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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403화 (403/500)

第九十一章 제이혈마(第二血魔) (4)

“피해! 피햇!”

창파의 눈에는 월도를 향해 다가서는 상대가 보였다. 한데 월도는 보지 못한 것 같다.

소나무는 월도에게도 유리하지만, 상대에게도 유리하다.

상대도 이런 숲에서 싸우는 방법을 상당히 많이 연구했다. 움직임을 보면 알 수 있다. 굉장히 능숙하고, 따르게 달려든다. 월도가 바로 지척에 있다.

월도는 창파의 외침을 들은 순간, 위기를 느꼈다.

웬만하면 창파가 이런 말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부대주이니 믿고 지켜본다.

‘가까이 붙었다!’

월도는 창파를 보며 씨익! 웃었다.

순간, 그는 월도를 거꾸로 잡았다. 그리고 자진하듯이 급히 배를 향해 찔렀다.

월도는 옆구리를 지나고, 나무를 스치며 뒤로 찔러갔다.

‘이 자식!’

그런데 월도에 아무것도 걸리지 않았다. 텅 빈 허공만 닿았다.

쉬익!

순간, 상대는 허공으로 몸을 띄웠다. 찔러오는 월도를 발로 밟고, 한 번 더 뜨면서 몸을 절반쯤 옆으로 비틀었다. 이 모든 것이 한순간이다.

그의 검도 한순간에 터졌다.

퍼억!

상대방의 검이 월도의 가슴을 정확하게 가격했다.

월도는 바로 그 순간에 뒤로 찌른 월도를 빙글 돌렸다. 그리고 위로 쭉 그어냈다. 상대방의 검을 가슴으로 받은 상태에서 수직으로 쳐올렸다.

퍼억!

상대방이 두 쪽으로 갈려서 떨어졌다.

월도의 눈앞에서 피와 장기를 쏟아내며…… 상반신과 하반신이 분리된 채 떨어졌다.

비천당 부당주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즉사했다.

월도 역시 마찬가지다. 그의 가슴에는 비천당 부당주의 검이 가로로 박혔다. 검이 몸을 반이나 가르고 들어왔다. 심장과 폐가 동시에 갈라졌다.

월도가 창파를 보고 어색하게 웃었다.

웃고 싶은데, 웃음이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억지로 웃음을 끌어내서 웃고자 한다.

“괜찮았지?”

“그래. 괜찮았다. 잘했어.”

창파가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월도는 이미 창파의 음성을 듣지 못했다. 그는 끈 떨어진 추처럼 땅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물론 주저앉기 전에 고개는 이미 뚝 떨어진 후였다.

이제 시신은 필요 없다.

창파는 시신을 놓고 일어섰다.

쉬잇! 뚝!

그는 장창을 반으로 잘라서 단창과 단봉을 만들었다.

“자! 최대한 많이 달라붙어야 할 거야. 어쩌면 네놈들이 몰살당할 수도 있으니까.”

창파는 눈앞에 있는 적을 염려하지 않았다.

이들 정도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다. 그나마 조금 강했던 비천당 부당주도 월도가 함께 데리고 갔다. 그러니 이들 중에서 자신을 막을 자는 없다.

창파와 궁충은 월도와 무지와는 다르다.

월도와 무지는 순수한 귀무살 출신이다. 오로지 싸움을 통해서 기량을 갈고닦은 실전파 고수다. 반면에 창파와 궁충은 악불사왕의 진전을 이어받았다.

궁충은 궁마의 뇌공일사를, 자신은 창마의 순창무공(瞬槍無空)을.

귀검은 월도와 무지에게도 악불사왕의 무공을 전수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촉급했다. 이미 전수했는지도 모르지만…… 악불사왕의 무공은 각성 무공이다. 한순간에 번뜩이는 영감이 없으면 펼치지 못한다.

혈마는 혈의검을 수하로 두었다. 그리고 그 밑에 악불사왕이 있었다.

자신이 터득한 순창무공은 이백 년 전, 중원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정 무공이다.

“자! 해볼까?”

창파는 단창과 단봉을 들고 무인들을 향해서 걸어갔다.

타앙! 퍼억! 타아앙! 퍼억!

상대방의 병기를 단봉으로 막았다. 바로 그 순간 단창이 목이나 가슴을 꿰뚫었다.

단봉과 단창은 분명히 순차적으로 움직였다. 하지만 옆에서 보기에는 동시에 움직인 것처럼 보였다.

같은 순간에 막고 찌른다.

쉬이이익!

창파는 무인들에게 바싹 다가붙었다.

장창을 사용할 때는 일정한 거리를 벌리는 것이 좋다. 하지만 단창은 거리에 무관하다.

