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二章 본격시동(本格始動) (1)
두두두! 두두! 두두두두!
마차가 왼쪽으로 꺾여서 달려갔다.
왼쪽으로 가면 마을이 나온다. 마을을 중심부를 뚫고 지나가야 하는데, 마을만큼 좋은 매복지도 없을 것이다. 당연히 암습이 벌어질 것이다.
반면에 원래 가려고 했던 오른쪽 길은 아직 모를 심지 않은 논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 좌우는 온통 논밭이고, 마차가 달려갈 길이 외길로 쭉 뻗어있다.
따라오기는 어렵고 달리기는 쉽다.
마차는 당연히 오른쪽 길로 가야 마땅했다. 단, 천살단주라는 사람이 없을 때 한해서.
쒜에엑!
해자수는 빠르게 질주했다.
천살단주가 마차 방향을 눈치채고 왼쪽으로 달려가면 안 된다. 그 전에 천살단주를 잡아서 발을 묶어놔야 한다. 도천패와 당홍도 충분히 천살단주를 상대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의 힘은 탈출하는 데 써야 한다.
쒜엑! 쒜에엑!
‘빨리! 어떻게든 단주만은……’
해자수는 천살단주를 노리며 치달렸다. 그러다가 길 한 가운데 서 있는 노인을 찾아냈다.
갑자기 긴장이 확 풀렸다.
천살단주! 그가 앞에 있다.
싸울 사람이 천살단주인데, 말도 안 되게 강한 자인데…… 하지만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나.
스읏! 저벅! 저벅!
해자수는 신법을 멈추고 천천히 걸어갔다.
걸으면서 호흡을 골랐다. 진기도 휘돌려서 전신 근육과 경맥을 살폈다.
어차피 싸움이 벌어지면 진기는 사용하지 않는다.
천살단주에게 진기를 들이밀면 일 초도 받지 못하고 날아 떨어질 게 분명하다.
그런데도 습관처럼 진기가 살펴진다.
‘내가 무슨 짓을 하는 거야. 정말 진기로 싸울 참인가? 저런 인간하고? 이구! 미쳤지.’
해자수는 툴툴 웃으면서 천살단주에게 걸어갔다.
두 사람은 길 한가운데서 만났다.
만난 것은 길인데, 마을에서 보면 논 한 가운데에 두 사람이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직 모도 심지 않아서 허허벌판이다. 그만큼 사방이 확 트였다.
“이거 통성명해야 하나?”
해자수가 머리를 긁적거리면서 말했다.
천살단주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해자수를 쳐다봤다.
“해자수인가? 만약에 누군가가 온다면 도천패와 당홍이 올 줄 알았는데.”
“하! 날 무시하시네.”
“……”
천살단주는 빙긋 웃었다.
“혹시 은인문 술사라고 들어보셨나?”
“알지.”
천살단주는 단주 위치에서는 아주 하찮은 자가 반말조로 말을 건네와도 웃으면서 대답했다.
“안다면 말하기가 쉬워지네. 원래 은인문이라는 문파가 강호상에서 거의 뭐 대접도 못 받고, 이리저리 궁상맞은 일이나 하고, 한 마디로 쓰레기 취급을 받는 문파라 이 말씀이지.”
“본인 문파를 그렇게까지 비하할 필요가 있나? 자네 같이 걸출한 무인도 배출했잖나?”
“그러니까!”
해자수가 활짝 웃었다.
“은인문이 내 대에 와서 꽃을 활짝 피웠다 이거지. 세상에 은인문 술사라는 놈이 감히 대 천살단주하고 이렇게 마주 서서 농담 따먹기를 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냐고.”
해자수가 느물느물 웃으며 말했다.
“후후후! 해자수 자네는 지금 나를 막아섰다고 생각하나?”
“에이, 말은 바로 해야지. 솔직히 말하면 막아선 정도가 아니지. 단주를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 중인데. 죽일까, 살릴까. 이제 이 정도는 내 마음이거든.”
“하하하! 하하하하!”
천살단주가 웃었다.
“내 말이 웃겼나? 웃긴 말은 없었는데?”
해자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 해자수는 최대한 시간을 끌고 있다. 마차가 조금이라도 멀리 가야 한다.
“자네는 음문촌 여자보다도 한술 더 뜨는군. 홀리도 그렇게까지는 생각을 안 했는데.”
“아! 아씨는 여자고 나는 남자잖아. 아무래도 남자가 여자보다는 힘이 좀 세지. 더군다나 단주는 파싹 늙었고 나는 이처럼 싱싱한데, 설마 이 나이에 당신 같은 노인네 하나 상대하지 못한다면…… 아이구! 동네 개가 웃지.”
해자수가 웃으면서 말했다.
해자수는 싸움이 시작되면 속전속결로 끝낼 생각이다. 가장 빨리 끝내고 마차에 합류해야 한다. 아무래도 도천패는 생기 사용에 미숙한 것 같아서 불안하다.
