 순간, 단주에 대한 존경심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정말 희한하게도 이제까지 봐왔던 천살단주가 아니라 그저 동네 할아버지 정도로만 여겨졌다.

존경심이라는 것이 이렇게 믿을 수 없는 것인가?

주치균은 해자수를 쫓아가려다가 멈췄다.

단주는 여전히 해자수를 쫓고 있다. 검벽 무인과 비천당 무인들이 빠르게 쫓아간다. 해자수를 놓아주었지만, 여전히 뒤쫓는다는 것은…… 쫓으면 이길 수 있다는 이야기인가?

‘재밌는 사람들이 많이 생겼군. 내가 잠시 지옥을 갔다 온 사이에. 후후!’

주치균은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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