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一章 제이혈마(第二血魔) (5)
‘이제 더는 안 돼. 불가능해!’
홀리는 망설였다.
이제는 정말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 지금 당장 무공을 거둘 것인가, 아니면 계속 펼칠 것인가.
살심이 무섭게 들끓어 오른다.
누군가를 죽이라는 명령은 들리지 않는다. 다만 품에 안고 있는 등여산을 죽이고 싶어진다.
아까부터 자꾸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아서 신경 쓰였다. 이놈의 주둥아리를 콱 짓이겨놓고 싶다. 그만 좀 말해! 주둥아리 닥치라니까! 시끄러워 죽겠어.
처음에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인가 싶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죽이자는 마음이 더 강해졌다.
죽일까 말까 고민하는 것이 아니다.
차라리 고민이었으면 좋겠다. 완전히 죽이자는 쪽으로 생각이 기울었다.
등여산은…… 뭐라고 할까? 아무리 쫓아도 떨어지지 않고 발등에 달라붙어서 똥만 찍찍 싸는 병아리 새끼라고나 할까?
저리 가라고 발로 차내도 도망가지 않고 계속 달려와서 발등에 똥을 싸댄다. 정말 더러워서 죽겠다.
‘이 계집애를…… 모가지를 확 비틀어버려?’
손이 한 치만 움직이면 등여산의 목이 잡힌다. 거기서 약간 힘을 주면 목뼈가 분질러진다.
이대로 확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싶다.
홀리는 이것이 혈기라는 것을 안다. 알면서도 꼼짝없이 휘둘리고 있다.
‘이게 혈기!’
혈기는 이기지 못할 것이다. 결국은 꺾인다.
호발귀가 꺾였다. 자기 스스로 죽을 생각까지 했어도 결국은 혈기에 져서 혈천방도를 마구 도륙했다. 그 당시 오륙 백 명을 죽인 사건이 바로 혈기에 져서 일어난 것이다.
자신도 곧 그렇게 된다.
그러면 무공을 멈출까? 지금은 이미 늦은 것 같다. 이 시점에서는 무공을 멈춘다고 해서 혈기가 멈출 것 같지 않다. 아니, 무공을 멈추면 혈기에 저항하는 힘만 죽는다.
지금부터 혈기가 일어나서 혈마가 되는 과정이 쉼 없이 쭉 이어진다.
‘이젠 한계야. 어떡하지?’
그때, 머리 두 발이 땅에서 탁 떨어졌다.
대략 반 시진 전에? 한 시진 전에?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는데, 두 발이 한꺼번에 지면력을 잃은 적이 있다. 천살단주와 싸울 때 그랬다.
‘벌써!’
천살단주가 벌써 쫓아왔나? 두 발이 땅에서 탁 풀리는 걸 보니 굉장한 강자다.
쒜엑! 쒜에엑!
홀리는 즉각 검을 떨쳐냈다.
이런 강자에게는 여유를 부릴 수 없다. 자신 역시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빠져나가지 못한다.
아씨!
무슨 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이제는 환청까지!’
쒜에엑!
홀리는 더욱 사력을 다해서 검을 떨쳐냈다. 이런 전심전력이 느껴지지 않으면 혈마에게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까앙! 까아아앙! 까앙!
검과 검이 부딪쳤다.
위험은 실제로 존재했다. 그것도 홀리와 검을 맞댈 정도로 강한 공격이 가해져 왔었다.
“죽엇!”
홀리는 일갈을 내지르며 재차 검초를 떨쳐냈다. 한데,
“아씨!”
버럭 고막을 찢으며 우렁찬 쇳소리가 들려왔다.
“웃!”
비로소 홀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녀와 검을 맞댄 사람은 해자수다. 그가 눈앞에 있다.
홀리와 맞댔던 검은 멀찍이 날아가 떨어졌다. 해자수의 손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검을 맞댄 충격에 손아귀가 찢어져 나간 게 틀림없어 보인다.
죽여! 죽여!
홀리는 해자수를 보자 진한 살심을 느꼈다.
해자수도 등여산과 마찬가지로 죽여야 할 존재 중 하나일 뿐이다. 약간 무공이 강한 존재? 그러니 더 죽여야 한다. 앞길을 막는 자는 모두 죽인다.
“아씨! 정신 차리세요!”
해자수가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
홀리는 재차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해자수의 일갈에는 생기가 내포되어 있다. 어떤 음공으로 펼쳐낸 것보다 강하게 생기를 건드린다.
“해자수?”
“정신이 들어요?”
“어서 이걸!”