“자네도 혈마인가?”
천살단주가 문득 물어왔다.
“혈마? 무슨 소리야?”
해자수가 짐짓 모른 척했다. 하지만 천살단주의 예리한 눈길을 피하지 못했다. ‘혈마’라는 말을 듣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움찔거렸는데 그 모습이 잡혔다.
“혈마, 또 혈마. 도대체 혈마가 몇 명이나 되나?”
“난 도체 무슨 소린지?”
“등여산이 혈마가 되는 건 내 눈으로 봤고, 홀리도 혈마 직전까지 들어서는 것을 봤고…… 감히 은인문 술사 따위가 내 앞에 막아서면서 너스레 떠는 걸 보니 자네도 혈마 무공을 쓰는 거 같고. 이렇게 되면 벌써 셋이네.”
“헛소리는 그만하고 한 판 뜨지?”
스읏!
해자수는 급히 싸움을 시작하려고 했다. 가급적 시간을 끌어볼 생각이었는데, 말을 이어갈수록 천살단주에게 휘말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나빴다.
천살단주가 해자수를 개의치 않고 말했다.
“혹시 호발귀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전부 혈마가 된 거 아냐? 호발귀에게 물든 것 같은데?”
“거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그리고…… 물 들었으면 어떻고 안 들었으면 어때? 오늘 단주 목숨이 떨어질 판인데, 자기 목숨이나 신경 쓰지?”
스릉!
해자수가 검을 뽑았다.
“오늘 내 목숨을 노리는 사람이 꽤 많아. 홀리도 나랑 싸우기 전에 그런 말을 했는데, 아직 붙어 있는 것을 보면 헛소리였고. 자네 말은 어떤지 볼까?”
천살단주가 빙긋 웃었다.
‘아씨가?’
해자수는 이마를 살짝 찌푸렸다.
천살단주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할 필요가 없다. 천살단주 정도 되는 강자는 거짓말을 해본 적이 오래됐을 것이다. 그렇다면 천살단주의 말은 진실이다.
홀리가 천살단주와 싸웠다.
그렇다면 생기를 사용했을 텐데, 어떻게 천살단주가 살아있는 거지? 홀리가 단주를 죽이지 못했다고? 생기 무공을 사용하고도? 완벽한 생기 무공인데? 사마까지 잡은 무공인데……
천살단주를 살려준 것이 아니다. 죽이지 못한 것이다.
‘생기를 쓰고도 이놈을 죽이지 못했다는 거지?’
그렇다면 천살단주에게는 혈마 무공을 파훼할 수 있는 어떤 기공 혹은 무공이 있다.
천살단은 한순간도 방심하지 못한다.
실제로 주치균은 무령환살공을 사용했다. 완전히 혈마가 되어서 어떻게 제압할지 고민거리였던 등여산도 단중혈에 비수가 꽂힌 채 들려왔다.
등여산을 데려온 사람은 홀리지만, 홀리가 단중혈을 찌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자, 천살단주가 찔렀다.
등여산은 비수에만 찔린 게 아니다. 금잠사로 손발이 묶였다. 금잠사는 매우 귀한 물건이다.
금잠사 한 올을 뽑는데 은 한 냥이 들어간다는 말이 있다. 물론, 홀리는 갖고 있지 않다.
금잠사를 사용한 사람은 천살단주다.
천살단주가 혈마를 제압하고 금잠사로 손발을 묶었다.
무령환살공처럼 혈마를 잡을 수 있는 무공이 단주에게도 있다. 하지만 단주의 무공은 더 강하다. 주치균의 무공은 혈마가 되지 않은 생기 무공에는 통하지 않았는데, 단주는 홀리도 받아넘겼다. 생기 무공을 상대할 수 있다.
해자수는 눈치가 빠르다. 이 모든 것을 한순간에 깨달았다.
‘오늘 싸움…… 쉽지 않겠는데. 이놈, 생각보다 훨씬 더 능구렁이야. 힘들겠어.’
해자수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은인문에 쌍검탈명(雙劍奪命)이라고 있어. 이거는 정말 목숨이 경각에 달리기 직전이 아니면 절대 펼치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했던 무공인데, 뭐 천살단주 앞에서야 사양할 수 있나. 지금부터 은인문 최대 절초를 펼쳐볼게.”
은인문에 그런 무공은 없다. 생기 무공을 숨기기 위한 속임수일 뿐이다.
“자! 나 같은 사람하고는 말 섞기도 그럴 테고, 시작해 볼까?”
스읏!
해자수는 검을 똑바로 잡고 가슴 앞에 세웠다. 홀리의 검은 역수로 잡고 등 뒤로 붙였다.
정면에 검 하나, 등 뒤에 숨긴 검 암검(暗劍) 하나.
