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章 초월인한(超越人限) (3)
천살단주는 등여산을 들춰 메고 일어서려다가 거칠게 달려오는 홀리를 봤다.
검벽주 임명강이 검에 난자당했다.
순식간에 열두 검을 얻어맞고 태흥산 골짜기로 굴러떨어졌다.
‘저 정도면 즉사. 쯧!’
“후후!”
천살단주가 웃으면서 뒷짐을 졌다.
임명강이 죽은 것은 안타깝다. 하지만 충분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 같다. 책사에 이어서 음문촌 계집까지…… 혈마의 부인들, 혈마후가 소탕된다면 그것도 괜찮다. 죽은 임명강도 단주가 복수를 해주면 조금은 마음 편히 떠나갈 것이다.
등여산을 잡았으니 홀리 정도는 가볍게 베어 넘긴다.
천살단주는 홀리가 생기를 사용한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생기는 전혀 표시가 나지 않는다. 혈기를 드러내면 살인에 미친 혈귀가 된다. 그러니 모를 수 없다. 하지만 생기는 어떤 표시도 흘리지 않는다.
단지 빠르고 강하다.
생기 무공은 무척 빠르고 강하지만 무공과 크게 달라 보이지는 않는다. 누군가가 상승 무공을 사용한다고 해서 무인이 아니라고는 말할 수 없다.
빠른 몸놀림은 경쾌한 신법으로 보인다. 눈부시게 빠른 검은 쾌검일 뿐이다. 인간이 이 정도로 빠를 수 있느냐 하고 놀라기는 해도 무공은 무공이다.
생기만을 사용할 때는 전혀 구분할 수가 없다.
정작 생기를 사용하는 사람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펼치지만, 상대하는 사람은 절정 무공인 줄만 안다.
쒜에엑!
홀리가 다짜고짜 혈맥참을 쳐왔다.
천살단주는 유유히 손을 들어서 막았다. 등여산을 찌른 비수를 들고 있어서 아주 편하게 대응했다.
‘이런 무공으로는……’
천살단주의 눈에는 혈맥참이 우스워 보였다. 한데!
“웃!”
천살단주는 들고 있던 등여산을 털썩 놓아버리고 훌쩍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홀리의 검이 묘한 각도로 파고들었다. 검이 손목을 노리는가 싶더니 이내 가슴으로 훅 달려들었다.
절묘하게 단주의 빈틈을 파고들었다.
등여산을 어깨에 걸치고는 도저히 피할 틈이 없다 싶어서 툭 떨궈내고 물러섰다.
천살단주가 인상을 찡그리며 홀리를 쳐다봤다.
“단주! 책사를 딸처럼 여겼다며?”
홀리가 대뜸 반말로 말했다.
천살단의 수장 천살단주에게 반말로 말을 거는 사람은 세상천지에 홀리밖에 없을 것이다.
“어른한테 버릇없이.”
“풋! 어른이 어른다워야 말이지.”
“음문촌장이 영 딸자식을 잘못 키웠군. 예의범절부터 배워야겠어.”
“호호! 아버지도 포기한 예의범절이야. 그리고 당신 같은 사람한테 그런 거 배우고 싶지 않은데?”
“하하하!”
천살단주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기만 했다.
“아! 이러면 되겠네. 난 예의범절을 배울 테니, 넌 인성을 배워. 다 늙어서 뭐야? 예의범절 밝은 사람은 손녀를 이렇게 짐승처럼 묶어서 끌고 가나?”
“후후후!”
천살단주가 웃으면서 피 묻은 비수를 들었다.
순간, 홀리가 인상을 확 찡그렸다.
“그거 쟤 피 맞지? 할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더니 비수를 찔러? 그러면서 뭐? 예의? 에라이! 그래! 그 잘난 천살단주 검공 한 번 보지 뭐. 너 유음검문 출신이라며?”
홀리는 철저하게 천살단주를 무시했다.
그녀의 이런 무시는 단순히 등여산을 찌른 데 대한 화풀이가 아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천살단주를 화나게 해서 주의력을 분산시키려고 한다.
홀리는 세 사람이 등여산을 빼내 갈 수 있게 틈을 열어주고 있다.
순간, 천살단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상하군. 네 검에서 진기 느낌이 안 나. 전혀 진기가 느껴지지 않는데도 기운이 충실해. 혈맥참은 아니고…… 뭘까? 음문촌이 좋은 무공을 찾아냈군.”
‘웃!’
홀리는 깜짝 놀랐다.
천살단주는 모욕당할 만큼 당했다. 정말로 손녀뻘밖에 되지 않는 여자에게 막돼먹은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도 화를 내지 않고 무공을 살폈다.
천살단주 말처럼 홀리는 생기를 띄웠다. 처음부터 무공으로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혈맥참이 아무리 뛰어나도 천살단주를 능가하지는 못한다. 혈맥참을 사용하면 자신도 세 사람처럼 일 초에 나가떨어질 것이다.
