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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마전인-395화 (395/500)

第八十九章 임시방편(臨時方便) (5)

쒜엑! 쒜에엑!

홀리 앞에 세 사람이 나타났다. 월도, 무지, 창파다.

“책사는 어딨어요?”

홀리는 그들이 나타날 줄 알고 있었다. 굳이 생기가 아니더라도 세 사람의 신형을 잡아낼 정도의 감각은 가지고 있다. 음문촌의 칠녀이지 않은가.

“잠시 발길을 멈추시라는 분부입니다.”

“무슨 말이에요.”

홀리의 미간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지금 이곳으로 해자수, 도천패, 당홍이 오고 있습니다.”

“누가 와요?”

홀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해자수하고……”

“그 다음이요! 그 다음에 누가 온다고 했어요?”

“도천패하고 당홍이……”

“지금 형부하고 언니가 온다고 말한 거죠? 내가 잘못 들은 거 아니죠? 맞죠?”

홀리가 창파의 말을 끊고 물었다.

“네.”

“아! 잘 됐다! 정말 잘됐네요! 호호호!”

홀리가 활짝 웃었다.

그녀는 활짝 웃다가 이내 정색을 하고 다시 물었다.

“호발귀! 호발귀가 방법을 찾아낸 거죠? 호발귀가 두 사람의 몸에 있던 혈기를 빼낸 거죠?”

“그렇습니다.”

“호호호호! 호호!”

홀리는 정말 상쾌하게 웃었다.

드디어 호발귀가 방법을 찾아냈구나! 그렇게 고민하더니, 드디어 해냈구나!

홀리는 기쁨이 충만했다.

“혈마님 말씀이 지금 홀리님 몸에는 혈기가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아주 위험한.”

“맞아요. 저도 알고 있어요.”

“그런 몸으로 혈마하고 부딪치면 당장 혈마가 되신다고. 당장 멈추시라는 말씀입니다.”

“호호호! 그건 호발귀 말투가 아닌데? 호발귀는 당장 멈추라고 말하지 않는데? 잠시 기다려라, 좀 쉬고 있어라. 이게 호발귀 맡투거든요. 그거 귀검이 한 말이죠?”

귀검이 한 말이면 어떻고, 호발귀가 한 말이면 어떤가? 아무 상관없다. 마음이 너무 기뻐서, 들뜬 마음이 확 일어나서 자신도 모르게 농담을 던진 것이다.

“혈마님이십니다. 혈마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무 중요한 일이라고 하시면서.”

귀무살이 농담을 알아듣지 못하고 진중하게 말했다.

귀무살에게 호발귀의 공식적인 명칭은 혈마다. 등여산도 혈마이지만, 오직 호발귀만이 진짜 혈마로 인식한다.

“호호호! 내 상태도 알고 있고, 내가 여기 온 것도 알고. 이제 뭔가 제대로 된 것 같네. 호호호! 정말 답답했는데, 잘 됐다. 잘 됐어. 호호호!”

홀리가 연신 웃었다.

“혈마님은 세 분의 혈기를 빼냈습니다. 세 분이 책사님을 온전히 유인해 갈 겁니다. 이것도 혈마님 지시입니다.”

“아! 그때처럼!”

홀리는 적이 마음을 놓았다.

호발귀는 자신이 당한 일을 이번에 쓰려고 한다. 혈마가 되어서 세 사람을 쫓아왔었는데.

그 방법 그대로 세 사람을 이용해서 혈마를 끌어내려고 한다. 한 사람이 혈마 앞에 서면 당장 따라잡힌다. 하지만 세 사람이 교대로 움직이면 얼마든지 유인할 수 있다.

이것은 충분히 할 수 있다.

혈기가 제거된 세 사람은 마음 놓고 생기를 쓸 수 있다.

혈마가 혈기를 써서 쫓아온다면, 세 사람은 생기를 써서 도주한다. 물론 그러는 동안에 그들 생기도 자신처럼 혈기로 물들 테지만, 호발귀가 있으니 염려 없다.

그들 세 사람이 혈마를 유인해서 동굴로만 가기만 한다면 안심이 된다.

모두 동굴에 가서 차례만 기다리면 된다.

호발귀가 한 명, 한 명 모두 치료할 것이다. 혈기가 일어난 사람은 모두 치료해준다.

다행이다. 천만다행이다.

“책사는 지금 어딨는데요?”

“산속으로 들어갔습니다.”

“산이요? 어느 산이요?”

“저기 보이는 저 산입니다.”

