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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06화 (406/500)

第九十二章 본격시동(本格始動) (2)

쒜엑! 쒜에엑! 깡! 까까깡! 까아앙!

해자수는 숨도 돌리지 않고 급공을 취했다. 그리고 이런 공격은 확실히 홀리보다는 빨랐다.

해자수의 공격은 철벽을 부수는 데 있다.

눈앞에 철벽이 세워지면 바로 공격한다. 즉각적인 공격이 가능한 이유다.

홀리는 조금 다르다. 그녀는 땅의 힘을 느껴야 한다.

감각으로 붙잡고 풀어주는 것을 느낀다. 그리고 위험이 어디에서 일어나는지 다시 한번 파악한다.

홀리는 공격하기까지 두 단계를 거친다.

해자수는 모든 공방이 시각적이다. 위험이 즉시 눈에 들어온다. 피하고 공격하는 것도 즉각적이다.

사실 그는 철벽을 공격하지도 않는다. 돌풍에 휘말려서 멀거니 쳐다보기만 하면 된다.

철벽을 부수는 것은 생기다.

본인 몸에 깃들어있는 생기가 최선을 다해서 철벽을 부순다. 철벽을 부수는 힘도, 방향도, 초식도 모두 생기가 스스로 이끌어 낸다.

해자수가 가진 자원, 생기와 초식과 근력을 최대한 끌어내 와서 마음껏 사용한다.

‘이놈 다르다!’

천살단주는 깜짝 놀랐다.

은인문에 정말 쌍검탈명이라는 무공이 있나?

한순간 의심마저 들었다.

그런 무공이 존재할 리 없다. 만약 그런 무공이 은인문에 있었다면 당장 최강 문파로 두각을 드러냈을 것이다.

생사 절명의 순간에만 사용하라고? 이런 절공을? 미친 소리!

하지만 해자수가 펼치는 검은 진정한 절공이다.

검에 진기가 실려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검초를 거침없이 몰아친다. 해자수에게서 허점을 발견하고 초식을 펼치면, 어김없이 중도에서 막힌다.

천살단주는 검초를 끝까지 펼치지 못했다.

모든 검초가 중간에서 가로막히는 바람에 해자수의 무공이 진기 무공인지, 생기 무공인지 판가름조차 하지 못했다.

‘이놈 뭐야!’

천살단주는 눈을 부릅떴다.

해자수는 생기 무공을 펼친 홀리보다도 훨씬 빠르다.

쒜엑! 쒜에엑!

쌍검이 날아온다.

머리, 어깨, 머리, 가슴, 옆구리, 머리…… 쉴 새 없이 검이 날아와 꽂힌다.

열을 피하면 열하나 째가 날아든다.

천살단주도 해자수에 맞춰서 급공을 펼쳤다.

혈마 연구는 인간의 힘은 약하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한다.

힘이 약하기 때문에 강한 것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한 가지가 무공이다.

또 한 가지는 자연의 힘이다.

자연이 지닌 힘을 이용하면 진기 수련으로 얻는 힘보다 훨씬 더 큰 힘을 쓸 수 있다.

물건을 위해서 아래로 떨어트리기 위해 큰 힘을 쓸 필요가 없다. 물체를 받쳐주지 못하는 허공으로 슬쩍 밀기만 해도 거친 힘으로 떨어진다.

백 장 위에서 작은 돌멩이 하나만 던져도 밑에 있는 개구리는 맞아 죽는다. 사람도 죽는다. 조금 큰 돌멩이를 던지면 황소도 거꾸러트린다.

혈마를 연구하다 보니 이런 힘도 연구하게 되었다.

자연의 힘을 최적의 상태에서 최고로 이끌어내는 방법은 무엇인가? 이 힘에 진기를 가미시키면 천력이 얻어진다. 오로지 진기 수련을 한 것보다 훨씬 더 큰 힘이 얻어진다.

그렇다고 진기 수련을 게을리하지도 않는다.

진기 무공은 인간 본연의 힘을 극한으로 끌어내 준다.

몸과 자연이 하나가 되었을 때, 그 힘은 혈마를 능가한다. 어떤 물체든 파괴한다.

‘낙하연환수(落下連環手)!’

쒜에엑! 쒜엑! 쒜에엑!

검이 떨어진다. 떨어지고, 떨어지고, 또 떨어진다. 한 번 떨어질 때마다 힘이 가해진다. 층층수(層層手)! 떨어지는 힘을 더욱 가속시킨다.

낙하연환수를 펼치면 검이 보이지 않는다.

상대는 자신이 베이고 난 후에야 무엇인가가 지나갔구나 하는 느낌을 갖는다.

까앙!

해자수가 검을 들어서 막았다.

낙하연환수에는 진기를 여섯 번이나 겹친 힘이 들어있는데…… 그 검을 막았다.