“호호호! 그래도 죽지는 않으려고 눈깔은 밝네? 이게 무서운 건 알았지?”
“후후! 오늘 정말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쳐놔야겠군.”
피유웃!
천살단주가 비수를 쳐왔다.
홀리가 다가오기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이 먼저 선공을 취했다.
병기를 들고 맞선 이상 상수, 하수는 없다. 오직 죽고 사는 문제만 남는다.
천살단주는 이런 점을 명확히 한다.
자신이 먼저 선제공격을 가할 정도로 상대를 인정한다. 그러니 너는 죽든지, 살든지 하라.
‘아! 이 무공!’
홀리는 천살단주의 무공을 보고 또다시 놀랐다.
처음 보는, 완전히 낯선 무공이 펼쳐진다. 두 팔이 천수여래(千手如來)처럼 확 불어난다. 그러면서도 각 팔이 비수를 쥐고 있다. 각기 다른 방향에서 공격해 온다.
‘혹시 천수불마공(千手佛魔功)!’
천수불마공은 이론상의 무학이다. 인간이 배울 수 없다는 극한의 무공이다.
홀리가 이 무공을 아는 것은 이백 년 전, 혈마를 상대할 무공으로 거론된 적이 있어서다. 하지만 위력이 뛰어나면 뭘 하나. 인간이 펼칠 수 없는 공부인데.
천수불마공을 펼치려면 손을 찰나의 백 번 이상 흔들어야 한다.
이 수법은 극강의 진기를 수련한다고 해서 펼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의 근력과 뼈가 신공을 견뎌줘야 한다.
소 두 마리가 양쪽에서 팔을 잡아당겨도 버텨내야 한다. 근육이 찢어지거나 뼈가 빠지면 안 된다. 단순히 근력의 힘만으로 일각 이상 소와 씨름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로 근골이 탄탄해졌을 때, 천수불마공의 진기를 일으켜서 시전한다.
말도 안 된다.
오죽하면 불문 무공인데도 마공이라면 명칭이 따라붙을까.
천살단주가 펼치는 공부는 천수불마공이 틀림없다.
‘위험!’
순간, 홀리는 망설임 없이 허공으로 뛰어올랐다.
두 발이 그녀를 확 놓아주었다. 위험하다. 널 붙잡아둘 수 없다. 날아가라!
홀리는 발바닥을 통해서 땅이 잡아당기는 느낌과 자유롭게 놓아주는 느낌을 구분하면서 검을 쳐냈다.
이 순간 그녀의 손에서 터지는 검초는 혈맥참이 아니다. 생기에 의해서 터지는 자연검이다.
그녀는 그녀 자신이 어떤 검초를 펼치는지 알지 못한다.
생기가 본능적으로 주변 상황을 읽고 어디로 검을 쳐내야 할지 알려준다.
천살단주의 비수를 볼 필요가 없다.
해자수가 철벽을 세우는 것이나 등여산이 기분 나빠지는 것이나 그녀가 땅에 발을 붙잡힌 느낌이 다 똑같다.
그녀의 경우에는 왼발이든 오른발이든 땅이 붙잡고 있는 발이 있다. 그 반대쪽 발, 왼발이 붙잡혔으면 오른발 쪽으로 검을 쳐낸다. 자유로운 쪽으로 친다.
땅이 비스듬하게 잡고 있으면은 사선으로 검을 쳐낸다.
땅이 발을 아래로 끌어당기면 위로 쳐내고, 지면에 바짝 붙어서 발목부터 무릎까지 끌어당기면 그 반대 방향 땅을 향해 쓸어낸다.
그런 식의 변화가 순식간에 수십 차례나 펼쳐진다.
홀리는 매번 그 변화를 쫓아가야 한다.
사실 이 변화를 좇아간다는 건 쉽지가 않다. 그래서 중간중간 놓치기도 한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녀가 변화를 놓치면 생기는 곧바로 다음 수를 알려준다.
생기가 알려주는 변화를 완벽하게 좇아가면 최강의 검이 터진다. 그렇지 않으면 다소 약한 수가 나온다. 하지만 약한 수조차도 충분히 난관을 돌파한다.
까까깡! 까앙! 깡깡! 까아아앙!
비수와 검이 요란하게 부딪쳤다.
두 사람은 병기를 맞대자마자 순식간에 이십여 초를 교환했다.
“후웁!”
천살단주가 큰 숨을 들이켜며 뒤로 물러섰다.
“음문촌 무공이……”
천살단주는 매우 놀란 듯 두 눈을 부릅떴다.
“네 검, 아무래도 이상하군.”
“왜? 천살단만 강한 무공을 지닌 줄 알았어?”