홀리는 재빨리 해자수에게 등여산을 휙 던졌다.
나타난 사람이 해자수라니 천만다행이다. 정말 숨 몇 번만 더 지체했어도 등여산을 죽였을 것이다.
쉬잇! 턱!
해자수가 날아오는 등여산을 받았다.
“마차로! 마차에 타세요!”
“안 돼! 나는 이미……”
“어서 빨리!”
홀리는 마차에 탈 생각이 없었다. 자신은 이미 혈기에 잔뜩 물들었다. 곧 살인마가 된다. 그런데 좁은 마차 안에 있으면 어떻게 되겠나. 모두 죽인다.
하지만 홀리는 와락 잡아당기는 거센 힘에 떠밀려서 마차 안으로 들어섰다.
도천패다. 그가 홀리의 팔을 잡아끌었다.
쒜에엑!
홀리는 당장 손을 들어서 도천패를 후려쳤다.
어떤 놈이 감히 내 몸에 손을 대! 그러잖아도 죽이라는 명령을 간신히 참고 있는데! 왜 건드려!
꽝! 꽈아앙!
손과 손이 마주쳤다.
도천패는 홀리가 이럴 줄 알았다는 듯 조금도 놀라지 않고 태연히 장을 부딪쳤다.
스읏!
홀리가 다시 손을 들었다.
도천패를 쳐 죽이지 않고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손은 당홍에게 잡혔다.
한 손은 도천패가 다른 손은 당홍이 잡아당겼다.
두 사람 모두 생기를 사용하고 있다. 그 힘이 홀리를 비등하다. 홀리가 훨씬 강하지만, 대신 저쪽은 두 사람이다. 더욱이 천력을 지닌 도천패가 있다.
홀리는 두 사람을 감당할 수 없었다.
아니다. 홀리가 전력을 다했다면 떨쳐낼 수 있었다. 혈기에 물든 그녀의 힘은 이미 인간의 상식을 넘어섰다. 홀리가 한 가닥 남은 정신줄을 바싹 잡고 놓지 않았다. 말이 이상하지만, 죽을힘을 다해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타난 사람들이 누구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도 여전히 마음속에서는 죽이라고 명령한다.
슷! 두두두두두두!
홀리가 타자, 마차는 즉시 질주하기 시작했다.
어자석에서는 궁충이 앉았다. 그는 활을 넉넉하게 준비했다. 마차 위에 빼곡하게 놓인 것이 전부 화살이다. 족히 수백 대는 넘어 보인다.
귀무살을 마차 주위를 에워싸고 치달렸다. 그중 몇 명은 말을 타고 마차를 따른다. 누구라도 마차에 접근하려면 자신들 먼저 상대하라는 투다.
“칼! 칼! 칼! 비수! 비수!”
홀리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연신 칼을 말했다.
“하! 이거 참 난감하네.”
해자수가 머리를 긁적거렸다.
“칼! 비수! 비수! 해자수! 비…… 수! 어서!”
홀리는 해자수를 간절하게 불렀다. 혈기라는 광기에 휘말려 있지만 지금 정신은 무척 또렷한 듯 했다.
“어떡하지?”
해자수가 도천패를 쳐다보며 말했다.
홀리에게 칼을 준다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미친 호랑이에게 이빨과 발톱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 안 되겠다. 난 아씨를 믿어.”
해자수가 품에서 꺼내 홀리에게 주었다. 당홍도 잡고 있던 그녀의 팔을 놓았다.
이제 비수를 쥔 손은 완전히 자유다.
홀리는 비수를 받자마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단중혈을 푹 찔렀다.
“크윽!”
홀리가 비명을 질렀다.
모두 깜짝 놀라서 홀리를 쳐다봤다.
“아씨!”
해자수가 급히 홀리를 부축했다.
홀리의 단중혈에서는 붉은 피가 꾸역꾸역 흘러내렸다. 결코, 살살 찌른 게 아니다. 전력을 다해서 찔렀다. 단중혈이 완전히 파괴될 정도로 깊은 상처다.
“내 손발을 묶어. 빨리!”
홀리가 말했다.
그제야 세 사람은 홀리의 의도를 알아챘다.
홀리는 등여산과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등여산의 단중혈이 비수에 찔렸다. 손발이 짐승처럼 묶였다. 매우 좋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혈마가 되어서 날뛰지는 않는다.
혈마가 단중혈이 찔리고 손발이 묶이자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빨…… 리…… 큿큿!”
홀리가 괴이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상태가 최악으로 흐르고 있다. 여기서 더 망설이면 홀리를 막을 수 없게 된다.
