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一章 제이혈마(第二血魔) (3)
“이대로 뒤따라 가는 건 아무 의미가 없어.”
창파가 말했다.
“뭘 어쩌자고?”
월도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말했다.
“죽을 준비 되어 있냐?”
“새삼스럽게 뭘. 그런데 뭘 어쩌려고? 잘못하면 하지 않으니만 못한 것 알지?”
창파는 월도의 말은 무시하고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지금 현재 태흥산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게 시신이다. 썩은 나무보다도 쉽게 찾는다. 여기저기서 천살단과 혈천방이 부딪치고 있다.
창파는 죽은 시신 한 구를 집어 들었다.
비교적 몸집이 왜소한 사내다
“그걸로 뭐하게?”
“유인.”
“큭큭! 아서라. 홀리가 책사를 끼고 치달리는 중인데, 그까짓 걸로 유인이 되겠나?”
“내기할까?”
“금방 죽을 놈들이 내기는 무슨……”
“이걸로 유인에 걸려들면 네가 먼저 죽는 거고, 걸려들지 않으면 나부터 가는 거고.”
“하하하! 도긴개긴. 한 끗발 차이도 내기가 되나?”
“할 거야, 말 거야?”
창파가 사내를 옆구리에 끼었다.
“하지 뭐. 가는 길에 심심한데. 그 시신은 뭐하게.”
“잘 봐. 이거 책사잖아.”
창파가 다른 시신에서 머리카락을 잘라 그가 안고 있는 시신의 머리카락에 새끼 꼬듯 이어붙였다. 그러자 머리가 여인처럼 치렁치렁 늘어졌다.
월도는 창파의 계획을 알았다.
“이게 통할까?”
“내기했잖아. 통하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봐야지.”
“내기에서 지더라도 통했으면 좋겠는데.”
“지성이면 감천! 가자!”
쒜에엑!
창파가 시신을 옆구리에 끼고 신형을 쏘아냈다.
월도와 창파는 천살단과 혈천방을 적극적으로 피하면서 산길로 치달렸다.
그들은 홀리가 가는 방향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움직였다.
그러면서도 해자수가 달려오는 방향과 일치한다. 산을 넘어서 가파른 길로 움직이고 있다.
“이쪽이다!”
“여기 움직이는 놈들이 있다!”
천살단 무인 중 몇몇이 창파와 월도를 찾아냈다.
저들이 찾아내지 못할 리 없다. 두 사람은 지극히 은밀하게 움직였지만, 그래도 찾아낸다. 온 산에 무인들이 쫙 깔려 있는데, 비밀리에 움직일 구석이 어디 있나.
두 사람은 이런 점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 은밀히 움직였다.
은밀한 움직임은 무인들을 자극하고, 훨씬 강한 압박감으로 포위망을 접혀온다.
비밀스럽게 움직이는 것이 더 확실하게 자신을 노출하는 지름길이었다. 그만큼 월도와 창파는 정말로 저들이 자신들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심정으로 움직였다.
쒜엑! 쒜에엑!
월도와 창파를 향해 무인들이 모여들었다.
“통한다고 했지?”
창파가 말했다.
“네 놈 덕분에 이제 살기는 정말 틀렸다.”
월도가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여기까지 와서 살려고 생각했냐?”
“어차피 살 생각은 없었다. 강하에서 호발귀 사부인지 사부의 사부인지 뭔가 하는 놈을 죽였지. 와주라고 하는데, 투심문 사조(師祖)쯤 되는 놈이더라고.”
“그래?”
“귀무살 명령 알잖아. 받았으면 해야지. 와주를 죽인 놈이 바로 무지야. 호발귀가 혈마인 걸 알고 제일 먼저 생을 포기한 놈이 무지였고. 그다음이 나다.”
월도가 편안한 음성으로 말했다.
“와주는 무지가 죽였다면서?”
“호발귀 친구 놈들이 있어. 동패, 왕소라는 놈들인데…… 아직도 기억나. 후후! 호발귀 보라고 그놈들을 아주 처참하게 죽였거든, 생피혈인(生皮血人). 살가죽을 벗기고 걷게 했지.”
“죽어도 싸네.”
“그 당시에는 그게 우리가 할 일이었어. 그런데 적이었던 놈이 갑자기 상관이 된 거야. 이런!”
“하하하!”
귀무살에게는 이런 일이 잦다.
어제까지는 서로 죽이려고 으르렁거리던 자가 갑자기 상관으로 오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는 십중팔구 죽는다. 아무리 버텨도 결국은 죽는다.
월도와 무지고 귀무령이 호발귀를 주인으로 모시는 순간, 죽음을 각오했을 것이다.