여기까지는 은인문 무공이 맞다. 은인문에서는 장검 대신에 길이가 짧은 단검을 사용하지만, 지금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어차피 은인문 무공을 쓸 것이 아니니까.
‘속전속결!’
해자수는 천살단주가 싸움을 질질 끌면서 자신도 홀리처럼 변하기를 기다릴 수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리고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
천살단주는 이미 혈마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스읏!
해자수는 허리를 낮게 숙였다. 아니, 숙였다 싶은 순간 용수철처럼 튕겨 나갔다.
스으읏! 스읏! 스스스슷!
해자수는 몸을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렸다.
그는 생기 속에서 돌풍 속에 휘말려있다. 자신이 어디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빙글빙글 휘돈다.
현실에서도 똑같은 모습이 일어났다.
이런 모습은 그가 일으킨 것이 아니다. 생기가 주변에 세워진 철벽들을 잘라내기 위해서 일으킨 움직임이다. 몸이 돌풍처럼 휘돌면서 좌우의 두 검을 맹렬히 그어냈다.
쒜엑! 쒜에엑!
돌풍이 일어났다. 검이 폭풍처럼 쏟아졌다.
우검과 좌검이 풍차처럼 휘돌았다. 일순간에 십여 번이나 몸이 휘돌았다.
깡! 까까깡! 까아앙!
천살단주는 급히 팔 검이나 막았다.
해자수가 일순간에 여덟 번을 공격했고, 천살단주는 숨 막힐 듯 몰아쳐 오는 급공을 정확하게 보고 막아냈다. 한 치도 밀리지 않은 채 서 있는 자리에서 맞받았다.
“생기 무공이 맞군.”
“이걸 막아? 킥킥! 천살단, 역시 대단해.”
서로가 거의 동시에 말했다.
해자수는 진정으로 감탄했다.
보통 사람이 일 검을 뻗을 동안 그는 팔 검을 쳐냈다. 딱 한 호흡을 몰아쉬는 동안에 터진 검이다. 그런데 단주는 그 검을 모조리 막아냈다.
생기 무공에는 천력이 깃들어 있다.
검초는 막을지언정 검에 깃든 힘은 막지 못한다. 바위로 후려치는 충격을 받을 것이다.
천살단주는 그런 충격에도 끄떡하지 않았다.
홀리와 싸웠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생기 무공을 막아냈고, 혈마도 잡을 수 있다.
“또 막아봐!”
해자수는 쌍검을 쥐고 급히 달려들었다.
찰나의 여유도 주지 않았다. 단주의 움직임을 보고 더 정확하게 파악했다. 단주는 전력을 다하지 않는다. 역시 시간을 끌고 있다. 자신을 관찰한다.
홀리도 이런 싸움을 했을 것이다.
생기 무공을 전력으로 펼쳐도 죽이지 못하는 자란 말인가. 그럴 리 없다. 죽일 수 있다!
쒜엑! 쒜에엑!
해자수는 계속해서 눈앞에 쳐지는 철벽을 부숴나갔다.
천살단주는 시간이 자기편이라는 것을 안다. 조금만 시간을 끌면 생기 무공을 사용하는 자는 혈마로 변한다.
그러니 죽을힘을 다해서 싸울 필요가 없다. 오히려 유유히 피하기만 하면 되니, 해자수보다 훨씬 유리하다.
따앙! 탕탕! 탕탕탕!
해자수 앞에 철벽이 무수하게 세워졌다.
해자수는 철벽을 베고, 베고 또 베어냈다. 그런데도 계속 철벽이 세워진다. 숨 막힐 정도로 빠르게 쳐내는데 그런데도 계속 세워진다. 하나를 베면 두 개가 세워지는 것 같다.
천살단주는 여전히 압박한다. 생기가 위협을 느낀다. 잠시만 여유를 가지면 즉시 살검을 쳐온다. 그 정도 무공이니 계속해서 철벽이 세워지는 것이다.
‘치이잇!’
해자수는 돌풍 속에서 이를 부득 갈았다.
이번처럼 많은 철벽이 세워진 적도 없다. 낭견대와 싸울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은 서른세 명이나 되었지만, 철벽이 듬성듬성 세워진다는 느낌이었다. 천살단주는 아예 철벽이 아니라 철판이 쭉 늘어선 것 같다.
방법이 없다. 계속 베어내야 한다. 이 철벽을 계속 빼내지 않으면 더 많이 세워진다. 열 개가 세워지면 열 개를 베고, 스무 개가 세워지면 스무 개를 벤다.
아니, 그 정도로는 끝장을 내지 못한다.
천살단주가 철벽 열 개를 세울 때, 자신은 열한 개를 쳐내야 한다.
그래야 천살단주를 압도한다.
천살단주보다 더 빠르고 더 강한 무공은 철벽이 세워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제거하는 데 달려있다.
‘어디…… 해봐!’
휘르르르릉!
해자수는 거센 용권풍 속으로 스며들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