놀란 것은 해자수가 아니라 천살단주다.

‘뭐 이런 놈이!’

해자수는 물러서지 않는다, 더 강한 힘으로 방어하고, 더 강하게 반격해 온다.

천살단주는 전신에 땀이 후줄근하게 베였다.

해자수는 혈마가 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호흡은 여전히 조용하다. 눈빛은 맑다. 전혀 혈기가 깃들지 않았다. 검도 난폭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천살단주는 점점 손발이 무거워지는데, 해자수는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파르르르!

천살단주의 검이 떨렸다.

홀리를 상대하고, 상처를 심하게 입은 상태에서 홀리보다 더 강한 적과 만났다.

이번 싸움은 확실히 천살단주에게 불리했다.

깡! 까까깡! 까아앙!

검과 검이 충돌했다.

인간이 순간적으로 펼칠 수 있는 변화가 몇 개나 될 것 같은가? 네 개? 다섯 개? 열 개? 환검을 사용하는 자에게 물어보면 기가 막힌 숫자를 말한다.

많게는 삼십육변(三十六變)을 일으킨다는 환검도 있다.

혈마일총에서 파악한 변화는 딱 하나다.

인간은 하나 이상의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다. 그 이상 변화를 일으킨다는 것은 거짓이다. 삼십육변? 그렇다면 그는 최고 속도로 변화를 일으키지 못한 것이다.

하나의 속도에 하나의 변화만 깃든다.

일속일탈(一速一奪)!

쒜에에엑!

천살단주의 검이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그어지는 호선을 그렸다.

이 변화가 끝이다. 지금 천살단주가 펼치는 검속에 오직 하나의 변화만 담았다. 다른 변화까지 담기에는 검속이 따라가지 못한다. 검속이 너무 빨라서.

까까깡! 까아앙!

이번에 검이 막혔다. 그리고 쌍검이 휘몰아쳐 온다.

스으읏! 스읏! 쒜엑! 쒜에엑!

해자수는 조금도 지치지 않았다. 아직도 생생하다. 기운이 펄펄 끓어오른다.

“후우욱!”

천살단주가 거친 숨을 뿜어냈다.

벌써 접전을 벌인 지 반 시진이 훌쩍 지났다.

해자수는 아직도 멀쩡하다. 전혀 혈마가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반면에 천살단주는 진기가 흩어지고 있다. 손발이 어지러워지고 검이 흔들린다.

아무래도 홀리하고 싸웠던 게 타격이 컸다.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기도 전에 해자수 같은 강적을 만났으니 고전하는 게 당연하다.

아니다. 홀리를 만나지 않았어도 이자는 정말 강하다.

은인문이 이렇게 강했나?

은인문은 해자수가 말한 대로 온갖 잡종들이 집합처다. 강호인들의 심부름을 해주면서 간간이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말 하잘것없는 종자들이다.

그런 종자가 이렇게 강하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해자수가 생기 무공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등여산이나 홀리의 경우를 보면 이 정도로 오랫동안 검을 사용하면 검광부터 달라진다.

검에서 폭기(爆氣)가 쏟아진다.

금방이라도 검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다. 살기도 진해진다. 검을 보면 오싹 소름이 돋는다. 혈기가 살기로 변해서 검의 성질마저 변화시킨다.

해자수에게서는 그런 기운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사라졌다!’

생기가 잘못 파악했을 리 없다. 철벽이 깔끔하게 사라졌다. 어떤 압박감도 느끼지 못하겠다.

‘후후!’

해자수는 자신감을 가졌다.

자신은 홀리하고 상당히 다른 상태에서 출발했다.

홀리는 호발귀를 만나지 않고 떠났다. 그 당시는 호발귀가 혈기를 뽑아내지 못했다. 그러니 아무 말 없이 떠나는 것이 오히려 호발귀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길이었다.

호발귀의 말을 빌리면 절반 넘게 혈기로 물든 상태였다.

자신과 도천패, 당홍은 다르다. 완전히 혈기를 제거한 상태에서 나왔다.

솔직히 자신은 호발귀가 혈기를 빼냈다고 하는데, 뭐가 달라졌는지 전혀 모르겠다. 생기를 더 쓰면 혈마가 된다는데, 어떤 상태가 혈마인지도 모르겠다.

생기를 쓰면 그저 좋다.

그 외에 어떤 증상도 느끼지 못했다. 그러니 호발귀 말이 공염불처럼 들리는 것도 사실이다. 혈기니, 혈마니 하는 말들이 모두 자신과는 상관없는 말 같다.

어쨌든 이번에도 호발귀 말을 빌리면 일할 내지 이 할 정도만 남았다. 생기는 여전히 쓰되, 혈기는 상당 부분이 소멸한 상태다. 정확히 말하면 진기와 생기가 섞여서 나온다.

물론 이대로 사용하면 혈기는 또다시 일어난다.