이럴 경우, 창파는 지극히 가깝게 달라붙는다. 상대방이 병기를 쓰는 것도 귀찮다. 아무것도 못 하게 막아놓고 창을 찌른다.

상대방과 떨어지면 암기나 화살 등이 날아오는데, 그런 것들을 피하는 것도 귀찮다.

슈우웃! 푸욱!

“커억!”

천살단 무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창파의 무공은 확실히 다른 귀무살과 달랐다. 창파가 귀무령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창파와 궁충은 이런 무공을 지니고도 드러내지 않았다.

그들은 악불사왕의 무공을 가급적이면 숨기려고 했다. 세상이 알면 들썩일 게 뻔하니.

이제는 거리낄 게 없다.

세상에 혈마까지 나타난 마당에 악불사왕이 다시 나왔다고 한들 대수롭겠나.

슈웃! 퍼어어억!

위아래도 동시에 쳐오는 검을 단창과 단봉으로 막았다. 그리고 즉시 두 병기를 교차시켜서 반대로 쳤다.

“컥!”

무인이 쓰러졌다.

순창무공은 순간적인 움직임이 일어난 후에는 텅 빈 허공만 남는다는 뜻이다. 무척 빠른 창법으로 주위를 일거에 쓸어버린다. 그런 창법의 근원에는…… 십팔연락(十八連絡)이 숨겨져 있다.

일순에 열여덟 번이나 휘둘리는 손목의 움직임이다.

그만큼 창의 변화가 급변한다. 천살단 무인들이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스으읏! 스으읏!

천살단 무인들이 뒤로 빠지고, 혈천방 복면인들이 나섰다.

천살단이 완전히 물러선 것은 아니다. 뒤로 빠져서 잠시 전열을 가다듬는 것 같다.

그 사이에 슬쩍 혈천방 무리가 나섰다.

지금 땅에 쓰러진 시신…… 등여산만 낚아채면 누가 감히 혈천방 앞을 막을 수 있을까 하는 계산이 섰을 것이다. 홀리도 사라지고 없으니 급히 신형을 빼내면 된다.

“음!”

창파는 침음을 흘렸다.

이들은 무지를 죽였다. 인간이기는 하지만 혈마에 가까운, 가짜 혈마다. 이놈들의 살법도 알고 있다. 순간적인 변초가 워낙 빨라서 알면서도 막지 못한다.

스읏!

창파는 단창과 단봉을 들고 복면인들을 쏘아봤다.

전혀 겁먹을 상대가 아니다. 아니 이들이 오히려 자신을 두려워해야 한다.

창파의 눈은 산정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비천당 부당주를 훨씬 능가하는 무인이 있다.

누군지 모르겠는데…… 산정에서 풍기는 기운이 그야말로 악마적이다. 실제로 사람을 보지 않고 기운만 감지했는데도 산정을 넘지 못하겠다.

월도는 저 기운을 보지 못했다.

창파가 저 기운을 보지 못했다면 당장 산정을 뚫고 나가자고 말했을 것이다. 저것이 있었기 때문에 도주를 포기하고 소나무 숲으로 들어섰는데…… 아직도 저건 움직이지 않는다.

‘음!’

창파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복면인들이 검을 쳐왔다.

창파는 유유히 단봉을 내밀었다. 역시 상대방의 검 단봉을 거세게 두들겼다. 그리고 즉시 변초를 일으켜서 단봉 밑으로 흘러들었다. 가슴을 때렸다.

하지만 가슴에는 이미 단창이 세워져 있었다.

따앙! 땅!

반동을 치는 소리와 단창에 막히는 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그만큼 검속이 빨랐다.

그 순간 단봉이 움직였다.

푸욱!

단봉이 복면인의 눈에 꽂혔다. 눈알을 으스러트리면서 들어간 창이 뒷머리를 뚫고 삐져나왔다.

“타앗!”

창파는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거센 고함과 함께 눈 찌른 단봉을 힘있게 휘둘렀다. 단종에 찔린 복면인이 따라서 휘돌 정도로 강력한 휘돌림이 일어났다.

퍽퍽퍽퍽! 퍽퍽!

다른 복면인들의 검이 죽은 복면인의 전신을 강타했다.

적의 시신으로 적의 공격을 막았다.

“너희들의 수법은 너무 간단하다니까. 적당한 힘과 속도만 있으면 이렇게 되는 거야. 비켜, 자식들아!”

쒜엑! 쒜에엑!

창파는 복면인들을 헤치며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 순간,

쒜에에에에에엑!

어디선가 검이 날아왔다.

창파가 그토록 염려하던 산정…… 그곳에서 검기가 일렁거린다고 느꼈는데, 어느새 다가와 검을 쑤시고 있다.

창파는 즉시 단봉을 들어서 막았다.

타앙!

검과 단봉이 마주쳤다.