창파가 언뜻 보기에도 상당히 크고 깊은 산을 가리켰다. 산 하나가 아니고 산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태흥산맥(太興山脈)이다.

눈에 보이는 큰 산이 태흥산이고, 주위로 크고 작은 산들이 칠십여 봉이나 늘어서 있다.

창파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혈마는 가끔 마을 쪽으로 오기도 하는데, 가능한 산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한 혈마와 다른 행보라서 우리도 상당히 곤혹스러운 지경입니다.”

그는 혈마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했다.

‘이 앙큼한 것!’

홀리는 태흥산을 쳐다봤다.

귀무살은 정녕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혈기가 치밀면 당장 혈마가 된다고 했는데, 어떻게 살인 충동을 참는지, 어떻게 혈기에 저항하는지 전혀 모른다.

등여산은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

모두가 생각한 것처럼 아직 완전한 혈마 상태가 아니다. 혈마가 되어서 미쳐 날뛰면서도, 마음 한편으로는 죽어도 혈마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마음을 붙잡고 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호발귀마저도 혈기가 일어나면 단숨에 휘어 잡힌다고 말했다. 거부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직접 눈으로 보고 있지 않은가. 등여산은 그것을 거부하고 있다.

그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이 힘은 호발귀도 예측하지 못한 것이다. 모두가 예측하지 못했다. 귀검도…… 솔직히 홀리도 알지 못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피로 물들어 있어야 할 혈마가 심장 한구석에 온기를 남겨두고 있다. 사방 구분을 하지 못하고 생기만 쫓아다녀야 할 마물이 산만 쫓아다니는 것을 보면 모르겠나.

혈마는 살인을 피하려고 스스로 산행을 택했다.

간혹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마을로 들어가서 살인을 하는 일도 있다. 하지만 한 조각 정신이라도 돌아오면 그 즉시 산으로 발길을 돌린다

홀리는 처절하게 싸우고 있는 등여산의 마음이 읽혔다.

‘널 어떻게 죽이니? 정말 널 어떻게 죽여?’

하지만 방법이 없었다. 정말 오기 싫은 발걸음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죽이지 않아도 된다. 호발귀가 단숨에 모든 고민을 말끔히 해소해 주었다.

‘잘 된 거야. 조금만 버텨.’

홀리는 태흥산을 보면서 응원이라도 해주고 싶었다.

홀리가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가요. 우리 어디서 기다려요?”

세 사람을 따라서 움직이는 중이다. 태흥산 쪽으로 방향을 잡고 움직이는데, 급하게 서둘지는 않았다. 빨리 가도 할 일이 없었다. 혈마 곁에 다가설 수도 없고.

그때, 홀리의 머릿속에 퍼뜩 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파신금령술!’

혈마를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방법이 있다. 무령환살공에 이은 파신금령술이라면?

“천살단!”

홀리는 자신도 모르게 경악성을 내뱉었다.

‘안돼! 안돼!’

갑자기 다급해졌다. 천살단은 혈마에게 접근할 수 있다. 호발귀도 주치균이 다가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슬쩍 다가가서 파신금령술을 쓰면 꼼짝하지 못한다.

“빨리! 빨리! 책사에게 가야 해요!”

“네?”

“천살단에 무령환살공이 있어요! 그걸로 책사를 잡을 수 있다고요! 잡기 어려우면 당장 죽일 거예요. 아니, 아니, 사로잡을 거야!”

홀리는 당황해서 횡설수설했다.

“천살단이 찾기 전에 우리가 먼저 찾아야 해요!”

“안 됩니다.”

창파가 홀리를 막아섰다.

“저흰 혈마님을 믿습니다. 지금 홀리님이 책사 곁에 가면 당장 혈기가 충천할 겁니다. 책사를 도와주기는커녕 오히려 저희에게 더 큰 부담만 안겨주십니다.”

“아!”

홀리가 탄식했다.

“지금 혈마를 유인할 사람이 달려오고 있으니 잠깐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섯 시진. 딱 여섯 시진이면 됩니다. 한나절이면 충분히 도착할 거예요.”

훈련은 털썩 주저앉았다.

창파의 말이 옳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

호발귀 말대로 자신이 접근하면 혈마와 혈마의 싸움, 둘 중 하나가 죽는다.

창파가 홀리를 달래며 말했다.

“여기 계십시오. 저희가 가보겠습니다. 천살단이 와도 여섯 시진은 버틸 수 있어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 * *

“타악 투 파 비투 쏘……”

구혼음소가 계속 혈마를 두들겼다. 혈기를 두들겼다.

등여산은 내면에서 극심한 전투를 벌였다.