그러면 어떤가. 곧 호발귀를 만날 것이고, 또 제거해 달라고 하면 되는데.

호발귀가 혈마가 되는 것이 문제지, 자신들의 혈기를 뽑아내는 것은 전혀 문젯거리가 안 된다고 봤다.

하지만 호발귀의 말을 무시하지 못했다.

홀리마저 혈마와 비슷한 상태가 되어 버리니, 생기를 쓰면 혈마가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천살단주와 싸우면서도 상당히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홀리처럼 중간에 혈기가 일어나는 없을 것 같다.

여기서 싸움을 멈추는 일도 없다. 이미 철벽도 다 없어졌다. 천살단주가 눈앞에 있지만, 어떤 철벽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생기가 이미 천살단주를 파악했다. 그리고 더는 위협 거리가 아니라도 판단했다.

‘넌 내 손에 죽는다!’

쒜에엑!

퍼뜩! 철벽 하나가 세워졌다.

누구나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철벽을 세운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이빨을 드러내는 법…… 사람이라도 다를 바 없다. 본능적으로 발악하는 것이다.

‘저것! 저것만 부수면!’

천살단주를 죽일 수 있다!

쒜에엑! 쒜에엑!

해자수는 철벽을 베기 위해 돌풍 속에 몸을 실었다.

천살단주는 깜짝 놀랐다.

슈아아악!

머리 위로 검이 떨어졌다.

‘위험하다!’

천살단주는 처음으로 위기를 느꼈다.

이번 공격은 너무 날카롭고 빠르다. 해자수가 전력을 다한 듯하다. 도저히 피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천살단주가 되면서 유음검문의 필살검을 모두 버렸다.

마공관 무공만 해도 유음검문의 필살검을 막아낼 무공이 많았다. 정공 중에도 몇몇 무공이 눈에 띄었다.

마공관 무공을 수련할까?

그럴 필요가 없다. 솔직히 말하면 마공관 패공이나 마공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혈마일총의 수련을 받았다.

천살단주이면서 혈마일총 수련생이다. 혈마일총의 모진 고문을 모두 이겨낸 최초의 인물이다.

그런 근골로 혈마이총의 무공을 수련했다.

그러기를 삼십 년…… 삼십 년 동안 전혀 찾지 않던 마공관을 다시 찾았을 때, 그의 흥미를 끌만 한 무공은 보이지 않았다.

눈을 휘둥그레하게 만들던 무공들이 모두 사라졌다. 무공은 여전히 서가에 존재하지만, 하나같이 하찮은 무공으로 전락했다.

그런데도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

해자수의 검이 너무 빠르다. 천하제일검이라는 말은 붙여줄 수 없다. 해자수보다 강한 검은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천하오쾌(天下五快) 속에는 포함할 수 있다.

은인문 무공이 이토록 강할 줄이야!

쒜에엑!

검이 흘러온다. 피할 수 없는 검이!

암약혼기!

파아앗! 파앗!

천살단주는 어둠 속에 몸을 묻었다. 동시에 철판교(鐵板橋)를 시전했다.

단주가 펼치는 철판교는 일반 무인들이 시전하는 공부와는 상당히 차이가 난다. 그는 몸을 지면과 바싹 닿을 정도로 눕혔다.

하지만 이 상태에서도 공방이 가능하다.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검을 쳐낼 수 있다는 점이 일반 철판교와 다르다.

더욱이 단주는 철판교를 시전하기 전에 암약혼기를 펼쳤다. 어둠에 가려서 자신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한순간, 목표를 잃게 된다.

그의 몸을 받치고 있는 건 오직 두 무릎뿐이다. 무릎의 힘만으로 몸을 수평으로 높였다.

쒜엑!

해자수의 검이 가슴 위를 쓸면서 지나갔다.

해자수는 암약혼기 속에서도 천살단주를 찾아냈다. 하지만 단주가 이토록 심하게 몸을 숙일 줄은 몰랐던 것 같다. 머리를 치고, 낭심까지 일직선으로 그어 내린 후에 빠져나가야 하는 검이 텅 빈 허공만 두들겼다.

그 순간, 천살단주는 오른발 한쪽 다리에 전신의 힘을 실었다. 그리고 왼다를 들어서 오른 다리 옆으로 옮겼다.

이 단순한 동작 하나가 그의 몸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왼발을 들어서 오른발 옆으로 옮기는 단순한 동작이 몸을 확 뒤집어 주었다. 동시에 검이 반사적으로 퉁겨나가면서 해자수의 종아리를 쳤다.

따앙!

천살단주가 쳐낸 회심의 일격도 여지없이 막혔다.

해자수 앞에서는 암약혼기의 어둠도, 철판비검(鐵板飛劍)도 통하지 않았다.

이 두 무공 역시 인간의 골격 구조로는 펼칠 수 없는 공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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