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章 초월인한(超越人限) (4)
‘싸움이 길어지겠어.’
홀리의 눈이 암울하게 젖었다.
확실히 천살단주는 모욕적인 언사에 흔들렸다. 태연한 척했지만 분명히 흔들렸다. 만약에 그런 흔들림이 없었다면 무지가 등여산을 낚아채서 도주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천살단주는 홀리를 막을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생기로 일으킨 무공을 이토록 잘 막아내는 사람은 처음 봤다. 천살단주는 막아내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오히려 홀리를 압도하는 듯한다.
거친 말과 모욕적인 말로 천살단주를 흔들어 놓지 않았다면 무지는 아마도 일격을 당하지 않았을까 싶다. 등여산을 잡기도 전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쒜엑! 쒜에엑!
월도와 창파가 거칠게 병기를 휘두르며 양쪽에서 무지를 보호했다.
자신이 검을 맞더라도 무지의 앞길만은 열어주겠다는 듯 이판사판으로 덤벼든다.
무지는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앞만 보고 뛰었다.
지금은 괜찮다. 저들의 모습을 보면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빠져나갈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천만에! 지금 태흥산은 온갖 칼이 다 모여있다. 혈마에 관심이 있는 무인도 있겠지만, 그들은 감히 들어서지도 못한다. 천살단과 혈천방의 위세를 감당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월도, 창파의 창칼은 점점 무뎌질 것이다. 곧 포위될 것이고, 결국은 쓰러질 것이다.
쒜엑! 쒜에엑! 쒜에엑!
세 사람을 향한 공격이 매우 거세다.
현재는 천살단만 공격하고 있는데, 무인들의 복장이 다르다. 검벽 무인에 이어서 다른 무인들이 섞이기 시작했다. 이곳에 온 게 검벽만은 아니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빠져나가지 못해!’
그런데 정작 자신은 천살단주에 막혀서 움직이지 못한다. 쉽게 빠져나가지 못할 것 같다.
이 싸움, 확실히 자신에게 불리하다.
천살단주와 싸움을 길게 끌면 불리해지는 건 자신이다. 귀무살 세 사람을 염려해서가 아니다. 홀리 자신만 생각해도 절대로 좋지 않은 일만 벌어진다. 생기를 오래 써서 좋지 않다는 것은 이미 등여산이 증명했다.
혈기가 준동한다고 해도 몇 시진 혹은 수십 초식 만에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점점 더 깊숙이 혈기에 물들어간다. 혈마가 될 가능성이 매우 커진다.
도대체 천살단주가 사용하는 무공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나 같이 인간이 펼칠 수 없는 무공만 펼쳐내는가.
스슷! 슷!
두 사람을 검을 겨눴다.
천살단주는 공격의 강약을 정할 수가 있다. 약하게 칠 수도 있고 강하게 칠 수도 있다. 하지만 홀리는 강약을 정하지 못한다. 하느냐 하지 않느냐, 이 선택밖에 없다.
생기를 사용하는데 강약이 정해지지 않는다. 무조건 최선을 다해서 전개된다.
타타탁! 타탁!
‘두 발이 다 풀리고 있어!’
땅이 그녀를 잡아 놓지 못하고 있다. 몸이 붕 떠오른다. 어느 한 방향으로 날아갈 수 없다. 마치 사방에서 끌어당기는 느낌? 어디로든 흘러가지 못하고 둥실 떠 있는 느낌?
‘사방이 위험하다!’
이렇게 되면은 검을 칠 곳이 없어진다. 모두 다 위험하다면? 팔방풍우(八方風雨)! 말도 안 되지만 무턱대고 사방으로 검을 휘둘러야 한다.
생기는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한다. 지금 당장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하기 때문이다.
쒜엑! 쒜엑! 쒜에엑!
홀리는 즉시 사방으로 검을 쳐냈다. 순간,
까앙! 깡깡! 까아앙! 까앙!
검이 흐르는 곳마다 불똥이 튀었다. 검에 묵직한 충격이 가해지면서 요란한 소리를 울렸다. 앞뒤 좌우…… 놀라울 정도로 빠른 격돌이 일어났다.
천살단주가 홀리를 휘돌고 있다. 그녀를 빙글 돌면서 마구 검을 쏟아내는 중이다.
생기가 옳았다. 온 사방이 위험했다.
눈으로 식별할 수 없는 빠름, 그 속에 휘몰아치는 검의 폭풍, 불 속에서 꺼낸 쇳덩이를 망치로 두들기는 듯 튀는 불똥!
딱 그 순간, 흘리는 오른쪽 발끝이 땅에 닿았다.
두 발이 붕 떠 있었는데, 이번에만 특별히 땅에 닿는 느낌이 전해져왔다.
원래 두 발은 땅에 닿아 있다. 특별할 것이 없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땅에 닿았다. 두 발 중 지극히 일부만 땅에 닿는 느낌은 처음이다.
엄지발가락…… 땅이 너무 작은 부분만 잡았다.