“인정하지. 내가 음문촌을 잘못 봤어. 터무니없이 과소평가했다는 점 인정해.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로잡고, 후후! 아이야, 넌 오늘 죽어야겠다. 반드시.”
“이건 뭐 바보도 아니고…… 죽인다고 누가 죽나? 입 아프게 그딴 소리를 왜 해?”
홀리가 검을 들어 올렸다.
홀리는 생기를 마음껏 쓰고 있다. 옛날처럼 부담 없이 펼쳐낸다. 이 자리에서 혈마가 되어도 좋다. 어떻게 변하든 호발귀가 다시 돌려놓을 것이다.
그러니 오늘은 마음껏 싸우는 것이다.
스읏! 차앙!
천살단주가 비수를 거두고 검을 뽑았다.
천살단주가 강호인을 향해 검을 뽑기는 아마 처음일 것이다.
그때다. 한 사람에 재빨리 달여와서 등여산을 낚아챘다.
“웃!”
“후욱!”
천살단주가 급히 사내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어느새 홀리가 앞을 가로막았다.
“후후후! 후후후후!”
천살단주가 거칠게 웃었다. 그리고 홀리를 밀어내기 위해서 와락 달려들었다.
쒜에엑! 까깡! 깡깡깡깡깡!
홀리와 천살단주는 다시 수십 합이나 검초를 교환했다.
홀리는 솔직히 매우 놀랐다.
천살단주의 무공이 가히 경이적이지 않나. 어떻게 생기 무공을 이런 식으로 받아내나.
해자수는 제이낭견대주 탕호를 비롯해서 낭견대 무인 서른세 명을 죽였다. 이것이 생기 무공이다. 생기 무공을 펼치면 상대방의 허점이 환히 보인다.
생기의 움직임은 일정한 흐름을 보이는데, 이 흐름이 보인다.
흐름을 따라가든, 거슬러가든, 아니면 둘로 양단하든…… 일단 흐름이 보이면 상대할 수 있다.
홀리는 해자수와 똑같이 생기 무공을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천살단주를 제압하지 못한다. 그녀의 생기 무공이 약해서가 아니다. 천살단주가 너무 강하다.
천살단주의 무공은 하나같이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다.
요전에 펼친 천수불마공도 그렇지만 방금 격전에서 사용한 도회도륜검(韜晦滔輪劍)도 허리 근육을 있는 대로 찢어낸다.
허리 근육이 비틀릴 대로 비틀려서 등 뒤에 선 적과 검을 맞댈 수 있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역시 근력과 뼈가 버텨줘야만 펼칠 수 있는 무공이다.
그러란 극한의 한계에 진기까지 보태져서 매우 강렬한 회전력을 일으킨다.
미약을 복용한 상태든, 진기를 급증시키는 단약을 복용했던 아니면은 인간의 육체를 철갑으로 만드는 외공을 수련했던 또는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다 복용하고 수련하고 마시고 무엇을 했던……
인간이 펼칠 수 있는 최강의 단계, 그것이 천살단주가 펼친 천수불마공, 도회도륜검이다.
어떤 면에서는 홀리가 펼친 검공도 천살단주가 펼친 무공보다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생기 무공은 그 정도로 근골의 한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 싸움의 결과는 평수다. 홀리와 천살단주가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오직 천살단주가 강하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홀리는 생기 무공의 진가를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사실 그녀는 생기 무공을 호발귀와 비교하면 거의 십 분지 일도 펼쳐내지 못하고 있다.
생기 무공을 본격적으로 연구하지도 않았고, 생기와 무공을 접합시킨 적도 없고, 호발귀만큼 고민해본 적도 없다. 그저 일어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다.
초보적인 단계의 생기 무공과 극한에 이른 인간 무공의 대결인 셈이다. 두 사람은 전혀 알지 못했지만.
“갑니다!”
등여산을 낚아챈 무지가 벌써 꽤 멀리 달아나며 소리쳤다.
스윽!
홀리는 천살단주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앞을 막으며 검을 들었다.
“후후! 후후! 오늘 정말 내가 망신 톡톡히 당하는 날이군. 장강의 뒷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더니 이젠 정말 나 같은 노인네는 손주나 돌봐야 하나?”
파앗!
천살단주의 눈에서 살광이 번뜩였다.
그는 누군가가 자신의 눈앞에서 자신이 잡은 사람을 훔쳐 갈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세상에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눈앞에 혈천방주가 있다고 해도 양보할 생각이 없다. 아니, 혈천방주도 이런 식으로 사람을 빼내 가지는 못한다.
그는 홀리를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피차일반. 영감! 다음에는 책사를 친손녀처럼 아껴왔다는 말은 하지 마. 더러워. 당신 같은 사람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온다는 게…… 책사도 말은 안 하지만 기분이 더러울 거야. 세상에 어떤 할아버지가 손녀 몸에 칼을 박냐?”
“후후후!”
천살단주가 웃으며 검을 칼을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