第九十章 초월인한(超越人限) (2)
“어떻습니까?”
창파가 물었다.
“괜찮아요.”
홀리가 차분하게 대답했다.
세 사람이 동행하지 않으면 혼자서라도 가겠다고 협박했다.
협박은 통했다. 만일, 홀리가 단독 행동을 취하면 세 사람은 만류하지 못한다. 억지로 막아서고 싶어도 홀리를 따라잡지 못한다. 그러다가 홀리가 생기라도 쓰면 더 큰 일이다.
이래저래 불편한 마음을 안고 태흥산에 올랐다.
한데 정말로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등여산 곁에 천살단주가 있다. 등여산을 칼로 찔렀다.
“혈기는 어때요? 들끓습니까?”
창파가 다시 물었다.
홀리가 괜찮다고 했지만, 그래도 혈기가 염려스러운 듯했다. 혈마가 바로 지척에 있으니.
“정말 괜찮아요.”
“혈마가 혼절해서 못 느껴지는 걸까요?”
“아예 아무런 느낌도 없어요. 책사가 정상으로 돌아간 느낌? 정신을 차리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 저 상태에서는 혈기가 느껴지지 않아요.”
홀리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 책사를 데리고 도주하십시오.”
무지가 천살단주를 노려보며 말했다.
“세 분이 단주를 상대하시게요?”
“저희가 일단 막아보겠습니다.”
홀리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세 분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솔직히 세 분은 천살단주 일초지적 밖에 안 돼요. 뒤를 막기는커녕 당장 목숨이 떨어져요. 제 객관적인 판단인데, 틀리지 않았죠?”
“음!”
세 사람이 민망한 듯 얼굴을 붉혔다.
천살단주의 무공은 귀무살 부대주들이 넘볼 바가 아니다. 훨씬 상상을 초월한다. 솔직히 혈마를 제압하는 무공만 봐도 그렇다. 저게 인간의 무공인가 싶다.
“반대로 해요. 제가 막을게요.”
홀리가 말했다.
“안됩니다!”
창파가 즉각 반대했다. 하지만 홀리는 이번에도 생각을 굽히지 않았다.
“천살단주를 막을 사람은 저밖에 없어요. 잘 아시면서.”
“음!”
이번에도 세 사람은 할 말을 잃었다. 창파, 월도, 무지는 서로를 쳐다볼 뿐 할 말을 잃었다.
홀리의 말이 맞다.
세 사람은 천살단주를 막지 못한다. 천살단주의 앞을 막아서는 순간, 종이호랑이처럼 찢겨 나간다.
천살 단주를 조금이라도 붙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은 홀리밖에 없다.
그렇게 해서 책사를 빼낸다고 해도 태흥산을 빠져나가기가 쉽지 않다. 태흥산 정상에는 많은 사람이 숨어있다. 혈천방과 천살단 무인들로 가득 들어차 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있다는 것이 확실히 느껴진다.
일부는 모습을 잡아내기도 했다. 여기 온 사람들은 굳이 숨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반드시 싸우게 될 것이다. 목표물이 하나인 이상, 싸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숨는 게 우선인데, 그래도 모습을 드러낸다. 칠 수 있으면 치라는 것이다.
정말로 쳐볼까? 그러면 함정에 빠진다. 주위에는 적어도 네다섯 명 정도는 포진해 있다. 모습을 드러냈다고 즉시 공격해 가다가는 낭패당하기에 십상이다.
하지만 그들은 모두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되고 말았다.
천살단주가 직접 나서서 등여산을 잡았다. 혈마를 잡는다는 것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나 마찬가지다. 혈마는 잡고 싶은데 검이 워낙 강해서 잡지 못한다.
그런 혈마를 천살단주는 아주 손쉽게 잡았다.
이제 등여산을 가로채려면 천살단주의 손에서 낚아채야 한다. 이런 일을 누가 할 수 있나.
책사를 가로챈다고 해도 뒤쫓아오는 일행과 합류하기가 쉽지 않다.
모두 천살단주는 두려워하면서, 누군가가 천살단주의 손에서 낚아채기만 하면 바로 공격해 올 것이다. 공격하는 자는 혈천방 쪽일 게 분명하고.
“혈천방에서는 귀무살이 온 것 같은데. 숨어있는 모습이 꼭 귀무살 같아.”
무지가 말했다.
혈천방에는 귀무살과 행동을 같이 한 귀무살 외에 또 다른 귀무살이 있다. 지금 현재도 귀문에서는 상당수의 귀무살을 배출하고 있다. 계속해서 살인귀가 쏟아져 나온다.