“지금은 죽기 딱 좋아. 시기도 좋고, 장소도 좋고. 아쉬움 같은 건 전혀 없다.”
“그래. 여기서 이놈들, 최대한 많이 데려가라.”
창파가 웃으면서 말했다.
기왕이면 홀리에게서 멀어져야 한다. 그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떨어져 나간다.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무인을 데려갈수록 좋다.
한 걸음이라도 더 빠져나가서 죽자!
쒜엑! 쒜에엑!
월도와 창파는 사력을 다해서 도주했다.
쒜엑! 쒜엑! 쒜엑! 쒜에엑!
사방에서 옷자락 펄럭이는 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은 숲으로 뛰어들었다.
홀리를 쫓던 자 중 적어도 절반은 끌고 온 것 같다. 천살단과 혈천방이 뒤섞여 있지만, 매한가지다. 어차피 양쪽 모두 끌고 와야만 했다.
“이 정도면 홀리님 곁에서 이놈들을 막아낸 것만큼이나 공을 세운 거지?”
“물론이지. 큿큿!”
두 사람은 웃었다.
자신들이 할 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완전한 개죽음이다. 하지만 딱 한 사람 귀무령만큼은 알아준다. 죽었다는 말만 들어도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귀무살은 원래 의리도 없고 동료도 쉽게 죽인다. 이해가 맞지 않으면 당장이라도 서로 검을 겨눈다. 어제까지 친구였던 사람도 가차 없이 목숨을 빼앗는다.
하지만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 두 개 있다.
첫째가 귀무살, 둘째가 명령이다!
귀무살이라는 조직체만은 철저하게 지킨다. 귀무살 안에 있는 동료는 목숨을 아끼지 않고 보호한다. 그러니 같은 귀무살끼리는 서로 검을 겨누지 않는다.
귀무살에게 귀무살을 죽이라는 명령은 통하지 않는다.
그런 명령은 내리는 사람도 없고, 명령을 내려도 받지 않는다. 방주가 말해도 마찬가지다.
귀무살이 같은 귀무살에게 검을 들 때는 상대가 귀무살을 떠난 이후다.
귀문에서 동료를 죽인 것은 타당하다. 그들은 아직 귀무살이 아니다. 귀무살이 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귀무살만의 규칙을 따를 필요가 없다.
둘째는 명령 절대복종이다.
자신이 철저하게 복종해야, 자신이 귀무령이 됐을 때 수하들이 철저하게 복종한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이는 귀무살의 철칙이 되어야 한다.
이를 어기는 귀무살은 모든 귀무살이 힘을 합쳐서 솎아낸다.
죽여버리는 것이다.
귀무살은 이런 일을 이백 년 동안이나 해왔다.
지금에 와서는 그 누구도 귀무령의 말에 토를 달지 않는다. 누가 귀무령이 되었든 간에 바로 그 순간에 상황은 종료된다. 어제의 친구에게 아니면 부하에게도 기꺼이 머리를 숙인다.
그러면 귀무령은 온갖 호사를 다 누리느냐? 그게 아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귀무령은 귀무살의 희생을 알게 된다. 귀무살이 죽으면 곡기를 끊고 침통해 할 정도로 애통해한다. 몇 년, 몇십 년이 지나도 얼굴을 잊지 않는다.
그만큼 귀무살을 사랑하게 된다.
이것이 귀무령과 귀무살의 관계다.
월도와 창파는 자신들의 죽음을 귀무령만 알아주면 된다고 생각하다. 호발귀 자신들을 알아주든 말든 상관없다. 홀리가 애통해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그녀가 이곳을 탈출하든 말든 이제는 상관없다.
자신들은 최선을 다했다.
쒜에엑! 쒜에엑! 쒜에엑!
천살단 무인들이 반대쪽 산을 넘어서 모습을 드러냈다.
이미 포위되었다. 산정을 향해서 도주하는 것은 스스로 좁은 궁지로 기어들어 가는 것과 똑같다.
사방에서 에워싸고 달려든다면 상대방들은 두 겹 세 겹으로 겹쳐진다. 산으로 올라갈수록, 산정이 좁아지는 만큼 겹쳐지는 포위망의 폭이 깊어진다.
산봉에서 천살단 무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두 사람을 걸음을 멈췄다.
“제길! 산정에서 좋은 경치 좀 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소박한 소원마저 뭉개냐.”
“저놈들 쳐버리고 구경할까?”
“냅둬. 그래서 뭐하게. 시간을 일다경이라도 더 끄는 게 낫지. 그리고, 저놈들도 만만치 않아. 우리에게 쉽게 나가떨어질 놈들이 아닌 것 같아.”