“아씨, 아씨 목숨 제가 꼭 지키겠습니다. 그러니 아무 염렬랑 탁 놓으시고 한 줌 푹 주무시고 오셔.”
해자수가 한 말은 빈말이 아니다. 세 사람은 정말로 등여산과 홀리를 책임져야 한다. 그들의 운명은 오로지 세 사람 손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누군가가 이들을 낚아채 간다면…… 생각하기도 싫다.
흘리는 그런 위험을 스스로 단중혈에 비수를 찌름으로써 감수해냈다.
“이건 금전사가 아닌데. 손목 다 상하시겠네.”
해자수가 마차에서 쓰는 밧줄을 꺼내 홀리의 손을 뒤로 묶었다. 그리고 두 발도 묶었다.
“아휴! 우리 아씨.”
해자수가 안타까운 듯 홀리를 쳐다봤다.
“해자수님, 책사와 홀리, 잘 부탁해요. 그럼 우린.”
당홍이 도천패와 함께 마차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해자수가 당홍을 붙잡았다.
“히유! 아씨를 내가 어떻게 모셔. 이 상태로 몇 날 며칠이 갈지도 모르는데, 옷은 누가 갈아입히고 대소변은 누가 받아내. 우리 아씨…… 내가 못하지.”
“해자수님!”
“저자는 내가 맡을 테니까, 아씨하고 책사님은 둘이 모시도록. 부디 잘 부탁합니다.”
해자수가 도천패와 당홍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해자수님!”
당홍은 뭐라고 말을 잇지 못했다.
마차 앞쪽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는 이제야 모습을 보였지만, 세 사람은 그가 나타나기 전부터 존재를 눈치챘다.
이 정도로 살벌한 기운을 풍기는 사람이라면 천살단주다.
“우리가 나서는 게 날 텐데. 그래도 우리는 둘이니까. 둘이 한 명에게 지겠어?”
도천패가 말했다.
“킥킥! 이봐! 나는 은인문 술사 출신이야. 은인문 술사는 원래가 남의 뒷바라지나 하는 존재라고. 앞에 나서서 뭘 하는 존재가 아니야. 내가 이상한 무공을 쓰는 바람에 일약 고수가 되기는 했지만, 난 내 근본을 잊은 적이 없어.”
스읏!
해자수가 검을 챙겼다.
자신의 검에다가 홀리가 가진 검까지 풀어서 찼다.
“나는 우리 아씨만 무사하면 족해. 난 우리 아씨한테 목숨을 걸었다니까.”
“저기 전부터 묻고 싶었는데요.”
당홍이 해자수를 보면서 물었다.
“홀리하고는 어떤 관계세요?”
“아씨와 나?”
“네. 해자수님이 음문촌을 위해서 일한 것은 아는데, 일로 만난 사이는 아닌 것 같아서요. 음문촌 사람들을 대하는 것과 홀리를 대하는 게 완전히 다르거든요.”
“똑같은데?”
“말하기 싫으시구나?”
“전에 말했잖아. 난 아씨한테 목숨을 맡겼다고. 그러니 다르게 보일 수도 있겠네.”
해자수가 히죽 웃었다.
“우리 아씨가 웃을 수만 있다면…… 옛날에 서시인가 뭔가 하는 여자가 흉통이 있어서 늘 인상을 찡그리고 다녔다며? 그런데 그렇게 해야 예뻐 보이는 줄 알고 별 이상한 것들이 가슴을 움켜잡고 다녔던 모양이야. 내게 우리 아씨가 그래. 인상을 찡그려도, 화를 내도 다 예뻐. 그러니까 살아계시게만 해줘.”
“알았어요. 이 두 사람, 우리가 꼭 호발귀에게 데려갈게요.”
당홍이 말했다.
쒜에엑!
해자수는 당장 마차 밖으로 뛰어나갔다.
어자석에 앉아있는 궁충은 아직도 천살단주가 나타난 것을 모르고 있다.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차가 굽이를 돌면 바로 습격받을 것이다.
“이쪽 말고 저쪽으로!”
해자수가 궁충에서 옆길을 가리켰다.
궁충은 해자수가 이러는 이유를 모른다. 하지만 해자수가 신형을 퉁겨내면서 하는 말이라면 믿어서 나쁠 건 없다,
“옆으로!”
“끼럇!”
마부가 급히 마차를 옆길로 몰았다.
이러면 호발귀에게 가는 길이 조금 멀어진다. 하지만 천살단주와 부딪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쒜엑!
해자수는 원래 마차가 가려던 길을 향해 쏘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