자신들이 혈천방을 나오지 않았다면, 어쩌면 자신들의 지위를 받았을 귀무살들이다.
귀무살이 귀무살을 죽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거리지도 않는다.
이런 일은 늘 있었다.
귀무살은 귀무살을 믿지 않는다. 이해관계가 틀어지고, 처지가 달라지면 언제든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다. 그렇게 알고 같이 살면서도 경계한다.
“홀리님은 빠져나올 수 있는 겁니까?”
월도가 말했다.
“천살단주 앞에서 누가 장담을 할 수 있어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저한테는 좋은 게 있잖아요? 이걸 사용하면 적어도 지지는 않아요.”
“그러면 혈마가 되는……”
“최악의 경우, 책사처럼 되는 거겠죠? 그럼 해자수, 도천패, 당홍에게 저를 유인해가라고 하세요. 책사는 혼절한 상태이니 절 끌고 가면 돼요.”
“아!”
창파가 탄성을 흘렸다.
그럼 되겠구나! 이게 모두 다 책사가 혼절해서 혈기를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좋습니다. 해보죠!”
창파가 창을 꽉 잡았다.
천살단 무인들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빨리! 빨리!”
임명강이 바쁘게 검벽 무인들을 배치했다.
검벽은 천살단주가 혈마를 향해 걸어가는 순간부터 태흥산 정상을 에워쌌다. 그러다가 천살단주가 혈마를 잡자, 완전히 방어태세에 돌입했다.
물론, 혈천방도 천살단주 앞에서 함부로 서지 못한다. 암습을 가하거나 매복을 걸어야 하는데, 워낙 무공 차이가 크게 나서 통할지 의문이다.
검벽은 그런 점을 알면서도 태흥산을 막았다.
천살단주가 누군가와 검을 맞대는 것부터가 불충이다. 아예 검을 맞대지 못하게 근본에서부터 막는다.
“한 명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단단히 막아!”
임명강이 소리를 내질렀다.
스읏!
홀리는 임명강 앞에 내려섰다.
혈천방은 그녀의 앞을 막지 않았다. 누구든 검벽과 부딪쳐야 하는데, 홀리가 뚫어주니 다행이다 싶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지켜보기만 한다.
천살단주를 상대할 만한 방법을 찾을 때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검벽주, 나 알지?”
차앙!
임명강은 홀리를 보자마자 검부터 뽑았다.
“왜 이래? 다짜고짜 싸우자는 거야?”
“물러서라!”
“호호호! 검벽주. 나는 검벽주를 기습할 수도 있었는데. 그런 건 생각 안 하나 봐.?”
“물러섯!”
“한 가지 궁금한 것만 물어보고.”
“뭐냐!”
임명강이 눈살을 찌푸렸다.
홀리는 분지 안을 쳐다보며 말했다.
“검벽주는 책사를 알잖아. 천살단에 있을 때 친했다며? 검벽과는 형제처럼 지냈다고 하던데? 그렇게 친한 사람 입장에서 대답해봐. 저게 맞아?”
홀리가 분지를 가리켰다.
천살단주는 등여산의 사지를 묶었다. 사지를 묶고, 짐승처럼 손과 발의 매듭을 한데 묶었다.
등여산을 사냥해서 잡은 짐승처럼 대한다.
임명강이 미간만 찡그릴 뿐, 대답하지 않았다.
“검벽주는 책사가 사람을 해치기 싫어서 여기로 온 걸 알지? 저 지경이 됐어도 기어이 이곳에 왔어. 그걸 알면서도 저런 식으로 잡아가는 게 화가 나.”
“책사는 파문당했다!”
“그래서 저렇게 잡아가도 된다? 짐승처럼? 책사를 손녀처럼 귀여워했다는 자식이 저딴 식으로 행동하니, 그 밑에 있는 놈들도 이런 식으로 나오지.”
스릉!
홀리가 검을 뽑았다.
처음 몇 마디를 할 때는 그래도 임명강에서 인간적인 대답이 나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이들은 등여산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오직 천살단주만 생각한다. 이것이 검벽의 임무라는 것을 알면서도 화가 나서 참을 수 없다.
“천살단 참 더럽게 차가운 사람들이야. 당신 같은 사람들과 같이 웃으며 떠들었던 책사가 불쌍해. 책사는 말이야. 지금 당신과 적으로 마주 서면 공격하지 못할 거야. 공격해도 물러서게 하려고 최선을 다했을 거야. 그런 바보야. 쟤는.”
스으읏!
홀리는 산화신법을 펼쳐서 어지럽게 움직였다.