혈기가 뛰쳐나가려고 한다. 그 앞을 구혼음소라는 병력으로 막아섰다.

구혼음소가 혈기를 들이칠 때마다 혈마가 충격을 받고 비틀거렸다. 하지만 혈마도 곧 반격을 취했다. 천지를 뒤덮을 힘으로 구혼음소를 강타했다.

꽈르르르릉!

구혼음소가 무너졌다.

“커억! 끄으으으윽!”

등여산은 심한 고통에 무너졌다. 털썩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몸을 마구 뒤틀었다.

구혼음소가 무너지든 혈마가 다치든…… 양쪽이 받은 충격은 고스란히 등여산에게 몰아쳤다.

그녀는 이쪽이 당해도 고통스럽고 저쪽이 당해도 힘들다.

심장이 터져 나갈 듯이 조여온다. 혈맥이 금방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른다. 한순간 얼굴이 시뻘겋게 변했다가, 또 한순간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이 창백해진다.

배가 너무 아파서 데굴데굴 뒹굴 때도 있다.

구혼음소와 혈기의 충돌은 실질적인 고통을 불러왔다. 세상에서 가장 극심한 고문을 당하는 것과 같다.

“제발! 차라리 죽여줘!”

등여산은 너무 아파서 죽여달라고 애원했다.

하늘에 천지신명에게 간절히 기원했다.

살려달라고 기원하지 않는다. 제발 좀 이대로 숨을 끊어달라고 기원했다.

그만큼 아프다.

“취저 처 타마……”

그래도 구혼음소를 멈출 수는 없다. 계속 읊는다. 구혼음소가 잠시라고 힘을 잃으면 곧바로 혈기가 일어난다. 그리고 혈기는 살인으로 이어진다.

등 여사는 자신의 손에 묻은 피를 봤다. 자신의 검에 쓰러진 사람들을 봤다.

베는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그녀가 본 것은 혈마가 만든 흔적이다. 목불인견(目不忍見),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처참한 광경이 펼쳐졌다.

호발귀가 이런 살인을 할 때만 해도 인간의 짓이 아니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는데, 그 일을 자신이 하고 있다.

‘안돼! 안돼!’

등여산은 구혼음소와 ‘안 돼’라는 말만 반복했다.

반면에 혈기는 금방이라도 그녀를 집어삼킬 듯 하늘 높이 치솟았다가 뚝 떨어졌다.

촤아아악!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다. 온 신경이 가닥가닥 끊어졌다.

구혼음소를 읊지 마라. 구혼음소를 말하면 네 몸이 이렇게 아프다. 순순히 내 말을 들어라. 내 말만 들으면 편해지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나.

분근착골(分筋錯骨)이라는 고문 수법이 있다. 뼈란 뼈는 모두 분질러 버린다. 뼈와 살을 분리해 버린다. 근육의 결대로 한 가닥씩 찢어낸다.

이 수법을 제대로 당하면 일각도 버티지 못하고 폐인이 된다.

탈피화설(脫皮花雪)이라는 고문도 있다. 피부를 벗겨내고, 그 위에 소금을 뿌린다. 붉게 피가 밴 피부에 소금이 뿌려지면, 꽃 위에 하얀 눈이 내린 것처럼 보인다.

고통은 말할 것도 없다.

등여산에게 이 모든 고통이 한꺼번에 몰아쳤다.

너무 아파서, 너무 고통스러워서 구혼음소를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몇 번이고 치솟았다.

구혼음소를 멈추면 고통도 가신다.

‘알아. 아주 편안해지는 것을 알아.’

편안해지는 정도가 아니다. 오히려 상쾌한 기분이 밀려온다.

너무 상쾌해서 중독될 지경이다. 하지만 그 상태가 되면 살인이 일어난다. 사람을 죽인다.

등여산은 극한의 인내심으로 상쾌함의 유혹을 뿌리치고 고통에 휘말렸다.

“티록 타 미 고토……”

구혼음소는 가닥가닥 끊긴다.

빨리 홀리를 만나서 이 고통을 끊어내야 하는데…… 이제는 정말 이생에 미련이 없는데.

“크으윽! 커억!”

구혼음소가 혈기를 가로막았다. 그 대가로 그녀는 땅을 데굴데굴 굴렀다.

이놈의 목숨은 끊어지지도 않나. 뭐가 아쉽다고 이렇게 질기게 버티나. 빨리 죽기라도 하지.

‘제발 죽여주세요. 제발!’

등여산은 죽음을 고대하면서 구혼음소를 읊었다.

“타마 하마 주누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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