검은 즉시 단봉을 따라서 흘러내렸다. 복면인들이 사용했던 수법을 그대로 쓴다.

‘이 수는 안 된다니까!’

창파는 이미 가슴 앞에 단창을 세웠다. 검이든 칼이든 도끼든 어떤 병기도 가슴을 치지 못한다.

따아아앙!

상대방의 검 역시 단창에 부딪혔다.

창파는 즉시 단봉으로 상대방의 눈을 찔렀다.

상대방이 복면인의 수법을 썼으니 자신도 저들을 이긴 수법을 사용한다. 단지 목표만 눈과 목, 가슴……

이렇게 세 군데로 고루 분산시켰다. 십팔연락을 이용해서 어디를 노리는지 모를 정도로 빠른 변화를 가미시켰다. 그런데,

따앙!

거센소리와 함께 창이 옆으로 밀려났다. 가슴을 가린 단창이…… 밀려나면서 가슴을 내줬다.

검은 또 한 번 변초를 일으켰다.

휘릭! 슈아아아악! 퍼억! 퍽!

검이 단창을 훑어 내려오며 단창을 잡고 있던 손가락 네 개를 일시에 잘라버렸다.

동시에 검이 빙글 도는가 싶더니 어느새 위로 솟구쳐 목을 뚫었다.

창파는 간신히 고개를 돌려서 날아오는 검을 피했다.

“욱!”

창파는 눈을 부릅떴다.

상대의 검을 피하기는 했지만 무사하지는 못했다. 검을 목을 긋고 지나가면서 진한 핏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혈마가 가르쳐 준 순창무공을 일거에 부순 자!

이게 혈천방의 검인가!

“후후! 혈천방이 한수 가르쳐 줬군. 써보니 이것도 괜찮은데?”

창파를 공격한 자가 중얼거렸다.

“누…… 누구냐!”

창파는 상당히 놀란 눈으로 물었다.

“나 몰라?”

사내가 오히려 의아한 듯 창파를 쳐다보며 말했다.

호리호리하면서 큰 키, 뚜렷한 이목구비, 눈에서 입까지 볼에 그어진 검흔.

“호, 혹시 주치균!”

“실망인데. 귀무살 눈이 이렇게 어두워서야. 원래 귀무살하고 살단은 앙숙이잖아. 그러면 살단주가 누군지는 알고 있어야지. 나 정도는 척 보고 알아야 하는 거 아냐?”

“네, 네가 어떻게!”

창파가 다시 놀라서 물었다.

죽은 것으로 알려진 주치균이 멀쩡하게 살아있다. 아니,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검공을 구사한다. 바로 살단주가 자신이 도주를 포기하게 만든 검기를 뿜어냈다는 말인가!

스읏!

주치균이 창파의 단창과 단봉을 훑어보았다.

“바보군.”

주치균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네가 펼친 창법, 순창무공 맞지? 악불사왕 창마의 무공. 그 무공을 전수해 준 놈은 귀검일 테고?”

“음!”

창파는 침음했다. 이백 년 만에 모습을 보인 순창무공인데, 단번에 알아본다.

“후후후! 귀검이란 놈…… 한 가지를 잊었어. 악불사왕 창마는 천력을 지닌 괴인이라는 것. 그놈이 휘두른 창은 무게가 팔십 근에 이르는 쇳덩어리였지. 후후! 네가 가진 종이창으로는 순창무공을 전개할 사람이 많아. 절대 무공이 못 된다는 거지. 단지 속도만 빠른 창법은 수없이 많아. 알겠니?”

주치균은 창파를 어린아이 다루듯 말했다.

“하나 더 말해줄까? 내가 너에게 펼친 검은 혈마를 상대하기 위한 검초가 아니야. 검신. 사부의 비사칠초였어. 나는 지금까지 비사칠초를 제대로 알지 못했단 거지. 후후! 혈마를 상대하는 데는 비사칠초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이제 알았을 뿐. 지금 그 무공으로 네 멱을 따줄게. 넌 다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순창무공이나 펼쳐 봐. 하하하!”

주치균이 냉오한 표정으로 말했다.

단 일 초!

창파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비사칠초는…… 눈에 보이지 않았다. 뭔가가 번쩍! 하는 순간에 목이 화끈거렸다.

쿠웅!

창파는 땅에 쓰러져서 눈만 끔뻑거렸다.

콸콸콸콸!

목에서 흘러내린 핏물이 볼을 적신다.

“혈마가 이쪽으로 가고 있다고 말한 놈이 모두 넷이다. 모두 베라. 수급은 살단에 가져다 놓도록. 베지 않으면 비천당주 목이 날아간다. 누가 말려도.”

멀어지는 의식 속에서 주치균이 말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아득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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