분명히 공격해 오고 있다는 점은 알겠는데, 어디를 쳐올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접근하는 자는 무조건 베라!”
임명강이 쩌렁 일갈을 내질렀다.
검벽에 대한 명령이자, 홀리에 대한 경고다. 더 가까이 오면 베겠다는 엄포다.
“호호호호!”
홀리가 웃었다.
“베! 어디 그러면 이제 적대적인 입장에서 한번 볼까? 천살단주가 얼마나 잘난 호위를 두었는지?”
스읏!
임명강이 비사칠초의 기수식을 취했다.
검을 어깨높이로 들어 올리고, 왼손으로 고동 위 검배(劍背)를 살짝 눌렀다. 그러면서 검첨은 홀리를 겨눴다. 오분폭사(五分爆死)를 생각하고 있다.
비사칠초는 검신 구학봉의 절초다. 주치균이 지닌 최고 절초이기도 하다.
주치균은 살단주가 되면서 검벽주로 승진한 임명강에게 비사칠초를 전수해 주었다.
주치균의 앞길이 순탄치 못해서 생각만큼 자주 수학을 받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지금 임명강이 지닌 무공 중 가장 앞세울 수 있는 검학이 되었다.
홀리가 산화신법을 펼쳐서 다가오며 말했다.
“참고로 말이야. 나는 검벽이 사마에게 펑펑 나가떨어지던 것을 기억하고 있어. 창피하지 않니? 넌 네 수하를 죽인 사마가 천살단에서 나왔다는 걸 알면서도 찍소리 한마디 못했어. 소위 대가리라는 게. 대가리라면 뭐든 했어야지.”
임명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홀리가 보내오는 압박감이 숨을 막히게 한다.
산화신법은 혈천방이 창안한 무공이다. 음문촌의 혈맥참을 받아들여서 산화검법으로 발전시켰는데, 그 밑바탕이 되는 신법이 바로 이 신법이다.
이제 곧 산맥검법이 터진다.
검법이 일어나면 집채만 한 파도가 전신을 덮치는 느낌이라고 했다. 어디를 방어해야 할지 알지 못하고, 정확하게 노리는 곳이 어딘지는 분간하기 힘들다고 했다.
상관없다. 자신은 오분폭사를 이용해서 정중앙을 타격한다.
쒜에엑! 쒜에엑!
홀리가 확 달려 나왔다. 순간, 그녀의 검이 순식간에 환영을 일으키면서 수십 가닥으로 변했다.
“타앗!”
임명강도 일갈을 내질렀다. 검이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나갔다. 동시에 검이 다섯 조각으로 갈라졌다. 진기로 검을 분쇄했다.
다섯 조각은 다시 다섯 조각으로, 그것이 다시 다섯 조각으로…… 순식간에 수백 조각으로 갈라졌다.
휘르르릉! 파아아앗!
검편이 아니라 수백 개의 파편으로 변한 검 조각들이 일제히 홀리를 향해 쏘아갔다.
홀리의 검이 흔들거렸다.
임명강은 오분폭사가 쭈욱 갈라지는 것을 보았다.
검이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검편들을 갈라버린다. 양쪽에 절벽이 생긴다. 한가운데, 텅 빈 공간으로 검 한 자루가 불쑥 들어서더니 곧바로 찔러왔다.
‘이건 혈맥참!’
산맥검법이 아니라 혈맥참이다.
“잘 가!”
임명강은 맑은 음성을 들었다. 순간,
파파파팟! 퍼어억! 퍽! 퍽! 퍽!
홀리의 검이 임명강의 몸에 작렬했다. 열두 개로 확 불어난 검화가 모조리 틀어박혔다.
“크으윽!”
임명강의 신형이 뒤로 훌쩍 날아가 떨어졌다.
그와 때를 맞춰서 홀리의 양쪽에서 월도와 창파가 병기를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이놈들아! 네놈들 상대는 나야!”
쒜에엑!
월도가 검벽 무인들에게 달려들며 대도를 휘둘렀다.
“후후! 여기도 있다. 여기가 더 매서워!”
쒜엑!
창파가 장창을 휘두르며 길을 열었다.
월도가 장파는 순식간에 검벽 무인이 에워싼 태흥산 정상에 길을 열었다.
검벽 무인들이 단숨에 뚫려서 길을 열어주었다.
“단주!”
홀리가 소리를 버럭 내지르면서 천살단주를 향해 달려들었다.
천살단주는 막 짐승처럼 사지가 묶인 등여산을 걸머메고 분지를 떠나려던 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