휘리링!
월도가 칼을 휘두르며 말했다.
“저기로 가자.”
창파가 소나무 군락지를 가리켰다.
“나는 좋은데, 넌 안 좋은 거 아냐?”
월도가 물었다.
창파의 병기는 창이다. 숲에서 싸우기에는 적합지 않다. 오히려 넓은 개활지가 낫다.
“저긴 소나무가 무성하지만, 나무와 나무 사이가 꽤 넓어. 그리고 내 창술이 공간에 제한을 받을 정도는 아니지. 후후!”
두 사람은 유유히 소나무 군락지로 들어섰다.
소나무를 방패 삼아서 싸우면 다수를 상대할 수 있다. 지형을 어떻게 쓰느냐는 오직 개인의 능력이다.
두 사람은 군락지에 앉아서 한숨을 돌렸다.
이미 천살단 무인들이 자신들을 에워쌌다. 혈천방 무인으로 보이는 자들은 뒤쪽에 숨어서 다가오지 않았다. 어부지리를 노릴 생각인 것 같다.
“책사를 내놔라!”
천살단 무인이 말했다.
“병신. 언제 맡겨놨어? 뭘 달라 말라 해? 처음 본 사이에. 너 나한테 뭐 맡겨놓은 것 있냐?”
창파가 유들유들 웃으면서 말했다.
“책사만 내놓으면 얌전히 보내줄 용의도 있다.”
“내 생각은 다른데?”
스읏!
창파가 허리춤에서 비수를 뽑았다.
“얌전히 갈 생각이 전혀 없단 말이지. 또 책사를 좋게 보낼 생각도 전혀 없고.”
스읏! 푹!
창파는 비수로 시신을 가차 없이 찔렀다.
시신은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은 산 사람이나 다름없다. 피가 확 솟구쳤다.
“멈췃!”
천살단 무인이 화들짝 놀라서 말했다.
“그래서 병신이라는 거야. 멈추란다고 멈추겠냐고. 혈마를 곱게 보낼 생각이 없는데.”
쉿! 퍼억! 퍽!
창파는 장난이라도 치는 듯 계속 비수를 찔렀다.
“죽여!”
천살단 무인이 급하게 명령을 내렸다.
창파가 말을 듣지 않으니 사력을 다해서 등여산을 탈취한다. 창파가 등여산의 숨을 끊어놓기 전에 빼앗아와야 한다. 그러니 오직 창파만 집중 공격한다.
쉬이이잇! 쒜엑!
천살단 무인들이 달려들었다.
바로 그 순간, 소나무 뒤에 숨어있던 월도가 재빨리 뛰쳐나가며 칼을 휘둘렀다.
쒜엑! 쒜에엑! 까앙! 까아아앙!
파공음이 송림을 뒤흔들었다.
월도의 기습은 빠르고 정확했다. 하지만 천살단 무인들도 충분히 대비한 상태다. 이들은 바로 비천당, 전략적인 싸움으로 유명한 자들이다.
이들을 두 사람이 도주하는 것을 봤다.
송림에 들어와 보니 창파 한 사람만 있다. 월도는 어딘가에 숨었다. 상식이다.
까앙! 깡! 깡!
저들이 두 명, 세 명 합을 이뤄서 월도의 칼을 막았다.
월도는 소나무를 최대한 이용했다. 소나무에 등을 붙이고 왼쪽으로도 가고, 오른쪽으로도 돌면서 칼을 뻗어냈다. 머리를 노린 듯하다가 몸통을 치고, 다리를 노리기도 했다. 그러다가 불현듯 위로 솟구치면서 머리를 친다.
“크윽!”
“컥!”
순식간에 천살단 무인 네 명이 쓰러졌다.
충분히 대비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현격히 벌어지는 무공 차이는 좁히지 못했다.
“후후! 쉽지 않지?”
월도가 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그때,
스으읏! 스슷! 스으윽!
마른 솔잎 위를 미끄러지듯이 움직이면서 한 사람이 나타났다.
“아무래도 네 놈은 내가 죽여야겠구나.”
“넌 뭐야? 천비당인지 비천당인지 개지랄 떠는 놈들, 대가리야?”
“비천당 부당주다.”
“부당주? 야! 나도 체면이 있지! 겨우 부당주 주제에! 당주는 없냐? 당주 나오고 해!”
삿!
비천당 부당주라도 자신을 밝힌 자가 느닷없이 사라졌다.
경고도 없이 불쑥 공격을 시작했다.
“피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창파가 버럭 일갈을 내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