그렇다면! 엄지발가락이 닿는 반대쪽! 오른쪽! 오른쪽 위!
쒝! 쒜엑!
홀리의 검이 오른쪽 오른쪽 위를 향해 번개처럼 터졌다.
퍽! 퍼억!
둔탁한 소리가 일어났다.
“으음!”
옅은 신음과 함께 홀리와 천살단주는 쩍 갈라졌다.
천살단주가 인상을 찌푸리면서 가슴을 만졌다.
작은 핏방울이 방울져서 떨어졌다. 가슴에서부터 어깨까지 검흔이 비스듬하게 그어져 있다.
홀리의 검이 천살단주의 몸을 그었다. 하지만 그 상처는 지극히 미미했다. 겨우 약간 옷을 찢고, 살을 긁은 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정도라도 일단 천살단주의 몸을 갈랐다는 게 중요하다.
“천살단주라고 해서 상당히 긴장했는데 별거 아니네. 좀 더 잘할 수 없나?”
휘이릭!
홀리가 말을 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놀랐군. 놀라운 반사신경이야. 후후후! 음문촌. 지금 내가 펼치는 무공이 뭔지 아나?”
“뭔데? 꿈에 누가 나타나서 가르쳐주기라도 한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홀리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어떤 무공이기에 생기 무공과 필적을 이루나.
천살단주가 홀리를 쳐다보며 말했다.
“내 무공은 혈마를 상대하기 위한 무공이다. 그런 무공으로 너를 쳤는데, 오히려 내가 상처를 입었군. 너 혈마구나?”
파팟!
천살단주의 눈가에 기광이 떠올랐다.
“호호호! 내가 혈마처럼 보여?”
“하하! 혈기는 숨길 수 없는 법이지. 물론 어떤 때는 지금 너처럼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혈마가 있을 수도 있어. 지금 너처럼. 하지만 곧 인간의 탈을 벗어버릴 거고, 그러면 본래의 혈마가 나타나는 건가? 재미있군.”
휘릭!
천살단주도 검을 가볍게 휘둘렀다.
‘위험해!’
홀리는 위험을 감지했다.
천살단주의 무공이 혈마를 상대하기 위한 거였나? 그래서 이토록 강했나? 극한을 벗어난 무공이기에 인간이 펼칠 수 없다고 단정했던 무공이 줄줄이 떨쳐나온다.
천살단주는 이런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을 했을까?
온갖 뼈마디를 다 끊었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붙인다. 극한의 유연성을 키우기 위해서라면은 그보다 더한 방법도 시도한다.
근골이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참아내려면 정말로 사지를 우마(牛馬)에 묶인 채 질질 끌려다녔을 수도 있다.
어떤 선택을 했건 천살단주가 이런 무공을 수련하기 위해서 겪었던 고통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면에서 천살단주는 혈마보다도 더한 독종이다.
그러한 고통을 이겨내고 금단 무공을 수련해냈다면 천살단이야말로 혈마다.
육체적인 한계를 넘어선 초인!
‘그렇단 말이지. 천살단주가 그렇다면 어차피 내가 혈마가 될 수밖에 없겠네.’
홀리는 흘깃 월도와 창파를 쳐다봤다.
그들은 이미 막혔다.
월도와 창파는 앞으로 뚫고 나가지 못하고 무인 여러 명에게 포위당했다. 사방에서 쳐오는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지 못하고 번번이 상처를 입는다.
다행히 무지는 빠져나간 것 같다.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도 곧 가로막힐 것이다.
천살단 아니면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혈천방 무인들이 이미 앞을 차단했다.
차라리 혈천방이 먼저 움직일 때까지 기다렸어야 했나? 그러면 두 문파가 싸우는 동안에 등여산을 가로챌 수도 있었는데. 그게 더 쉽지 않았을까?
그렇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천살단에서 천살단주가 나섰는데, 혈천방이라고 뾰족한 수가 있겠나. 그냥 멀거니 지켜보는 수밖에. 혈천방에서도 혈천방주가 나선다면 몰라도.
지금 등여산을 빼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천살단주가 등여산을 걸쳐 매고 움직이기 시작하면 따라잡기가 힘들었다.
지금은 무지가 등여산을 메고 있으니, 이제는 혈천방도 과감하게 움직인다. 혈마를 노리는 집단이 천살단과 혈천방 외에 또 있다면 그들도 노릴 것이다.
스읏!
홀리는 천살단주를 향해 검을 들어 올렸다.
어차피 이 승부는 가름해야 한다. 자신과 천살단주, 한 명이 죽어야 끝난다.
“이번에는 가슴 가지고는 안 되겠어. 목을 그어줄게.”
“허허허! 그러고 싶으냐? 쯧! 나는 그러고 싶지 않구나. 좀 더 가지고 놀 생각이야. 단판 승부 같은 건 때려치우고, 아주 길게…… 하루종일 싸울 이상이란다.”
천살단주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는 정말로 그럴 생각인 것 같다. 조금 전처럼 조급해하지 않는다. 여유가 확 풍긴다.
“너 같은 상태에서 혈마가 되려면 어떤 요소가 영향을 미칠까? 시간일까? 아니면 분노일까? 뭐가 되었든 알아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니더냐. 허허허!”
‘음!’
홀리는 침음했다.
천살단주가 이미 혈기의 약점을 눈치챘다. 눈치챘다기보다는 본능적인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쨌든 천살단주 뜻대로 싸워줄 수 없다.
“그래? 그럼 마음대로 놀아봐. 난 책사를 빼내 가야 해서 말이지. 너 같은 늙은이와 놀아줄 생각이 없어.”
쒜에에엑!
홀리가 급공을 취해갔다.
어디를 어떤 식으로 공격할지는 이미 정해진 상태다.
발바닥이 왼쪽으로 많이 기운다. 오른쪽으로 공격해야 한다. 왼발 옆이 땅에 박히는 것처럼 굳게 눌리니 오른쪽 위, 머리 쪽을 공격한다.
검초는 어떤 것을 펼칠까? 오른쪽 위를 향해서 신형을 띄우면 검이 저절로 속도와 방향을 정한다.
해자수처럼 그녀도 생기에 모든 것을 맡긴다.
쒜엑! 쒜에엑!
검풍이 휘몰아쳤다.
천살단주는 자신이 말한 대로 맞받지 않았다. 유유히 뒤로 물러서면서 어쩔 수 없는 검만 한두 번씩 탁탁 막았다.
까앙! 깡! 깡!
검과 검이 부딪쳤다.
천살단주가 가볍게 검을 썼지만, 혈마와 극한의 무공이 부딪쳤는데, 가볍게 충돌할 리 없다. 어떤 검이든 손목이 자르르 울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 일어났다.
스으으읏! 쒜에엑!
홀리가 물러서려고 하자 이번에는 천살단주가 급히 다가섰다.
천살단주의 빠름은 홀리와 비슷하다. 생기 무공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시간을 주지 않는다. 급하게 몰아친다.
천살단주가 이번에 알아보고 싶은 것은 진기 유지인 것 같다. 생기도 진기처럼 오래 유지할 수 있나. 몇 번이나 검을 맞받을 수 있나. 잠시도 틈을 주지 말고 공격해보자!
‘음!’
홀리는 침음했다.
먼젓번 공격도 그렇고, 이번 공방도 마찬가지고…… 천살단주가 펼치는 신법은 철족지행(鐵足地行)이다. 다른 무공처럼 인간이 펼칠 수 없는 이론상의 신법이다.
두 발을 철골처럼 단단하게 만든다.
발목이 으스러질 정도로 꺾어도 버티려면 무척 유연한 쇠로 만들어져야 한다.
단지 강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부드럽기까지 해야 하는 철(鐵)이다.
두 발이 이처럼 강건해지면 발가락 하나만으로도 신체 유지가 가능해진다. 몸이 오른쪽으로 쓰러지다가도 갑자기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서 병기를 쓸 수 있게 된다.
관절이 꺾이는 모든 방향이 공격 범위다.
더불어서 관절을 상상할 수 없는 범위까지 꺾는다. 거의 탈골 시켜서 펼쳐놓는 것처럼 꺾어야 한다.
이 신법에는 두 가지 불가능한 점이 있다.
첫째, 인간의 골격은 무리(武理)에서 말한 것처럼 그만한 정로도 꺾이지 않는다. 반드시 부러진다. 일단 부러지면 최소한 오륙 개월은 지나야 다시 붙는다.
붙였다가 아물기를 반복해도 도무지 연성할 수가 없다.
둘째, 인간의 뼈는 부러질수록 강해지는 것이 아니다.
무리는 인간의 뼈도 쇠처럼 두들기면 두들길수록 단단해진다는 것인데, 말도 안 된다.
그 반대로 매우 약해진다.
이번에 십의 힘으로 부러트렸다면 다음에는 오의 힘만 가해도 부러질 수 있다.
천살단주는 철족지행을 기본 신법으로 삼고 있다.
생기 무공은 천살단주의 약점을 파악하고 공격한다. 피할 수 없는 요처를 때린다. 그런데도 가벼운 상처만 입으면서 피하는 것이 바로 철족지행 덕분이다.
‘발목에 무리가 가서 펼칠 수 없다는 신법이 바탕…… 이미 이 정도의 수준이다 이거지.’
순간, 홀리의 머릿속에 퍼뜩 스쳐 가는 생각이 있었다.
인간의 극한을 벗어난 무공은 한계를 지닌다. 한두 번 펼치는 것과 계속 펼치는 것은 다르다. 아무리 극한 무공을 수련해냈다고 해도 역시 무리가 가기 마련이다.
‘좋아! 어디 얼마나 펼칠 수 있는지, 얼마나 버텨냈는지 보자! 계속, 계속 무리를 주는 거야!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